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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맑음, 때때로 흐림
마연희 지음 / 처음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트러블이 먹구름처럼 잔뜩이지만, 여행이라 행복하다"라는 문장 하나에 마음이 쏠렸다.
아파서 2017년 늦가을에 떠난 여행이 - 성지순례처럼 떠난 성당신자들과의 단체여행이었지만 아니, 그래서 더 이 문장이 마음을 툭 치고 있는 것 같다.
잘모르는 어르신들과 단체여행을 간 것도 처음이었지만 팀에서 내가 막내라는 것도 참 신기했고, 아무리 성당에서 간 단체여행이라지만 조까지 나눠서 조장을 시키고 시간엄수를 위해 그날 처음 본 조원을 통제하라는 것은 기가막혀 말이 안나왔지만 시키는대로 따라가야했다. 더구나 출발일 아침 공항에 나타난 내게 신부님은 '넌 왜 왔냐?'라는 물음뒤에 같이 가는거였냐며 급 반가워하시며 다른분에게 맡겨뒀던 당신의 전례가방을 내게 맡기셨다. 우리는 매일 미사를 해야하는 일정이었고 그래서 미사준비를 위해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면 가방을 들고 일행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뛰어가야했고 아침에 버스에서 내려 오후에 미사를 할때까지 버스에 타지 않는다면 걸어다니는 내내 내 가방말고 전례가방을 또 들고 다녀야했다. 첫날부터 우리 조원 두명은 어디론가 사라져 모두를 기다리게 했는데 그것이 내 책임인양 다들 내게 찾아오라고만 하고, 또 다른 어르신은 오랜 비행으로 걷지 못하겠다며 휠체어 여행을 예고하였고 실제 이틀동안 휠체어로 다녔는데 굳이 모든 관광지를 따라가야겠다고 해서 택시를 따로 잡고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을 따로 길잡이해야하느라 가이드도 좀 힘들어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가며 설레었던 마음과는 달리 비날씨와 마음이 맞지 않는 여행자들과의 2주간의 시작은 정말 먹구름 잔뜩이었던 기억이 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래도 나름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때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그 멋진 가을풍경들과 기적같은 치유의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성지와 성모님 발현지를 못가봤을 것이다. 그때 함께 하셨던 신부님은 마지막 메주고리예 일정을 무리해서라도 꼭 넣어달라고 한거라며 나 역시 그렇게 가지 않았다면 그곳에 갈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여행은 맑음 때때로 흐림'은 개별 맞춤여행을 진행하는 휴트래블 여행사 대표인 마연희님의 여러 여행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책이다. 땡처리 299,000원짜리 태국 파타야 여행을 급히 예매하고 간 패키지 여행이 파타야에서의 자유로움이 아니라 버스로 이동하며 쇼핑하는 일행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는 건 진짜 여행이 아니라며 이후 방콕과 파타야를 다녀 온 후 직접 기획한 여행일정을 짜는 여행사를 하게 된 것이 벌써 15년이라고 한다.
그 시간동안 경험했던 여러 에피소드를 현실감있게 - 아니, 실제 있었던 일이니 현실감이 없을 수 없지 않은가! - 묘사하고 있는데 짧은 호흡으로 흥미진진하게 글을 전개하고 있어서 이야기에 빠져들고 보니 어느새 책 한 권이 끝났다. 물론 코로나 연대기에서부터 코로나로 인해 운전을 하던 방콕의 쿤 아저씨 이야기, 그 이후의 여행사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우울한 현실을 떠올리게 했지만. 이 책이 나올즈음에는 방송에서도 여행이 가능한 지역에 대한 정보가 나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홈쇼핑에서는 연말 여행패키지 상품도 판매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다시 대유행이 시작되고 있고 오미크론 변이까지 발생해 국가봉쇄가 시작되고 뉴스에서는 여행취소와 환불에 대한 분쟁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해 힘든 시간의 끝이 보인다는 마작가님에게 아직 힘든 시간의 끝은 오지 않았나...싶어져 마음이 씁쓸하다.
책 이야기는 없이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은건가 싶어 나름 책 리뷰를 써야하는 건데 이건 아닌가 싶어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그냥 이대로도 괜찮지 않으려나,라는 생각을 한다.
개개인의 취향과 여행을 즐기는 모습은 다 다르다. 그럼에도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여행일정을 다 기획할 수 있는 개인의 여력이 안될수도 있고 나의 경우는 어머니를 모시고 휠체어로 여행을 다니고 싶은데 그 어느 여행사도 휠체어로 여행을 가는 건 안된다고 해 가족여행은 이제 못간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휠체어없이 이동을 못하는 신혼부부의 여행을 무사히 해냈다고 하니 내 마음이 더 좋았다. 아프신 아버지를 모시고 마지막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는 분을 위해 자신의 가족여행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며 여행일정을 계획하고 모두가 만족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처럼 감동스럽기도 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끝나는 그 어느 날, 여행을 꿈꿔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직도 여행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아직도 설레여서 다행이다"라는 마작가님의 에필로그는 내게도 똑같은 마음을 갖게 한다.
끝까지 버티어내고 이 힘든 시간의 끝을 보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여행의 설레임으로 웃을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여행은 맑음 때때로 흐림'이지만 그래서 더 좋은거 아니냐며 여행의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