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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ㅣ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평점 :
"가장 슬픈 것은 우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 가장 기쁜 것은 같이 싸워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거 하나로 행복했어요. 내 옆에 누가 누워 있다는 것으로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잊고 지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날아오는 주간지에 같이 담겨 온 노란 봉투를 받아 본 것이 얼마 전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손배청구액 46억원이 선고되었고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나는 그들을 위해 노란봉투 캠페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잊고 지내다가 한 사람의 몫이라도 해내고 싶어서 사만칠천원의 기부를 했다. 약간의 망설임끝에 선뜻 낼 수 있는 그 금액은 내가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을만큼 커다란 돈은 아니지만 아무 생각없이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은 아니라는 생각에 알량한 위안을 가졌었다. 이것 하나로 그들의 기쁨에 함께 하기도 했다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난 후 정말 부끄러움에 아무말도 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인지 마음을 베이듯 스며들어 와 자꾸만 내 마음을 아리게 하고 있다.
[그의 슬픔과 기쁨]은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정혜윤 역시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내가 느낀 부분은 더욱 커다랬다.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그들은 단지 인간으로서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고 있을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면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복직투쟁을 위해 싸워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산자, 해고되지 않고 그대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외면하지 못해 파업투쟁에 함께 했고 다른 일을 하면 한달에 오륙백만원을 벌 수 있었는데도 불편한 마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에는 순수함과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희망뿐 다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언젠가 미사 강론시간에 신부님께서 대한문에서의 매일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더이상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사제단의 결정에 따라 매일 미사를 드리게 되면서부터 죽음의 행진이 멈추었다며, 그들에게 종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나승구 신부님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한 자신들을 기꺼이 동료로 맞아 준, 그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천주교 신자로서 기도의 힘과 미사성제의 위대함을 믿는 마음에 괜한 자부심을 느꼈었지만 이제는 신부님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라고 한 그 마음을 더 깊이 깨닫는다.
"공장에 안들어가도 된다는 말은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예요. 저런 공장, 영혼 없는 그런 공장이라면 안 들어가고 싶어요. 우리가 기계처럼 여겨지는 그런 삶을 더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정말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삶을 꿈꾸면서 살겠지만 '오늘만 버티면 장땡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희망은 소박합니다. 일상을 찾는 겁니다. 길바닥에서 농성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다 바친 공장에서 다시 공구 들고 땀 흘리며 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퇴근길이 있고, 동료가 있고, 이웃을 맘 편히 확인하고, 자식의 아빠이자 노모의 아들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시간들을 보충해 가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제 희망입니다. ... 이 투쟁을 운동과 계급에 의해서 했던 사람은 그 생각 안할 겁니다. 일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동지들, 썩어 빠지게 일만 했던 동지들, 운동이 뭔지도 팔뚝질이 뭔지도 모르는 동지들이 남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어느새 "쌍차 투쟁이 이 나라 정리 해고의 문제, 노동자들의 문제다"하고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어요. 그럼에도 "또 만들고 싶다. 또 하고 싶다"고 해요. 그것은 가슴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 옮겨 적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저 담담히 흘러나오는 쌍용자동차 선도투 스물여섯분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연결되는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측은지심을 알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묵묵히 자기 일, 자기 역할을 하고 자기 삶을 살고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했지만,
그러나 답을 모를 때 그들은 끝까지 함께 있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것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을 그대로 돌려주기를 택했을 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그중 일부라도 현실로 만들어 보길 선택했을 때,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너무나 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