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지붕의 나나 시공 청소년 문학 55
선자은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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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재미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굳이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결말을 가진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 소녀에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상처와 정면으로 맞닥뜨리라고 용기를 주는 것은 두말할나위 없이 좋지만, 또한 그러한 이야기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맞서면서 서서히 그 괴물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스릴러 형식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왠지 결론적으로 최고야,라는 평가를 내릴수는 없겠다. 그냥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만일 이 이야기가 청소년 문학이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쓰여졌다면 좀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일뿐이다.

 

주인공 은요는 고등학생이다. 어린 시절에 유괴를 당했다가 풀려나 그 이전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최대한 친구들 틈에서 튀지않고 평범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주 멍하니 있게 되고 친구들에 대한 관심도 없이 무심하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어릴때 유괴되었던 그때의 모든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을 봉인해버렸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에 무관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은요를 감싸주며 살뜰히 챙겨주는 친구 세미는 은요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힘을 실어준다. 어린 시절 유괴되었었지만 그 모든 기억을 잃었는데, 사건 당시 할머니 집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촌동생 미루가 미국에서 지내다가 잠시 귀국을 하면서 은요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색칠공책을 건네주고 간다. 희미하게 기억이 떠오를 듯 하면서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은요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데......

 

하나씩 기억을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갇혀있었던 것이 아니라 밖으로 잠그게 되어있던 문은 열린채로 있었지만 안에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에 그 문을 밀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빨간 지붕의 나나는 정체불명의 사건과 알 수 없는 실체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이야기를 끌어나가면서 결정적인 순간들마다 어린 시절의 소녀와 만나는 은요를 통해 과거의 고통과 상처로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지 말고 그 모든것에 정면 대결을 하며 극복해 나가기를 청하고 있다. 고통과 상처에 무너져 버릴 것만 같지만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면 자신감을 찾고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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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 34살 영국 여성, 59일의 남극 일기
펠리시티 애스턴 지음, 하윤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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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은 어디이고 또 혼자선다는 느낌은 무엇인가.

사실 아무것도 실감할 수 없는 주제였다. 그런데 왜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 걸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와 혼자라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갖는 동시에 그 느낌을 체험해보고자 하는 호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인것일까.

세상의 끝도 아니고 혼자도 아니었지만 언젠가 바닷가 길을 따라 걷다가 예고도 없이 새까만 어둠과 침묵속에 잠겨있게 된적이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순간적인 침묵의 고요속에 칠흑같은 어둠이 덮치듯 다가오니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그 찰나의 순간이 그랬는데 세상의 끝에 혼자 선다는 느낌은 어떨까. 더구나 나는 영하의 혹독한 추위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녀의 도전이 정말 극한 체험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런 길을 떠난걸까?

 

이 책은 영국 여성 펠리시티 애스턴이 59일간 혼자 남극대륙을 횡단한 기록을 담고 있다. 혼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그것도 좋은 환경이 아니라 남극의 극한 추위와 눈보라속에서 걸어나가야 하는 나날의 기록인 것이다. 팀으로 원정대를 꾸려가는 것과 팀원들이 나눠서 하던 일을 혼자 해야하는 것은 일데 대한 단순 비교가 아니다. 또 팀을 이끌 때에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늘 자각하며 약하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는데 자신의 약점을 지켜 볼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무엇이 그녀를 계속 나아가도록 동기를 불어넣어줄 지 알고 싶다는 펠리시티의 이야기에서 고독속에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 정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나도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나는 도저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이로움이라는 생각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상황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한 것이다.

 

"남극대륙은 곡 필요한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제거된 장소며 그러고도 남은 게 있다면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진실한 상태에 있을 때에만 생각의 명료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바로 두렵고 외롭고 모든 게 노출되어 있는 때다. 게다가 정신을 딴 데 돌릴 실체가 없고 순수하게 풍경만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이 표면 위로 떠오르며 세상의 구도 속에 우리는 어떤 위치고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공간과 자유, 명쾌함을 가져다준다"(201)

 

홀로 남극 대륙을 횡단하며 경험한 무서운 찰나의 순간들을 겨우 한 문장, 한 문단 정도로만 기록하고 있지만 되새기며 글을 읽다보면 정말 몸서리쳐지게 무서운 일들이 많았다. 그 기나긴 시간들을 그저 담담하게 써내려가서 그런지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저 기록을 읽는구나 라는 느낌이었는데 다 읽고 난 후 그녀의 여정을 돌이켜보고 있으려니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더구나 남극점을 찍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자 남극대륙으로 갔고 거기까지가 자신의 한계임을 깨달았다고 수치스러울 것도 없으며 남극점에서 스키를 타고 다시 출발한다면 자신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다 아는 상태에서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의해 혼자가 되는 그 경계선상에서 다시 한걸음을 내딛은 그녀는 정말 영웅이었다.

"눈물과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남극대륙을 횡단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믿는 것보다 훨씬 큰 역량이 각자 안에 있다는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우리 몸은 힘이 세며 우리 정신은 강한 회복력을 지녔다. 이 중요한 깨달음을 머릿속 깊이 새긴 채 남극대륙을 떠나기 위해 하나의 간단한 문구로 요약했다.

'계속 텐트 밖으로 나가라'

매일 이것을 지킬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도전이라도 다음 날 우리가 어디까지 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짧은 말 한마디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그녀의 위대한 여정을 알고난 다음 다시 들여다보면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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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다큐 여행 - 국어교사 한상우의
한상우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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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사'와 '다큐'라는 단어는 왠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펼쳐보지 않고서 무작정 정석을 따라갈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그래서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들이 많이 실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펼쳐본적이 없다. 가끔 책장 정리를 할 때마다 한번씩 꺼내들고 사진들을 쳐다보다가 읽어봐야지, 라는 결심을 하곤 했지만 책 정리를 마저 하고 읽어야지 하며 이내 다시 꽂아두고는 잊어버리기를 반복하기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엊그제부터 본격적으로 꺼내들어 읽기 시작했다. 다시 책장에 꽂아두면 잊어버릴 것 같아 아예 꺼내어 바닥에 둔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이 책을 꺼내어 들었다는 것을 슬그머니 후회했다. 괜한 선입견으로, 그러니까 왠지 너무 정직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에서 올곧고 우직하기만 한 여행이 나처럼 늘어지고 천방지축으로 튀는 여행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에게는 거리감이 있을 것 같았는데 나의 선입견과 편견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적나라하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일상은 구석구석 아팠고, 일상 밖 몇 걸음에도 세상은 달라보였다고 한다. 펼쳐든 지도의 마을과 마을사이는 길이 이어가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면서도 저마다의 친절한 손을 내밀었고 길은 꿈꾼 만큼 달았다고 했다.

저자의 시선이 머문 곳에 있는 풍경은 우리의 일상이기도 했고, 일상에서 몇 걸음 떨어진 다른 세상의 모습이기도 했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과거의 삶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까지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의 모습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느끼게 되곤 한다.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들의 향연이 아니라 짧고 간결하게 적어내려간 기행문은 그 단순함으로 더 깊은 깊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길을 굴리는 동안, 마음은 한껏 열려 평화를 받아들인다. 이 평화는 들뜨고 가볍지만, 그것이 죄는 아니다. 평화가 무거워야 할 이유는 없는 듯싶다. 평화는 그 경중을 따지는 자의 것이 아니라 다만, 누리는 자의 것이다"(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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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집과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들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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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그 학문을 수련하고 기능을 익힐 때 인간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가장 우선으로 한다. 이에 뒤지지 않을 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하는 덕목이 바로 진지하고 신중하고 꼼꼼하게 사안을 다루는 인내심과 집중력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은 사람을 담는 학문이자 예술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늘 신중해야 하고 끊임없이 실수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215)

 

엊그제 읽은 건축가 엄마의 느린 여행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를 읽으면서도 건축이라는 것이 단순히 건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깨닫고 있다.

내가 건축과 인테리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듯 집 지어주는 러브 하우스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건축에 대한 건축가의 글을 읽으면서부터였다. 집이라는 건물은 공간활용이 좋고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면 되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래전에 읽었던 수도원의 건물을 지을 때 공동체 생활의 의미를 느끼고 하늘을 섬기는 마음을 담은 건축설계를 했다는 글은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건축은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가장 마음을 울리고 있다. 당연한 말인데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때문이겠지.

"무엇보다 건축가의 눈은 사람을 바라봐야만 한다. 그것이 오랜 역사를 갖는 직업임에도 늘 오해가 가시지 않는 건축가라는 이름, 예술가와 건축업자가 혼성 교배된, 집 짓는 일의 안내자로서 건축가가 언제나 지켜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203)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2부에서는 문화에 대한 교감, 3부에서는 도시를 산책하며 느끼는 옛골목길을 비롯한 옛건축물들에 대한 추억과 그 모든 것들이 무너져가고 있는 도시개발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4부에서는 건축이란 무엇인지, 건축가들의 세계관을 통해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총체적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것을 또 가만 생각해보면 건축가의 눈은 사람을 바라보아야 하고, 건축은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이뤄야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글은 우리의 문화와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자연을 파괴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굽이굽이 자연스럽게 집을 만들고 마을이 형성되고 길이 생겨나야 하는데 현대의 도시는 계획적으로 반듯반듯 잘라놓고 그곳에 사람을 적응하여 살아가게 하거나 우리의 삶과 문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건축물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시대의 재앙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각각의 장소가 간직해온 역사와 그곳에 담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자신의 개념만을 던져놓는 건축가의 휴브리스가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결국 이야기가 없는 시대라는 의미가 아닐까?"(39)라고 되묻는 저자의 글을 오래도록 생각해본다.

 

시간이 담기고 이야기가 쌓이며 비로소 집은 완성된다,라고 했다. '문득 집에서 문을 열고 나가 골목을 돌고 도시를 바라보다 매혹되는 일상의 풍경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덮고 있는 따뜻한 기억들이 바로 우리가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라며 이 책은 많은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는데 이 글들이 세상의 위대한 건축도 많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의 역사와 우리 동네 골목의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골목길의 역사가 사람들의 관계를 이어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더불어 마음 속 어딘가를 따뜻하게 해 주는 추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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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
최경숙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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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건축가 엄마의 전통가옥과 사찰 등을 답사하며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건축가 엄마'라는 수식어때문에 이 책에서는 주로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이라는 제목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봤다면 이 기행문에 담겨있는 것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전해주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건축에 대해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옛건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책일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 읽어보니 옛건축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옛건축을 둘러싼 자연, 문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다.

고택은 사유물이기때문에 집안의 사정으로 매매가 되기도 하는데 일가 종친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어 종가를 지켜나가는 이야기속에서 '조상의 삶과 채취가 밴 집을 후손이 이어간다는 것은 집 이상의 가치를 가지며 그러한 옛 사람의 삶을 존중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구태의연한 삶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243)바란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오래되어 낡은 집을 허물어버리려고만 했던 내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준다. 또한 건축이라는 것이 단순히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구비구비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이 만들어놓은 환경에 따라 집이 들어서고 굽이진 길이 형성되고 마을이 생겨나는데, 현대에는 계획도시로 개발이 되어 직선으로 뻗은 길에 맞춰 건물을 세워놓는다는 이야기에도 마음 한켠이 쓰리다. 자연과 더불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옛모습은 사라져버리고 있다는 것 아닌가.

 

이 책은 옛건축과 더불어 자연, 문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넘친다고 했는데 사실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는 잠시 흘려 읽기도 했다. 책의 서두에 옛건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용어나 형태를 그림과 함께 간략히 설명해주고 있지만 굳이 그것을 꼼꼼히 읽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이 책을 한번 본다고 해서 갑자기 옛건축에 대한 깊이가 생길 것은 아니고 실제로 현장답사를 하고 그곳에서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과의 조화로움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깨달아야만 옛건축의 가치를 알게 되리라 생각하기에 그저 술렁술렁 놀러다니듯 한꼭지씩 읽어나갔을 뿐이다.

그러고보니 저자 역시 아이와 함께 답사여행을 떠나면서 굳이 아이에게 옛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솔방울을 공삼아 던지며 나무들 사이를 뛰어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모든 아름다움을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모습은 낙안읍성을 돌아보는 저자의 시선에서도 느낄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우리의 도시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답을 건네주고 있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서민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옛날, 해질녘에는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자들이 보이고 시끌벅적 여기저기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준비로 피어오르는 자욱한 연기들이 그림처럼 펼쳐졌을 것이다. 이제 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에 사는 현실에서 '도시'냐 '시골'이냐는 물음보다 '인간답게 사는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어울리는 시대가 되었다. 낙안읍성을 비롯한 전통마을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101)

 

나는 제주도에서 자랐기 때문에 솔직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옛건축들을 직접 볼 기회가 거의 없다. 고택같은 경우도 제주의 건축과는 많이 달라서 책을 읽는 동안 사진과 TV에서 본 모습을 떠올리며 그 분위기를 떠올려보곤 했는데 문득 오래전에 친구들과 같이 산길을 걷고 개울도 지나면서 사찰을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새소리와 바람에 흔들려 은은하게 울리던 풍경소리,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사찰의 모습을 자연의 일부처럼 느끼게 해 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길을 걸었던 시간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이 다 좋았기 때문에 사찰의 모습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이 책은 그런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옛건축 답사 여행의 안내서로 추천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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