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는데, 이번에 캐롤 영화로 인해 여기저기서 이슈되는거 보고 많이 배우고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그렇구나, 끄덕끄덕 지나갔는데, 어제 옮긴이말 보고, 화르르 페이퍼 쓰고, 오늘 메인에 뜬 리뷰보니 또 (과거의 내가) 한심해져서 글쓰며 정리해볼까 한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그게 여자라치자. "난 당신을 인간으로 사랑하지, 여자로 사랑하는건 아니야" 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이게 영화평론가 이동진서부터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동성애를 넘어선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

 

아니에요. 그거 아니라구요. 모르겠으면 외우시구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그게 남자라치자. "난 당신을 인간으로 사랑하지, 남자로 사랑하는건 아니야"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알고, 넌씨눈 빼고는 다 알아들어야지. 그건 '거절'의 의미라는건. 그러니, 굳이 동성애에만 '인간에 대한 사랑' 임을 주장해야겠다면...

 

동성애 작가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소설을 쓰고, 동성애 감독이 헐리우드에서 가장 쎈 여배우 둘과 동성애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동성애 영화를 만들었는데, 왜 동성애 영화가 아니고, 왜 그 사랑이 동성애가 아닌거냐고. 그냥, 말하시라구요. 동성애 소설이고, 동성애 영화라고.

 

이동진도 집요하게 매달렸던 이야기인데, 감독이 이건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인터뷰 했다고. 이것도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어 있는 제1세계, 나올법한 모든 이슈들이 나오고, 정리되고, 호모포빅이 미개함으로 취급되는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 박영선, 하아.. 2016년에 차별금지법, 인권관련법, 동성애법(? 뭥미??), 당의 이름으로 반대한다는 혐오발언 싸지르고, 아.. 이분 생각하니 뒷골이.. 오열.. 우리의 아들딸들. 필리버스터... 아.. 삼천포.에서 나가자.

 

여튼, 테방법 통과하고, 어떻게 될지. 농담처럼 중국처럼 될꺼야,가 과연 농담일지 싶은 헬.조.선.에서도 똑같이 통용되는 말이 아니라구. 이동진과 같은 영화평론가나 문제가 된 소설 '캐롤'의 번역가 김지영이나 문화계에 발 담그고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공부 해야하고, 게으르게 헬조선의 과거와 현재에 머물러 해석하고, 번역한다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캐롤 영화를 번역하신 황석희님은 요즘 주목하는 번역가다. ㅂㅈㅎ 같은 번역가는 좋다는 영화도 보이콧 하게 만들었는데,

고민하고, 공부하는 번역가로 보여 이 분 번역이면 안심이다. 스포트라이트에서도 이 분 이름 봐서 반가웠다. 영화 '캐롤' 번역이 멀쩡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회사 식당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읽고 있던 테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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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16-03-0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

하이드 2016-03-05 18:43   좋아요 0 | URL
캐롤 영화와 이동진님 덕분에 생각보다 굉장히 깊고 다양한 이슈들이 나와서 저도 제 자신의 편견들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진작 많이 많이 얘기했어야 하는데. 계속 그때그때 바로바로 얘기해야겠어요.

주토피아도 얘기할꺼 많고,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는 매일매일 얘기해도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6-03-0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번 읽어보았는데 하필이 그렇게 논란이 될 단어인가 했네요. 문맥상 전혀 그런뜻이 아니라고 생각되서. 왜하필 너를 만나 나는 사랑을 하고. 같은 표현 흔히 쓰니까. 좋은 작품이군요. 어서 봐야겠어요. 지인들의 커밍아웃엔 응하고 마는 편인데, 마음은 힘들겠구나하지만, 뭐 제사랑도 쉽지만은 않으니까.. 잘모르는 남의 사정엔 차라리 입닥치라고 모의원에겐 말하고 싶네요. 제가 읽은 성경과 참 많이 다른것이 뭘 읽은건지.

하이드 2016-03-05 20:0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아래 쓴 번역가의 글도 그게 그렇게 문제되나 싶을 수도 있지만, 말이 들어내는 본심에 그것이 단어 하나라도 예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르고 있었던거니깐, 최소한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휘모리님의 마지막 말은 `그래, 여자들이 힘들겠구나, 하지만 남자도 쉽지만은 않으니까` 랑 비슷하게 들려요.

덧붙이셨으니, 저도 덧붙이고 싶어요. 국회의원이 차별금지법과 인권법, 동성애법(?이런거 없;;) 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도 안 되고, 닥쳐서도 안 되죠 ㅡㅜ(지금 민주당이 그꼴이긴 하지만) 새누리당이 얼버무릴 정도인데, 뭐 잘났다고 거기서 그랬는지..

sijifs 2016-03-0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참 좋았어요

하이드 2016-03-08 21:13   좋아요 0 | URL
두 번 봤는데, 세 번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악, 배우들, 장면들, 분위기 다 멋졌어요.

무해한모리군 2016-03-05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 레즈비언 병역기피자 등등 수가 아니라 사회적 위치의 소수자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관계에서는 그렇게되네요. 내가 좋아하는 너의 여러부분중 하나로 인식하게 된다고할까. 그런의미였어요.

모의원이 그런 이유 명확하죠 기독계에 아부하느라고죠 ㅡㅡ 아 싫다

하이드 2016-03-08 21:13   좋아요 0 | URL
그렇죠. 표구걸. 진짜 표구걸이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기는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좀 제발 제발 잘해줬음 하는데, 이런식이라 정말 힘빠지고 혐오스럽습니다.

저도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되는 문제들과 개인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현재진행형 고민이긴 한데요,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던간에 그것이 한 사람이 타인을 부려먹거나 타인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면, 그러니깐, 제가 어떤 위치던간에 서로 그것에 익숙해있어서 편하다고 해서 그걸 답습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3-05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감 만 개 날립니다.
전 박영선이나 이동진적 사고 방식을 << 조중동식 사고 방식의 은밀한 세뇌 >> 라고 명명합니다.
하이드 님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여성이 이성애 남성에게 ˝ 난 당신을 인간으로 사랑하는 것이지 남자로써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 라고 할 때는 거절의 의미잖습니까 ? 그렇기에 이동진이 ˝ 테레즈는 캐롤을 여자이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 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죠. 완곡한 차별 의지를 부드럽게 순치시키는 말빨 기술이 이동진에게는 있죠. 논리 모순인데 말입니다. 조중동이 이 짓을 졸라 잘하죠.


박영선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저건 말실수가 아니라 혐오 범죄로 법적으로 다스려야 할 사안입니다.
박영선이 필리 무대에서 소수 정당에 대한 설움을 울면서 말했는데, 이 말을 다시 말해서
다수 정당이 소수 정당을 억압히고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른다는 넋두리인데

이 소수의 설움 - 논리`는 한기총 무대 발언에서는 정반대가 됩니다.
박영선은 다수(기독교, 한국인, 이성애자)의 입장에서 소수자(이슬람법, 동성애법, 차별금지법)를 억압하는 발언을 하죠.
말이 180도 다르게 되는 거죠...


하이드 2016-03-08 21:09   좋아요 1 | URL
박영선에 대한 기대를 놓지 못했는데, 이제 민주당 박근혜라는 이야기가 나와도 그러려니 하게 되네요.
이 문제가 이슈가 되고 나서 변명하는 것도 진짜 역겨웠어요. 박영선 하면 혐오발언하는 차별론자에 독선과 아집만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비단 소수자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권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이 거꾸로만 가고 있는 것 같아 갑갑합니다.

다락방 2016-03-08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동진의 글을 읽고 이동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저는 알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휘모리님 말씀처럼, 그 말은 잘 쓰는 워딩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이게 왜그렇게 논란이 되는지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이드님이 예로 드신것처럼 그 문장을 바꿔 놓으니 우리가 쓰지 않는 문장이네요. 이렇게 또 제 안의 고정관념을 인정해야 하네요.

이렇게 바꿔지는 거겠죠. 자꾸 얘기하고 공부하고 하면서요.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문제제기가 먼저여야 하겠고요.

일전에 친구랑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예민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불편하다,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문제가 바깥으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하고요. 제 무지가 부끄럽지만, 제가 무지했다는 걸 아는 순간은 좋아요. 아, 내가 이걸 몰랐구나, 하면서 알아가는 순간 같은 것 말이죠.

하이드 2016-03-08 21:06   좋아요 1 | URL
평등, 차별,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이나 억압당하고 박탈당하고 있는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익숙해져서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박탈당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알면 골치아프고,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대로 자꾸 얘기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면서요. 이런 변화들이 즐겁습니다.


비로그인 2016-03-14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하이드님 좋은 하루되세요.
 

 

옮긴이말이 2쇄에 수정되었다고 해서 무슨 일 있었나 다시 보니 ..

 

  캐롤 같은 책을 옮긴이가 이 정도의 의식인데,

  내가 왜 이 책을 사줘야 해?

 

 안 그래도 번역에 캐롤이 테레스 나이 물어보고 하대하는 장면 나온다고 해서 찜찜했는데,

 

 원서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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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16-03-0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전 책을 대충봤었나봐요 ..이 대목은 못봤었네요

하이드 2016-03-05 18:25   좋아요 0 | URL
옮긴이의 말이었으니 안 볼수도 있죠. 옮긴이의 말이 지뢰인 경우 많아요. 여튼, 제게는 책을 `사지 않을` 이유가 많이 많이 필요합니다. ㅎㅎ

sijifs 2016-03-0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서 읽고 후회했습니다 그냥 영화가 좋은 것 같아요

하이드 2016-03-05 18:26   좋아요 0 | URL
책 꽤 읽고 싶긴 했는데, 나오자마자 이런저런 논란에 미루고 있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원서..읽고싶지만, 안 읽겠지요.아마도. 영화는 정말 좋았습니다.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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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읽기 좋은 책이다. 두시간 정도면 졸다 깨다 하면서 읽을 수 있다. 집에도 읽을 책들이 많고, 새로 주문하는 책들도 있다. 그 와중에 한권씩, 두권씩 빌려보기 좋은 책이다.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에 이어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을 읽었다.

 

다섯가지의 단편 연작인데, 각각의 눈으로 공부도, 사랑도 너무 열심히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에게 버림받은 부인, 그를 따르던 부교수, 그가 부인을 버리고 떠나 함께 사는 여자의 딸, 그의 친딸을 만나는 남자 등등

 

미우라 시온의 이야기는 뭔가 쎄한 부분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이지 않아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기에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들도 아니고, 각각의 '사랑' 에 관한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닌다. 한동안 책을 재미있게 못 읽었는데, 그래도 미우라 시온 책들을 읽으면서 숨쉬듯 책을 읽게 되는 그런 독서의 호흡을 찾았다.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에서 잡은 사랑과 삶에 관한 글들 :

 

 격렬한 감정은 책과 같다. 아무리 두꺼워도, 언젠가 끝이 나온다. 나는 이미 격렬함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저 시작도 끝도 없는 생활을 계속해나갈 뿐이다.

아무리 고민과 괴로움이 있어도 뒤로 미뤄둔 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잔다. 뒤로 미뤄놓을 수 있는 구조로 생겼다니 마음이란 의외로 잔혹하다.

아직 끝내고 싶지 않다고 희망하는한 우리는 떨어진 꽃잎들을 계속 그러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한데 모아서 어떤 꽃의 일부였는지를 상상한다. 식탁에 둘러앉으면서 생각했다. 뻔뻔하지만 착실한 이런 형태의 제스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가 없는 곳에는사랑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나중에 이해할 수 없는 공백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공백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더 깊이 사랑해야 하는가?

사실은 하나이지만, 진실이란건 사람의 머릿수만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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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지지 않는 마음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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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책의 제목과 컨셉트.

사이토 다카시는 그 두 가지에 정말 특화된 저자가 아닌가 싶다.

 

사이트 다카시의 책을 여러권 읽었는데,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내가 공부하는 이유 등) 첫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주옥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문장이라도, 한가지 아이디어라도 건지면 실패한 독서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책에서는 어떤 아이디어도 어떤 문장도 와닿지 않았고, 이전에 읽었던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의 메세지와 상충되는 점들이 있어 갸우뚱하게 된다.

 

<부러지지 않는 마음>의 부제는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세가지 방법" 이다.

 

서문이던가, 여튼 앞쪽에 나와 있다.

 

I.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II. 타인과 깊이 있게 사귄다.

III. 정체성에 뿌리를내린다.

 

안타깝게도. 이 세가지 요약도, 그를 뒷받침하는 이야기들도 와닿지 않았다.

워낙 궁금한 제목과 컨셉트로 책을 내주고 있으니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않겠지만, 이 작가의 책이 이렇게 영양가 없을 수도 있다는건 염두에 두고 고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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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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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글들을 좋아한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주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사실 받은 상들이나 나온 책들이나 주류라면 주류인데, 주류가 아닌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좀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해줘서 좋다. 그렇다고 막 반하고, 좋아죽겠고 그런건 아니고, 언젠가 작가의 책들을 다 읽어야지. 정도의 마음. 그런 의미에서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은 별로긴 했지만, 계속해서 미우라 시온의 책을 읽어나갈 것이다. 오늘 정말 좋아하는 <배를 엮다> 에 대한 페이퍼를 보고 나니 <배를 엮다>도 다시 읽고 싶다.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의 주인공들은 취업전선에 뛰어든 학생들이다.

'순서'는 응모, 회의, 필기, 면접, 진로, 합격. 이렇게. 목차가. 되게 예쁘게 내지에 나와 있다.

 

이 책에는 작가 미우라 시온이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어 면접볼때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고 한다. K담샤와의 안 좋은 에피소드들이 나와 있어서 작가가 이후 그 출판사에서 책을 잘 안 낸다는 이야기도 나와 있다.

 

만화를 진지하게 좋아하고,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가나코는 미우라 시온 책들의 다른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대단한 가문의 후계자로 금수저라면 금수저인 가나코가 취업준비를 하는 모습에 그닥 감정이입이 되지 않기도 했다. 다리 패티쉬가 있는 일흔살의 서예가와 사귀고 있는 것도 바로 와닿지 않았고. 하지만, 리뷰를 쓰며 다시 돌이켜보니 내 처지도 여름방학과도 같은 처지.

 

출판사 합격을 기다리는 스물 몇의 주인공이 '매일이 여름방학' 이라도 '자신을 믿고 살아갈 거' 라고 말하는 가나코가 그녀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세상이 뭐라든,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에 '금수저'라는 헬조선의 용어를 들이대는 것이 좀 부끄러워졌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격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 오케이를. 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늦여름, 스물셋 같은 그런 순간의 이야기.

 

+++

 

"가나코, 여름방학이구나"

"네. 그리고 전에 말했지만, '매일이 여름방학'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상점가 아케이드 아래에서 사이온지 씨가 웃었다.

"전에 말했지만."

장난스럽게 말을 반복하며 사이온지 씨는 말한다.

"그것도 나쁘진 않네."

사이온지 씨의 눈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이제부터 떠나는 여정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게요."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내 입을 뚫고 나왔다.

"설령 '매일이 여름방학'이 된다 해도, 내 자신을 믿고 살아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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