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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행 - Travel Essay
채지형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설레임을 안고 여행이라는 걸 떠났던게 언제였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시기 직전이었으니 벌써 3년전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우피치 미술관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곳보다 산마르코 수도원에서 안젤리코의 성화들을 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권유에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고,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었는데 미처 그 표지를 못 보고 층계참에서 각도를 유심히 잡고 찍었던 성모영보. 노 카메라! 라는 외침에 우리 일행이 더 놀란 표정을 보였더니 그곳을 지키고 있던 분이 말없이 그냥 보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여행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긴 시간동안 병원과 사무실과 집만을 오가면서 여행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잊고 지냈었는데 이제 다시 따뜻한 햇살과 피어나는 화사한 봄꽃들에 눈길이 머물기 시작하니 여행 생각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안녕, 여행]은 여행이 내 삶에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다. 슬그머니 마음 한구석에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라는 마음이 스멀거리며 올라오고 있을 때 왜 굳이 '여행'을 떠올리고 있는지 대신 변명해주기도 하고 대신 정당성을 부여해주기도 하고 대신 그 의미를 찾아주기도 하는 것이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순다섯가지의 단상은 여행을 통해 느끼고 배우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떠나봤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먼길을 떠나 본 사람은 때로 길을 잃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자신을 잘 찾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기도 하고, 기나긴 여정에서의 가벼움을 위해 필요없는 물건을 버리는 기술뿐 아니라 버려야 하는 욕심을 걸러내는 지혜를 얻게 되기도 한다. 여행은 보물찾기이기도 하고 뽈레뽈레 걷다보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고 힘든일이 있을 때 괜찮다, 다 괜찮다는 위안을 받게 되는 선물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지난 여행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걱정없어, 다 괜찮아..라는 위안도 받으며 현재의 내 삶을 생각하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새로운 낯선 곳, 낯선 사람들에 대한 설레임으로 따뜻한 봄날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렇게 좋기만한 내 마음에 누군가 말도 안되게 짜증을 부리며 찬물을 끼얹었다. 이유도없이 짜증을 내는 모습에 난 길을 걷다가 구정물을 맞은 듯 순식간에 기분이 상해버렸다. 기분이 상해 순간적으로 내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 나 역시 짜증을 낼 뻔하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오히려 더 가볍고 상냥한 마음을 가졌더니 내 기분도 나아졌고, 내 앞에 있던 그 누군가도 내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내게 짜증을 부렸던 그 누구는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지만 그 외의 모두는 즐거운 마음이다. 그러고보니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달리고 있는 버스 사진이 생각난다. 가끔은 오프로드.
여행을 하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삶의 모순.
"힘든 길을 즐겁게 가며 생각하니, 편안한 길 위에서는 오히려 주어진 행복을 찾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이 힘들면 힘들수록 마음에 남는 추억의 깊이는 깊어진다.
아이러니.
다르게 생각해보면 공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생한 만큼 그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니까.
당신은 지금 잘 닦인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거친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는가? 행여 오프로드에 서 있더라도 슬퍼하지 말자. 그 오프로드가 우리의 인생을 훨씬 더 맛있게 익혀줄 테니까"
왜 다들 나한테만 짜증을 부리고 있는거야, 라는 마음이었다면 오늘 나의 하루는 망가져버렸을텐데 그 모든걸 뒤집었더니 찾게 된 즐거운 하루를 보내면서 다시 한번 '여행'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