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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ㅣ 창비세계문학 39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처음 읽는 홀리오 꼬르따사르의 단편집이다. 아르헨티나 작가의 환상문학이라고 하니 보르헤스, 마르케스, 요사 뭐 이런 작가들을 떠올렸다. 번역되기 전부터 워낙 대단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서 기대하고 읽었는데, 대단한 작가를 만났다 싶다.
추리소설을 처음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나를 끌어줬던 것이 에드 맥베인과 미야베 미유키였다면,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을때의 나를 끌어줬던건 마르케스와 보르헤스였다. 중남미 소설들을 좋아해서 번역된 작품들은 다 찾아 읽었던 것 같다. 그 때에 비해 지금은 워낙 다양하게 나오니 놓치고 있는 작가들도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중남미 소설에 대한 애정을 되살려주는 작품이다.
'마술적 사실주의'와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전자가 '마술적'에 방점을 둔다면 환상문학은 좀 더 현실이 중심이다. 현실의 반대는 '환상'이 아니라 '비현실' 이라는 관점에서의 환상문학. 써놓고 보니 좀 이상하지만, 뒤에 해설도 잘 나와 있고, 흥미진진하다. 해설에서 옮겨보면 "꼬르따사르 작품에서 환상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점점 약해지는 현실(또는 현실적인 요소)과 점점 강해지는 비현실(또는 비현실적인 요소)의 간섭 상태에서 발생한다."
해설까지 끌어와 언급해 두는 것은 이건 '판타지'도 아니고, '마술'도 아닌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 '비현실'이 끼어들어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리고, 독자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과는 꽤나 다른 형식이었어서 그런다.
뭐? 뭐? 뭐? 뭐?! 이러면서 읽게 된달까;;
작가가 여성작가인가 찾아볼만큼 문장이 섬세하다. 현대적이고, 때때로 귀엽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엄청 풍부하다. '마술적 사실주의'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마술적 사실주의'가 점점점점 압도당하는 신화?설화? 마술? 이라면, 꼬르따사르는 '환상특급' 과 같은 일상의 비현실.이라고 할까.
꼬르따사르는 외교관인 아버지로 인해 벨기에에서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벨기에,파리 등지의 유럽이 아르헨티나와 함께 배경으로 많이 나온다. 모두 단편이고 마지막의 '추격자'만이 중편이다. '추격자'는 조니라는 시대의 장을 넘긴 천재(?) 알토 색소포니스트와 그의 전기를 쓰고 매니저 역할도 하는 재즈 칼럼니스트 브루노의 이야기인데 조니가 천재 작가인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재즈칼럼니스트인 브루노에게서도 작가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며 읽었다. 뒤에 보니 '찰리 파커' 를 모델로 한 글이라고 한다.
단 두 장의 짧은 단편을 포함해 짤막한 단편들인데 이야기 자체도 흥미진진한데, 뭔가 해석의 여지가 많아 재미나다. 이런저런 설들도 있나본데, 작가는 그런거 없다.고. 하지만, '소설'이라는게 작가의 의도 포함 시대성과 독자의 경험성이 모두 포함되어 해석되는 것이 맞지 싶다.
첫 단편인 '점거당한 집'부터 압도적이다. 홀리오 꼬르따사르가 긴가민가 한다면, 몇 장 안되는 첫 단편 '점거당한 집'을 읽어보고 재미있겠다! 싶으면 계속 읽어나가면 된다. 이런류의(?) '집' 이야기를 읽으면 자동적으로 셜리 잭슨이 떠오르니 병이다. 첫 단편까지는 재미있겠는걸 싶지만 아직 이 작가만의 특색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두번째 단편인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부터는 ...응? 뭐라고? 하며 읽게 된다. 단어나 문장이 귀엽고 적절해서 천재과의 작가가 술술 써내리는 모습이 상상된다.
우리 두사람은 상호공존이라는 단순하고도 흡족한 계획을 세웠으므로 당신이 9월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오면 나는 다른집을 구해야 하고... 그러나 지금 그 일로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이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토끼 때문인데, 당신도 알아두는 게 좋을것 같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내가 편지 쓰기를 좋아하고, 어쩌면 지금 비가오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뭔가 되게 소녀소녀한 분위기의 글이다. 중남미 작가의 환상문학이라기보다 일본 여작가의 글같은?
결말이 살짝 충격이라도 계속 읽어나가면 다음 작품은 '먼 곳의 여자'이다. 이런 작품들이 꼬르따사르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 현실에 끼어드는 비현실. 표제작인 '드러누운 밤'도 그렇고, '맞물린 공원',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 ,'어머니의 편지,'악마의 침' 등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특장이다.
'시내버스'나 '남부고속도로' 같은 작품도 재미있다. 왜 그런지,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주지 않는 불친절함,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점점 고조되는 긴장과 두근거림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승과 결만 있는 것 같은데 그 상황에서도 빨려들게 만드는 작가의 힘. 그리고 이야기의 어떤 장면을 봐도 재미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할테고.
여기서 또 옮긴이 해설 중 한 부분을 옮긴다.
폴 굿먼이라는 사람은 일찍이 소설이란, 가능성에서 시작하여 개연성으로 나아가고 필연성으로 마무리된다고 이야기했다. 줄거리가 전개됨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에서 '그럴듯하다'로. 마지막에는 '그래야만 한다'고 독자가 설득당한다는 것이다.꼬르따사르 작품은 이와 정반대로 전개된다고 말할 수있다. 필연성-개연성-가능성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때 필연성이란 작품의 나머지 부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며,가능성이란 새로운 차원의 열림이다.
해설까지 옮겨가며 좀 길어진 리뷰이긴 한데, 한 작품도 버릴 작품없이 한번도 빠짐없이 매번 감탄하며 읽었다. 이 책만 계속 반복해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