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동물은 태어나면 1년 안팎으로 걷는다. 2년 안팎으로 말을 한다. 여기까지는 대략 자연법칙이 정한 발달의 과정을 따른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왔거니와, '동물-사람'과 '인간-사람'의 차별점은 그 다음부터이다. 언제 글을 배우는가. 읽고 쓰기의 문제. 요즘은 대략 대여섯 살에는 어지간히 한글을 읽는 것 같고(하다못해 통글자라도) 초등 입학을 전후하여 몇 자씩은 다 쓴다. 1-2학년 때는 받아쓰기가 가능하다. 어지간하면 70점 이상은 받는 듯하다. 여기서 막히는 아이는 문제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바로 글쓰기이다. 받아쓰기가 아니라 '작문'. 문장, 문단을 만들어야 한다. 이 문단이 나름으로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가 되어야 한다. 두 세 문장도 하나의 문단, 텍스트가 된다. 그 완성도는 육하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가에, 우선, 달려 있다. 문체고 나발이고 나중의 문제이고, 우선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했느냐가 표현되어야 한다. 판사의 판결문(가령 세간에 공개된 탄핵문을 떠올려보자)에서도 이게 제일(심지어 이것만!) 중요하다. 이쪽, 즉 법학자, 역사학자, 인문학자 등등이야 원래 문과생이니 당연히 노력해야하고, 이른바 이과생들의 글쓰기는 어떤가. <의학 세계사>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마태우스'라는 필명(?)은 익히 알던 터. 그의 재미있는, 심지어 기상천외하다고 생각한 전공(기생충학)도 익히 알던 터. 하지만 책을 읽는 건 처음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우리에게 의학은 항상 현실, 현재인데(당장 나를, 나의 아이를 낫게 해줘!) 그것에 역사가 있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주 옛날로 거슬러가 고대이집트, 아랍, 중국, 인도 등 흥미로운 일화, 지식이 많다.

 

특히, 히포크라테스. '의사'의 사실상 첫 윤리로서 '환자의 비밀을 지켜줄 것!'을 언급했다니 놀라운 대목이다. 뇌전증(간질) 역시 소위 '신/악마 들림'이 아닌 자연(몸)의 한 현상으로 접근했다는 것, 역시 한 분야의 원조가 될만한 인물이었던 것. 한데, 많은 천재들, 위인들의 업적과 더불어 꼭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기록 여부(유무)'이다. 써놓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ㅠ.ㅠ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알겠는 요즘, 정말 좀 써라! 써야지만 시간을 이길 수 있다. 가령 저 히포-스는(하다못해 측근이라도) 심지어 썼다, 쓰기도 했다.

 

 

 

 

 

 

 

 

 

 

 

 

 

 

 

 

 

 

 

 

 

 

 

 

 

 

 

 

 

 

우리 같은 평민은 접근할 수 없는 의학의 분야. 이렇게 좀 써주시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비단 의학 뿐이랴.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등 다 그렇다. 하다못해 경제학도 문과의 학문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21세기 자본>을 읽으려다 포기했다, 너무 어려워서-_-;; 이미지를 중구난방으로 갖고 왔는데, 핵심인즉, 다 썼다는 것이다. 뉴튼도 다윈도 호킹도.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서문인가 '수학을 하는 자는 많지만 수학을(-에 대해) 쓰는 자는 적다(없다)' 하는 식의 문장이 나온다. 바로 이 대목. 왜 그런지.

 

원초적인 대목이지만, 바로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 또 귀찮기 때문이다.(다들 살지만 사는 것에 대해 말하는-쓰는 자는 적다.) 나이 들수록 느끼지만 귀찮은 것과 어려운 것이 은근히 동의어다. 굳이 필요 없어 안 하다 보니 귀찮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하기가 어렵고 숫제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은 다시 동어반복으로 불필요한 것이 된다. 내가 이 나이에(혹은 이 자리에서) 굳이... 이런 식. 그럼에도 이렇게 꾸준히 좋은 저작들이 나오는 것은 참 고맙고 고무적이다. 따라 읽기가 벅차, 그것이 좀 아쉬울 따름이다.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의 주인공도 원래 수학자로 구상했는데, 도무지 수학 공부를 할 수가 없어 말이다...ㅠ.ㅠ (아침에 아이가 소수가 뭔지 묻는데 이것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더라는 ㅠ.ㅠ)

 

다시 의학 세계사. 책 제목을 보고 기대한 것은 좀 쉽게 풀어쓴 이론서 혹은 교양서였는데, 내용의 일부가 이야기 형식이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보는 교양 만화의 느낌. 나는 이것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차라리 시종일관 지식-정보 전달 형식(실제로 많은 부분이 이렇게 기술되었다)으로 되어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고, 작가의 이른바 '-끼'는... 소설로 풀어보시면 어떠실지.^^; 의학 소설 역시 전문가만이 쓸 수 있는 장르이니 말이다. 이 점에서, 잘 읽히는 훌륭한 연구서, 교양서의 전범은 역시나 유발 하라리.

 

 

 

 

 

 

 

 

 

 

 

 

 

 

 

 

*

 

- "어제도 안 썼다, 시작!"

- "일기 쓰기 싫은데? 작문하는 거 싫어...ㅠ.ㅠ"  

- "글을 쓸 줄 알아야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친구한테 카드나 편지도 쓰고... 굳이 소설이나 연구서를 쓸 필요는 없지만..."

뭔가 알아듣는 것도 같고 마지 못해 가서 쓴 일기인즉, 겨우 두 줄에다가....

 

"오늘 자유선택활동 시간에 아무튼 병원 놀이를 했다. 재미있었다."   

 

여기서 압권은 '아무튼'이라는 말. 얼마나 쓰기 싫으면!(ㅋㅋㅋ) 부사냐, 접속사냐, 아무튼. 보다시피 작문 실력이 거의 향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어제는 줄넘기 수업을 너무 잘 하고 와서(아, 진작 시도해볼 걸!) 쉬었지만 오늘은 꼭 강제하려고 한다. 쓰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써야, 쓰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

 

 

 

шиповник финский залив. 쉬포브니크, 핀란드 만. 이렇게 검색했더니 떴다. 6월이란다. 대학 시절에는 사전에 쓰인 대로 '들장미'라고 외운 단어. 심지어 상징주의 계열 그룹 중 '들장미파'도 있어서 굉장히 고급한(?) 느낌의 꽃인줄 알았는데 바닷가에서 거친 해풍을 맞고 피는, 저런 들꽃의 모습이다. 화려해도 들꽃(야생화)은 들꽃. 우리말 역어는 '해당화'가 맞다. 실제로 서해안에 초여름(늦봄)에 많이 피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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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지만, 모차르트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 고색창연한 낭만적 단어를 생각한다. 천재. 역사 속의 그는 분명히 천재였지만, 물론 살아서도 그 수식어를 별명처럼 달고 살았지만 확실히 생존시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그 단어의 느낌은 사뭇 달랐을 터이다. 우선 생김새. 정말 그냥 흔해빠진, 어쩌면 평균에 못 미치는 아저씨. 또한 달리 말하면, 모차르트-천재가 아니라면 전혀 문제 없을 그런 평범한 아저씨. (흡사 우리가 나폴레옹을 무슨 땅콩쯤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는 사실상 평균 신장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 성격. 글쎄, 개차반은 아니었을 테고, 좀 경박했을까. 이 역시 '평범-일반'의 수식어에 부합할 것 같다. 워낙 '신동', 요즘 같으면 '영재'였던 것인데, 음악(피아노 연주, 작곡)에 몰입할 때 이외의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그 나이 또래 꼬마의 모습이었다고. 그랬을 테지.

 

문제는 성장. 마의 16세던가, 아무튼 여러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성장기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즉, 그를 협박하는, 동시에 돈을 대주는 귀족들, 대략 그런 부류와 다름 없는 구세대(부모),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음악적 재능의 흐름에 있어서의 일련의 변덕, 굴곡 등. 특히, 그의 아버지. 어린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키워준 것은 전적으로 아비였다. 나는 그가 그저 업계종사자 정도인 줄 알았는데, (하이든 작곡으로 알려진) <장난감 고향곡>을 작곡한 인물이라니. 헐, 모차르트 역시 '핵금수저', 유전자 부자였던 것이다!(피카소의 아버지 역시 화가, 미술 선생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기존 어른의 세계로부터 탈출해야 하는데, 여기서 성공. 그리고 결혼도 한다. 흔히 우리가 세계 3대 악처라고 부르는 콘스탄체는, 천만의 말씀, 너무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저 책에 이런 편지가 인용된다.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작은 보금자리를 깨끗하게 준비해둬. 내 귀여운 장난꾸러기는 사실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녀석은 아주 훌륭하게 처신하고 있어. 당신의 매혹적인 (    )을 소유하고 싶은 것 외엔 다른 희망이 없지. 내가 이 편지를 쓰는 동안 탁자 위에서 꿈틀거리면서 내가 질문을 해대는 그 악동을 생각해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튕겨주고는 해. 하지만 그 녀석은 그저 (   )할 뿐이야. 이제 그 못된 녀석은 더 뜨거워져서 통제할 수가 없어.(<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3)

 

처음엔 축자적으로 읽었는데, 밑에 저자가 써놓은 글을 보가 다시 읽었다. 헐, 엄청 야한 얘기였구나. 괄호 부분은, 훗날 모차르트 전기 작가이기도 한, 공교롭게도 콘스탄체의 두 번째 남편이 된 자가 지워 놓은 부분이라고. 비슷하게, 도-키의 두 번째 아내도, 도-키가 첫번째 아내에게 쓴 편지 중 일부를 열씸~히 지웠다. 거참, 죽은 배우자까지도 질투하는 그런 사랑이라니, 부럽다.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콘스탄체는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중 성년에 이른 아이는 둘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알콩달콩, 티격태격, 옥신각신 좋은 부부였다. 아내와 아이를 사랑해도 "씀씀이가 헤픈"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도박도 마찬가지. 쓰면 쓸수록 어쩜 도-키와 이렇게 비슷한지. 모차르트가 급사할 때도(진짜 돼지고기 식중독이었는지) 그의 옆을 지킨 건 막 출산한 콘스탄체였다.

 

 

 

 

 

 

 

 

 

 

 

 

 

 

 

 

 

그 다음 교우 관계, 특히 살리에르. 그가 모-트의 재능을 질투하여 사십대 중반의 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 과로사를 유도했다는 식의 얘기는 진짜 사실무근인 것 같다.  이 스토리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원작은 푸시킨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소비극)이다. 푸시킨도 말하자면 모-트형 천재였는데 은근히, 자기를 여기에 빗댄 듯하다. 그 다음, 여기에 기반한(그런 것으로 나는 아는데) 피터 셰퍼의 저 희곡이다. 오히려 그는 멀쩡한 인격의 소유자였고 사실상 유복자나 다름없는 모차르트 아들의 음악 교육에도 관여한다. 물론 그 아들은 아버지 같은 음악가로는 자라지 못한다.  

 

주경철의 책에서 새로 알게 된 것, 혹은 새로운 해석. 당시 살리에는 상당히 잘 나가는 작곡가였다. 심지어 모-트와의 이른바 '작곡 배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정도로 더 인정받은 측면도 있었다. 요컨대 음악적 재능 때문에 모-트를 저렇게 질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 싶은 대목이었다. 동일자끼리 알아본다, 라는 것. 차라리 모-트의 선배인 하이든은 모-트를 질투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넘을 수 없는 산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의 평가를 참조한다면, 살리에르는 모-트의 재능을 알아볼 만한 눈/귀조차 갖고 있지 않았을 법하다. 새삼,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의 시구가 떠오른다.

 

 

 

 

 

 

 

 

 

 

 

 

 

(자유로운 지식인의 밥벌이 문제는 실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겠으나.)  

 

18세기, 세계는 변하고 있다. 귀족(궁정)의 하수(이른바 후원-패트로니지 시스템)로 살지, 아니면 곧이어 베토벤이 보여줄 굶주린, 그러나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지. 모차르트가 그 중간에 있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나와 내 주변의 '프리랜서들' 역시 자주 생각하는 대목. 자유는 좋지만 배가 고프고, 배도 채우고 내 맘대로 쓰려면 귀족(^^;)보다 더 무서운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 즉, 책이 팔려야 한다. 참 냉혹한 현실인데 이걸 무시하고는 천재성이고 나발이고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차르트는 돈도 많이 벌었고 그 아버지가 놀랄 정도의 사업 수완도 있었다. 문학계의 셰익스피어, 괴테랄까. 

 

요컨대 천재성이 여러 병리적인(각종 정신질환) 요소를 정당화주지 않는다. 천재는 다 미친놈이었을 것 같은가? 그랬으면 좋겠지.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범인들의 속된 바람일 뿐, 천재는 생활인으로서는 그냥 생활인(심지어 더 뛰어난)이고 그리고 자기 분야에서는 천재인 것이다. 세상 참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니 빌 게이츠의 말이던가,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라."

 

*

 

"다들 ‘돼지’라고 하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진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출처: 중앙일보]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

 

이어령 선생의 최신 인터뷰 기사를 반복해서 읽는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극찬하시던 분인데, 참 왜 이어령인 줄 알겠다. 어떤 주제를 들이대도 귀 기울일 만한 말을 쏟아내는 자, 새로움과 젊음에 대한 열린 태도(안티-꼰대의 전형이랄까),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어쩜 저렇게 운이 잘 맞는지. 저건 단순히 문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 사람 자체의 문제이다. 검색, 사색, 탐색. 비교적 최근에 그가 쓴 이상에 관한 논문(에세이)를 어느 모음집에서 읽었다. 너무 현학적이고 시건방지고(?) 저돌적이어서 좀 놀랐는데, 무려 대학교 1학년(?)인가에 쓴 글... 역시 천재ㅠ.ㅠ

 

어릴 때 천재인 아이는 많아도, 가령 모차르트처럼 죽을 때도 천재인 사람은 잘 없다.(주변에 영재는 왜 이리 많은지, 그냥 '겨우' 상위 2~3프로니까 많은 게 당연할 지도^^;)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잘 늙는 일이 참 힘들다. 

 

'소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좀 끄적여 보았다. 나한테도 재능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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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역사서를 더 보면 좋겠지만, 나도 생업이 있는지라 한 2, 3년 전 수업 준비차 읽은 책들을 떠올려 본다. 하나 같이 지리멸렬한, 오직 의무감에 의해서만 읽을 수 있는 그런 망할 책들이었다. 비단 역사뿐이랴. 문학도 그렇지만 이런 망할(^^;) 책들이 참 많다. 그나마 '콘텐츠'라도 튼튼하면 고마울 텐데...

 

 

 

 

 

 

 

 

 

 

 

 

 

 

우리가 어릴 때 읽은 책은 랴자놉스키 역사서였다. 이번에는 새로 나온 플라토노프의 저서를 읽어보았다. 여기서 놀라운 것이, 가령 (어제 주경철 책을 읽다 상기된)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대제, 정확히 그 시기를 서술하는 관점이었다. 표트르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인 반면(그야 당연한 것이, 그가 극악한 인물인 것은 맞지만 그런 동력 없이는 역사는 한 발도 진보하지 못하니까) 예-나에 대해서는 굉장히 경멸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이념이나 사상, 업적이 아니라, 근본적인 요소, 즉 '여자-사람', '외국인'이라는 것 등인 것 같다. 다시금, 외국(적국)에 시집 온 왕비는 인질이나 다름 없다, 라....  

 

우리가 아는 예-나 여제는 보다시피 전형적인 관리가 아주 잘 된, 포샵질도 많이 한 중년 아줌마 왕비이다. 그녀 스스로 연출하고자 한 이미지는 우아하고 관대한 여성 계몽 군주.(그녀에 관해 공부할 때는 항상 그녀가 볼테르와 서신 교환을 했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역시나 여자에게 붙일 수 있는 각종 나쁜 걸 다 붙인다. 특히 '음탕'이 꼭 붙는다. 그가 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실은 다른 남자의 소생이라든가(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정신 지체에 성불구였던 듯하다) 정부(이른바 총신들)가 많았다든가 등등. 남-왕이 후궁을 거느리는 것은 극히 정상, 심지어 장려되지만 여자-왕비는 정반대인 것이다.

 

아무튼 예-나의 이른바 방종이 설령 사실일지라도, 44년을 살아보니 그 역시 이해되는 것이다. 그녀가 러시아에 온 건 대략 열 일곱(?)살 때인가 그렇다. 러시아어도 모른 채 왔다. 러시아에 온 뒤 그녀가 제일 먼저, 아마 무척 전투적으로 한 일이 러시아어 및 풍습 습득이었던 것 같다. 젊은 날의 초상화를 보라. 정녕 봄날이다! 이번에 처음 본 초상화인데, 헐, 역시 젊음이 미모의 동의어이다. 그냥 여자-사람으로서 그녀에게는 권력, 사랑, 미모 등등 뭐든지 다 필요했으리라. 사랑도 플라토닉러브, 현실적 사랑(결혼), 열정적 사랑, 육체적 사랑 등등 종류별로 다 필요했으리라. 그 역시 우리 인생의 한 시절에만 허락되는 소중한 것. 그때 향유하지 않으면 그냥 없어지는, 허무한 것이다. (덧붙여, 딴 얘기지만, 그런 식으로 임신, 출산되는 아이를 이제 다 받아서 키우지 않으면 정말 나라가 풍비박산나게 생겼다. 외국처럼 이른바 미혼모, 때론 어린 미혼모와 그들의 아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유학 시절, 유모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러시아 엄마들을 많이 목격했는데, 그런 장면에 대해 천박한 생각을 하지 않을 의식이 우리도 필요하다. 돌이켜보니 어쨌든 그녀(들)는 아이를 낳는 쪽을 택했고 남편 없이(혹은 유명무실해도) 키웠다.)    

 

 

러시아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출신의 여자가 자기 나라를 쥐고 흔든 것이 무척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 심사가 곳곳에서 느껴져 읽는 독자(즉, 나)가, 이른바 페미니스트가 아님에도(!), 무척 불편했다. 역사학자는 어떤 입장, 관점을 물론 가져야하지만, 시쳇말로 너무 '꼰대'스러워서 말이다. 러시아에서 방영된 이 역사 드라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도무지 볼 시간을 내지 못했다) 적어도 비주얼만은 멀쩡에 가까워보인다. 아마 젊은(어린) 예카테리나(캐서린, 카테린느)도 실은 저런 이미지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나아가 어지간한 강단과 독기가 없었으면 그 무서운 러시아의 궁정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터. 아, 물론 세상의 모든 궁정은 다 살벌하겠지만.

 

 

한편, 표트르 대제가 왕이 되기 전에, 그의 왕위를 빼앗으려던 자가 있었다. 소피야 알렉세예브나라, 라는 이름의 이복누이이다. 나중에 정권을 잡은 다음 표트르는 정적을 다 처리하고 그녀를 소도원에 가둔다. 동생의 왕좌를 뺏으려 했고 또 못된 짓도 많이 했으니(세조^^;;) 벌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할 때, 저 삼엄한 18세기에 그토록 담대한 여자-사람이 있었음은 좀 놀랍긴 하다. 레핀은 그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수도원에 갇힌 모습. 그녀가 남자였다면 제 아무리 표트르라도 그렇게 쉽게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해본다. 아, 물론, 표트르의 위대함이야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누구라도 저 얼굴 한 번 확대해보고 싶지 않은가. 이렇다! 후덜덜

 

 

 

이렇게 추운데, 그래서 또 작년 이맘때처럼 독감에 걸릴까 무서운데 벌써 봄신상품이 나온다. 아울렛에도 작년 상품들이 대거 넘어오기 시작한다. 추워서, 빨리 봄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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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에 다시 읽기 시작한 책. 재미있는 해적 이야기에서, 원래 알지만 푸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읽히는구나 싶은 표트르 대제, 그 다음 마리 앙투와네트를 거쳐 현재 로베스피에르까지 왔다.

 

 

 

 

 

 

 

 

 

 

 

 

 

 

주경철이 써온 많은 역사서 중 이번 시리즈가 유달리 더 마음에 든, 더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유럽)인'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그런 것 같다. 겸사겸사 '유럽인'이라고 되어 있지만 아주 넓게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까지 다 망라되어 있어 실은 '세계인'이라고 해도 되겠다.

 

역사에 워낙 과문하여(넘 슬프다 ㅠ.ㅠ) 해적의 원조가 영국이었음을 새로 알게(혹은 상기하게) 되었다. 저 유명한 해적 마크(해골 밑에 있는 것이 단순한 엑스표시가 아니라 대퇴골이었다니, 헐) '졸리 로저' 역시 영국의 원조 해적에서 온 것. 나아가 여성 해적 둘까지. 무척 재미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사, 더 세부적으로 서양사를 배울 때 가장 집중하는 대목인 프랑스 혁명. 1학년때 1학기 서평 숙제로 무슨 책을 읽으라고 했는데 제목 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학업을 등한시했다. 그때 <서양문화사> C나왔는데, 학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침체기였다. 나중에 학점은 소위 세탁했으나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왜 그리 음울하게 보냈는지 거참.

 

 

 

 

 

 

 

 

 

 

 

 

 

잘 정리된 글로 봐도, 모든 혁명이 다 그렇지만, 너무 복잡하다. 그 와중에 그때도 그랬겠지만, 왕자로 태어나서 더 불쌍한 루이 16세와 역시나 하필 그때 왕비 자리에 앉아 있어서 피를 본 마리 앙투와네트를 보면서 참, 팔자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히 훗날 역사가 여자에게 갖다 붙일 수 있는 온갖 추악한 죄목을 다 붙인 그녀. 낭비와 사치, 저 책에서도 쓰고 있지만, 그녀가 그게 유달리 심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가령 지금도 영국 왕실의 왕세손비는 1년에 1억인가 하는 돈을 품위유지비, 즉 패션에 쓴다고 한다.) 경박과 음탕(특히 동성연애, 아들까지 등등), 이거야말로 날조이기 쉬울 거다. 경박했고 멍청했다는 것은, 그저 평범한 여자-사람의 머리와 감성(변덕)을 가졌다는 것이지, 역사-운명이 그녀에게 안긴 저런 대접을 받을 만큼 숭악한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이런 생각은 츠바이크의 전기를 보며서 했던(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저 철없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하지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오스트리아 여제의 막내딸로 자라, 역시 그런 왕비로 살다가 조용히 묻혀/묻어 갈 수 있는 여자였다. 아, 그럼, 그녀는 정녕 죄가 없는가? 이 부분이 참 슬프다. "몰라서". 몰라서 그런 것도 죄라는 것을 프랑스 혁명은 가르쳐준다. 밖에서 민중들이 저렇게 고통받는데 궁전 안에서 그렇게 호위호식하는 것, 그러고서 바깥의 사정을 몰랐다는 것, 이게 바로 죄라는 거다. 살펴보면 이쪽 저쪽 모두 공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편, 주경철은 '외국(적국)에 시집온 공주는 인질이나 다름 없다'라고 하던데, 흑, 정말 그랬을 법하다. 이 문장이 한 두 번 나온 것 같은데, 아마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시선이 살짝 들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아, 물론 그가 아들'도'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겸사겸사, 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제국을 쥐고 흔든 예카테리나 여제(2세) 역시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이다. 러시아어를 하나도 모른 채 몸종 하나만 데리고(더 왔을지도 모르겠다) 저 무서운 야만의 대륙에 온 것이다. 이런 인물, 이런 운명도 있는 것이다.

 

로베스피에르. 이 인물 역시 항상 (생쥐스트와 함께, 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참 사람 좋고 세상 유해보이는, 뭐랄까, 고등 한량이랄까 그런 느낌의 법률가. 누가 그를 공포정치의 화신으로 만들었는지. 그 많은 사람을 단두대에 올리고 그 자신 역시 그렇게 사라진 것은 역사의 보편성을 너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마지막 이미지는 삼십대 초중반에 열심히 본 애니메이션 <le chevalier d'eon>. 심지어 생제르맹 백작도 나왔던 것 같다. 여기에도 로베스피에르가 참 멋있게 나왔던 것 같다.)

 

<... 유럽인 이야기> 읽으면서 앗, 하는 대목. 마이크가 없던 그 시절,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연설을 했을까, 하는^^;; 정녕 목소리 큰 사람(가령 당통)이 이겼겠구나 싶은 시절이었다. 비슷하게, 레닌의 연설 동영상을 봐도 마이크가 없던데, 아마 혁명을 하려면 예나(18세기말) 지금이나(20세기초) 목소리가 필수조건이었던 듯하다. 문제는 로베스-프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는 것. 그렇기에 더더욱 혁명가로서의 그의 존재가 의미심장하다.

 

 

 

 

 

 

 

 

 

 

 

 

 

 

끝으로, 읽지는 않았는데, 이런 만화가 있다고 한다. 그 모델이 바로 샤를 앙리 상송, 즉 4대째 형리(망나니)로 일해온 인물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태어나보니 사형집행인의 아들. 아무리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고 결국 가업을 이었다고. 그리고 시절이 이렇다 보니 그는 루이 16세부터 쟁쟁한 인물을 모두 자기 손으로 처리했다. 놀라운 건 그는 왕당파에 사형제 폐지론자였다고, 에효. 게다 상당히 지적인 인물이었다고. 일이 없을 때는 외과의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목을 치는 데는 엄청난 기술(외과적 술기!)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동양사 전반)에도 이런 예들, 일화가 많지 않은가. 사형수 찾아가서 뇌물도 많이 먹였다고 한다, 빨리 제대로 잘 쳐달라고.

 

charles henri sanson 치면 검색되는 이미지.

 

이것이 그의 실제 얼굴에 가까울 테고, 참, 대단한 일본 만화,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다. 일본 만화가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새삼 실감하는 대목이다! 만화 읽을 시간이 없어서 유감이다..ㅠ.ㅠ

 

*

 

어릴 때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고 또 쓰고 싶어 한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 이야기여서였다. 역사 역시 그렇다. 사건이나 사물에 집중해도 되지만 사람에 집중하니 무척 재미있다. 유감스럽게도 학교에서는 시간(시대)에 집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피해갈 수 없는 대목. 학문(공부)에 왕도가 있나. '재미'를 보는 건 잠시, 결국은 꾸준히 학습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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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6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7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톨스토이 같은 '핵금수저'에게는 굳이 관념이 필요 없었으리라. 현실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현실의 추한 측면은 역시나 현실의 코드로 수정, 개선하면 된다. 그래서 사회소설. 그게 안 되면 종교의 세계로 가는데, 톨-이의 러시아정교는 극히 행동규범 지향적(?), 윤리적, 뭐랄까, 현실적인 것이다. 미국식 청교도와 많이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아주 동의되는 바이다.)

 

반면, 도-키 같은 애매한 흙수저는 애초부터 현실과 대결, 불화한다. 아주 흙수저라면 먹고사느라 정신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애매한' 흙수저라 그렇다. 그 불화의 한 양상이 키릴로프인데, 옛 친구가 무척 좋아했던 인물로서, 오랫동안 그를(어쩌면 그 친구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제라고 마땅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니고, 마냥 웃긴다, 좋은 뜻이다.

 

야밤, 스타브로긴의 야행, 첫 방문의 상대가 키릴로프이다. 가가노프와의 결투에 입회인이 되어달라고 말한 다음, 대화는 자연스레 저 '관념'('바로 그 생각' - 자살, 인신 등)으로 간다.

 

그럼 스무 걸음으로 합시다, , 더 이상은 안 돼요. 아시다시피, 그는 진지하게 싸우고 싶어 하니까요. 권총을 장전할 줄은 아시죠?”

압니다. 나도 권총이 있으니까요. 당신이 그런 것으로 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겠습니다. 그의 결투입회인도 약속할 겁니다. 두 벌의 권총에 동전 던지기로 그의 것과 우리 것을 결정하는 거죠, ?”

멋지군요.”

권총을 좀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키릴로프는 구석에 놓인 트렁크 앞에 쪼그리고 앉았는데, 아직 다 풀지는 않았지만 필요할 때마다 물건을 꺼내곤 했다. 그는 밑바닥에서 내부가 붉은 벨벳으로 된 종려나무 상자를 끌어내더니 그 안에서 굉장히 멋스러운 값비싼 권총들을 꺼냈다.

전부 다 있습니다. 화약, 총알, 탄창. 연발 권총도 있어요. 잠깐만요.”

그는 다시 트렁크를 헤적여 미국식 6연발 권총이 든 다른 상자를 끌어냈다.

무기가 상당하군요, 그것도 몹시 값비싼 걸로.”

몹시. 굉장하죠.”

가난하다 못해 거의 빈곤한, 그럼에도 결코 자신의 빈곤을 인지한 적이 없는(замечавший) 키릴로프가 지금은 자부심까지 역력히 드러내며 틀림없이 굉장한 희생을 치르고야 획득했을 귀중한 무기고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잠시 침묵한 뒤 스타브로긴이 다소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로 그 생각이죠.” 키릴로프는 목소리만으로도 무엇을 묻는지 즉각 알아채고 짧게 대답한 다음 탁자에서 무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럼 언제?” 니콜라이 프세볼로도비치는 이번에도 잠깐 침묵하다가 훨씬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이 키릴로프는 상자 두 개를 트렁크 안에 넣고 아까 그 자리에 앉았다.

그건 나한테 달린 게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말해 줄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는데, 이 질문이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았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질문에는 대답할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예의 그 광채 없는 검은 눈을 떼지 않고 스타브로긴을 바라보았고 왠지 평온하지만 선량하고 반가운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물론 자살을(застрелиться) 이해합니다.” 3분쯤 의미심장한 기나긴 침묵이 흐른 다음 니콜라이 프세볼로도비치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나도 가끔 어떤 상상을 했고 그때마다 항상 어떤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어요. 만약 악행을 저지르거나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짓, 즉 치욕스러운 짓을, , 몹시 비열할 뿐더러웃긴 짓을 저지른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천 년 동안 기억하고 천 년 동안 침을 뱉어 줄까, 싶은데,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관자놀이에 한방만 쏘면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때는 사람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들이 천 년 동안 침을 뱉는다고 한들 무슨 상관입니까?”

그걸 새로운 생각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키릴로프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는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어느 날 잠깐 생각하다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느꼈습니다.”

“<생각을 느꼈다>고요?” 키릴로프가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거 좋군요. 항상, 또 갑자기 새로운 것이 되는 생각들이 많이 있죠. 그럴듯해요. 난 많은 것들이 지금은 꼭 처음 보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저 대사가 아주 잘 꾸며진 저택의 거실에서 행해지는 것이라면 지금과는 무척 다른 느낌일 것이다. 아무튼 '권총자살'에 대한 키릴로프의 집착은 거의 페티시즘 수준이다. 이어지는 부분도 무척 좋은데, 논다고 못 고쳤다. -

 

러시아인들이 생각하는 키릴로프는 이런 이미지인가 보다. 음, 글쎄, 어떻게 해도 소설 속 인물에는 2프로 못 미치는 것 같다. 어쨌거나 글자(책)는 '관념'(이론)이고, 이미지(실제)는 그것에 부합하지 않으니까. 겸사겸사, 사진으로  봐도 그렇지만 러시아 남자들은 러시아 여자들에 비해 인물이 어쩜 이렇게 빠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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