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 중 하나가 '말이 씨가 된다'였다.
어머니는 물론 일가친척 그 누구를 막론하든 주변의 누가 재수없다 여겨지는 말을 하면
상대가 누구든 매섭게 눈을 흘기며 부정타는 소리를 했다고 질색들을 하셨고,
조금은 변명처럼 갖다 붙이는 이야기가 '말이 씨가 된다'며 조심하자는 강권이었다.
장사로 먹고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유일하게 믿는 종교가 '말이 씨가 된다'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당연히 '힘들어 죽겠다' 역시 아주 부정한 말이었고, 소리내어 우는 것도 금기였다.
그러나 어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막히고 막힌 속상함을 어쩔 수 없이 내비칠 때면 어머니는
'아이고, 심들어 살겄네, 심들어 살겄어'라는 앞 뒤 안 맞는 넋두리를 늘어놓으시는 거다.
나 역시 그러한 환경의 영향을 받아 '힘들어 죽겠다'는 말은 금기어처럼 여기게 되었는데,
도저히 '힘들어 살겠다'라는 말은 입에 붙지가 않는 거다.
힘들어 죽을 수도 없고, 힘들어 살 수도 없다 보니 지난 몇 주 말 한 마디 못 하고 입을 봉했다.
회사에선 자꾸 일이 터지고, 담당자는 감당을 못 하고, 자꾸만 내게 몰려오는 일들을 당해내면서
불평할 길도 없고, 힘낼 길도 없어 그저 벙어리로 버티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럴 때 회사에 건강검진 차량이 와버렸다.
스트레스지수는 9 최고점을 찍었고, 만성피로도는 E로 바닥을 쳤고, 종합점수는 60점 낙제였다.
애써 힘듦을 내색 안 하고 잘 다스리고 있다고 나름 스스로 장하다고 다독이고 있었는데,
망할 놈의 검사 결과가 내 속내를 내 허락도 없이 커밍아웃했다고나 할까.
게다가 너나 없이 검사지를 돌려보는 분위기에 그만 회사 전체에 치부가 폭로된 기분이었다.
넌 도대체 뭐 하는 게 있다고 검사결과가 이 따위냐는 팀장의 놀림도 싫었고,
나에게 일을 떠넘긴 채 모르쇠하던 인간이 아주 깔끔한 검사결과가 나온 건 더 싫었다.
그렇다고 이제와 무슨 말을 털어놓나 싶어 한 번 더 꾹꾹 참고 침묵 시위 끝에 퇴근하는데,
밤하늘을 보며 열심히 '힘들어 살겠네'를 연습해봐도 입에 안 붙는 건 여전했다.
결국 검진 다음날 아침 회사에 가기 싫어 미적대다가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도 애들도 갑작스런 나의 울음에 영문을 몰라 당황하며 나를 달랬지만,
몇 년만에 소리내어 우는 걸 도저히 그칠 수가 없었다.
아니, 이제는 재수없게 가스나가 곡소리낸다고 구박할 만한 이도 없다는 것 조차 서러워
더 열심히, 더 온 몸으로, 더 대놓고 꺼이꺼이 울어주었다.
1시간 가까이 울다가 회사를 쉬는 게 어떻겠냐는 남편의 권유를 뿌리치고 출근을 했다.
그게 지난주 수요일이었다.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