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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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이라기보다 중편 정도의 분량이다. 좀 긴 단편이라고 해도 될만큼 짧고 강렬한 내용이다. 여호와의 증인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소년에게 강제로 수혈을 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단 이틀! 뭐 이런 서스펜스는 아니란 얘기다. 


주인공은 가정법원의 판사 피오나 메이. 그녀를 사랑하지만 열정적인 성생활을 위해 바람 피우겠다고 공언하는 남편 잭과의 다툼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메인이 되는 여호와의 증인 소년에 대한 수혈을 포함한 아동법 관련 다양한 케이스들이 나온다. 


18살까지 3개월이 남은 소년이 있다. 급성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는데, 종교적인 이유로 통상적인 치료절차인 '수혈'을 거부하자 병원에서 긴급수혈을 할 수 있도록 법원명령을 신청한다. 


이제 곧 18이 되어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또래보다 성숙하고 사랑스러운 소년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부모와 아이의 주장이고, 아직 아이에 불과한 소년이 부모와 장로들의 의견에 휘둘려 자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병원의 주장이다. 


피오나가 평결을 내리기 전에 끈기있고 철저하게 논제를 파고드는 과정을 아동법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이고 정결한 문장들로 보여준다. 작가가 이 소재에 매력을 느낀 부분이 아동복지와 아동법에 의거해 판결하는 판사들의 판결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그녀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샴쌍둥이 사건 때문이었는데, 한 명을 떼어내지(죽이지) 않으면 둘 다 죽는 결과 앞에서 한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그 재판의 후유증으로 인한 망연자실함을 감추고 있던 상태에서 남편과 불화를 겪게 되고, '여호와의 증인 소년' 사건을 만나게 된다. 


소년과 직접 만나고 판결을 내리기로 하고, 소년을 만나고 와서 내리는 판결문은 아름답다. 

외부와의 접촉이 한정되었던 아름답고 똑똑한 소년은 많은 어른들을 설득할만큼 성숙해 보이지만, 드라마틱하다. 

소년은 판사를 만나고, 후에 판결문을 듣게된다. 


판사에게는 많은 사건들 중에 하나였지만, 소년의 세계관은 죽음을 경계로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짧은 소설의 결말이 판사 피오나에게 만큼이나 독자에게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피오나에게도 나에게도 스쳐지나가고, 많은 사건들 중에 하나로 잊혀져 가리라는 것이 분명해서 씁쓸하다.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아동법(1989) 제 1조 (a) 항 



처음 책소개를 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다른 책이었다. 

이언 매큐언의 책을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전작들은 들춰 봐야지만 기억날 것 같지만, 이 책은 언제라도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야 나에게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의 글들이 와닿기 시작한건가 싶어 전작들을 꺼내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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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2015-08-15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사두길 잘했군요.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서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수혈 문제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게 생각나네요.
선택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정답을 알 수 없는 세상이예요.
하이드님 리뷰를 보니 책이 더욱 기대됩니다 ^^
 










책은 이전에 부록으로 나왔던 정말 쪼끄만 것에 비해 크지만, 엄청난 볼륨을 자랑하는해리 홀레 시리즈다보니 

워낙에 크고 두꺼웠는데, 이번에 나온 미니북은 컴팩트하고 맘에 든다. 문고판 느낌이랄까. 

책의 퀄은 매스마켓버전을 겨우 벗어난 정도이긴 하지만, 디자인은 훌륭하다. 


세트 버전의 박스는 늘 무쓸모라고 생각했는데, 이 미니북세트는 박스에 넣어주어야 할 것 같고, 

함께 나온 미니노트를 해리 홀레 이야기로 채우면 더더욱 업그레이드 된 세트가 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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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5-08-13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책들이 두껍고 무거워 집밖으로 나오기 힘들었는데 이 시리즈는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전 이 시리즈를 거의 가지고 있으니 입맛만 다실 뿐.

하이드 2015-08-14 09:30   좋아요 0 | URL
`데빌스 스타` 빼고는 다 읽었는데, 음..저도 다 샀지만, 또 샀어요. 하하 ^^

moonnight 2015-08-15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또 봐버렸네요ㅜㅜ;

하이드 2015-08-15 21:07   좋아요 0 | URL
저는 기존의 책 읽는대로 정리했던터라 이걸로 소장하면 될 것 같아요

보슬비 2015-08-1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그레 시리즈를 생각나게하는 표지네요. 그래서 처음엔 요네스뵈책인줄 몰랐어요. ^^
박스세트에 있을때는 멋진데, 책 표지는 기존 이 저는 더 좋은것 같아요.~~
역시 책과 꽃이 있으니 더 멋집니다.

하이드 2015-08-15 21:07   좋아요 0 | URL
원표지에서 중심 이미지들(물방울,별,열쇠 등)을 따와 심플하고 직관적으로 만들었어요. 저도 메그레 시리즈 생각났는데, 실물 보면 별로 그런 생각 안 들구요. ^^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다니엘 튜더 지음, 송정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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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의 두번째 책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것은 '음악'과 '글쓰기' 이고, 10대때부터의 장래희망인 '록스타 되기'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소규모 자가 양조 맥주점인 '더 부쓰 The Booth'의 사장님이기도 하다.

옥스퍼드에서는 정치학, 경제학,철학을 공부했으며 2002년 월드컵때 한국을 찾았다가 한국에 빠져서 2004년 다시 서울로 와서 외국인강사, 미국계 증권회사, 한국의 증권회사를 다녔다. 2007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맨체스터 대학에서 MBA를 따고 스위스의 헤지펀드 횟에서 일했다. 2010년에서 2013년까지는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다. 

저자의 경력을 이렇게까지 리뷰에 써 본적이 없는데, 사실, 지금 리뷰 쓰면서 처음 봤는데, 너무 흥미로워서 다 옮겨 보았다. 
이 책은 '한국정치'에 관한 책이다. 위에 적은 그런 과거를 지닌 82년생 영국 남자의 눈으로 본 '한국정치' 에 관한 책이다. 

이 나라의 정치는 대체로 재미 없고, 황당함으로 자극할 뿐이다. 투표권이 생긴 이래로, 그리고 훨씬 더 전인 애기때부터도 내가 아빠 손에 끌려 야구장을 다니며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었던것처럼 나는 2번을 찍어왔다. 한국정치에 대해서라면 장강명의 소설 제목처럼 갑갑하고 싫다. '한국이 싫어서' 를 만든'한국'은 바로 '정치'가 만든거 아닌가 말이다. '익숙한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보는 내내 불편하지만, 뒤로 갈수록 안개가 걷히듯, 처음으로 새누리당의 능력이 보였고, 익히 알던 새정치연합의 무능이 선명해졌다. 이렇게 얘기하니 새누리당에 호의적이고 새정치연합을 까는 책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 책에서만큼은 다니엘 튜더는 모두까기 인형이다. 다만, 국외자의 눈으로, '영국 정치' 속에서 대부분을 살아 왔던 이의 눈으로 비판하기에 좀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대체로 욕하고 한심해하지만, 그들의 능력을(국정을 잘한다는 것과는 다른)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불편한 희망' 이라고 했는데,'희망'은 어디 있나요? '현상유지'로 이미 먹고 들어가는데, 그 '현상유지'를 잘하기까지 하고, 그들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무능한 야당까지 있으니,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한 표를 행사하는 것에도 대부분의 경우 패배감만 느끼고, 어떻게 그럴수가! 분노하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깊은 체념이 자리잡고 있는데, 제1세계 선진 영국에서 온 저자 답게 영국의 좋은 사례들을 알려주는데, 그 부분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면 챕터 09의'좋은 정치인 찾기' 같은거. 

영국에는 정치인과의 면대면 간담회 문화가 있다. 유권자의 민원이나 고충을듣는 일명 '서저리surgery' 제도다. 영국 국회의원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서저리 자리를 마련한다. 간담회를 원하는 유권자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 시간과 날짜를 물어보면 된다. 국회의원은 바쁘더라도 서저리 요청을 받으면 몇 주일 내로 10~ 15분가량 시간을 내도록 되어 있다. 

유권자는 정치인과 직접 만나 간담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4~5년마다 한 번씩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 외에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2011년 73명의 런던 국회의원 중 10명은 연간 1000명 넘는 유권자를 만났고, 국회의원 1명당 연간 평균 720명의 유권자를 만났다. 

그러니깐,이게 헛된 공약 뿌리는 선거때 말고, 사진 찍으려고 기자들 몰고 다닐때 말고, 1대1로 직접 만나 민생을 듣는다는거 아닌가. 이건 유권자 뿐만 아니라 정치인도 유권자를 표찍는 '머릿수'로만 세지 않고,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좋은 제도인 것 같다. 책에서 다니엘 튜더의 친구는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국회의원이 만나줄리 없다고 했다는데, 그 친구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나도 물론 시도해 본 적 없다. 

그리고 이 책에는 다니엘 튜더가 대단한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대단히 양성평등에 뒤쳐져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강조하는 글들이 나오고, 그건 근래의 몇몇 진보지식인들의 행태를 봤을때도 굉장히 와닿는 글이었다. 

386 아저씨에 의한, 386 아저씨를 위한

민주당 당사에 갔을 때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특정 그룹이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왕년에 학생운동을 한 지식인이나 교수처럼 보이는 40~50대 남성이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다양성이 배제된 특정 그룹이 당을 주도하고, 끊임없이 학생운동 시절과 박정희를 운운하는 사람들로 뭉친 정당은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인식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해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다. 내가 겪은 바로는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더 따뜻하고 일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했다. 하지만 너무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나이나 성별,배경 면에서 다양성이 부족해 국민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희망을 품기 어려워 보인다 

상대적으로 여성 비중이 낮은것 역시 눈에 띄었다. 박원순이 재임에 성공한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날에는 당사에 여성들이 많이 보였는데,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아니라 시청 직원이나 박 시장과 시민단체 활동을 같이 했던 동료들인 것 같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사에서는 여성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거 캠프 관게자에 따르면 여성 비율이 10퍼센트에도 미치지 않고, 그마저 선거를 돕고 있는 20대 인턴이 대부분이며 지도부에는 여성이 정말 극소수였다. 

이 이야기 뒤로 저자가 본인은 지지정당이 없지만, 새누리당이 한국에서 정치공학에 가장 뛰어난 정당인 점은 인정한다고 말하면서 이자스민을 비례후보로 공천한 영리한 전략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다니엘 튜더는 여기에 덧붙여 최초의 동성애 커밍아웃 의원을 새누리당에서 비례공천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아.. 새정치연합이여... 

복지에 대한 접근 방식도 현명하다. 여기서 새정치연합은 완전히 망했고, 망했고, 프레임은 새누리당이 선점했다. 야당이 했어야 하는건 '투자로서의 복지' 프레임이였다. 

한국에서는 복지를 확대하려는 사람들조차 그릇된 방식으로 복지를 제시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메시지는 이랬다. '가난하고 딱한 국민이여, 국민의 최상위 1퍼센트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빈곤해진 이명박 정권 아래 끔찍한 시간을 보낸 여러분, 여러분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복지를 확대하겠습니다.' 마치 사탕을 잃어버린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수사였다. 
복지에 대한 궁극적 메시지는 '복지는 정부가 여러분에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여러분이 꿈을 이룰수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돌려주십시오'라고 전달되어야 한다. 지위 상승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회가 지금 여러분을 도울 테니, 나중에 성공하면 사회를 도와야 합니다'라는 암묵적 합의가 복지정책에 내포되어야 한다. 

마지막장인 '모든 것은 프레임에 달려 있다' 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페미니즘'과 '어셩인력 낭비 문제' 에 대한 글은 
현실적이고 명쾌하다. 

책이 나온 것이 6월인데, 안철수에서 세월호까지 다양한 현재진행형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의 세번째 책에서는 불편해도 좋으니 '희망'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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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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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의 실질'을 키우고 싶다. 두둑한 배짱으로 나약함과 불안감 따위를 다 몰아내고 어디까지나 밝고 적극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누구라도 이러한 것들을 바록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그러한 작은희망조차 손에 넣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요? 세간에는 밝게 살고 오래 사는 비결,미용이나 바디 케어,안티에이징이나 마음 수련법뿐만 아니라, 학원 선택법, 자산 운용법, 손해 없이 상속하는 법,무덤을 고르는 법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들이 마음의 실질을 키우는 데 얼마나 도움이될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불안할 뿐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나 토마스 만이 그려 낸 것은 이른바 '마음을 상실하기 시작한 시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이미 '마음 없는 시대'의 마음을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음습한 집단 괴롭힘이나 무차별적인 폭력, 자신들의 울분을 풀기 위한 인터넷상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 나아가 예전의 국수주의를 방불케 하는 혐오 발언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글로벌 자본주의의 패배자들 혹은 몰락의 불안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외주의나 사회의 '이물질'에 대한 공격에서 배출구를 찾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황폐한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까지 이르지 않았을까요.  


강상중 교수의 책은 꽤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주제는 '마음', '고민' 뭐 이런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그 의미가 퇴색된 단어들인데, 그 흔하지만 중요한 단어들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주게 한다. '마음'을 이야기하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들, 읽고 나서 뒤돌아보면 잊혀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왜 늘 강상중 교수의 책은 와닿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재일교포로 살았고,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였고, 칼 맞는걸 대비해 옷에 종이뭉치를 끼우고 다녔다는 그런 과거의 경험들과 그 과정에서의  치열한 고민과 선택과 실천이 있었어서이지 않을까. 


그가 항상 인생의 멘토처럼 드는 '나쓰메 소세키' 에 대한 이야기들, 소세키 자신의 이야기와 소세키 소설 속의 인물들 이야기들을 늘 현실에 접해 이야기해주니, 소세키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 와닿고, 소세키 소설은 더 좋아지고. 그런 개인적 선순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마음'이다. 이 책에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가 꺼낸 멘토는 나쓰메 소세키 '마음' 의 '나'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오는 한스 카스트로프이다. 


'마의 산'은 재미없는 책.완독하기 힘든 책.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는데, (아마 다시 읽어도 그럴 공산이 높긴 하지만) 강상중 교수의 안내로 따라 한스 마음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재미있었다. 이전의 책에서와 달리 이 책에는 언급된 두권의 책이 인용되기도 하지만,열린 결말과도 같았던 결말의 뒷부분을 창작한 것이 나온다.거기에선 한스와 '나'가 만나기도 하는데, 이야기가 무척 자연스러워서 정말로 두 권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마음', '행복', '사랑','고민'등등은 이전 책들과 비슷하다. 늘 나오던 소세키도 나오니 말이다. 다만, 그 중에 '마음'에 더 방점을 둔 책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 말할 수 있으랴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않을까. 단단한 마음. 서문에서의 표현을 따면 '마음의 실질'을 고민하는 두 주인공을 내세우고, 당시에는 마음의 '상실''을 고민했다면, 요즘은 상실을 고민할 '마음'마저 없음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한다. 그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고, '시대'의 탓이기도 한데, 시대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마음의 실질'이라는 것을 찾아 기르자고 한다. 


여기서 마음은 '외유내강' 할 때의 내면의 '강함'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마음의 강함과 자존감을 높이는 것의 답을 책 속에서(소설 속에서) 찾는데, 강상중은 개개인 각각이 그 답을 탐구하게 해주는데 훌륭한 가이드임에 틀림없다. 


사회에 희망이 없으면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인생에도 희망이 없어지고, 사회가 풍요롭고 활력이 있으면 인간의 인생도 풍요로워집니다. 시대가 병들어 있는데 인간에게 건강하게 살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더욱이 사람은 그 사회가 작동하는 이상으로 작동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사람은 개인으로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시대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시대에 모순이 있으면 개인의 정신도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아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꿈도 희망도 없고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데 개인이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세상에서 말하는 하나의 방정식을 좇아 단 하나의 높은 이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끝장이라며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일단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 보고 그게 잘 안 되면 몇 번이고 뻔뻔하게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마음의ㅣ 풍요라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얼마나 넓은 선택의 폭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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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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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 대법원 등의 합의체 재판부에서 판결을 도출하는 다수 법관의 의견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


원작이 있고, 영화가 있는 경우, 나는 글자를 먼저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소수의견'의 경우에는 원작이 있는지도 몰랐고,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던 경우다. 원작을 영화로 만들때 꽤 높은 확률로 실망스럽고, 아주 좋아야 본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이건 내가 책읽기를 영화보기에 비해 월등히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수의견'의 경우는 영화를 먼저 본 것도 괜찮지 않았나 싶다. 영화 자체로도  굉장히 좋았고, 윤계상이란 배우가 처음으로 정말 멋진 배우로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계상과 윤변호사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없었고,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이 문제였던 대석의 역을 유해진이 맡은 것도 괜찮았다고 본다. 김옥빈이 맡은 기자 역도 괜찮았는데, 여기에 법학과 교수 이민주가 빠진 것은 너무 아쉽다! 책에서도 영화에서처럼 몇 번인가의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그 중에 야당 의원이 얼렁뚱땅 하고 지나간것이 알고보니 이주민이 나오는 꽤나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 외에도 이주민은 등장하는 윤계상,유해진,야당의원,이준형기자,염교수 등등에 녹아 있다. 박재호역은 이경영이 맡아서 더 인상적으로 나왔던 것 같다. 책에 나온 부분이 거의 빠지지 않고 다 나왔다. 


영화 '소수의견'이 정말 좋았던건 내게 변호사가 주인공인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혔기 때문인데, 책으로 읽으면 법정물에 더 가깝다. 영화의 마지막 법정씬이 좀 오버스러웠던 점이 유일하게 거슬린 점이었는데, 책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다 좋았어서 영화는 이 점이 좋았고, 책은 이 점이 좋았다. 는 정도의 비교만 계속 된다. 


내용을 다 알고 읽는데도 정말 재미있게 밤을 꼴딱 새며 읽었다. 영화는 원작에 굉장히 충실해서 재미있는 부분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다 담았고, 책에서는 윤변의 과거와 배경에 대해,그리고 변호사로서의 고민에 대해 더 디테일하게 나와 있어 좋았다. 


'소수의견'이라는 것이 단순히 소수의 의견이 아니라 전문용어인건가 하고 찾아보지 못했는데, 법정용어로 맨앞에 썼듯이 '다수 법관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 이다. 그러고보니 간간히 뉴스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철거현장에서 아이가 죽었고, 아이의 아빠가 경찰을 죽였다. 아이 아빠, 박재호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 윤변호사는 박재호의 아들 박신우를 죽인 것이 철거용역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학벌도 인맥도 없고 집도 가난하고 의욕도 없는 평범한(?) 국선변호사에게 떨어진 사건 중에 하나였던 그는 사건을 맡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알게 되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에서 '정당방위'로,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함께 진행하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보통 국선변호인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왜 국선변호인을 그만두지 못하는가. 국가가 나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내가 국선변호인인 한 국가는 나에게 돈을 준다. 그건 의지와 생계 사이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런 기로에 봉착하면 양자택일을 하는 대신, 그냥 현재를 택한다. 나머지 문제는 미래라는 관성에 내맡긴 채 삶을 굴려 내보내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곧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사람들은 그런 때를 맞는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평범한 직업은 아니지만, 그들 세계에서 윤변호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우연히 맡게 된 사건, 그리고 그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 그는 인생 사건이 될 박재호 사건을 맡아 이름을 알리게 된다. 평범한 누군가도 언제든지 이렇게 시험에 들 수 있다. 그럴 때의 선택이 항상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수 없지만, 계속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자만하더라도 반성할 줄 알고, 인생에 큰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계속 밟히는건 거부하는 그런 '작은 인간' 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윤계상이 윤변 그 자체인듯 너무나 잘 표현해주었고, 책에서 그 디테일을 채울 수 있었다. 


"만약, 만약에 내가 국선전담변호사를 그만둔다면." 

대석은 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 넌 국가소송이 끝나기 전에 굶어죽어. 이기지도 못할 재판과 정의에 대한 알량한 환상 때문에. 넌 평범한 민사소송을 해본 전력도 없잖아." 


나도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다.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삶의 국면마다 비슷한 질문들이 있었다. 법대를 졸업하는 날부터,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국선변호인이 된 지금까지. 기척 없이뿌려진 무수히 많은 질문들. 기억은 시간 속으로 제각기 흩어졌지만 질문들의 몸통은 결국 하나였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 




"올리버 홈즈 전 미국 연방대법관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 사람은 재직기간 동안 연방대법원 자료실에 파격적인 소수의견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놨습니다. 한때는 그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자 그가 내놓은 소수의견들의 대부분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주류적 입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형사 법정에서도 모자라 이제 민사 법정에서까지 검사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누군가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투견처럼 용맹한 검사 군단으로 우리의 목을 물어 뜯어버리겠다는 의지를. 그들은 두려워하길 바랐겠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사실 쾌감에 가까웠다. 이 나라 모든 검사의 적이 된다 한들,우리는 여전히 단 한 사람의 변호사일 뿐이다. 낭만적이었다.

서랍 안에는 별게 없다. 통장은 하나다. 거래내역도 잔고도 짧다. 숫자는 일곱 자리다. 642만 7847, 당연히 달라는 아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죽도록 세상을 달린 결과가 그거였다. 세상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종종 커다란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나는 세상을 향해 투덜걸지 않는다. 다행히 변호사가 됐기 때문이다.

청구금액이 11억 원이라면 소송인세 비용만 해도 상당했을 것이다. 원고들은 재개발이 필요한 낙후지역의 부동산 소유자들이었으니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터다. 나는 적어도 이들이 가진 피해의식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단지 한 세기 전의 사고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지지정당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 자기 아들이, 또 자기 손자가 희생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세계의 실제 모습을 회의해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 사람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피해자였다.

세상의 주어진 하루마다 많은 생물들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상들이, 많은 문화들이 도태된다. 그것은 멸종이고 멸종은 적자생존의 법이다. 연민은 자연의 법을 거스르는 허위인가. 나는 진화론자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연민은 왜 진화했는가. 그렇다면 연민은 왜 도태되지 않았는가.

나는 걸어나갔다. 4번 배심원이 남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다. 저 개새끼. 법정을 나설 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으스대는 얼굴. 이 법정에서 자신만이 정의롭고, 자신만이 솔직하고, 자신만이 실천주의자라고 공표하는 확신에 찬 얼굴.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역사를 통틀어 그래 왔다.

우리는 개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역사를 사는 것이다.

노무현 (前 대한민국 대통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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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5-08-1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계상의 연기에 대해 말들이 오고 가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윤계상 연기 좋아요. 80%만 힘 준 연기.
슈트 뒤로 슬쩍 내비치는 쓸쓸함..또는 처연함 같은 아우라도 좋고 90년대 일본 드라마 주인공 같은
길게 기른 뒷머리 스타일도 좋고...ㅎ 기대없이 본 영화인데 아주 좋았습니다. 묻히기 아까운 영화.
(연기의 밀도로 치면 권해효 아저씨..톤 좋더군요)

하이드 2015-08-11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완전 너무 좋아요. 제가 최고 좋아하는 탐정들 다 가져다 붙이고 싶을만큼요. 뭔가 연기안하는듯, 드라이하고, 무표정하고, 드럽게 피곤해보이는거. 진짜 잘하더라구요.

푸른희망 2015-08-1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속 윤계상이 딱이다 싶었어요 그가 아니면 누가 할까~~ 후줄근한 수트도 피곤과 갈등에 쩐 어정쩡ㅎᆢㄴ 표정도 좋았네요 약간의 사심도 함께^^;;
요즘 책을 빌려읽는 .중인데 이 책도 끌리네요 확 사버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