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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 ㅣ 십이국기 5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평점 : 
십이국기 5번째 '히쇼의 새'는 4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지금까지의 시리즈가 '왕'이나 '재보(기린)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백성들의 이야기이다. 이전 시리즈를 읽고 읽어야 훨씬 와닿겠지만, 지금까지의 시리즈를 읽고나서 드디어 읽게 된 관리, 백성들의 이야기는 왕들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통쾌함이나 카타르시스는 없지만, 그보다 더 진한 어둠 속의 한줄기 밝은 빛이 저 멀리 보일 것 같은 이야기라 감동적으로 와닿는다. 네 단편 모두 다 좋았고, 각각의 이유로 지금까지 읽어온 십이국기의 나라들, 왕들( 그 중에서도 경의 이야기)을 생각하게 되고, 각각의 단편들은 어쩐지 지금의 현실에도 겹쳐 보였다.
첫 단편 '히쇼의 새'에 나오는 히쇼는 나씨이다. 나씨는 사의를 관장하는 일을하는 관리이고, 사의란 '경사스러운 일이나 빈객이 있을 때 벌이는 제례 때 활을쏘는 의식'이다. 석조씨의 하명에 따라 사의에서 과녁으로 삼는 도작(도자기새)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네 단편 모두 읽을때 '경'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은 경에는 3대째 여자가 왕이었는데, 다 빨리 죽거나 좋은 왕이 아니어서 여왕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여왕은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는데, 기린을 남자로 좋아하고 의지해서 나라의 모든 여자를 쫓아내고 미쳐간다. 그리고 나서 조에이가 자신의 왕이라며 위왕이 되고, 기린은 진짜 왕을 찾아 위왕과 싸워 진짜 왕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이 진짜 왕이 지금까지의 주인공인 '경왕'이다.
단편 이야기들은 여왕이 왕일때의 폭정시절부터 새로운 경왕이 등극하는 시점까지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십이국기의 세상에서는 바른 왕이 서면 하늘이 돕고, 그렇지 않거나 왕이 없으면 자연이 그나라를 버려서 가뭄이 들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하며 백성들의 삶이 말도 못하게 피폐해진다.
히쇼가 나씨로서 만드는 도작은 예술적인 퍼포먼스인데, '새를 본떠 만든 도기로 된 과녘을 던져 쏘면 궁수들이 쏘아 떨어뜨린다. 빗맞으면 불길하다고 하여 과녁의 궤적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험해야 한다. 화살이 꿰뚫을때의 소리로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궁수도 명인만 모으고, 색깔을 넣기도 하고, 향기를 보충하기 위해 탱자나무를 몇천그루씩 준비하기도 한다.
왕이 즉위하는 '대사'의 사의가 특히 중요한데, 언젠가부터 연속으로 나쁜 왕들을 맞이하게 되며, 히쇼는 도작에 회의를 느끼고, 도작의 도자기새가 의미하는 '까치'를 백성과 같다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가 왕에게 도자기새로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며 보여주는 퍼포먼스들이 눈에 보이듯 느껴지는데, 히쇼의 마음 또한 새로운 경왕에게 가 닿음을 마침내 느끼게 된다.
십이국기가 통쾌함의 카타르시스였다면, 이 단편집에 카타르시스는 없다. 죽도록 고생하는 백성, 혹은 관리의 이야기와 그 끄트머리에 (그동안 시리즈를 보며 경왕의 성장을 봐 왔기에 짐작할 수 있는) 희망도 아니고,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은 그런 작은 조짐이 보이는 정도다.
'히쇼의 새'에서 히쇼의 마음과 히쇼의 동료들의 마음, 그리고 슬프거나 무섭거나 아름다운 도작을 감상할 수있었다면,
다음 단편인 '낙조의 옥'에선 지금으로 말하면 재판관들인 에이코 등이 나온다. 천하의 몹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 나온다. 이 배경이 '유'인지 '경'인지 헷갈리는데, '유'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다. 네 단편 모두 왕이나 나라이름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힘든 백성들만 나오고, '안'빼고는 다 드럽게 힘들고 있으니깐 어느 나라인지는 좀 모호하다.
'낙조의 옥'에서는 '살형' 그러니깐 그 죽일놈을 사형에 처하라는 백성들과 고민하는 법관들의 이야기가 심도깊게 나온다.
범죄의 질이 정말 너무 나쁘고, 사이코패스이고, 반성의 기미도 없고,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범인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들이 법관들의 토론을 통해 나오는데, 판타지속의 이야기이지만, '사형'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다 집고 넘어가고, 마지막도 예상 밖이라 여운이 엄청 길었다.
짧고, 술술 잘 읽히는데,각 단편의 여운만은 긴 작품들보다 훨씬 길어서 한 번에 다 읽어낼 수가 없었다.
세번째 단편인 '청조란'도 현실과 겹쳐 보였다.
산을 관리하는 관리가 나오는데, 이름 모를 돌림병에 죽어가는 '너도밤나무' 군락의 이야기가 정말 다양하고 풍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생생함도, 산을 관리하는 자들과 떠돌아다니는 부민, 관리자들의 가족들이 있는 마을, 그 외의 마을, 나쁜 관리들, 마을주민들.. 이야기도 정말 꽉꽉 들어차 있고, 주인공인 '효추'의 여정도 심금을 울리고, 마지막까지 감동적이다. 효추를 따라가는 것을 읽는 내 마음이 막 쥐어짜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단편은 '풍신'이다. 달력을 만드는 관리들이 나오고, 가족을 잃은 렌카라는 소녀가 나온다.
가장 잔인하지만, 자연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단편이다.
네 단편들이 각각의 개성으로 너무 좋았어서 리뷰 쓰면서 가장 좋았던 작품 꼽으려고 했는데 못 고르겠다.
'히쇼의 새'의 히쇼의 냉소와 아름다운 도작 퍼포먼스
'낙조의옥'에서 법관들의 살형에 대한 토론과 나쁜 범죄자놈
'청조란'에서의 '산'(자연)과 효추의 절실함(근래 본 소설 중 이만큼 절실한 주인공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나도 오늘밤 효추의 악몽을 꾸게 될 것만 같은)과 결말.
'풍신'에 나오는 호박벌과 제비.
십이국기 이전 시리즈를 읽었기에 이 작품이 더 재미있었겠지만, 아마 십이국기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