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도서관에 갔고, 동생을 만나 트렉이 있는 운동장에 나가 달리기 자세와 달리기하는 법을 배웠다.
지난 한 달간 내가 한 건 뭐였나 싶을만큼 좋은 배움이었다. 올해 들어 첫 눈이 진눈깨비로, 비로 번갈아 내리는 날이었다.
이런 날 누가 달리기하러 나오나 싶었는데, 우리 뛰는 동안도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들고났다. 그동안 통화로, 톡으로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었건만, 직접 달려보니, 이거구나! 바로 알겠더라고. 그 전에 10 이었으면, 이번에는 80 정도의 깨달음.
실행과 코칭의 힘을 느끼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첫 근육통을 느낄 수 있었다.
동생이 계속 강조한건, 케이던스의 중요성이다. 내가 걷뛰한다고 하니, 걷는 것과 뛰는 것은 다르고, 밸런스만 무너지니, 아주 천천히라도 뛰는 것을 계속 강조했는데, 내가 걷기만 해도 힘들다고, 안된다고, 징징 거리면서, 아니, 나는 걷는 것만으로도 내가 움직인다! 뿌듯하던 사람이었고. 걷는데, 뛰기까지! 였었다.
심박수는 150에서 160을 넘어가지 않게, 힘들면 아주 천천히 뛰라고 하는 말이 잘 안 들어왔는데, 아주 천천히 뛰니깐 심박수가 내려가더라. 대신에 케이던스, 발이 탁탁탁탁, 뛰는 속도로 계속 움직여줘야 함. 힘들어서 아주 천천히 뛰니깐 정말 걷는 속도보다 느리고, 어제 처음으로 혼자 30분 뛰었는데, 보통 걷뛰에서 9분대 페이스 나왔던거에 비해 10분30초 페이스 나왔다.
슬로우조깅으로 다리 근육을 기르는 것이 먼저. 힘들긴 하지만, 1-2분 뛰고 걷다가 갑자기 30분 안 쉬고 뛰어지긴 하더라고. 이건 동생이 옆에서 페이스메이커 해줬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거기도 하고.
그동안 걷뛰할 때에는 심박수가 160-180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니깐, 나는 늘 오버페이스로 달리고, 힘들어서 걷고를 반복했던 것. 근데, 내가 그렇게 달려도 여전히 느려서 오버페이스인지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지금도 해보니깐 이제 머리로는 알겠지만, 실감나지 않는다. 왜그러냐면, 내가 달리기뿐 아니라, 전반적 삶의 모든 분야에서 오버페이스로 달리고, 걷고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뭔가 하려고 했어서 앞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마치 작심삼일을 계속 반복해서 어떻게든 습관 만들기에 성공했던 것처럼 그렇게 어거지로 습관도 만들고, 꾸준히 하는 것도 생기긴 했지만, 오버 페이스로 무리와 소진을 반복하고 있었던거다. 그래서 저녁이면 소진되어서 폭식하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되기도 했고, 쉬는 날이면, 뭘 적당히 못하고, 와악- 하거나, 침대에 고양이들과 같이 늘어져 있거나 그러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 일어나서 또 파팍 파팍 불꽃 튀기다가 바로 또 소진되고.
시간이 많았어서 그나마 가능했던거긴 하다고 생각하지만, 올해는 오버페이스 없이 에너지 분배를 잘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근데, 늘 뭐든 오버페이스였어서 어떻게 오버페이스 안할 수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속마음은 이렇게 설렁설렁 사는데, 이게 오버페이스라니 믿을 수 없다. 속닥이고 있지만, 아마, 오버페이스가 맞을 것이고, 슬로우조깅 모드로 해보면 알겠지. 라고 정리했는데, 오늘 읽어봐야지 책 16권 꺼내놓고.. 이것도 오버페이스겠지?
2025는 어떤 목표를 세울까 이것저것 해보다가, 2025의 테마는 '감사와 정리의 한 해' 로 정했다.
A Year of Gratitude and Clarity
정리는 늘 나의 가장 큰 약점이자 목표였다. 오버페이스든 아니든 지난 몇 년 꾸준히 뭔가 하려고 했고, 잘하게 된 것도 있고, 여전히 못하는 것들도 많다. '정리'는 후자이다. 그래도 할 수 있게 된 것들이 있으니, 그걸 기반 삼아 나와 주변, 시간과 공간등을, 그리고, 말로와의 마지막 시간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2007년 4월부터 열여덟 해를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열여덟 살 고양이 말로가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말로 동생 셋이 있지만, 첫 고양이로 나의 미숙함을 함께 해준 말로는 마지막 시간들마저 순하다. 자다가 깨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말로 잘 있는지 확인한다. 매일의 큰 시간들에 감사하려 한다. 말로가 먹고, 걷고, 화장실 가고, 잘 자고, 나를 쓰다듬어라 냥냥 거리는 모든 시간들. 나는 과거를 흘려보내는 편이고, 고양이들과의 과거 또한 예외가 아니었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말로와의 시간들을 각인하듯 잘 담아두고 싶다. 현재를 잡아,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부둥켜 안고 있는거, 이것도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