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문득..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밥을 챙겨 먹고, 애인이 사무실 앞 복숭아 나무에서 따다 준 복숭아 하나를 먹고 컴퓨터를 켰다.

 

일단 미루고 있던 '자음과 모음 항의' 서명을 완료했다.

'게스트' 를 사고 싶었는데, 게스트 번역하신 김지현님의 트윗을 봤다.

 

자음과 모음에서 출간된 세라 워터스의 소설 <게스트>의 역자 김지현입니다. 저는 자음과 모음에서 윤정기씨를 비롯한 편집자들에게 가한 노동탄압을 규탄하며, 성소수자 여성의 독립적인 삶과 존엄성에 대해 고민한 세라 워터스의 작품이 한국 독자들에게 정당하게 소개되고 떳떳하게 향유될 기회를 잃게 된 것을 깊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윤리적 층위에서 따로 떨어져 자유롭게 존재하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음과 모음이 지금까지 내왔고 앞으로 내게 될 좋은 책들이 손색되지 않을 만큼, 직원들이 그곳에서 온당한 노동 환경을 보장받고 존엄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동성명()에서 요구하는 바를 자음과 모음에서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이행하지 않는 한, 저는 앞으로 해당 출판사와 그 어떤 형태의 번역 계약도 맺지 않을 것입니다.

트위터에서 팔로잉하는 대부분이 출판관계자들, 저자들, 열혈 독자이다 보니, '자음과 모음' 에 대한 글이 끝도 없이 올라온다. 자음과 모음에 관한 기사가 올라온지 몇 달이나 되었다. 사람들에게 잊혀지기를 바라며 변하지 않았다.

 

싸우고 있는 윤정기 편집자가 있고,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작가들이 있다. 손을 거들고 힘을 보태는 많은 출판관계자들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서명을 하고, 자음과 모음의 일이 해결될때까지 '자음과 모음' 의 책을 사지 않겠다.

 

아래 서명 링크입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OQDfSGoRuqa__-dfPwtUCnC68I4riAOAWIgbJouXu1c/viewform?c=0&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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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음과 모음 출판사는 계속 이러네...
    from 시간의 흐름, 그 속의 책 2016-06-30 13:41 
    자꾸 이런식으로 나오니, 그 출판사에서 나온 것 중에 내가 산 책이 뭐가 있는 지 뒤져 보게 된다. ㅜ 하나도 없기를 바랐는데, 불행히도 몇 권 된다는 걸 이제 알았네. 사사키 아타루의 책은 여기서만 나오는 듯. 아쉽다. 버릴 수는 없으니 일단은 두고. 이 정도의 부당한 행위를 하면서 잘도 책을 찍어내는 게 신기한 회사이다. 이전에도 계속 비슷한 문제들이 있어왔던 걸로 아는데, 계속 그대로 기조 유지. 오. 놀라운 곳!
 
 
잠자냥 2016-06-3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음과 모음 출판사 책을 한 번도 산 적이 없다는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에 처음 <게스트>살까 싶었는데 그만둬야겠습니다. -_- 저런 출판사는 책을 그냥 돈으로 보는 거겠죠.... 에효.

하이드 2016-07-01 01:18   좋아요 0 | URL
좋은 책 많이 있고 ㅡㅜ 앞으로 사고 싶은 책들도 많은데, 저런 오너 아래서 책 만들주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olivia 2016-07-0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부당함을 뛰어넘을 큰 힘이 되길 바라며 저도 서명하고 왔어요.
이게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네요;;

하이드 2016-07-01 16:47   좋아요 0 | URL
사과했다고 신문에 났는데, 윤정기 편집장은 신문 보고 알았다고 하구요...
 

 

 

현대미술이란 뭘까요?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게 해주고,공존할 수 있게 해주는 힌트(도구)' 

저는 현대미술의 에반젤리스트가 되어 컬렉션의 장벽을 조금이라도 낮춰보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을 소장하고 감상하는 건 남녀관계나 부부 사이와도 비슷하다. 경쟁자를 물리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즉 컬렉션에 추가한 뒤에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구사마 야요이 <무한그물>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와글와글하며 작품 속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초록색 배경 위에 노란색 원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마치 피처럼 보이는 새빨간..

 

 

아티스트는 작품의 가격을 매길 때 기본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따져본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재료비를 들였는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에 따라 가격을 산출한다.

"아티스트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간다."

작품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첫 작품의 가치가 계속 이어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시장 가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작품을 구입한 사람이 오랜 시간 질리지 않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매력이 포함된다.

 자급자족이 이루어지던 먼 옛날, 마을 공동체는 새 집이 필요한 구성원을 도와 집짓기에 발 벗고 나섰다. 드림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으로 물리적 거리를 줄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티스트 친구들의 힘을 빌려 만든 집인 것이다. 내게 '나만의 컬렉션'을 위한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고, '돈'(만)이 아니라 열정이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비결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할 것이다.

 

 

  월급쟁이가 아니겠지. 뭐가 더 있겠지. 했는데, 정말 월급쟁이였다.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샐러리맨이 현대미술 컬렉터가 되다니 대단하다. '열정'과 '끈기', '집중'과 '선택' 의 과정과 결과일까. 컬렉션 중 가장 비싼 작품은 구사마 야요이의 <무한그물>이다. 그를 현대미술 컬렉터의 길로 이끈 작가도 구사마 야요이였고, 저자가 자신의 연봉을 웃도는 작품을 산 것도 처음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도 해보지 못할법한, 혹은 생각에 그칠 일들을 실행해 나간다.

현재진행형인 결말은 자신이 좋아하는 현대 미술 아티스트들과 자신의 집을 만드는 '드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집을 짓는 것은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어! 해서 돈을 마련해서.. 자신의 집을 갤러리처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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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전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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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장편은 늘 너무나 재미있고, 여운 또한 길다. 등장인물은 악역이고 조연이고 다 흥미진진하며, 심지어 `괴수` 가 나오는데, 그마저 매력적인 것. 670페이지를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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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강
차이쥔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하늘도 잿빛이고

길도 잿빛이다

집도 잿빛이고

비도 잿빛이다.

 

죽음이 잿빛 속에서

두 아이가 지나간다

하나는 선홍생

하나는 연녹색

 

중국 현대시인 몽롱시파 구청의 시로 시작해 구청의 시로 끝난다. 구청을 찾아보니 이 사람 인생이 또 한 편 추리소설(뉴질랜드 이민 가서 아내를 도끼로 죽이고 자살)같다.  

 

중국 추리소설의 붐으로 번역된 책이 아닌가 싶었는데, 굉장히 다양한 문학 레퍼토리들이 들어 있어서 재미있고, 아쉬웠다. 아는 만큼 본다고, 중국 문학에 대한 레퍼런스가 거의 제로였던지라.

 

이 책을 읽을 즈음 대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책 속에 ' 저기가 장애령의 생가야' 라는 문장이 한 줄 나오는데, 그 날 들은 수업에 대만 여성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국의 여성 문학가 장애령 이야기가 나왔다. 주인공이 듣는 장국영의 노래 '나'의 가사들 보며 익숙한 이름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대만과 홍콩,중국을 각각 다른 나라로 생각했는데, 대만 역사에 대한 수업을 겉핡기로라도 듣고 보니,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에 따른 감정과 지역에 대한 희노애락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회파 추리소설로 진지하게 주제를 잡아 비판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디테일하게 나와 있다.

추리소설적인 면도 나쁘지 않은데 (640여페이지도 만만찮은 분량) 독특한 소재인 '환생'을 되게 평범하게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그리고 있어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들.

 

사람이 죽으면 귀문관을 지나 황천길로 가는데 그곳에 망천수가 흐른다. 망천수 위 나하교를 건날 때 맹파라는 노파가 주는 탕을 마시면 전생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만약 맹파탕을 마시지 않고 인간 세상에 환생하게 되면...

 

대단한 집안의 약혼자로 인해 미래가 승승장구인 똑똑하고 잘생긴 젊은 교사 선밍이 불륜관계로 소문이 난 여학생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고 모든 것을 잃는다. 모든 것을 잃은 선밍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죽이고, 학교 근처 '마녀구역'으로 이름난 폐허에서 그 역시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선밍이 죽을 즈음 태어난 쓰왕이라는 소년.

 

사랑과 복수, 야망과 욕심이 전생에서 현생으로 얽히고 얽힌다.

 

여러모로 꼭꼭 씹어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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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흰 것은 고양이, 고양이 말로, 안 흰고양이의 하얀 양말, 흰 종이, 눈, 흰 칼라꽃, 흰 셔츠, 흰 그릇, 글을 쓸 목록 거리로는 재미 없다. 작가 한 강의 흰 것드은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흰 새, 하얗게 웃다, 백지, 흰 개, 백발, 수의

 

 

처음 읽어보는 한 강의 책이다. 아직 다른 책들은 대기중이지만,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책들을 읽으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예쁘고 섬세한 문장들을 쓰는 작가구나 싶다. 차미혜 작가의 희거나 덜 희거나 희지 않은 사진들이 함께 한다. 잘 어울리는 콜라보이다.

 

짐을 정리한 다음날 흰 페인트 한 통과 큼직한 평붓을 샀다. 도배를 하지 않은 부엌과 방의 벽에 크고 작은 얼룩들이 보였다. 특히 전기 스위치들의 주변이 까맸다. 혹여 페인트가 튀더라도 눈에 띄지 않도록 연회색 트레이닝복에 낡은 흰 스웨터를 걸치고 칠을 시작했다. 깔끔하게 마무리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얼룩이 지더라도, 흰 얼룩이 더러운 얼룩보단 낫겠지. 그렇게 무심한 자마음으로 더러운 자리만 골라 붓질을 했다.

 

앞서 만들었던 목록대로 차근차근 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쌓아간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 태어난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아기. '달떡처럼 얼굴의 힌 여자아이'

언니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아기가 죽어 내가 태어났을 수도 있는 얼굴이 달떡처럼 흰 아이.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어렴풋한 빛이 어둠 속에서 새어들어올 때, 그리 희지 않던 것들까지도 창백하게 빛을 발한다.

 

어둠 속에서 흰 몸 위에서 유독 까매 보이는 애인의 손을 떠올린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는 늘 흰 몸과 까만 손이 신기하다.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 눈보라가 치는 서울의 언덕길을 그녀는 혼자서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우산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었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가장 더운 여름이 예고 된 6월 중순의 초입, 웃통을 벗고, 까만고양이 한마리와 흰 고양이가 한 마리 자고 있는 고요한 일요일 오후, 흰 것에 대한 책을 두번째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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