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하니, 월요일 아침이 내게 다른 주5일자들의 월요일 아침과 같은 느낌인건 아니고, 어제 있었던 짜증나고 갑갑하고 실망스럽고 어이없는 일이 아침에 일어나도 당연히 전혀 변하지 않았고, 자고 일어나도 내 마음이 그 사이에 내가 오늘 가야할 장소와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한 어떤 새로운 좋은 것도 찾아내지 못했네.

 

나는 늘 괜찮아, 괜찮아. 더 할 수 있는데, 더 할 수 있어. 이 정도야 뭐.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인데, 아마도.

앞이 막막해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옴짝달싹 못하는 기분이다.

 

다정한 지인이 어제 쓴 갑갑함을 토로한 글에 읽고 있던 책의 프로필에서 읽은 좋은 말을 나눠줬다.

 

‘ 인생이 비루하나 책과 꽃이 있어서 최악은 면했다‘ 

 

응. 나에겐, 책도 있고, 꽃도 있고, 고양이도 있지.

 

입 안이 깔깔하다.

 

바람구두님의 좋은 말도 옮겨 놓는다.

 

'평화란 죽은 자들이 다가와 에워싸는 것'이라는 실비아 플라스의 문장을 애정한다. 나는 이 문장을 뒤집어 평화란 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한 얻기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있다는 것은 평화와는 먼 개념이다. 그 대상이 타인이든 나 자신이든,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뭔가와 부딪치고 불화하는 과정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평화로웠던건 일상의 주위에 산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구나.

뭐, 그렇다고, 내가 다시 혼자일 수 없고, 혼자가 되고싶다는 건 아니다. 싫은 사람들은 좀 치워버리고 싶긴 하지만.

 

여튼, 위의 다정한 지인께서 책선물 해주신다고 하시길래 <혼자를 기르는 법>을 골라 봤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사고 싶었는데, 아마, 지금 좀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이런 말도 봤지.

 

휴식도 습관이고 능력이다. 쉬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 쉬지 못한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휴식에 당황하고 불안해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다. 쉬면서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연거푸 초조해하며 조금의 여유도 못 견딘다. 쉬어본 적도 없고, 쉬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휴식은 잔여 시간이 아니라 필수 시간이다. 시간 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은 쉬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계속 쉬지 않는 사람의 최후는 딱 두 가지다. 죽거나 미치거나.

농담이 아니다. 인간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쉬어야 한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쉬어야 한다. 쉬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게으름도, 뒤처짐도, 무책임도, 시간 낭비도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휴식을 허락해야 한다. 삶에 있어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 혼자 있기 좋은 방, 우지현 -

 

 

내가 어쩌건 시간은 흘러가겠지. 열네시간 후에는 다시 이 자리에 앉아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주절거리며,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나만의 평화로운 밤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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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글쓰기 표현 강의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조소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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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의 글쓰기 강의. 라고 생각하고 샀지만, 음.. 전직 국어선생님인 기타무라 가오루의 글쓰기 표현 강의는 그냥 말그대로 글쓰기 표현 강의였고, 딱히 미스터리 독자나 작가의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다.

 

재미있게 읽히긴 하지만, 대상이 와세다대 대학생들이다보니, 낯선 일본문학  장르나 작품, 작가들이 소개되는 부분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것 같다.

 

미스터리 글쓰기 이야기가 아예 없는건 아닌데, '하드보일드 문체' 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행동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각각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만을 쌓아 나갑니다. 부자연스럽게 심리를 직접 말하는 대사를 쓰지 않습니다.

 

이 '행동'으로 설명한다는 것, 좋은 예는 아니지만 '선생님은 화가 났다'라고 쓰지 않고 '문을 세차게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라고 씁니다. 선생님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신 것 같은데, 하고 충분히 전달되겠죠. 이렇게 쓰는 방법입니다.

 

본래 사람의 내면 같은 건 알 수 없는 법입니다.하지만 소설에서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강의 주제와 내용은 일본 문학에 대한 이해가 현지인 문학도 수준이라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당연히 그 주제는 못 되기에, 모르고 술술 넘어간 부분들이 적지 않지만, 일상 미스터리를 잘 쓰는 작가답게 (국어선생이 먼저였긴 하지만) 쉽게 글을 풀어내기에 중간중간 소재를 모르더라도 마음에 와닿는 문구들이 있었다.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게스트로 데려오는 작가, 편집자 등이 나오는 강의는 꽤 알차고 재미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결국 표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쓰는 것이기에, 자기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결국 표현이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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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의 섬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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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독자들 사이에서 평이 좋은 작품은 대게 정말 괜찮은 작품인 경우가 많다.

다른 장르/분야에서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미스터리는 거의 틀림없이 그렇다.

여성작가의 혹은 여성이 주인공인 혹은 여성작가의 여성이 주인공인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후로 (사실, 이제 남자 작가들의 남자 이야기가 잘 안 들어와. 재미가 없어) 꼭 그렇지만은 않게 되었지만, 이 책은 평도 좋고, 내 기준에도 부합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애정하던 말이 노화로 죽자 포크레인 같은걸 빌려서 땅에 묻기로 한다. 속성으로 배워서 말을 몯으려 하다가 여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황당한 결심과 황당한 실행,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과 밝혀지는 과거.

 

공포영화에서 거기 가지마아아아! 하는 곳에 가고야 마는, 그리고 죽고야 마는 금발여자. 같은 느낌인데, 뭔가 굉장히 현실적인 면이 있다. 이런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건 작가가 여자여서라고 믿는다.

 

감정이입도 엄청 잘된다. 모든 것이 세련되고 완벽하게 흘러가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재미있고, 신선하다. 주인공이 인상적이고,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

 

주인공이 산부인과 의사이고, 아이를 간절히 가지고 싶어하는데, 좀 과하다싶을 정도로 임신과 관련된 여자들의 이야기가 디테일하게 나온다.

 

그리고.. 시골 중에 시골인 그 곳에서 금발남성종족에 대한 회의와 좌절을 느끼는 점도 거기나, 지금 여기나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아기의 체중은 다양했지만 모두 정상 범위 내에서 약간 무거운 편에 속했다. 두 건은 제왕절개를 거쳤고 나머ㅣ는 정상 분만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모두 남자였다. 다시 확인해보았다. 아기들 가운데 여자는 없었다. '남성 종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글쎄, 이곳에선 적응을 잘 못 한 것 같고,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말이 맞아요. 이곳 섬들은 작지만 강력한 패거리가 다스리고 있거든요. 체격이 큰 금발의 남자들 말이죠.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스코틀랜드 대학을 다녔고, 노르웨이 부족의 침략이 있던 시절부터 가족끼리 서로 알고 지낸 사람들 말이에요. 토라, 생각해봐요. 병원의 아는 의사들이나, 학교의 교장이나, 경찰이나 치안판사, 또 상공회의소, 지역 시의회까지, 그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요."

이런  이야기들과 산과학에 대한 디테일들이 이 작품을 충분히 개성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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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02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은 소설과 현실이 딱 일치하네요. 슬픈 현실...
전 미스터리는 안 읽은 소설이 많은데, 눈띵하고 갑니다~~
6월의 다짐 2일차... 하이드님~~ 빠샤!!!

하이드 2018-06-02 20:26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막 되게 세련된 느낌의 글발은 아닌데, 공감 가는 면이 많고, 여주인공한테 이입이 잘 됩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게 하루에 한 개 이상! 써 버렸으니, 부지런히 글 쓰는 습관 만들어볼게요.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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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미스터리들을 다 챙겨 읽지는 못하지만, 평이 좋은 작품들은 꼭 챙겨 읽으려고 한다. 이 작품이 그렇다.

오래 읽다가 이제 읽지 않는 시리즈로는 헤리 홀레 시리즈가 있고, 브리짓 퀸이 나오는 시리즈는 이제 시작하는 시리즈이다.

 

은퇴한 FBI 위장수사 전문 브리짓 퀸은 그녀에게 가장 아픈 기억을 남긴 66번 고속도로 연쇄살인을 미결로 남기고, 은퇴하게 된다. 범인이 잡히고, 그 과정에서 새로 사건을 맡게 된 FBI 로라 콜먼이 자신의 과거를 '저작권법 관련 종사자'로 숨기고 사는 브리짓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남자였던 폴을 자신의 과거로 인해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브리짓은 두 번째로 만난 완벽한 남자 카를로와의 결혼생활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포함한 자신을 숨기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나쁜 판단과 결정을 하게 된다.

 

은퇴 FBI 나 경찰이 나오는 이야기는 많은데, 은퇴한 여자 FBI 가 나오는건 처음 봤다! 이거만으로도 관심 확 가는데, 데뷔작이고, 시리즈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스토리에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다. 최근에 여자 경찰이 나왔던 걸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존 하트의 <구원의 길>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엘리자베스의 외모가 너무나 강조되었던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존 하트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여운도 곱씩을수록 커지는 좋은 작품이긴 했다.

 

긴 백발의 브리짓 퀸은 지금까지 읽었던 많은 남자 탐정/경찰/FBI 물에서 남자 주인공이 그랬듯이 완벽하지 않고, 고난과 수난의 길을 가지만, 하드보일드 느와르 기질로 헤쳐나간다.

 

그녀와 남자 동료들, 데이비드, 맥스와의 관계도 좋았고, 후배인 로라 콜먼과의 이야기도 좋았다.

카를로와의 로맨스가 들어간 부분도! 좋았다. 여러모로 기억할만한 작품이네.

라고 쓰면서 스카페타 생각 났다. 스카페타는 성반전의 느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참 읽었을 때 의식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여자로서의 어려움이 많이 나왔던 것은 기억한다. 반면, 브리짓 퀸 시리즈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전혀 강조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잘 쓴 미스터리 소설인데, 지금까지 남자가 하던걸, 여자가 하는걸 보는 거. 이게 왜 이제야.

 

하나 맘에 안 드는건, 초반의 너무 디테일한 여성살해범의 머릿속 이야기. 그런면에서 <구원의 길>은 정말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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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제국 상호의존성단 시리즈 1
존 스칼지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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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너지는 제국이다.

 

제국이 무너지면서 시작하는 시리즈. 시리즈 마지막편 같은 느낌의 제목이다.  존 스칼지라는 이름만으로 재미보장 작가이고, 귀여운 이야기부터(작은 친구들의 행성), 심각한 이야기까지(신 엔진), 그리고 대표 시리즈 <노인의 전쟁> 시리즈도 어떤 톤을 타든 재미를 보장하는 작가이다. 좀 너무 재미 위주인건 아닌가 싶을 때 <신 엔진>을 읽었고, 정말 놀랐다.

 

이 시리즈의 시작 또한 너무 재미있는데, 유머나 스릴보다는 <신 엔진>이 많이 떠올랐다. 이전까지의 책들에 비해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주면서, 읽는 내내 계속 작은 불꽃 튀겼던 부분은 내가 너무 자연스레 '그'를 생각하는 부분에 '그녀' 라는 것.

 

대장도, 함장도, 후계자도, 왕도 브레인도, 다 여자다. 각양각색의 여자가 대빵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신선한 경험일 것을 장담한다. 왜냐하면, 소설 꽤나 읽는 사람일수록 남자가 메인인 이야기들을 읽고 자라왔으니깐.

 

이렇게 흥미진진한 시리즈의 시작부터 (개인적으로 '노인의 전쟁'보다 더 흥미진진한 시작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사람이 다 여자라니, 다음 시리즈 벌써부터 너무 기대된다.

 

가장 심각한 이야기라 지하실에서 존 스칼지 쌍둥이 동생이 썼을 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무거운 <신 엔진>이 생각난건, 이야기의 진행이 무겁지는 않지만, 제국이 무너지며 시작하는.. 그 시작이 너무 맘에 들어서이다.

 

'플로우' 라는 우주현상을 통해서만 각 성단의 인간들이 이동할 수 있는데, 각 성단은 그 자체로만은 생존할 수 없고,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 모든 플로우가 통하는 곳이 그 곳을 지배한 우가문의 황제가 있는 '허브'이고, 허브의 지배자가 상호의존성단의 황제이다. 그리고 상호의존성단의 끝에 유배자들이나 보내서 십년에 한번씩 반란이 일어나는 무법지대 같은 곳이 '엔드' 이고, 이야기는 '허브'와 '엔드'를 오가며 진행된다.

 

멋진 주인공들, 황제가 된 카르데니아, 라고스 가문의 키바, 클레어몬트 백작가의 브레나. 

 

이 책의 단점이라곤,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 뿐이다.

존 스칼지가 이런식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아주 영리해보이고 좋다.

 

많은 SF 소설들이 철학적이고, 놀랍게도 페미니즘적인 경우가 많은데, 존 스칼지의 이번 책에서 제대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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