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추가 2천원 마일리지를 채우고자, 장바구니를 5만원에 맞추어 꾸역꾸역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5만원에 가까울수록 희열은 커진다. 5만2십원! 이런거! 추가 2천원 마일리지는 5천점 이상 모아야 적립금으로 환전하여, 다음 구매시 쓸 수 있으므로, 어서 빨리 나머지 모지라는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한 떡밥밖에 안 되는 것을.. 그때도 알고, 지금도 알지만, 여전히 낚이는 나는 헛똑똑이 구매자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책 사는 주기는 짧아졌고, 주문권수는 두세권을 넘지 않는다. 역시 (주기가 짧아졌다는 점에서) 미련한 소비자인건 변함없지만, ( 일주일동안 책을 세번 사고, 5만원을 넘긴다면, 왜 한번에 5만원어치 사고, 2천원 추가마일리지를 받지 않는단 말인가.) 정말 사고 싶고, 정말 당장 읽고 싶고, 정말 갖고 싶은 (이쯤되면, 그냥 다 사자는거죠?) 책들을 사게 된다는 점에서 더 낫다. ...나은가?  그냥, 돈이 없어서, 적립금 쌓이는대로 보태서 지르다보니, 이렇게 된것일지도.
 

무튼, 돈이 있건 없건, 사야할 책이 있건 없건, 5만원을 채우건 안 채우건간에 마지막 순간에 보관함에서 빠지는 책들이 있다.
꼭 빠지는 놈들이 빠진다.

첫째는 '오늘 18시 이후에 배송됩니다' 라는 '인터넷서점당일배송신세계' 캐치프레이즈에 위반되는 책들. 둘째는 바로 '책값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가는 책들이다.  첫번째 경우도 하염없이 보관함과 장바구니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나의 책방으로 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지만, 두번째의 경우는 좀 더 절실하다. 이 절실한게, 이 세상에서 나만 상관하는거라서 더 절실하고, 미련하다.  

예전, 내가 사는 책값의 마지노선은 4만5천원이었다.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 .. 정가 5만5천원의 책이다.
 이건 정말 럭셔리한 책이고, 움베르토 에코이고, 좋아하는 주제인, 그림이 잔뜩인 꼭꼭꼭 사고 싶은 책이다. <미의 역사> 이후, 3년여만에 <추의 역사>가 나왔다.
<미의 역사>를 산 건 이미 꽤 오래전이라(2005) 당시에 내가 어떤 종류의 책값 마지노선을 가지고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책값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이 구축되기 시작한건 그로부터 3년후 <추의 역사>가 나오면서부터이다.
당시에도, 나의 책값은 한 서점에서만 3개월 7자리 금액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로 대책 없었지만, 그래도 한 권에 5만원이 넘는 책을 살 수는 없어!라는 어이없는, 그러나 어이없다고할 수만은 없는 나름의 근거 쥐뿔도 없는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근거 쥐뿔도 없는' 5만원 마지노선때문에, 책을 뚫어져라 보고, 째리보고, 마구 사랑했다, 마구 체념했다를 반복하며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나를 보고, 불쌍히 여기신 친구님께서 이 책과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은 날>을 사주셨다.  

하하 ^^  뛸듯이 기뻤던 나.  

책값이 많이 오르고, 사고 싶은 더 비싼 책도 많이 나오는 요즘 나의 책값 심리적 마지노선은 조금 달라졌다.  
더... 내려갔다.

현재는 1만7천원! 정도가 나의 책값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근데, 이 마지노선은 사실, 마지노선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게,
5만원짜리 책은 퍽퍽 사도, 책을 5만원어치는 퍽퍽사도, 1만7천원 왔다갔다 하는 책을 사는건 몹시 고민이 된다는거다.  

 근래 나에게로 온 5만원 넘는 책들이다.
 무척 만족스럽고, 오래오래 두고 보고, 레퍼런스로도 간직하고, 
 책도 예쁘고, 볼거리도 많은 책이라 별 고민도 후회도 없는 책들  

 

이 책도 좀 더 리즈너블한 가격이었으면, 샀을테고. (아마존 가격이 30불인데, 10만원 넘는 번역본이라니, 
일단 국내에선 살리가 없다.

아, 여기서 책값 심리적 마지노선은 외서와는 상관없다. 달러나 파운드나 유로나 엔이 붙으면, 나의 책값심리적마지노선은 하늘나라로...   

이런 비싼 책들은 척척 결제하는 반면,

'1만7천원' 정도의 책값으로 보관함과 장바구니 사이를 매일같이 조깅하고 있는 책들 
 
  

 

 

 

 

 

 

 

 

 

 

 

 

 

 

 

<로마제국쇠망사>같은 일단 사기 시작한 고전이 아닌 이상, 위의 책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조깅신세다.

위의 1만7천원 마지노선에 걸려 있던 책들 중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와 같은 경우는 신간 나오자마자
보관함에 들어가 내내 조깅하다가, 3년만인 2008년에야 구매하면서 무한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 중간에 내가 책을 안 샀나? 덜 샀나? ..그럴리가.  

아마, 위와 같은 1만7천원이라는 애매한 마지노선을 가지게 된 것은 위의 책들이 믿을만한 사람들에 의해 검증되고, 나 또한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실물로 어느 정도 검증을 거친 책이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사야겠다', '사야지' , '사고 싶다' 는 마음은 잔뜩이지만, 일단 책이란 끝까지 찬찬히 읽어보지 않으면 모르는거고,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별로일 수도 있는 손톱끝만한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원짜리 책은 실패해도 괜찮은 가격이다. 4-5만원 넘어가는 책이라면, 비쥬얼에 신경쓴 책인만큼,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거면 글이 개판이 아니라는 것 정도만 알아도 실패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지금 내게 1만7천원정도의 책을 사서 오래오래 읽었을때, 그 책이 아주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이라는 물음표는

장바구니에서 결제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고, 다시 보관함으로 돌아가게 하는 심리적마지노문장부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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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9-11-1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한번 생각해볼 만한 얘기네요^^ 저는 한 20,000원 정도인 듯.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는 보관함에 담겨서 계속 가고 있습니당..ㅜㅜ 사고는 싶은데 말이죠..

조선인 2009-11-1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3만5천원 정도가 아무래도 마지노선인 듯.

카스피 2009-11-1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권당 만원정도가 마지노선인듯...

하이드 2009-11-12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피님은 부지런히 헌책방을 다니시니깐 마지노선이 낮으시군요 ^^

전 예전엔 4만원대였던 것이, 요즘은 2만원대로 내려왔다는게 책을 덜 사기 시작한 '좋은' 징조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ㅎ

미키루크 2009-11-1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의 역사>는 샀고, <추의 역사>는 아직 못 샀고... 아무래도 아름다운 건 돈이 안 아까운데 못난 건 돈이 아깝게 느껴지나봐요. 특별판도 해당이 된다면 민음사 특별판은 몇 달 전에 산 적이 있고... 열린책들 대표작가 세 사람 전집 조금씩 계속 사고 있고... 다들 책 1권의 가격마지노선 얘기하는데 제가 헛소리만 늘어놓은 것 같네요. 로마인이야기 양장본이 제게는 제일 고민스러운 거 같네요. 책이 일반판으로 다 있는데 양장본이 필요한지 말입니다. 얼마 전에 반디 갔을 때 한 번 찾아봤어야 되는데. 혹시 양장본 좋아요? 시오노나나미 책은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좋아합니다만.

Kitty 2009-11-12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진진한 페이퍼네요. 저도 이만원이 마지노인거 같아요.
그것도 도판이 많거나 특별히 관심있는 분야일 때 얘기고 일반 책은 한 만오천원 정도인 듯.
만화는 3500이 마지노선이었는데 요즘에는 3500짜리 만화책이 없더군요 ㅡㅡ;;; 결국 중고샵 뒤적뒤적

marine 2009-11-13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부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니까 책값은 크게 신경을 안 쓰지만, 전시회 관람 후에 구입하는 도록은 30,000 원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도슨트 설명 듣고, 오디오 가이드로 또 듣고, 혼자 다시 감상하고 마지막으로 도록까지 읽어야 비로소 제대로 관람한 것 같아 도록은 거의 항상 사거든요.

saint236 2009-11-1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는 보관함에 담겨서 고이 간직 중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지름신이 강림하면, 혹은 어디서 눈먼돈이 생기면 보관함을 한번에 털지요. 작년 말에 보너스가 생기는 바람에 한번에 털었는데 20만원이 넘었네요. 거의 30만원에 육박...물론 아내에게 ㄷㄷㄷ. 대항해 시대는 강추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1-1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면서 마지노선이 올라가려는 중입니다 ㅎ

무량수 2009-11-13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저는 권당 마지노선이 아니라 한달 구입금에 마지노선을 두는 편이랍니다. ㅡㅡa 아무리 그래도 가끔 그 마지노선을 두배 세배로 넘어서는 책을 사고 다음 달에는 구입하지 말아야지 라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결국 다음달에 또 제 장바구니에는 책이 한가득 ㅜㅜ
 

 북스피어에서, 멋진 표지로 나와주었네요. '스러질때까지', '번제', '구적초- 비둘기피리꽃' 이 있는 중단편집입니다.  

한 자루의 장전된 총으로 살아가는 아오키 준코, 유품으로 남은 잃어버린 과거를 더듬어 가는 아소 도모코. 초능력을 지닌 세 명의 여성을 둘러싼 세 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이 중 '번제'는
<크로스 파이어>의 원형이 된 작품이다.

알라딘 책소개中

라고 합니다. <크로스 파이어>는 좋았던 점과 싫었던 점이 분명했던 작품이라, 원형이 된 이 작품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최근 미미여사 책중 대박이 없었지만, 그래도 늘 나오면 '구매'하게 됩니다.  

미미여사 이야기 나온김에 그간 읽은 미미여사 책을 좀 정리해볼까 하는데요 


 

 

 

요렇게는 '초능력물' <마술은 속삭인다>는 최면술이니 초능력은 아니지만, 뭐, 제 느낌은 그거나, 그거나.라서.
<크로스 파이어>는 영어번역본으로 읽을때랑 우리말 번역본으로 읽을때랑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고, 다른 작품들에 비해 굉장히 과감한데, 뭐랄까, 미미여사답지 않게 이야기하다 만 느낌이 들었던 책입니다. 미성년법의 문제라던가( 일본에서는 추리작가의 소재로 '애용'되는), 인간이 인간을 벌할 수 있는가? 라던가, 법을 초월한 거대조직, 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책이에요. <마술은 속삭인다>와 <용은 잠들다>같은 초능력물이 그닥 제 취향은 아니였던것에 비하면, <크로스 파이어>는 범죄와 단죄에 초점을 맞춘 수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회파소설'
<이유>를 읽고, 미미여사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이유>와 <화차>입니다.
<이유>는 '부동산 사기' 를 소재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는 책이에요.
미미여사의 장점인 사건의 모든 관계자 관찰, 묘사하기.는 범죄소설을 범죄소설에 그치게 하지 않고, 사회파 소설, 인간에 대한 소설로 만들지요.  <모방범>도 역시. <모방범> 뒤에 나온 <낙원>은 '초능력물'에 넣어도 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모방범>의 후속편이다보니.. <모방범>이 워낙 좋았어서, 기대 하면서, 동시에 기대 안 했는데, <낙원> 역시 좋은 작품이지요.
<화차>에 나오는 그녀는 미미여사의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중 가장 쓸쓸하고 안타까운 주인공중 하나에요. 현대의 '신용의 덫'에 대해 다루지만, 그게 신용이 되었던 뭐가 되었던, 기형적으로 발생하는 사회문제에 짜부러지는 인간, 개인을 다루는 점이 좋았어요.   

 

 

 

 
'일상미스터리'류.
사실 이런 소소한 미스터리는 많으니깐, 딱히 미야베미유키 스러운 느낌은 아니에요.
<쓸쓸한 사냥꾼>은 헌책방 하는 할아버지와 건방진(?) 착한 손주가 동네에 일어나는 문제들 해결.
<누군가><이름없는 독>은 스기무라 시리즈. 소소한 탐정이 나와 사건 해결하는 이야기. 출판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셀러리맨 탐정이긴 한데, 천사같은 와이프는 예쁘고, 천사같으며, 몸이 약한 회장의 첩의 딸...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프로필을 가지고있기도... <스텝파더스텝>은 '프로'도둑넘과 쌍둥이 형제의 코믹한 이야기. 재미있죠.  

 

 

 

 

미야베 미유키 시대물

이중에서는 <외딴집>을 좋아해요. <외딴집>, <이유>, <화차>, <모방범> 이렇게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
<외딴집>을 빼고는 뭐 그닥.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괴이> 같은 이야기(요괴)는 개인적으로 좋아라 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라서 좋아하는건 아니고요. <흔들리는 바위>는 많이 실망. <메롱>은 나쁘지 않았어요. 음.. 좋았던 편이었던것 같기도..(이런 애매한;;) <외딴집>은 제가 시대물(에도 어디메)을 보는 시대관(?)을 바꾸어 주었던 책이에요. 약간 모지란 '아호(바보)'라고 불리우는 소녀가 주인공인데, 그 시대의 '죽음'의 의미. 뭐 이런걸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던. <모방범>이 현대물에서 대작이라면, <외딴집>은 시대물에서 대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  

..요정도가 제가 좋아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이네요.  

어제 책샀는데, 오늘 또 사야 할까요? 에휴- 하루만 빨리 나오지ㅡㅜ
저는 이만 <구적초> 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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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11-11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 미유키 작가도 작품도 몰랐는데 마노아님이 선물해 주신 <모방범>을 보고 알았어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에서 인기있는 작가라고 들었어요.
일본 작가는 <모방범>이 처음이에요.^^

2009-11-11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9-11-11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ckone님, ^^ 제일 괜츈한 두권을 먼저 읽으셨군요. 뭐, 제 개인적 취향이니깐요. 못들은걸로 하고, 재미나게 읽어보세요.

후애님, '모방범' 처음 시작하기엔, 만만치 않을텐데 말입니다. 좋은 작품인건 분명하니,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

톨트 2009-11-1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여사의 이름을 보고 대뜸 들어왔습니다^^ 제가 읽은 건 모조리 사회파 소설이군요. 초능력물이나 요괴물이 궁금하긴 합니다. 미미여사와 기리노 나쓰오는 참 비교되는 인물이지요. 둘다 사회파라고 할 수 있지만... 리뷰 고맙습니다^^

하이드 2009-11-1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초능력물/요괴물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미미여사는 역시 사회파. 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 <외딴집>은 시대물이면서, 그 시대의 사회파. 같은 느낌도 나요.

기리노 나쓰오는 ... 참 숭악한 여자주인공들을 잘 만들어내지요;; <다크>와 <아웃> 은 좋았는데, 나머지는 읽기 좀 끔찍했달까..

치히로 2010-01-3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좌악~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신게 감사해요^^
머리에 쏙 들어오네요. <모방범>을 제일 처음 읽고 너무나 흥분해서 미미여사작품 모조리 다 읽어야지 했었는데
<용은 잠들다>와 <스텝파더스텝>읽고 실망을 좀 했었거든요.. 그래서 모조리 다 읽기가 망설여지더라구요.
그래서 뭘 읽어볼까 고민됐었는데,, <외딴집> 꼭 읽어봐야겠네요.
전 개인적으로 첫 페이지 읽어보고 느낌오면 읽어보는 편인데 <모방범>과 <화차>가 첫 페이지 몇 줄 읽으니,, 이거구나.. 싶더니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화차>읽고 경기 일으킬뻔 했어요. 너무 놀라고, 너무 몰입해서^^
ㅋㅋ

하이드 2009-12-1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가봐요. ^^ 개인적으로 미미여사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가 사회파인 것 같아서 좋아해요.
 

나의 아홉살은 책읽는 아홉살이었다. 독서는 나에게 지금처럼 버릇이 아니라, 무언가 절실했었고, 지금처럼 글자들을 훑어나가고, 책에 대한 욕구가 '소유'를 정점으로 내려오는 것에 비해, '책'은 그 자체로 '욕구덩어리'였고, 어린나이의 치유할 수 없는 중독이었다. 집에 있던 중고등학생용 전집과 어른용 세로 글자 전집까지 뭔소린지도 모르고, 읽어나갔지만, 지금 어른이 된 내가 나의 아홉살에게 이런 책을 선물했다면, 나는 지금의 문과형 인간보다, 관찰형 아웃사이더 독서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의 나보다는 '아홉살의 나'에게 이 책들을 선물하고 싶다.  

 레이프 라슨의 데뷔작 <스피벳> 워낙에 데뷔작덕후이긴 하지만, 이런 멋진 데뷔작을 읽게 되면, 누구에게나 '첫'작품은 필수불가결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 사람은 책 안쓰고 이때까지 뭐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R은 이 책을 아홉살에 읽지 못한 것을 억울해하고, 주변의 아홉살에게 모두 쥐어주고 싶다고 하였지만,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열두살이다. .. 이러나 저러나 아이의 나이인건 맞지만. 

열두살의 스피벳에게는 카우보이 아버지와 과학자 엄마, 실수로 죽은 동생, 그리고 누나가 있다.
아무리해도 아버지와 가까워지지는 못하지만, 엄마의 과학적 탐구정신만은 그대로 빼다 닮았다. 
주변의 모든 것을 '도해화'하는 144cm 33kg 의 그가 나이를 속이고 몰래 기고한 도해들로 인해 스미소니안 박물관의 저명한 베어드상 수상자로 지명되며, 난생처음 농장을 떠나 '천국이 있다면 '스미소니안 박물관'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스미소니안 박물관'으로 가게 된다. 이 아이같지 않은 아이의 용기와 아직까지 '신기하고' '그릴 것 투성이인' 경이로운 세상.을 아홉살의 나에게 읽어줬다면, 아마, 나는 책을 덮고, 좀 더 밖으로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줄거리는 로드무비에 성장소설, 모험소설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니, 그게 맞지만, 이 아이의 정신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관찰과보다는 상상과에 가까운 나는 '관찰'과 '도해' 라는 '과학'이 지금까지도 몹시 생소하다. 아니, 어쩌면 그저 때를 놓친것뿐일지도. 스피벳의 모험이 시작되는 장면이자, 아버지와의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은 아이가 몰래 기차를 타고, 가족을 떠나게 될때의 새벽이다. 그 부분과 그 앞뒤로, 아버지와의 갈등의 본질을 보여주는데, 말도안되게 설득력 있는 장면이다. 그 섬세함이 작품의 끝에서는 좀 아쉬워지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작품인 건 분명. 

사토우치 아이의 <모험도감> 부제, '캠핑과 야외생활의 모든 것'

스피벳이 지금 여기 있으면, 이 책을 필수로 챙겨갔을지도 모르겠다. 캠핑북이라고 하면, '캠핑'이라는 단어가 왠지 먼나라 이야기인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적 꽤 캠핑을 다녔다. 요즘 어린이들도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남동생이 태어났을때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캠핑을 가는 일은 없어졌지만.  가족끼리, 성당에서, 학교에서, 걸스카웃에서, 제법같이 야외에서, 집 밖에서 잘 일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캠핑북도 맞긴 맞는데, '서바이벌북'으로 읽어도 재미날 것 같다. 
 그냥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정보 모음이겠거니, 했는데, 훌훌 넘기면 넘길수록 재미난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그것도 만화로다가!) 만화와 글이 적절한 비율로 나와 있고, 편집과 기획도 훌륭하다. 

'캠핑에서 해야 할 일들을 ‘떠나기 전에’, ‘걷는다’, ‘먹는다’, ‘잔다’, ‘만들며 논다’, ‘동식물 만난다’, ‘위험에 대처한다’ 의 7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알아야 할 사항을 다양한 주제로 더 세분화 해 소개' 하고 있는데, 예컨데, '걷는다' 에서는 신발 종류와 밑창과 알맞은 신발, 신발끈 매는 방법의 세세한 그림 소개(우와!), 양말의 종류와 적절한 양말 선택, 물집 예방, 물집이 생겼을때 등등 '걷는 법'에서는 신발바닥 그림에 지면에 닿는 부분 표시 각각의 상황에 (출렁다리 건널때, 통나무 다리 건널때, 얕은 강 건널때 등) 맞는 올바른 걸음걸이와 팁이 나와 있다.  

어디라도 당장 짐싸서 집나갈것 같은 부작용을 감수한다면, 정말 최고의 책이 아닌가 싶다.  

 로버트 헉슬리 <위대한 박물학자>
이건 사실, 지금의 나에게도 무척 유용한 책인데, 어릴때부터 읽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40여명의 박물학자(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박물학자'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에 대한 이야기를 훌륭한! 멋진! 최고의! 도판들과 함께 짤막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낯익은 이름들도 있지만, 처음 보는 이름들이 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읽고 지나간 생소했던 이름들이
이 이후에 읽는 책들에서 언급되면, 예전에는 그냥 스르륵 넘어갔지만, 지금은 '아, 이 사람!' 하며 급 반갑다.

스피벳이 무척 좋아했을 것 같은 이 책은 커피테이블북으로 가장 눈에 잘 띄는, 손 닿는 곳에 놓기에도 훌륭한 표지와 만듦새, 그걸 아무때나 아무페이지나 넘겨 보아도 적절, 아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 불문, 지금 우리가 누리는, 수업시간에 달달 외우고 넘어가는 많은 것들이 찾아지는 그 순간, 노력, 희열을 접할 수 있고, 그들(박물학자들)의 집념을 위대하다. 느낄 수 있다. 뭐랄까, 요즘 세상에 안 어울리는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책'이다.  

책을 엮은 로버트 헉슬리는 런던 자연사 박물관 식물부의 실장이다. 스피벳이 만났다면 아주 좋아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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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9-11-10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험도감 예~~전에 그러니까 한 10년쯤 전에 나왔던 책 아닌가요?
어째 집에 있는 책 같은 ㅎㅎ

하이드 2009-11-1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 그런가요? 그림이 좀 옛스럽긴 하다는 ^^

카스피 2009-11-10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모험 도감은 이매지님 말씀처럼 꽤 오래전에 나왔어요.헌책방에서도 가끔씩 보인답니다.

토토랑 2009-11-1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펌프에 간만에 책주문..

하이드 2009-11-1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피님/ 그렇군요, 근데, 이번에 나온 책도 오프에 다 가져다 놓은건 아닌지, (잠실)교보에는 없더라구요.

토토랑님/ ^^ 후회안하실 꺼에요-

bookJourney 2009-11-1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추천 보고, 스피벳이랑 모험도감을 냉큼 주문했어요. 오늘 밤 늦게나 배송될 것 같은데, 너무 기다려져요~~ ^^

미키루크 2009-11-1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피벳은 사놓고 못 읽었고, 모험도감은 보관함에 있는데. 사고 싶네요. 독전갈 나오는 책도... 저도 오늘 5만원씩 여러 번의 주문장 제출을 한 상황이라서 며칠만 참았다가 알라딘에 들어와야할 것 같아요. 하이드책방도... 여기만 들어오면 책 몇 권이 보관함으로 들어가버리니...
 
사이더 하우스 2
존 어빙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천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존 어빙이라는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주.
인물, 배경, 이야기가 끊임없이 솟아나는듯하다. 작품이 긴 경우, 읽으면서 서서히 튠을 맞추어 가는데, 존 어빙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첫페이지부터 홀랑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두 장소는 닥터 라치의 세인트 클라우드 고아원과 올리브의 사과농장이다.
나에게는 닥터 라치가 호머 웰즈 못지 않은 주인공이고, 이 이야기는 고아 호머 웰즈의 이야기인데, 제목은 '사이더 하우스Cider House Rules' 직역하면, 사과 농장 규칙. 이다.

무튼,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던 시절, 시골 꼴짝의 으스스한 고아원. 닥터 라치가 '신'으로 군림하는 그 곳의 이름은 '세인트 클라우드' . 신으로 군림한다고 해서, 독선적인 꼬장꼬장한 의사를 상상하지는 마시라. '자신의 규칙'으로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한 임산부에 대한 후회로, 고아와 임신부들을 위해 법을 어기면서까지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만의 엄격하고, 공평한 규칙으로 고아원을 운영하는 에테르 중독자일 뿐이다.  

세인트 클라우드 고아원을 찾는 여자들은 두 종류이다. 고아를 낳고 사라지거나, 아이를 지우고 사라지거나. 
황량한 기차역에 내려 입소문으로 들었던 '주님의 일'을 하는 닥터 아치를 찾아간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그들에게의 옵션이 무리하게 지우다가 죽거나 낳아서 버리거나의 두가지 밖에 없을때, 닥터 아치는 주님인듯.  

메이드인 세인트 클라우드 고아 1호 호머 웰즈는 날때부터 '쓸모 있는' 고아가 되고 싶어 하는 똑똑한 고아이다.
닥터 라치를 도우며 왠만한 의사 뺨치는 의술을 가지게 된다. '낙태'에는 찬성하지만, 자신은 낙태를 하지 않는다며, 세인트 클라우드를, 닥터 아치를 배신하는 부분인데, 세상살이의 규칙, 아니 고아의 규칙에 충실하고, 선인처럼 굴지만, 마지막에 세인트 클라우드의 폭군, 야수, 무서운 멜로니에 의해 그 껍데기가 벗겨질 때 왠지모를 후련감을 느끼게 되는건, 그의 신념이 결국 위선이라고 생각되기 때문.   

호머 웰즈가 사과나무 농장까지 신분상승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도 바로 사과나무 농장집 며느리의 낙태였던것을.
고아원 이야기면서, 고전적인'두남자 한여자' 이야기도 있다.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 저리가라 하는 무지막지한 멜로니도 나온다. 미저리와 다른 점은 읽는 내내 무서웠던 멜로니를 마지막에는 심정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     

어쩌면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할까. 생각이 드는 존 어빙의 <사이더 하우스>.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의 소설최대의 불행한 장면 같은것도 없고, 천페이지 넘는 장편이지만, 몰두해서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책으로 가볍게 추천할 수 있다. 주인공인 호머 웰즈보다 닥터 라치에게 더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건 나뿐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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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루크 2009-11-1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있는데 재미있나 보군요.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왜 이리 잘만 가는지... 틈만 나면 책 보고 자기 전에도 꼭 보고 어떨 땐 잠도 줄여가면서 보는데.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 보려면... 부지런히 돈 벌어 수익용 부동산에 투자 많이 해서 나중에 일은 (취미로, 대인관계상) 조금만 하고 (적지 않은^^) 임대료로 먹고 살고 싶네요.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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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견딜 수 있어. 설령 신뢰가 깨져도 말이야. 솔직하게 말만 한다면, 그때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파트너가 되겠지만, 그래도 파트너로 남는 건 가능하단 말이야. 하지만 거짓말이라니....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훅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마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 거야. 거짓말이 섹스도 안 하는 가여운 짝의 감정을 고려해주는 친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거짓말이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얼간이를 향한 관용의 행동이라고 생각할거야.-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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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1-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건 그냥 이거야.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빌어먹을 거짓말이란 말이야. 아, 이런 짓을 계속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런 일은 다 너무 잘 알려진 거잖아."

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