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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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선은 간데없고 악이 이렇게 판을 쳐대는지, 

어째서 평범한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괴로워하고 이런 쓰라림을 맛봐야 하는 건지 …….


강상중 선생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페터 회의 '수잔 이펙트' 바로 다음에 읽었다. 

페터 회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생각과 내가 평소 헤어나오지 못했던 생각들, 당장 닥친 문제들에 대한 답이 보이는 것 같다. 이런 사유를 책으로 내주신 선생님 계신 곳으로 절. 


가장 근본적인 주제들을 현실을 통하여, 고전들을 통하여 풀어내는 것을 읽고 있으면, 생각의 힘, 마음의 힘, '소설'의 힘 등을 생각하게 된다. 책에서 답을 찾는 나에게 이 책은 '그래, 책 안에 답이 있어'를 저자가 깊이 인용하고 분석해주는 소설들을 보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풀어낸 책을 보고 이중으로 느낀다.


저자가 악에 대해 고찰하기 전에 예로 드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가와사키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살인사건(중고생 소년들이 중1소년에게 심각한 고문과 폭행을 가한 후 한 겨울에 발가벗겨 강물에 던짐. 시체를 옮길 때 발로 굴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의 분노 폭발) 환자 1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군마대학병원 사건(2010년에서 2014년에 걸쳐 복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 8명이 사망. 이 사망사고 전부에 40대의 한 집도의가 연관되어 있고, 이 집도의가 관여한 개복 수술에서도 수술 후 10여명의 환자가 사망했음이 알려짐), 나고야대학 여학생 살인,상해,방화사건(나고야의 여학생이 77세 여성을 살해한 후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고 발언. 살인을 저지르고 집에 가는 길에 저택에 방화, '장례식에서 불에 탄 시체를 보고 싶어서' 라고 함),잔학무도한 IS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구체적인 습관,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서입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습관이란 '사는 법'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사는 법을 체득한 사람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사는 법이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죽음의 충동을 조금씩 길들여 제어하고 조절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나고야 여학생은 이 구체적 습관인 '사는 법'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죽음의 충동을 길들이는 방법을 모르는 공허한 존재,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파괴충동을 분출시키는 것이라고.


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곳이 직장이건 공공장소이건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아주 섬세하게 사회적인 룰이 결정됩니다. 공허한 존재의 악은 세계의 그런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죽음의 충동으로 분출되지 않았을까요. 


죽음의 충동은 공허한 존재에 숨은 마물입니다. 악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마물을 길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허함이란 너무도 간단하게 우리에게 들러붙곤 하니까요. 그러니 우리의 세상은 결코 악의 세계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 끔찍한 나고야 대학생 사건의 뿌리를 우리가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니, 이 학생 속의 악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니. 일견 이해가지 않지만, 이런 끔찍하고, 인간 같지 않은 범죄들을 보며 도대체 왜? 어떻게? 끔찍함을 넘어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게 했던 '악'의 존재에 대해 내가 사는 이 사회에 함께 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얼마전 필리핀 성매매남들을 잡는 장면이 현지 뉴스 페북라이브로 중개 되면서 '성매매하는 한국남자들' 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성매매남 관상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고, 사귀면서 겪게 되는 갈등들, 이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나를 관찰하는 것 등을 경험하는 대신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는 여자만 만나봐서 사회에 나와서도 적응 못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이 얼마짜리가. 하며 분노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그렇게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눈빛이 죽은 동태눈깔처럼 되서 '성매매남 관상'이 된다고! 얼른 성매매를 그만 하고! 인간으로 살라고! 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위에 이야기한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며 섬세하게 결정된 사회적인 룰, 세계의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동태눈깔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그렇게 '공허함'이 들어찬 곳에 '악'이 자리잡는다는. 


이런 것이 역사상 대규모로 나타난 것이 '나치' 였다. 

목적성도 생산성도 없는 파괴(살육)행위를 위해서 모든 수단을 소비해버린다. 

나치 독일이 품은 악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공포인데, 이것은 나치 독일 안의 '악의 이면성'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과대망상적으로 크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과 자신이 병적일 정도로 작은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에 관한 것.


이런 분열된 이면성 속에 나고야 대학생이 안고 있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포, 그 공동감(속, 핵심, 중심이 비어 있는느낌) 의 반작용으로 '과대망상적으로 자기를 긍정'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악의 이면성'이 낯설지가 않다. 


과거의 악의 축이 나치였다면, 오늘날 악의 축으로 떠오르는건 IS의 폭력과 테러이다. IS를 이슬람원리주의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활동은 고전적 원리주의와 거리가 멀고,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이슬람의 규칙을 인터넷상에 카피 엔 페이스트, '복사해서 붙여놓고' 이를 폭력을 정당화하는 지표로 삼았다"는 느낌만 든다.

이런 얄팍한 원리주의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든지 다른 스티커로 바꿔 붙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현대의 자본주의를 '익명의 시스템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1장 '악의로 가득한 세상' 에 나오는 악의 여러가지 얼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2장 '악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악'의 존재, 악의 정체를 탐구하는 장이다. 성서에 나오는 '베르제바브, 바알세붑 들의 이야기, 욥기의 욥 이야기 등과 고전으로 넘어 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토마스 만의 작품 등이 소개 된다. 뒤로 가면서 소개 되는 문학작품 레퍼런스들로는 강상중 선생의 책을 오래 읽은 사람이라면 짐작하듯이 나쓰메 소세키, 도스토예프스키('악'을 탐구하는 소설로 이만한 작가가 있을까) 가 나오고, 자본주의를 현대의 시스템악으로 규정한만큼 베버도 나온다. 


원죄와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근원적인 악'과 '진부한 악' 으로 나누어 놓고 있다. 

한국에서는 '악의 평범성'으로 번역되는데, 일본판에서는 '진부함'으로 나오고 있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나 맥베스가 아니었다. 더욱이 '악당이 되어주지'라고 한 리처드 3세의 결심만큼이나 이 진부함과 무관한 것도 없으리라 (중략) 완전한 무사상성 - 이는 결코 어리석음을 뜻하지 않는다 - 이것이 바로 아이히만이 그 시대 최대의 범죄자 중 한 사람이 되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깐, 진부한 악이란, 사려와 상상력의 결여이고, 이 '무사상성', 사상 없음은 우리에게도 있다. 


짧은 책이고, '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성경과 고전, 역사속의 사건과 인물들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낯익고, 마음에 와닿을 일인가 싶다. 지금이 '악의 시대' 이고,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갈구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 


악이란 결국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악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병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악은 '텅 빈'마음에 깃드는 병입니다. 



루프트한자 계열 항공기 사건과 같은 일은 앞으로도 더 일어날 거라 보고 있습니다. 파일럿 중에서 사건을 모방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악이란 기억과 관습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악행을 저지른 것을 기억합니다. 일단 악행을 저지른 인간은 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악행은 반복되는 것이지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악의 연쇄는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비극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간에도 악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악은 세간이라는 몹시 진부한 인간 사회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크건 작건 공허함을 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세상을 거절하고 싶을 정도의 증오에 휩싸이는 일도 있겠지요. 공허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파괴 충동이 있으며 사람을 상처 주거나 멸시하는 데서 오는 어두운 기쁨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런 암흑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이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의 충동‘과 어떻게 타협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길이 소세키가 생애를 바쳐 그린 세간의 삶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바깥쪽에서는 타협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로애락 가운데 이어지는 나날이 있는 것이라며 소세키는 세간의 세부를 그려내 보였습니다.
서로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생활을 소세키는 달관하여 희극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일 따름인 절망의 자본주의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시스템 자체가 악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 자체가 인간을 고뇌하게 하고, 그런 고뇌를 계속 만들어내 시스템을 유지하는 악의 연쇄를 낳습니다. 말하자면 전 지구적인 규모로 악이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절망 속에서도 타자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 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조금은 타자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누그러질 순간이 있을 터입닏. 비록 일시적인 공감일지라도 이를 얻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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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4-2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니요. 흡사 우리나라 일인줄 알았어요. 특히 나고야 여자 대학생이야기가 충격적이면서도 얼마전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요. 악은 텅빈 마음에 깃드는 병이란 글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ㅜㅜ 함께하는 사회이니 그 이유를 함께 찾아보자는 말씀도 공감되고요.

하이드 2017-04-22 10: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우리나라 뉴스들에 나오는 사건들이 많이 오버랩되더라구요. 뉴스 볼 때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사람이? 정말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는데, 이 책 읽고, 많은 부분 더 생각할 거리들을 얻었습니다.

 
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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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회의 신간, '수잔 이펙트'에서 제목에 여자 주인공이 들어간 또 다른 그의 소설 '스밀라의 감각'을 떠올리게 된다. 

수잔이라는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이겠구나. 스밀라에서 스밀라가 수리공과 팀으로 죽은 아이의 사건을 해결한다면, 수잔 이펙트에서는 수잔을 중심으로 수잔의 가족이 사건에 휘말리고, 지구적 음모를 밝혀낸다. 


과학자들이 나오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나온다. 

수잔이펙트는 수잔이 일으키는 효과로 수잔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다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싶어하는 효과를 말한다. 천재 과학자가 나오고, 물리학자인 수잔은 팀연구에 포함되어 자신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방법 등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말하니, 대단히 SF 같지만, 긴가민가 싶게, 그러니깐, 현실에 볼법한 '굿 리스너' 의 능력이 좀 업그레이드 된 것 같고, 수잔의 남편인 음악가 라반은 어디 가도 호감 받는 그런 초매력남의 매'력'을 극대화 시켜 놓은 것 같다. 그런 둘이 함께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 누구라도 살면서 좀 더 잘 들어주는 사람, 그 사람 앞에 더 많은 말을 하게 되는 그런 사람, 더 매력적이어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난적 있으니, 수잔 이펙트가 허무맹랑한 SF로 보이지만은 않는 것. 

수잔의 쌍둥이 아들과 딸 역시 독특하다. 특별한 가족이 해외에서 각자 큰 사고를 치고, 수잔의 심문 기술을 이용해 문건의 위치를 알아주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거라는 정부관계자를 만난다.

 

쇠지레를 손에 든 수잔의 지휘아래 사람을 만나고 다니지만, '미래위원회'였던 이들을 만나고 다니며, 그들이 한 명씩 죽고, 수잔과 가족들도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수잔과 라반, 쌍둥이들. 잘 쓰여진 미스터리 소설이고,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 속에서나 볼 법한 인물들로 여겨지지만, 그들을 둘러싼 미래위원회의 인물들, 그리고, 수잔을 가르친 스승, 정치인들의 이기심은 희화적으로 보이기까지 해서 앨리스 원더랜드에 떨어진 가족들 같이 보이기도 한다. 


수잔과 가족들 외에 인상적인 주변 인물 둘이 있었는데, 그들 가족 옆집에 살며 돌봐주는 도르테아와 그들 가족을 죽이려고 하는 야손이 있다. 각각 '선'과 '악'의 표상 같은 인물들이다.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했다고 그것을 '악'으로만 규정하게 되지 않는 것이 내 안에도 그런 이기심쯤은 있으니깐. 그리고, 수잔네 역시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니, 주인공이라고 해서 '선'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중에 순수선, 악 그자체와 같은 존재들. 도르테아와 야손. 

한계가 없이 도와주는 도르테아, 텅 비어서 악이 들어 차서 악의 체화같이 보이는 야손. 


선과 악, 자본주의, 엘리트주의, 정치가들,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 중에 페터 회가 그리는 여성 캐릭터는 늘 최고로 멋졌다. 다시 읽으면, 수잔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할 것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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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식 토라 시리즈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지음, 박진희 옮김 / 황소자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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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변호사, 여자 작가. 앞에 '여' 붙이고 싶지 않지만, 이 시리즈가 여자 작가가 쓴 여자 주인공 변호사가 이끄는 거라는걸 말해야 한다고. 남자 작가가 쓴 남자 탐정이 나오는 미스터리 시리즈가 2394193586개 있는 만큼, 잘 쓰여진 여자 작가의 여자 탐정이 나오는 미스터리 시리즈 너무 소중하니깐. 


그 외에도 에를렌두르 이후 오랜만에 보는 아이슬란드 배경의 시리즈라서 반갑다. 자극적인 범죄로 시작하지만, 잔인함을 위한 잔인함이 아니라서 소설에 맘껏 몰입할 수 있었다. 끔찍한 모습으로 대학에서 발견된 독일에서 유학 온 할랄트의 사건을 조사하 기 위해 독일의 부모가 선임한 매튜라는 변호사와 아이슬란드의 현지 일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토라가 팀을 이루어 사건을 재조사 한다. 


극단적인 피어싱과 신체변형을 취미로 삼고, 마술/마법에 심취했던 피해자의 주위를 조사하면서 16세기 마녀사냥 이야기들이 나온다. 유럽 배경의 이야기들인데,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랑 함께 읽으면 더 실감난다. 인간이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 중에서도 여자는 뭘까 싶을정도로 끔찍한 마녀사냥.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책에서 현대를 사는 주인공이 과거의 끔찍한 여성혐오에 대해 인지하는 장면을 보니 (게다가 배경은 아이슬란드!) 여자가 사람이 아니었던 시대가 더 와닿았다. 특이하게도 아이슬란드에서는 유일하게 마법/마술은 남자가 하는 걸로 여겨져 화형을 당했던 마법사?가 대부분 남자였다고 한다. 


변호사가 주인공이다보니, 경찰 캐릭터는 약하다. 

이혼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워킹맘으로서의 생활감 느껴지는 이야기들도 좋다. '부스러기들'이 먼저 번역되었는데, 다음번 책에서 이 아이들 이야기가 더 나올지 궁금하다. 

외모 이야기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키가 크다는 것만 언급 되었을 뿐인 것도 맘에 든다. 


미스터리가 워낙 남성 중심의 이야기라 멋진 여자 캐릭터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맘에 드는 시리즈가 나왔고, 번역 평도 좋다. '부스러기들'도 엄청!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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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 십이국기 8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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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생했던 다이키가 또 죽을 고생 하고, 십이국기 내내 등장인물들이 늘 힘들었지만, 더 더 힘들었던 8권이다. 다음 권이 언제 나올지 기약 없다고 하지만, 십이국기에 나오는 선량하고 훌륭한 성장해나가는 인물들을 생각하면, 미래의 희망 있는 현재를 보여주며 마무리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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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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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9천 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에 늘 감동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떠올랐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책에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들, 주인공의 선택과, 선택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포기, 혹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책에 쓰여진 것만큼이나 선연하게 다가와서 종이에 쓰여진 것보다 더 강하게 가슴을 친다. 


단편도 아니고, 장편도 아닌, 노벨라, 중편 소설이다. 1930년대 초반, 히틀러가 태동하기 직전에 인생의 한 사람을 만난 소년의 이야기이다. 역사책을 이미 읽어버린 우리는 유대인이었던 소년과 유명한 독일 귀족가 아들의 우정의 결말을 알 것 같다. 이 시기의 이야기들은 많이 읽은 것 같지만, 근래 읽었던 'Hhhh'와 이 책 '동급생'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부터 한숨이 나기 시작했다. 동급생이었던 두 소년이 좋아했던 독일 고전 문학의 한 장면 같다. 아름다운 문장들과 중편의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다.


책의 여운이 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오랜만에 소설의 아름다움, 소설이 마음에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가 생각하게 된다.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고, 서문 두 개와 옮긴이의 말은 나중에 읽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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