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 달리기는 치자꽃 냄새, 미선나무 꽃 냄새, 짙은 풀 냄새, 나무 냄새.
지난 주에 덜컥 더워져서 달리면 안 되겠다 싶어, 일요일 숲달리기도 취소했더랬다. 아니, 근데, 덥다고 여름 내내 안 달릴 수도 없다. 10월에 20키로 트레일 러닝 대회 나가는데,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거리, 그것도 트레일 러닝.
일단 뛰어보고, 컨디션 봐서 들어와야지. 하고 뛰기 시작했다. 새벽이고, 밤이고, 체감 온도는 29도에 육박했고, 습도는 장마도 아닌데, 90프로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해 뜨고 나면, 기온 더 올라가고, 습도 80프로 정도까지 내려오는듯 하지만, 땡볕에 뛸 자신은 더더욱 없어서, 새벽에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월요일부터, 하반기 시작, 새 마음으로 아침 달리기 시작했다. 방학이라 근처 학교 트렉도 열려서 해 뜨는 시간, 트렉 열리는 시간(6시) 맞춰서 한시간 달리기 시작. 10분 달리면 트렉 도착. 50분까지 트렉 달리기, 집으로 돌아오면 한시간 걸린다. 평소에는 심박 130대로 저강도 훈련, 슬로우 러닝 하려고 하는데, 더워지고 나서 심박 더 안 떨어진다. 130 초반 나오던 구간 130 후반에서 140 초반 나옴. 케이던스만 맞추고, 제자리 뛰다시피 하면서 좁은 보폭으로 최대한 130대 맞추어서 뛰고 있다. 그러니깐, 이건 무리하지 않기 위한 안전벨트 같은거다. 이렇게 며칠 뛰고 나니, 29도도 90% 습도도 안 무섭고, 힘들지 않고, 할만하다.
트위터에서 어느 귀인분께서 "여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가을이 왔을 때 팍 떨어진 심박수로 보답을 받음" 이라고 쓴 글을 봤고, 아, 정말 동기부여 최고. 안 그래도 아침에 달리기 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더울 때 달리기 꾸준히 하면, 선선해지면, 더 잘 달릴 수 있게 되겠지. 이번 주는 욕심내지 말고, 여름 달리기 적응 주간으로 하기로 했는데, '가을이 왔을 때 팍 떨어진 심박수' 라니, 정말 설렌다.
며칠 하다보니 루틴도 잡혔다. 4시쯤 일어나서 하루 계획 세우고, 책 좀 보고, 냥이들 밥 챙기고, 환기하고, 커피 반 잔 마시고 (한 잔 다 마시면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서 안 됨) 5시반부터 달리기 나갈 준비하고, 쓰레기나 재활용 챙겨서 나가서 버리고, 달리기 시작하는 시간이 5시 45분. 달리기 하고 들어오면 7시. 바로 씻다가 쇼크로 죽을까봐 (괴담인지도 모르겠지만) 땀 말리고, 냉장고에 넣어둔 남은 커피 반 마시면서 달리기 기록을 기록한다.
샤워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숲냥이들 밥 주고, 청소기 돌리고, 일 준비 좀 하다보면 11시 된다. 요즘 방학이라 11시부터 4시까지 리딩. 4시 끝나고 나서부터는 시간 잘 못 쓰고 있고, 저녁 먹고, 늘어져 있고, 책 좀 보다 일찍 자버렸다. 잠은 완전 푹잠 자고 있다. 11시 전에도 책 좀 더 읽고 싶고, 4시 이후에는 에너지 많이 소진된 상태니 무리하지는 않더라도 뭐라도 해야 하는데, 요 며칠은 저녁 먹고, 저녁잠 자고, 깨 있다가 또 자버려..
이제 루틴도 좀 잡힌 것 같아서 오늘부터는 좀 잘 보내봐야겠다. 먹고 그만 누워..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스모 선수가 될거야?
작년 이맘때의 나에게 너는 내년 여름에 29도 90퍼 습도에 새벽에 일어나서 한시간씩 달리게 된다고 한다면, 웃기지도 않았을 것 같다. 생활 걸음 하루 200걸음이던 나.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5월에 슬로우러닝 시작하고, 130대 심박 맞추면서 9분대였던 페이스가 12분 페이스가 되었는데, 한 달여만에 10분 페이스 들어왔고, 더워지면서도 아직 10분 페이스 유지하고 있다. 트렉 가는 길과 트렉 옆에도! 치자와 미선나무가 많아서 짙은 꽃향기 속으로 달려나가는 것 같고, 장마도 아닌데 도로로 나온 지렁이들 구조도 하고, 하늘이 너무 파랗고 (그만 파래..) 초록은 선명도 높인 것처럼 명료한 초록이다.
책 읽는게 일이고, 취미이고, 공부인 사람이 달리기 하면 너무 좋은 것 같다. 머리에도 눈에도
1월달부터 슬슬 달리기 시작해서 본격 달리기 시작한건 3월인데, 아직까지 (당연히도) 계속 새롭다. 체력도 좀 쌓이는 것 같고. 체중은 그대로다가 요즘 땀 많이 흘려서 좀 줄긴 하는 것 같아서 물 많이 마시려고.
올 여름은 열심히 달리면서 '여름 달리기'의 아름다움을 만끽해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