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르는 자기 자신을 비행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젠봄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스스로를 일종의 탈것으로 생각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맞아요.˝
이어지는 로젠봄의 글˝고다르의 많은 발언이 그렇듯이 나는 지금도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발언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점은 보다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사실 영화나 텍스트는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운송수단이라는 사실을 말한 것이며 만드는 사람의 경로는 이 운송수단을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의 경로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나는 어떤 운송수단의 제작자인데, 다른 사람들은 이 운송수단을 이용해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역시 멋진 말이다. 여기에서 글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의미심장하고 열려 있고…………. 다들 우리가 만든 운송수단을이용해 다음 장소로 이동하세요. 자기만의 길을 찾아 떠나세요! 여행을 시작하세요!
하지만 나와 K정연은 여전히 답답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까?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가 뭔지, 그 영화를 보는 게 정말로 좋은 일인지・・・・・… 넷플릭스에서 오늘 저녁볼 영화도 못 고르는데! 영화 따윈 보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데 우리는 왜 사서 고생하는 것일까.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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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그들이 어떤 모양을 만드는지, 규모나 배열, 형태 등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들은 단지 군집에 감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패턴을 만들것이다.
어내고 개별일 때보다 더 놀라운 반응과 움직임을 선보이는그러니까 개별 영화가 새라면 시네마는 철새 떼, 개별영화가 벌이라면 시네마는 벌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거기에 대해 말하고 반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화가 지금과 같이 존재하는 것은 영화가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화에 대한 사유는 걸작이나 비천한 영화 개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뛰어난 작가-감독이나 명배우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숫자와 그것들의 연결에서 온다. 루이스 부뉴엘은 "노동자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며 이들의 노하우가 부럽다"고 말하며, 안제이 바이다"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한 편의 영화에서 다른 영화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흘러가는 비밀스러운 연속성 속 무언가가 내게 감동을 준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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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일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시스템의 동적평형 때문이지요.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변화란 어쩌면 이런 것아닐까요.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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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사랑한 아이 윌로딘 책꿈 7
캐서린 애플게이트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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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사랑한 아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뭔가 스포일러를 본 느낌이고 이 책을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어린이 도서이다. 그런데 어째 이 책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니 내 예상대로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궁금해지는 이 이야기를 읽어봐야하지 않을까. 


윌로딘은  늘 괴상한 짐승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소중히 여긴다. 그 중에서도 좋아하는 것은 밤마다 아무 이유없이 미친 수탉처처럼 울고, 피곤한 아기처럼 짜증내고 떼를 쓰고 배고픈 돼지처럼 제멋대로이며 무엇보다도 8월 한여름의 뒷간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스크리처를 좋아한다. 


아빠와 함께 숲을 다니며 스크리처를 좋아했지만 숲속의 커다란 산불로 마을 대부분이 무너져버렸고 윌로딘은 아빠와 엄마, 동생까지 모든 가족을 잃었다. 그런 윌로딘을 메이와 버디 아줌마가 보살펴주고, 산불에서 살아남은 다친 벌새곰 듀쥬까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산불이 난 이후 윌로딘은 한순간에 세상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학교보다는 숲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는데 스크리처가 사라지면서 벌새곰도 사라져가고 있는 것을 알아채게 된다. 

벌새곰을 보기 위해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스크리처가 뿜어내는 고약한 냄새때문에 불평을 하자 마을에서는 스크리처를 없애기 위한 현상금까지 걸며 스크리처 사냥을 하기 시작하게 되어 숲속에서는 더이상 스크리처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버드나무 줄기와 껍질로 벌새곰을 조각해서 판매하며 살아가는 코너는 그런 윌로딘과 숲속에서 마주치게 되고 둘은 친구아닌 친구가 된다. 스크리처를 좋아하는 윌로딘을 위해 코너는 스크리처를 조각해 윌로딘에게 선물을 해 주는데......


현실이 아닌 마법의 셰계 이야기처럼 꾸며지고 있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과하지 않고, 어린이에게 설명하듯이 모든 것을 다 풀어가면서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는 것도 좋았던 이야기이다. 퍼챈스 마을에 살고 있던 스크리처가 다 사라지고난 후 스크리처의 등장이 비현실적인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지만 이것 역시 어쩌면 멸종해가는 지구 생물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책 속 문장 하나하나가 더 의미있게 느껴지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말 많은 생각할꺼리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환경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담겨있는 추천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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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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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질지 못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이런 신파극으로 그 눈높은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겠어? 게다가 탐정 역인 내 존재가 완전히 빛을 잃었는데 말이야"


책을 다 읽었는데 아무 스포일러 없이 이 책에 대해 쓸 말이 없다. 그냥 왠지 독자들이 느끼게 될 마음을 히가시노 게이고가 입막음용으로 등장인물을 통해 저런 말을 툭 던져넣은 것이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신파극'이라는 말에 꽂히고 있다.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라는 제목에서부터 이 소설의 시작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읽었던 명탐정 코난의 도입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뭐, 명탐정 코난에서 스토리 전개가 어떻게 되었었는지 기억에 없으니 이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가 되는 것이 없을뿐이긴 하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실제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극단의 연극 오디션에 합격한 배우들이 연극 연습을 위해서,라는 연출가의 편지를 받고 모여든 산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실제 상황처럼 배우들이 산장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에 대한 현실 반응과 해결로 연극이 이루어질 예정이라며 외부와의 연락이 이루어지는 즉시 오디션 합격취소라는 엄격한 제한 조건까지 있는데, 첫 날의 살인 이후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예상치못한 범행도구에 묻은 피를 발견하고 산장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불안에 휩싸이는데...


다작을 하는 작가들 중에서도 다작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인데 새로 출판되는 신간이라 하더라도 작품 연도를 살펴보지 않으면 가끔 내용이 현실적인 느낌이 아닌데?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 역시 오래 전 작품인데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나이들며 신파로 넘어가신건가,라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신파가 된 것은 나 자신인 것 같고 - 며칠전에도 티에서 에프성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듯 하다 했더니 나이 먹어서 그러는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직후 이 책을 읽으며 단순한 생각으로 작가님도 나이가 드셨지...라는 생각을.

책과는 상관없는 듯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감상이 이 느낌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좋은 이유는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그 추리의 과정에 대한 재미를 넘어서는 인간미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성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더 분명해진다.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정면으로 언급하면서 살인, 폭력, 사기 등의 범죄를 말하지만 결국은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인성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무한애정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으면 또 그런 마음이 들지 누가 알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사건을 이끌어가는지, 그들의 연극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하지만 뭐, 사실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신파는 좀 심한 과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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