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때 '서울대 우조교 사건'이 발생했다.

이제는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이라고 정정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서울대 우조교 사건이었고, 

아직도 위키피디아에는 서울대 우조교 사건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사회적으로도 파장이 많은 사건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와 내 친구들이

고2때 담임이었던 국민윤리 선생님을 왜 거북하게 여겼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 사건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면서 

등을 쓰다듬어 주시거나 다리를 토닥거리셨고,

공부 열심히 하네 라고 대견해 하면서

어깨나 팔을 주물러 주곤 하셨다.

여고생 시절 우린 이걸 딱히 거부하지 못 했고,

그저 속으로 징그럽게 여기는 게 고작이었다.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발견한 뒤에야

그 분이 등을 쓰다듬으며 목에서 허리까지 더듬듯 했다는 것을,

오금에 가까운 허벅지를 토닥이다 한 번씩 꾸욱 잡았다는 것을,

어깨를 주무르다가는 귀에 숨을 불어넣었다는 것을,

팔을 주무를 때는 슬쩍슬쩍 손을 가슴에 댔던 것을

서로 털어놓았었더랬다.

지금이라도 우리 힘을 모아 그 사람을 고발할까?

하다못해 교육청에 진정이라도 넣어볼까?

동창회를 할 때마다 소소하게 의논하곤 했지만

말만 흩뿌리고 어느 누구도 주도적으로 나설 용기를 못 냈다.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됐는데

지금의 미투 운동을 보자니

우리의 소심함이 우리 후배 역시 피해자로 만들었을 수 있겠구나 후회된다.

이제와서 고등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정년퇴직을 한 건지 보이지 않는다.

좀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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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주말인데 드러누워 TV나 보는 사람들이 난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지난 여름부터 수원에서 서울까지 좌석버스를 가장한 입석버스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여가를 보내는 내 꼴이 딱 TV뿐이다.

노안이 오기 시작하했다 하여 책과 담을 쌓고, 피곤하다 하여 트래킹도 멀리 하고,

이제는 부모보다 더 바쁜 주말을 보내야 하는 딸 아들도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그렇게 주야장천 TV 다시 보기를 하다가 본 드라마 중 하나가 '고백부부'였다.

풋풋한 아가들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고, 

법정 드라마랑 정치 음모 드라마에 지친 나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30대 후반의 아줌마 아저씨가 스무 살로 돌아가는 설정인데,

꽃같은 나이 스무 살로 돌아간 장나라가 제일 먼저 하고 제일 많이 한 건

제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였다. 

드라마 중간 중간 로맨스는 그냥 양념이고, 주제는 그저 엄마, 엄마, 보고 싶은 우리 엄마였다.


아이고, 나도 우리 어머니 보고 싶은데.

다시 스무 살이 되면 나도 어머니랑 노래방도 가고 싶고, 한증막도 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은데,

어머니가 해준 밥도 먹고 싶고, 하루 종일 어머니 뒤 졸졸 따라다닌 거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시부모랑 밥 먹다가 듣는 부고 말고 어머니랑 제대로 이별도 하고 싶은데.

드라마 속 장나라가 너무 부러워 환장하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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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7-12-3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백부부 보고 그부분이 참 좋았고,또 그부분 때문에 눈물이 흘러 울적한 기분으로 잠이 쉽게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엄마와 무얼할까?
영화 보고,목욕탕 가고,여행 가고,밥도 사먹고,포근하게 안아보고,손도 잡아 보고 싶고.......저도 그러고 싶다는 상상을 하면서 잠들었었어요^^
그래서 저도 기억에 남는 드라마였던 것같아요.

내년에도 건강하시고,활기찬 한 해 되시길 바랄께요^^
 

봄이다.
난 또 한 살을 먹었고
올해도 승진은 물 먹었고
연봉은 동결이다.
딸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들은 나보다 발이 살짝 커졌다.
어쨌든 목련이고
그렇게 봄이다.

이런 일상을 얘기할 수 있게
박근혜가 탄핵된 게 기쁘고
검찰조사중인 게 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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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3-22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마로가 고등학생이 되고 해람이 발이 엄마보다 커졌다니, 군산에서 본 꼬마로만 기억하는 내겐 놀랍네요.@@
그 사이 조선인님 시인이 되었고요~^^

조선인 2017-03-2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해람이의 키는 아직 저보다 작은데 남자애라 그런지 발은 더 크네요. ㅎㅎ
 

회사 화장실에 붙은 문구가 영 신경쓰인다. 바다가 물을 나누어주어 구름이 생긴 거 아닌가. 나누어주면서 스스로 낮추는 것이 가장 존경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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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티백 맛은 거기가 거기다. 그런데 남양에서 담터로 바꾼 뒤 놀라운 변화. 더 이상 텀블러에 실꼬리가 빠지지 않는다. 늘 옹색하게 테이프로 붙여 고정하곤 했는데, 실 길이의 차이가 품격의 차이를 만들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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