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름이기도 하고 뭔가 밀려 있는 책을 읽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그래서 쌓아두기만 했던 미미여사의 책을 몰아서 읽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그 시작은 '낙원'이 출판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읽다보니, 미미 여사의 글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새삼 느낀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그래서 그녀의 글을 좋아할란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182/74/coversum/8991931375_1.jpg)
우리는 모두 쓸쓸한 사냥꾼이다. 돌아갈 집도 없이, 거친 들판에 내던져진 외톨이다.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도 대답하는 것은 바람 소리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그리워한다.
입시 공부 때문에 새해라는 기분이 나지 않을 거라는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굳이 새해 연휴 가운데 하루 정도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먹을 갈아 신년휘호를 써 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숙제를 두고 학부모들 사이에 비난이 들끓었다. 중학교 삼학년인 아이들에게 이 중요한 시기에 입시와는 일 밀리미터도 관계없는 붓글씨를 쓰라니 무슨 소리인가, 하는 비난이었다...
하지만 이 담임선생님이 앳된 여교사가 아니라 내신 성적을 내세워 학생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 또 그런 노하우를 지닌 교사였다면 학생들은 모두 군말 없이 붓을 들었으리라. 말하자면 역학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와씨는 새해 벽두부터 기분이 떨떠름했던 것이다.....
... 미노루는 타고나기를 자신감이 넘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덕분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런 작은 문제에 부딪혀도 별로 흔들리지 않고 성장해 왔다. 이 신년휘호 사건만 해도 부모 모두가 '설날 기분도 나고 좋겠다. 써 보지 그러니'라고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미노루의 어머니, 즉 이와 씨의 며느리는 이렇게 주문했다고 한다.
실용적인 걸로 써 봐
어떤 거?
예를 들면 금연 이라거나
그럼 금주는?
그건 안 돼. 엄마도 마시는 걸
그럼 '술집 출입 금지'는?
그보다는 '술집 아가씨 택시로 태워다 주기 금지'라고 써 봐
그건 길어서 안 돼
미노루는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엄마, 개인 감정이 들어가 있어
당연하지. 엄만 화났는걸
참고로 아버지에게 뭐라고 쓸까 물어보니 '무사정신'이라고 써 보라고 했단다.
이와 씨는 부모가 그런 타입이기에 미노루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의 인생을 초 단위, 분 단위가 아니라 더 길게 보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신년휘호 정도로 시끄럽게 구는 일은 없는 것이다.(15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