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ga of Gunnlaug Serpent-Tongue (Paperback)
Anon, Anon / Penguin Classics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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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리틀 블랙 클래식을 한 권씩 생각날때마다 읽고 있다. 이 시리즈의 좋고 힘겨운 점은 고전 모음이라는건데, 

보통 많이 읽는 근대 고전 정도가 아닌, 중세, 고대의 고전이라는 것이다. 03. The Saga of Gunnlaug Serpent-tongue 는 아이슬란드 사가(이야기)로 13세기 후반 아이슬란드에서 쓰여졌고, 10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노르딕,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접하기 쉽지 않고 낯설다. 일단 이름과 장소의 고유명사를 소리 내어 읽기도 힘들다. 50페이지 정도의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래도 초반을 넘기고 나면 잘 읽힌다. 


낯익은 이야기이고, 낯익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서구 문학의 원류인 고대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지금 읽는 이야기들의 상류를 찾아가서 그리 다르지 않지만, 완전히 같지도 않은 장소를 탐험하고, 지금의 문학들과 연결지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주인공운 군라우그(Gunnlaug) 의 성격에 대해서는 그의 닉네임인 Serpent-tongue 을 보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아이슬란드에서는 시(poet, 아이슬란드의 영웅시 drapa) 가 칼과 같은 무기처럼 쓰였다. 이런 이야기들이 굉장히 흥미롭다. 전사들은 칼로도 대결하지만, 시로도 대결한다. Serpent-tongue은 뱀의 혀라는 뜻인데, 처음 봤을 때는 부정적 의미만 떠올랐다. Christinity, 교회 문화나 모던 판타지에서 뱀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깨달았다. 북유럽에서는 조금 더 복잡한 의미로 쓰인다. 아니, 북유럽 뿐만 아니라 인도, 동남아에서도 뱀의 신이 현명함을 뜻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말을 잘하는데, 이건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말이 무기로 쓰이던 시대이니깐. 


군라우그는 헬가라는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고, 청혼하지만, 외국으로 나가서 경험을 쌓고 싶어 한다. 3년의 기한을 두고 결혼을 약속하고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왕들을 만나 시를 바치고, 선물을 받고, 왕들을 위한 전투에 참여하느라 약속된 기한을 지키지 못한다. 


명예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시기여서 결혼하겠다고 자신을 잡는 왕과 귀족을 떨치고 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하르판(Hrafn) 이 헬가와 결혼하게 된다. 돌아온 군라우그는 하르판과 결투를 하게 되고, 이 결투는 비극적 결말을 가져온다. 


마지막에 헬가가 군라우그에게 선물 받은 망토를 꺼내 바라보며 슬픔을 삼키는 장면에서 이 이야기의 시작인 소스타인(Thorstein, 헬가의 아버지) 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군라우그와 하르판의 사랑보다는 명예를 건 다툼으로 인한 비극, 그리고, 헬가의 마음과는 상관 없이 아버지와 남자들에 의해 화병처럼 오가는 헬가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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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6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슬란드 사가는 우리가 흔히 북유럽 신화로 알고 있는 에다문학의 한 부분(여러 노르만 종족의 신화들 중)인데 아마도 국내에는 다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역시나 영어를 잘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어 넘 부럽습니다^^

하이드 2025-05-06 13:37   좋아요 0 | URL
에다문학이라고 하는군요! 이 기회에 북유럽 신화에 대해서도 관심 가지고 읽어봐야겠습니다. 군라우그 사가는 아이슬란드 사가 중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사진으로 보니 덜 티나는데, 위의 책들 중 가짜책은? 


알라딘 진짜 한 두번도 아니고, 이 시리즈 반품하거나 귀찮아서 냅둔게 한 두 번이 아닌데, 개선이 안 된다. 


종이질까지야 모른다쳐도 누가 봐도 허접한 표지 그림과 크기도 다른데, 직원 교육 좀 시켜달라고 내가 고객센터에 이야기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왜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지. 


중국발 가짜책들, 주로 학습에 쓰이는 원서에 많다. 뭐, 원서 중에 팔아서 돈 되는게 있겠냐고. 

이거 판 사람들도 가짜책 새거 팔아서 천원이나 받는지. 그렇게 푼돈 모아서 형편 많이 나아지셨는지. 

그리고, 알라딘은 왜 그걸 못 거르고, 판매까지 해서 바다 건너까지 와서 반품하고 어쩌고 빡치게 하는지 

한 두 번도 아니고. 



그동안 알라딘에서 구매했는데 온 가짜책들. 이 외에도 반품한 것들도 있고. 실제 가짜책 가격 2~4배 가격으로 구매. 


걍 다 갖다 버리고 싶지만, 반품한다. 


인기 가짜책 판매 리스트라도 직원 교육 자료로 만들어드려요? 근데, 그건 알라딘에서 돈 받는 분들이 해야지, 돈 쓰는 제가 해야겠어요? 무슨 위조지폐 구별하는 것도 아니고, 사진 아니라 실물 보면 일곱,여덟살 애들도 다 안다고요(실화)




근데, 이게 끝이 아니야.. 



where is랑 what is는 안 꺼낼게. 


내가 이걸 해야 할까? 가품도 급이 있어서, 즉각 화나는 가품 말고, 긴가민가 가품, 자세히 봐야 보이는 가품 있는 것 같다. 

제가 좀 더 볼게요. 알라딘 중고샵, 후 워즈는 취급하면 안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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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중국이 짝퉁 천국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하다 하다 책도 짝퉁으로 만든다는 사실은 하이드님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네요.아마도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내다 판 이도 설마 짝퉁 책이란 사실을 모르고 판 것 같은데 어쨌거나 중고서점에서 검수를 제대로 못한 알라딘의 책임이 무척 크군요.
우리같은 경우는 그냥 복사본을 제본하는 수준(그래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파는 것은 불가지요)인데 반해서 중국은 책 표지까지 카피해서 파는 수준이네요.한굴 책이야 중국인들이 복사할 일이 없을테니 영어 원서(아동용)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시 검수를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하이드 2025-05-03 12:12   좋아요 0 | URL
저 그동안 산 것들 비교하다가 포기했어요. 보자마자 가품만 환불하려고요. 자세히 보니 가품도 몇 권 찾긴 했는데, 걍 두려고요. 그냥 중고샵에서 산 후 워즈 다 반품할까도 잠깐 생각했다가, 걍 더 이상 시간 안 쓰고, 후 워즈 시리즈는 새 책만 사려고요. 근데, 이거 새 책도 좀 미심쩍은거 있어서 의심병 맥스입니다.
 

지난번에 올렸던 리틀 블랙 클래식 할인은 절판이다. 


오늘 뉴요커 기사 보고 꽂혀서, 그래, 나에게 위로가 되는건 쪼끄만 펭귄 클래식들. 하면서 찾아보다가 


지난번에 금액 맞추기 할 때 살 펭귄 클래식 추천했던 것 중에 펭귄 모던 클래식 박스 세트 50권 할인 발견. 


61% 할인해서 50권 박스 세트가 39,600원. 



 펭귄 50주년에 나왔던 것 같다. 60주년은 뭐 나왔지? 











내가 본 기사는 이거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5/05/05/a-hundred-classics-to-get-me-through-a-hundred-days-of-trump


트럼프 100일 시기를 100권의 고전을 읽으며 보내기. 


아, 내가 이런거 윤 계엄 100일을 100권의 고전을 읽으며 보내기.로 했어야 하는데, 참고 하겠다. 그럴 일은 더 안 생겨야 하니, 좋은 일 기다리며 해보겠다. 이 기사에서는 '위로' 를 얻지만, 기다림의 '수행'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기사에 꽂혔지만, 이 기사를 핑계로 펭귄 책들 구경하다 위의 박스 세트 찾았다. '위로'를 받으면 위로가 되지만, '위로'를 구하는 편은 아니라서 펭귄 미니 클래식을 읽어보겠다고 꺼낸건 '위로'를 핑계로 한 책욕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책으로 어떤 시기를 지나는 이야기를 쓴 책들이 많다. 왜 그럴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책 읽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 I read his second Inaugural Address early the next morning in bed, curled, bent to the glow of an iPhone in dark mode, a morning ritual that always feels like sin." 


뉴요커 기사에서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사를 침대에서 아이폰 다크모드로 둠스크롤링 하며 읽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다 침대 머리맡의 펭귄 리틀 블랙 클래식을 집어 든다. 폰만큼 얇고, '다크모드' 이다. 1권은 보카치오의 'Mrs. Rosie and the Priest' 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 100일동안 펭귄 리틀 블랙 클래식을 매일 아침 한 권씩 100일 동안 읽기로 맹세한다. 


"Everyman, I will go with thee, and be thy guide

In thy most need to go by thy side."


Because what you need, in dire times, is wisdom.


내가 매일 리틀 펭귄 클래식을 한 권씩 읽기 위한 핑계로 가장 적합한 것은 산산조각난 집중력 찾고 몰입하는 시간 되찾기 정도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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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3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인폭이 커서 저도 한 세트 구매할려고 했더니 영어 원서인것 같아서 전 패쓰해야 될것 같네요ㅜ.ㅜ

하이드 2025-04-30 23:2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책은 이제 이렇게 할인 못한지 오래죠. ㅜㅜ 아~ 옛날이여~
 

어제 3키로 달리기 하고, 4월 러닝 마일리지 100키로 찍었다. 

달리기 시작하고 첫 100k. 한 달을 꾸준히 달려 100키로를 찍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번 달에는 18번 달렸고, 

3월에는 24회 달렸는데(하루 두 번도 달림) 키로수가 적어서 87키로에 그쳤고, 4월은 트레일 러닝 답사, 트레일 러닝 대회 나간다고 각 10키로 이상씩 뛰어서 (사실 트레일 러닝은 오르막길 걷고, 중간중간 병목에서 쉬느라고 멈추는 시간들이 있다.) 18회 밖에 안 달렸지만 100키로 찍을 수 있었다. 


동생이 지난 주에 스마트워치 사줬는데, 이번 주에는 러닝티랑 러닝벨트, 보강운동용 세라 밴드 챙겨줬다. 러닝티는 지난번 받은 것보다 더 시원한 재질이라 이제 주 4회 나가면 주 4회 다 다른 티 입고 나갈 수 있게 됨 ㅎ 러닝벨트는 안 맞는다고 줬는데, 치마처럼 입고 벗어야 하는거고, 나도 꽉 끼어... 이번 주부터 저탄고지 시작했고, 절식 하고 하라는걸 배고파, 안돼. 지방 많이 먹으라고, 굿굿 하면서 먹었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1키로 쪘더라.. 일요일 8키로, 월요일 3키로, 화요일 휴식일, 수요일 6키로, 목요일 4키로, 금요일 7~8키로, 토요일 휴식일, 일요일 8키로 이렇게 뛸건데, 이번 주 저녁 일 없으니, 7시에 나가서 존2 달리기 30분이라도 해볼까 싶다. 심박 130대로 달리는건 가능은 하겠지. 일단 달리기 85%가 고강도, 13%가 초고강도, 2%가 막 달리기 시작해서 존2 달리기 되다보니.. 이렇게 달려도 무산소 운동만 죽어라 하는셈이다. 근데, 존2 달리기가 지방연소해서 (뱃)살 빠지는 달리기라 존2 달리기, 130 심박 유지하면서 달리면 땀도 안 날듯. 안그래도 9-10분 페이스로 느리게 달리는데, 그거보다 느리게 반족 달리기 하면 될까? 


얼마전에 달리기 하면서 내가 살면서 참 뭘 열심히 해본적이 없는데, 달리기는 좀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무리 안 하고, 엄살 피우면서 살았는데,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히 잘 사는데, 할 수 있는만큼도 안 하잖아. 그러니깐, 할 수 있는 만큼은 하자로 결론 



스트라바가 왠지 중간에 끊기고, 거리 연동이 안 되어서 안 잡히는 날 (2분 17초 0.7km 뛴 날 6키로 뛰었는데..) 도 있고, 대체로 덜 잡힌다. 와이 와이 스마트 워치 정확하게 잡히는걸로 따로 기록중이고, 스트라바 뉴발 포인트는 월 100키로 (만원)까지만 전환해줘서 괜찮다 



동생이 살로몬 트레일 러닝 대회 나가서 받은 티들이다. 티도 예쁘고 재질도 좋아서 지난 트레일러닝 대회때 받은 파타고니아 티랑 살로몬 티만 입는데, 두 개 더 생기니 기쁘군. 


어제는 새벽 달리기 해봤다. 4시쯤 깨서 책 읽고 이것저것 하다가 5시 40분쯤 되니 밝아지길래 달리러 나갔는데, 스브 없이 나갔더니, 오우, 너무 편해. 새벽 달리기의 장점이군. 사실 아침에도, 낮에도 사람이라곤 강아지가 데리고 다니는 사람만 한 둘 보는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데, 슬로조깅은 천천히 달리기라서 어떻게 저떻게 하고 있지만, 근력도 코어도 심폐능력도 바닥이라서 얼른 빨리 근력도 생기고, 코어힘도 생기고, 심폐능력도 올라오길 기다리며 꾸준히 훈련해야지. 


근데, 근력운동은 진짜 너무 재미없고, 싫은 분야라 (몸풀기 필수인데, 몸풀기도 넘 귀찮아) 좀 미루게 되는데, 달리기 더 잘하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식단도, 보강(근력) 운동도, 몸 풀기도 그래도 좀 해봐야지. 해야지. 하자 된다. 


러닝 마일리지 체크하는거 재미있어서, 러닝 마일리지도 체크하고 싶은데, 병렬독서 이만권이라서 그게 잘 안되지만, 

달리기 한시간 하는 끈기로 한시간씩 하면, 박살난 집중력으로 타이머 20분 맞추고도 집중 못하는 독서력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이번달 안에 잃시찾 2권 마저 다 읽고, 해리 포터 고블릿 오브 파이어도 5월까지 읽기로 한거지만, 그러니 더 반 가까이라도 읽어놔야지 싶은데, 글씨도 갑자기 작아지고, 분량도 두 배 되다보니, 빌드업까지 시간도 많이 걸려서 느적느적 읽고 있다. 


리뷰대회 하는 책은 작년 12월 독서모임때 읽었던 책이라서 다시 좀 훑어보고 리뷰 쓸까 생각하는 중에 벌써 내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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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 코펜하겐 삼부작 제1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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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침이면 희망이 있었다.' 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코펜하겐 삼부작 중 1부로 그동안 좋은 이야기만 듣다가 김화진의 소설을 읽다가 이 시리즈가 나오는 것을 보고 구매해 보았다. 전혀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해서 회고록인 것도 뒤늦게 알았고, 읽으면서 엘레나 페란테 생각나네 싶었는데, 책소개에 있을 정도로 다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어린시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둘러쌓여 있다. 나의 어린시절도 비슷했겠지만, 좋지 않은 기억들은 모두 묻어버리고 살아서 내 어린시절에 관해서라면 부분적인 장면들만 떠오르지만, (굳이 떠올리지 않지만) 요즘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그것이 누구나의 어린시절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선생이 어린시절을 온통 휘어잡고 있다. 그것은 보호와 교육이기도 하지만, 학대와 소유이기도 하다. 시인이 되고 싶은 토베에게 여자는 시인이 될 수 없다는 아빠, 기회만 되면 집을 나가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존재인 엄마. 어린시절에 유일한 내 것은 내 마음뿐이다. 시인이 되고 싶은 내게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은 책뿐이다. 어릴적부터 어른 책을 읽고, 어린이 책에 모욕을 느꼈던 어린이가 어린이 책부터 읽었으면 어땠을까. 다섯 살때 고리키의 책을 읽다가 '비탄'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대신에 말이다. 의미 없는 가정이긴 하다. 어린 시절에 무엇을 쏟아붓든 어린 시절에만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있었을테니깐. 그것이 어린이의 것이건, 소화할 수 없지만 들어와 버린 어른의 것이건 말이다. 


"그건 러시아어에서 온 단어야. 고통과 비참함과 슬픔을 뜻하는 말이란다. 고리키는 위대한 시인이었지." 

나는 기쁨에 차서 말했다. "나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곧바로 얼굴을 찡그리더니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여자는 시인이 될 수 없어!" 

상처받고 화가 난 나는 다시 내 안에 틀어박혔고 그러는 동안 어머니와 에드빈은 그 터무니없는 생각을 비웃었다. 


'어린 시절'의 뒷 이야기인 '청춘'과 '의존' 이 궁금하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서 어린 시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나쁜 냄새처럼 몸에 달라붙는다. 당신은 다른 아이들에게서 그것을 감지한다. 각각의 유년기는 특유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냄새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는 때때로 자신에게서 남들보다 나쁜 냄새가 날까 봐 두려워한다."  


어린 시절을 내면에 품고 사는 어른들. 어린 시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어린 시절을 품고 사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굳이 품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재화된 어린 시절이겠지. 과거의 모든 순간의 내가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나를 이룬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특정 순간들의 내가 시간이 흐름에도 뒤로 가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려 앞으로 나서는 순간들이 바로 어린 시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순간들일 것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어린 시절, 체념이나 포기가 아직 들어서기 전인 순수하다는 이유로 날 것의 상처로 가득한 어린 시절,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첫 문장인 '아침이면 희망이 있었다.' 와 짝을 이루는 말을 5챕터에서 찾아두었다. 


"지금은 저녁이고, 나는 언제나처럼 침실의 차가운 창턱에 올라앉아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게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침이면 희망이 있고, 저녁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는 절망과 분노와 좌절과 체념이 있고, 저녁과 아침 사이에는 행복과 희망이 있다. 어린 시절은 그 사이를 매일 오가면서 멀어져 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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