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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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라는 말이 이 책에 어울리는 수식어인지 긴가민가한다. 기이하고, 예민하게 빛이 나는 소설. 


달리기 좋아하고, 걸으면서 책읽기 좋아하는 열 여덟살의 여자가 나이 먹은 남자에게 스토킹으로 괴롭힘 당하는 이야기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훨씬 복잡했고, 환상적이었다. 


환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의 배경으로 중요한 마을의 정치적 배경을 읽으면서 서서히 느끼게 하는 모호한 분명함, 그리고, 막장의 등장인물 때문이었던 것 같다. 환상적으로 좋다. 이런게 아니라, 중남미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영국 고딕소설 같은 그런 어둡고 기묘한 그런 환상적임. 


굉장한 막장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현실같지 않을 정도로 막장인데, 작품의 배경에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은, 그런 막장의 인물들이다. 길을 걸으면서 19세기의 책들을 읽기 좋아할뿐인 "평범한" 주인공에 이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출구가 없는 것 같은 이곳에서 도망쳐! 소리 밖에 나오지 않는데, 주인공은 이미 주변의 모두로부터 엄청나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도대체 어떻게?! 이야는 해피엔딩을 찾아간다. 


500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읽자마자, 아, 다시 읽고 싶다는 느낌이 끝까지 이어졌다. 

번역도 매끄럽지만, 이건 정말 원서로도 읽고 싶다. 종이책 샀지만, 전자책도 사고, 원서로도 읽고 싶은 책이다. 


이상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고, 책을 다 읽고난 후에도 계속 뜬금없이 떠오른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어질 수 없는, 엉뚱한 짝을 만나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사람 말을 믿지 않고, 사람들 다 이상해, 이상한 나라에서 나만 정상이라 내가 이상하게 여겨져. 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나도 이상해. 라던가. 


밀크맨, 진짜 밀크맨,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 알약소녀, 핵소년 .. 

어쩌면 남자친구와 어쩌면 여자친구. 


이런 소설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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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1-04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죠!!!!! 윽 멋진 소설!

하이드 2020-01-04 10:44   좋아요 1 | URL
땡겨 읽기를 잘했어요!

blanca 2020-01-0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읽어볼게요.

하이드 2020-01-04 10:4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도 좋아하실거에요! 장담!
 
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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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설가들은 이 책을 좋아하는구나. 소설가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책을 좋아하는구나. 다들 좋다고 하니, 읽어봤고, 별로 남길 말은 없다는 기록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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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지난 11월에 보내주었던 책기록에 11월, 12월 기록을 추가해서 업데이트한 메일을 보내주었다. 

잔인한 사람들. 뭘, 또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고 그러세요. 


11월 말에 책에 대한 욕망의 문을 활짝 열고, 다시 닫았지만, 찔끔찔끔 닫아서 이제 막 완전히 닫은거 같은데, 

굳이 문 열렸을 때 쏟아져 들어온 책의 기록을 .. 반성하고, 오랜만에, 독서 결산을 하고, 독서 계획을 세워봅니다. 



ㅁㅁ 2019년 독서 결산 ㅁㅁ




















1. 김명희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페미니즘 프레임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다. 시리즈도 최고고, 첫 스타트도 무척 좋았다. 의사인 저자가 전문성을 보이고, 여자로서 당사자성을 가지고,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여자 '몸'의 부분들을 '페미니즘 프레임' 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뇌, 털, 피부, 목소리, 어깨, 유방, 심장, 비만, 자궁, 생리, 다리, 그리고 마지막에 '목숨' 까지. 꼭 해야 할, 들어야 할 이야들을 하고 있는데, 책의 판형, 시리즈, 저자, 제목, 표지까지 너무 마음에 든 책이다. 


2. 박은지 <여자는 체력> 

여자의 운동 책들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좋았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지금 당장 운동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저자. 운동판의 소수였던 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운동의 기본. 체력을 기르고, 오래 건강하게 걷고 움직일 수 있게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이야기들이 나와 있다. 


3. EBS 다큐프라임 <100세 수업>

노년에 관한 책도 보이는대로 읽는다. 초고령화 사회답게 일본 책들이 많고, 서구권의 책들은 인문학, 철학쪽이 많은데,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좋은 책이다. EBS 다큐프라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이 책을 노인대학 교재로. 우리는 모두 운이 좋다면 차곡차곡 늙어 노년을 맞이할 것이다. 더 잘보내기 위한 다양한 준비들. 



















4. 미셸 오바마 <비커밍> 

미셸 오바마의 지금까지의 인생도 참 남다르구나 싶었는데, 버락 오바마 이야기 있고, 이야기도 굉장히 재미있지만, 글도 엄청 좋아서 읽는 기쁨이 있는 책이었다. 미셸 오바마 조차도 육아에 발목 잡히는 것, 미셸 오바마도 버락 오바마도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낫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실행. 문제를 해결해내기 위한 우아한 접근과 행동력 들도 인상적었다.decency 라는 말이 정말 어울리는 사람.


5. 존 캐리루 <배드 블러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인데, 진짜 꺅 소리 내면서 읽었다고. 엘리자베스 홈즈, 정말 이 두꺼운 책에 그녀 이야기만 계속 나오는데도 부족한 캐릭터다. 셀럽들의 명예이사 세계의 어둠도 엿볼 수 있었고, 국제적인 대기업도 이렇게 주먹구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다시 확인. 스티브 잡스의 그림자가 정말 미국을 덮고 있구나 싶었고. 홈즈의 기행?은 다른 책들 읽을 때도, 홈즈는 그랬지. 하면서 계속 생각난다. 


6. 엘리자베스 워렌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 

싸움꾼. 싸우는 방법을 알고, 계속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해 온 사람. 지는 과정도 싸움의 한 과정, 이기기 위한 한 과정. 진 전투에서는 지지만, 전쟁에서는 이길 것이다 같은. 미국 중산층 이하의 정말 갑갑하고, 답 없고, 말도 안 되는 사례들을 보면서, '핸드 투 마우스'도 생각나고, 얼마전에 읽은 '20vs 80의 사회'도 생각난다. 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인의 싸움. 




















7.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센세이셔널했던 데뷔 소설. 노년의 생태학자가 쓴 '외로움'에 관한 책. 재미 있었고, 아름다웠다. 


8. 박문영 <지상의 여자들> 

이 책 정말 좋고, 영화화 되어서 천만 영화 갔으면 하는 바람. 

구주 유토피아, 여자를 때리고, 여자에게 화내는 남자들 외계인이 잡아가는 이야기. 

그렇게 남자들이 사라지고 변한 세상의 이야기. 소재도 주제도 글도 다 너무 재미있고, 잘 쓴 소설이었다. 


9. 미야베 미유키 <금빛 눈의 고양이> 

미미 여사의 괴담 듣기 시리즈 마지막이지 싶은데, 괴담 듣는 사람이 바뀌는건 의미 없어. 여기 나온 이야기 중 '벙어리 아씨'가 정말 좋았다. 지금까지의 단편들에 비해 좀 쎄다 싶은 단편들이 많이 나왔고, 세책방 주인이 좋아서 이 책은 특히 더 기억하고 싶다. 



     
















10.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이 책이 너무 좋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다. 페미니스트의 달리기. 라고 하면, 페미니스트랑 달리기랑 뭔 상관 싶은데, 정말 대단히 상관 있고,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소환한 달리기 메이트다. 왜 달리는가. 달리기로 내가 얻은 것들. 달리기의 역사들 (재미 없을거 같지. 진짜 재미있고 불끈불끈함)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과정. 달리기일 수도 있고, 다른거일 수도 있는데, 그게 달리기인게 굉장히 맘에 들고, 와닿는다. 힘든 시기인지도 모르는 시기, 밍숭맹숭한 생활에 숨이 헉헉대도록 두 발로 땅을 디디고 달려나가는 활기를 더하고, 밍숭맹숭한 생활도 더 돋보이고 맘껏 즐기게 된다. 나 자신과의 싸움, 도전. 체육인의 자아는 평생 없었지만, 달린다. 내 몸을 이제야 더 잘 알게 된다. 


11. 로마 아그라왈 <빌트> 

올해의 책을 딱 한 권 꼽는다면, 나는 이 책. 모두에게 좋은 책이다. 진짜 대천재적인 책임. 

일상에서 매일 보지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 다리, 빌딩, 배수, 벽돌, 하수도 등등 구조공학자의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줄은 상상도 못했다.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다. 지식을 얻는 즐거움 외에도, 로마 아그라왈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역사 속의 공학자들과 그들의 업적, 실수와 사고에서 개선을 찾아내고,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과 같은 진취성, 긍정성이 굉장히 멋있었다.이 책도 목차 대단해. 마지막 장이 '꿈' :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지어올릴 것이다. 


12. 시오미 나키 <반농반X의 삶> 

별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내 앞으로의 삶의 롤모델이 되어주는 책이었고, 모두가 자신의 삶에 농사를 들이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싶었던 책이었다. 반은 농사 짓고, 반은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는 그런 삶인데, 농사라는게 집에서 컵에 대파 하나 꽂아서 키워 먹는거도 포함된다. X는 모두가 각각 다른 사회에 도움되는(돈 되는) 일이다. 자급자족과 일 덜하기가 핵심인듯. 

그 정도는 다 다르겠고. 



 
















13. 루트 클뤼거 <삶은 계속된다> 

이 책도 정말 좋았다.아우슈비츠 생존자 글들에서 보는 드라마나 성찰이 아닌 다른 무엇을 보여줌. 저자의 예민함과 저자가 살아온, 어떻게 이야기해도 평범할 수 없는 생존의  기록들. 


14. 에이미 립트롯 <아웃런> 

가재를 읽고, 얼마 안 되어 이 책을 읽었는데, 읽으면서 내내 가재보다 이 책이 더 좋은데 생각했다. 고립된 섬에서 자란 저자가 중독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 관찰하고, 하늘 보고, 바다 보고 그런 이야기들. 


15. 미나토 가나에 <여자들의 등산일기> 

싫은 점도 좋은 점도 많았지만, 여자들이 등산하는 이야기이니, 좋은 이야기인걸로. 



도움되었던 책들 몇 권 더 추가 




 















ㅁㅁ 2020년 독서 계획 ㅁㅁ


책을 아주 많이 읽을 것이다. 


끝. 


.. 아니고, 


1. 영어 원서를 많이 읽을 것이다. (킨들 오아시스 사고 싶다)

2020년 목표가 달리기와 읽기인데, 달리기에, 읽기에 완전 몰입해서 미칠 예정이다. 


<여자는 체력>에 크로스핏에 미친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종일 크로스핏만 생각하고, 크로스핏 하고, 크로스핏 영상 보는 그런 이야기. 나는 무언가에 그렇게 미쳐본 적, 몰입해본 적 있나 생각해 봤는데, 있긴 있다. 로이스터 시절 롯데 야구. 진짜 울고, 웃고, 맨날 술 마시고, 맨날 야구장 가고, 다시보기 몇 번씩 보고, 온갖 야구 커뮤 다 돌고.. 그 정도로 미쳤으면 좋겠다. 


2. 기록을 남길 것. 

백자평이라도. 좋아서 더 잘 쓰고 싶어 기록 못 남기고, 기억도 안 나는 책들이 한 두권이 아니다. 뭐라도 남겨놔야 나중에 다시 보지. 


3. 여성학책 읽기 

1월 1일, 시몬느 드 보봐르의 '제 2의 성'으로 시작한다. 

작년에 같이 열심히 읽었었으면 좋았겠지만, 모든 책에는 다 각각의 때가 있는거겠지요. 


 

+++ 여기까지 +++ 


올해 계획 계속 마인드맵 그렸는데, 최종은 


영어, 달리기, 책, 돈이 4가지 키워드이다. 

그리고, 밑에 '미니멀리스트' 있고, 위에 '고양이' 있다. 


좀 오글거리는 이야기하고 싶지만, 안 하기로. 

책도 사람도 다 때가 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화는 좀 덜 내고, 이번 MBC 연예대상 여성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 키워드였던 '선한 영향력' 

선한 영향력 나눌 수 있는 나 자신을 잘 가꾸고, 타인의 좋은 환경이고 싶다. 


혼자 잘해야지. 혼자 잘하고 싶다. 는 마인드 컨트롤 하고 있는거 중 하나가, 

마라톤 대회 나가서 완주 하고, 혼자 잘 돌아오는 거. 

달리기 책이고, 영화고, 다 달리기 친구 있어서 엄청 부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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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페이지 첫문장. 와!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 가슴을 총으로 찌르고 고양이같은 년이라고 하면서 나를 쏘려고 한 날이 밀크맨이 죽은날이었다. 

밀크맨은 국가암살단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가 총을 맞은 일이 나에게는 전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엄청난 일인 양 법석이었고 그중에서도 ‘나와 안면은 있지만 말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닌 사람들이 나를 두고 쑥덕거렸는데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니 아마도 우리 첫째 형부가 만들어낸, 
내가 이 밀크맨이라는 사람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루머가 쫙 퍼져 있었고 나는 열여덟살이고 그는 마흔한살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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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초록 - 어쩌면 나의 40대에 대한 이야기
노석미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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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지 제대로 안 보고, 제목과 작가 이름과 표지를 보고 구매했다. 

처음부터 땅 보러 다니는 이야기 나와서, 아! 서울 살다 혹하는 불혹의 나이 40대 즈음에 시골을 찾아 들어가는 이야기.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도 많고, 시골살이에 대한 괴담도 많다. 괴담들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런데, 시골살이 희망편도 있는데,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좀 모으고 있다. 나의 시골살이는 희망편에 가깝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냐..고 묻는다면, 시골이긴한데, 관광지이고, 토박이들 있고, 외지인들 많은 그런 동네다. 산도 가깝고, 바다도 가깝다. 하늘이 크고, 밤은 깜깜하고, 고요하다. 


저자는 초록을 위해 강원도, 아니, 경기도와 강원도에 가까운 강원도와 사이의 경기도 양평에 들어갔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왔지만, 파랑을 많이 본다. 하늘과 바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읽은 이은정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시간'도 시골살이 책이었다. 바닷가에서도 살아보고, 산에서도 살아보고. 


땅을 수배하러 다니고,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시골 살이를 시작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에게는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필받아서 제주도 전도, 부동산에나 붙어있을법한 제주도 전도를 주문했는데, 이 책 덕분이다. 

그렇다고, 막 땅 사고, 집 짓는 이야기가 주도 아니고, 그냥 그랬다. 땅소개해준 공인중개사분이 특이한 이야기, 땅에 대한 이야기, 집에 대한 이야기가 노석미의 감성으로 나오고, 실용서와는 거리가 멀다. 


내가 여자 시골살이 희망편들 모은다고 했잖아. 자연이 좋아. 라는 이유와 도시가 싫어. 라는 이유가 공존하고, 시골살이 하는 동안은 도시의 좋은 점이 눈에 보이고, 도시 사는 동안은 시골의 좋은 점이 눈에 보이는데,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기 두드려보고, 결국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 더 참을만한 곳에 살게 되는 것이지. 


다만, 언제든 선택의 여지는 있다라는 것, 시작도 전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이래서 안돼.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해 봐야지만 아는 것도 있다. 내가 여기 내려오기 전에는 시골 살이의 좋은 점을 하나도 못 떠올렸던 것처럼. 


글을 위한 과장 없이, 그곳에서의 일상과 소회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니깐, 과장도 로망도 걷어내고, 그냥 써내려간 글들. 도시에 사는 누군가에겐 로망이고, 생각하는 것만 좋다면, 화가에게는 지극히 실용적이고, 마음적인 이유로 시골에서, 자연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시골살이 희망편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자기 방어의 글도, 자기 연민의 글도 없었다. 이런 것이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도시에서 있는 일은 당연히 시골에서도 있을 수 있지. 


화가가 살고 있는 곳의 여름의 very green, 매우 초록과 겨울의 눈에 파묻힌 자연들, 아마도 화가가 돌보는 집고양이들, 야생고양이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특별한 점. 





봄에서 여름으로 진입하게 되면 잡초들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게 된다. 물론 한숨을 쉬면서. 왜냐하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뭔가 해결해야 될 일들이 밀리고 또 밀리면 일을 더 하기 싫어져 더 미루게 되어 실지보다 일이 더 많게 느껴지고 막 그렇게 되는데 정원의 잡초가 바로 그렇다. 이른 봄에 잡초 정리를 제때 하지 못하고 지나가면 날이 더워지고 비가 자주 오고 하면서 잡초는 이제 쳐다봐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잡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에잉, 하고 잡초를 뽑으려던 도구, 호미를 집어던지고 실내로 들어온다. 실내에 돌아와도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다. 읽어야 할 책들도 쌓여 있다. 그려야 될 그림도 쌓여 있다. 고양이 화장실엔 똥이 쌓여 있다. 싱크대엔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다. 쌓여 있다. 정원의 잡초처럼. 안팎으로 할 일들이 쌓여 있다. - P91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주말 동안에 꽤 큰 비가 온다기에 서둘러 며칠 먹을 야채 수확을 했다. 시골생활엔 문득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이거 하다가 보면, 어느새 저거 하고 있고, 일은 늘어지고 마음은 바쁘다. 휴....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니 하면서. 게다가 틈틈틈이 나는 다람쥐인가 너구리인가, 틀림없이 고양이는 아닐 거야.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 P95

봄, 여름, 가을, 여울울 어느 계절이나 다 유니크하고 아름답다. 특히 여름의 산길을 드라이브하다보면 거대한 초록색이 뚝뚝 내게로 떨어지는 것만 같다. 매우 초록. 그 쾌감은 엄청나다. 길들에는 거의 인적이 물다. 도의 접경 지역들은 대개 그런 것 같다. 지형이 험하고, 사람이 모여 사는 면내 같은 거점 지역으로부터 거리가 있다. 사람이 귀하게 보이고 그만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가까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연도 멋지다. 작은 집들, 일하고 있는 농부들, 축사 등과 함께 인삼밭, 옥수수밭, 보리밭 등이 드럽게 펼쳐진 논과 함께 잘 어울려 있다. 거기에 작은 강, 작은 길 등이 조화를 이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 길에 작은 트럭이 털털털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네모난 틀 안에 잘 넣어보려고 하지만 항상 내 세계는 그것에 비해 초라하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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