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부터 한번 물어보거나 서점에 가서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또 이슈가 될 때까지 게으름 피우다, 이제야 확인해봅니다.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가지고 있으신 분 있으시면, 역자후기 한 번 봐주실래요?
위의 발췌된 부분 (저도 인터넷에서 위의 이미지만 본 터라) 이 반어법이고 뒤에 다른 이야기가 있는건지, 아니면 쭉 저런 여혐 어조의 역자후기인가요?
비꼬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공감과 동정을 표하다. 그동안 쌓인 게 얼마나 많았을까.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짊어져야 하는 짐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학교, 군대, 취업, 결혼과 같이 평생을 좌우하는 일대 이벤트를 거칠 때마다 남자들은 극도의 긴장을 경험하며 시험대에 올라야만 한다. 승리와 패배, 절망과 희망이 반복되는 이런 굴레가 남자에게만 씌워진 것 같아 '적당히 남자 하나 골라서 얹혀살기만 하면 되는' 여자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고생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남자가 짊어져야 하는 짐'을 짊어져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나마 고생한 걸 알아주기만 해도 조금 나을 텐데, 우리 사회에서 군대 고생은 '누구나 다 하는 것' 취업 전쟁은 스펙 쌓는 걸 게을리 한 '개인 책임'으로 정리되기 때문에 억울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연애라도 잘 풀리면 나름 위안이라도 될 텐데 그것도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여친 비위 맞춰가며 각종 기념일 챙기고, '이벤트' 기획하느라 있는 돈 없는 돈,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바쳐서 뛰어다녔는데 그 대가로 돌아오는 건 보답도 인정도 대우도 아닌 '감사할 줄 모르는 여친의 태도' 이니 '보지 달린 게 무슨 벼슬' 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다시 봐도 황당한데, 이 페이지만 보면, 역자가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읽고 깊게 빡쳐서 여혐하는 남자들의 논리를 안쓰러워하며, '보슬아치' 에 공감하고 있는 거 같은데??
저자인 우에노 치즈코는 역자후기 봤을까?
다른 책도 아니고 하필 이 책에 이런 역자후기가 달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 이 앞페이지나 뒷페이지에 반전의 내용이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페이지의 어조는 기가 막히다.
** 덧붙임 **
서점에서 옮긴이 후기 봤는데, 해당 페이지는 공감이라기보다 측은함에 가깝게 읽혀집니다.
비꼼은 또 아님.
옮긴이는 우에노 치즈코의 책과 활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며, 전체 옮긴이의 말이 짧지 않은데, 읽어볼만한 '옮긴이의 말' 입니다.
책도 앞부분 읽어보니 재미 있어서 오늘 아침 주문하려고 했으나, 잠깐 사이에 당일배송에 밀리는 바람에 내일 애인한테 사달라고 하기로.
책은 다 읽어봐야겠지만, 옮긴이의 말을 읽으니 우에노 치즈코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져서 하나하나 읽고 리뷰해보도록 하려합니다.
딱 저 페이지를 올려두고 분노하셨던 분이 나쁜뜻이 있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맥락을 벗어나, 맥락과 관계없이, 맥락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해석될 수 있고, 독자는 그에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 옮긴이의 후기를 읽어볼 때 나의 감상은 위와 같고, 읽는 사람들에 따라 각기 다른 감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전체를 읽어볼 때, 위의 페이지만으로 오해를 했던 점, 그리고, 오해를 퍼트렸던 점은 경솔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렇게 쓰니깐 얘가 뭔가 고소 메일이라도 받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 그건 아닙니다. 출판사쪽에서 만약 이 글을 봤다면, 생각하니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