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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평점 :
샤이닝 걸스의 주인공들은 제목처럼 '샤이닝 걸스' 빛나는 소녀들.이다.
이 책은 곱씹어볼수록 맘에 드는 여자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책인데, 저자는 이런 반짝반짝 빛나는 소녀들과 그들이 매력적인 여성으로 자라 사회생활에 막 발을 디디는 모습을 상당히 공들여 묘사하고, 시간을 넘나드는 연쇄살인범 하퍼를 통해 가장 잔인하게 그들을 죽인다.
이보다 더 잔인한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이야기들도 많이 읽었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기가 유독 힘들었던건,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소녀들은 각각 매카시 열풍이 부는 시대에 건축가의 꿈을 가지고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공동주택의 꿈을 꾸지만,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하는 미래의 멋진 건축가이기도 하고, 전쟁에서 남편이 죽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가장 돈을 많이 주는 용접공 시험을 보고 용접공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엄마이기도 하며, 방사능 라둠을 몸에 발라 반짝이며 돈을 버는 당당한 쇼걸이기도 하다. 험한 지역으로 이사가 어려운 이들을 돌보며 사회복지사로서 사랑을 받는 소녀이기도 하고, 식물학자의 꿈을 키워 연구소에서 식물밖에 모르는 과학자가 된 그녀이기도 하다.
각각의 여성 캐릭터들을 잘 살렸다면, 그녀들을 살해하고 다니는 연쇄살인범 하퍼에 대한 묘사는 무미건조하다. 그는 이 세계의 '악'을 담당하는 시스템처럼 '하우스'가 바라는대로 '빛나는 여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다닌다.
노숙자였던 하퍼가 '하우스'라는 정체 모를 폐가같은 곳에 들어가 시간을 오고가는 열쇠를 손에 얻게 되고,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오가며 여자들을 죽이는데, 유일한 생존자가 있다.
개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커비 마즈라치. ( 이 부분은 정말 읽기 힘들어서 빨리 빨리 페이지를 넘겨야 했다.) 그녀는 신문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자신의 사건을 가시로 썼던 범죄사건 기자였다가 스포츠 기자로 밀려난 댄 벨라스케스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와 댄이 만나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댄은 정의롭고 집요한 범죄기자였지만, 경찰의 부패와 맞서다가 협박 받고, 스포츠로 밀려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작가가 캐릭터 묘사도 좋고, 문장들도 좋으며, 읽고 또 읽게 만드는 '씬'을 만드는 능력도 좋다. (주로 댄과 커비가 엮였을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퍼를 그렇게 드라이하게 표현한 것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시카고의 20년대에서 90년대까지가 나와 있는 것들도 참 좋았는데, 건축가가 나왔던 부분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나 반 데 로에가 언급되는 장면들은 '맞아, 여기,시카고지'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다. 건축의 도시. 수많은 건축가를 배출한 시카고.
댄이 야구 기자다보니 시카고컵스 얘기도 빠지지 않고, 사회복지사가 일했던 악명높던 시카고건축사업 같은 것 등의, '시카고'라는 도시 역사의 한 부분도 캐릭터와 함께 잘 녹아나고 있다.
댄은 커비를 좋아하게 되는데, 댄의 어수룩하고 농담따먹기 하면서 커비를 도와주는 캐릭터도 참 좋다. 하퍼를 찾아 쳐들어가기 직전의 '베트맨과 로빈' 장면도 내가 꼽는 명장면.
커비는 생존자다. 엄마도, 경찰도, 댄도 모두 말리지만, 끝까지 4년여에 걸쳐 모든 관련 자료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뒤지고, 찾는다. 죽었다고 오보가 날정도로 심하게 당했지만, 살아남아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진짜 멋진 캐릭터다. 그렇게 생존자인 커비가 모든 빛나는 소녀들과 함께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끝까지 맞서고, 끝을 맺는 것도 커비이다.
dog people 들에게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는 읽기 힘든 장면이 나온다. 그런 장면들에서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긴한데,커비를 생각하며 읽었다. 책을 읽고나서 곱씹을수록 '커비'는 훌륭하다.
근데, 모두가 피해야할 이 책의 한 부분은 바로 '옮긴이의 말'이다.
이런 소설에서 옮긴이는 왜 반짝이는 소녀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다니는 하퍼를 '21세기 최고로 매력적인 살인자' 라고 하는건지 궁금하다. 한장 조금 더 되는 옮긴이의 말이 온통 하퍼 얘기인걸 보면, 하퍼에 제대로 감정이입한건 알겠다.
리뷰에서 계속 썼듯이 이 책은 '덱스터'도 아니고 '한니발'도 아닌, '샤이닝 걸스', 반짝반짝 빛나는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어째서 소녀들 목 따고, 내장 꺼내서 전시하는 연쇄살인범을 '최고로 매력적'으로 느끼는건지. 궁금증을 유발해서 책선전 하려고 한거라면 역겨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