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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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트라키아족과 게타이족의 평정심,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자유로운 정신, 『일리아스』에서 레소스 왕의 황금무기와그의 눈처럼 희고 바람처럼 빠른 말들을 휘감았던 빛나는 광채를 증언해준다. 이 평정심은 죽음과 친밀하고, 삶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게만드는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생겨난다. 트라키아인들은 인간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는 탄생을 슬퍼하였고, 인간을악에서 해방시키거나 축복으로 인도하는 죽음을 찬양했다. 게타이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감옥에 가거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자유롭게 죽음을 선택했다.
이런 평정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자연의 숨결에 내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나뭇잎 같다고 느끼며 나뭇잎처럼 자라났다가 떨어지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영원불멸에 대한 믿음 즉 죽음과 더불어 숨겨진 신 잘목시스 옆에서 영원한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걸까? 잠자다가 공격당해 죽은 레소스를 휘감고 있는 황금빛과 흰빛은 밤의 학살이 상처내지 못했던 신념, 그의 적들의 자손인 호메로스가 천년 동안 다시 빛나게 해준 신념의 아우라다. 트라키아 기사는 신념 있는 인물이고 죽음도 그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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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서 잊는 소중함

이거 딱 내 마음.

그리고

내가 걸어 온 길처럼. 또 걸어가고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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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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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배경은 하이두크에게 아름다우면서도 혼란스럽고 야만적인 무질서의 분위기를 주지만, 이것은 정형화된 인습일 뿐이다. ‘발칸의‘라는 말은 모욕적인 어휘에 속하는 형용사다. 예를 들어 야세르 아라파트는 언젠가 레바논과 중동 전체를 발칸화˝ 하고자 한다며 시리아를 비판했다. 거울처럼 깨끗한 사라예보의 길들과 상점가 혹은 소피아의 깨끗한 질서를 보고, 이를 문명의 모델로서 일컬어지는 다른도시들이나 국가들과 비교해본 사람은, ‘발칸의‘라는 말을 찬사의 말로 사용하고자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스칸디나비아의‘라는 말을찬사의 말로 사용하듯이 말이다. 457



발칸,이라고하면 그 동네의 정치,문화,종교 등등을 알지못하면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느곳인지 명확히 기억나지는않지만, 보스니아내전의 잔해가 여전히 살벌한 풍경으로 남겨진 지역을 지나쳤었다. 이십몇년이 지나도록 폭격당한 집들의 풍경이 남아있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는건 어떤 느낌일지.
발칸,이라 했을 때 습관적으로 유럽의 화약고라고 떠올리는데.
발칸의, 라는 말은.
역시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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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04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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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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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세계는 텅 비어 있음, 부족, 부재를 의미하는 휴가 상태에 있고, 여름날 쨍쨍 내리쬐는 강한 빛만이 있다. 보르헤스가 말했듯이 세상은 실재한다. 그런데 세상은 왜 그리 우리의 발을 걸어넘어뜨려야 했을까? 우리가 고작 해봐야 결국에는 뚱딴지 같은 항의정도일 텐데 말이다. 말하자면 선생님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괜히 때때로 무단결석이나 해보는 정도 말이다.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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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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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카 할머니는 삶을 살면서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고 불행에 대해 항의하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죽음 때문에 혼란에 빠지지도 않았다. 비록 할머니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기꺼이 도우려 했고 그것을 힘들다거나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녀의 세상에서 사건들은그저 계속 일어날 뿐이다. 안카 할머니는 내게 자신의 친구가 사는 집을 보여주었다. 친구는 병마에 시달려서 거의 식물인간이 되었고, 어쩌다 두려움과 사랑의 감정이 막연히 들 때만 움직였다. 벨라츠크바에 있을 때 안카 할머니는, 친구 곁을 지키며 밤을 보내거나 힘든줄 모르고 몇 시간이나 친구에게 말을 걸며 친구를 쓰다듬어주고 입밖으로 흘러나온 침을 닦아주었으며, 친구를 발코니로 데려가 지나가는 사람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시끄러운 떼거지를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안카 할머니가 늘 말했듯이 스스로가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그런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냥 그걸로 족할뿐인 삶이다.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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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를 흘러가는것이 아니라 빨리 이 여행을 끝내고싶다는 생각뿐인듯.
별생각없이 글을 읽다가 휴대폰 배터리 충전알림이 뜨니 그냥 읽던 글을 올린다.
마침.
진통제 없이 못자겠다며 나오신 어머니에게 내가 앉아있는 소파의 자리를 넘겨줘야하기도하고.
새해 첫 날,이라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이 더 좋은.
세르비아인 안카 할머니보다 더 역사가 되는 어머니의 삶은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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