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대학 동창과 그녀의 딸과 맛있게 밥먹고 즐겁게 공연보고 돌아가는 길... 계엄령이 떨어졌다. 가짜 뉴스가 아닌 걸 확인한 뒤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억... 청와대로 향하는 탱크와 장갑차 행렬, 휴교령, 저녁만 먹어도 나갈 수 없었던 야간통행금지령의 강화, 3 이상만 모여도 해산하라고 위협받고, 유치원 꼬맹이들도 군인만 보면 벌벌 떨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다고???
계엄령을 한밤의 해프닝으로, 코미디로 치부하고 풍자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는 건, 잔인한 군부독재의 시절에도 목숨 바쳐 싸웠던 이들이 길을 내고 침목이 되어 철로를 만드고, 우리 모두를 태울 수 있는 기차를 만들고, 누군가는 신호수가 되어 기차를 안내하고 있는 덕분이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그들의 희생 위에 민주주의의 기차에 무임승차한 프리라이더일 뿐이다.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승차권은 기차가 탈선하지 않게 제대로 운전할 수 있는 똑똑한 운전수를 뽑는 의무와 권리이다. 부디 내가 탄 기차가 얼마나 값비싼 희생을 치른 핏빛이라는 걸 잊지 말자.
2-3시간 눈 붙인 뒤 출근했다가 광화문집회 가고 용산까지 행진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공연은 즐거웠다. 명불허전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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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안 좋은 습관이 있는데 저자 소개, 서론, 추천의 글 등을 일체 안 읽는다는 것이다. 배경지식 없이 일단 부딪쳐 본다는 건데 이로 인해 100쪽까지만 읽고 집어던지는 책이 과반수가 넘고, 다 읽은 뒤 뒤늦게 찾아보고 아하 이래서 이런 글이 나왔군 깨닫는 경우도 많다.
<지루할 틈 없는 경제학>을 읽으며 미국 인아니면 영국인이라 추정했고, 경제이론학자라기 보다는 경제전문 언론인일 거라 추정했는데 영국의 경제컬럼니스트이니 대충 내 추리는 맞은 셈이다.
_잠깐 딴 소리를 하자면 그가 옥스포드대학교에서 20년 넘게 경제학을 가르쳤다는 책 소개는 좀 미심쩍다. 검색해보면 그가 옥스포드대학교에서 ppe(철학정치경제 융합전공)를 졸업했으며 수십년째 옥스포드/요크셔 지역에서 명상 교실을 운영하거나 온/오프라인 경제 수업을 하는 건 맞지만 옥스포드대학에서 경제학 강의를 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유명세는 산악자전거에 더 치중되어 있다._
어쨌든 책 자체는 언론인답게 흥미로운 주제와 글발로 읽기 쉬운 경제시사상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정한 경제이론의 신념이 있기 보다 주제별로 특화된 입장을 취하는 듯 하다. 또 서구 중심의 관점이 매우 두드러지므로 그의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에 맞아떨어지기 어려운 대목이 많으니 주의해서 읽어볼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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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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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춘

- 나만의 의미와 운율을 담은 입춘첩 써보기

- 절기력으로는 입춘이 새해 첫날, 작심삼일이 있다면 다시 시작하기

- 사소하게라도 누군가를 위한 일 남몰래하기: 적선공덕행

 

2. 우수

- 이른 봄나물을 찾아 먹는 것으로 봄이 온 것을 기념해보기: 쑥국. 도다리쑥국은 해먹기 힘드니 도다리 대신 도미어묵을 넣어보자.

- 올해 계절마다 어떤 제철 음식을 즐기고 싶은지 적어보기: 내가 기다리는 건 5월의 제주당근. 여름의 황도, 10월의 사과대추. 겨울의 귤.

- 우수의 동물 수달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 찾아보기: 내년 4월까지는 여의도로 출근하니 한강변의 수달을 열심히 찾아보련다.

 

3. 경첩

- 기온이 오른 날을 골라서 창문을 활짝 열고 봄맞이 청소하기

- 동네 꽃집에서 봄꽃이나 화분을 사서 집 안에 먼저 봄을 들이기

- 마음 맞는 친구들과 우리만의 제철 모임 규약 만들어보기: 일년에 두 번 4월과 10월에 만나는 대학친구들. 우리 모임에 규약은커녕 이름도 없는데, 이 기회에 지어보자고 졸라볼까나.

 

4. 춘분

- 동네 구석구석으로 '봄을 찾기' 산책 나가기: 도시에서도 나물을 캘 수 있다. 쑥은 어디나 지천이고, 그만큼 흔한 게 개망초. 꽃이 피기 전까지 개망초는 꽤 길게 먹을 수 있다.

- 내가 찾은 봄의 작은 기척을 사진으로 남겨보기

- 비슷하게 생긴 봄꽃의 이름과 구분법 익혀보기

 

5, 청명

- 골목길이나 산책로에서 앞으로 1년간 지켜볼 '내 나무' 정해보기: 내 나무는 아니고, 내 할 일. 환삼덩굴과 돼지풀 새싹이 돋기 시작할 무렵이다. 출퇴근길 틈틈이, 주말에는 아침 먹고 1-2시간 정도 김매기

- 꽃달임 나갈 날짜와 장소를 정해 미리 약속 만들어두기: 라일락, 아카시아, 쥐똥나무, 등꽃... 차례대로 피던 꽃들이 요새는 4월이면 한꺼번에 피기 일쑤이다. 도시의 매연/미세먼지와 섞인 꽃내는 나에겐 고문. 조금은 멀리 걸으러 가기. 산 속에서 문득 만나는 아까시나무는 견딜 만 하니까.

- 청명주와 진달래를 대신할 나만의 꽃놀이 페어링 메뉴 찾기: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슬프다. 대신 올해 첫 작설차가 나왔는지 찾아볼 것

 

6. 곡우

- 봄비를 기다리며 돌미나리전을 사 먹거나 해 먹어보기: 미나리전도 좋지만 그보다는 냉이된장국, 달래간장도 재워야 한다.

- 가장 맑은 연두와 분홍으로 빛나는 이맘때의 봄 산 바라보기: 초등학교 몇 학년때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봄 느낌이 나는 디자인을 해보라는 미술시간이 있었다. 나는 과감히 연두와 분홍, 노랑으로 물결 무늬를 그렸는데, 머리 속 구상과 달리 한없이 촌스러워 찢어버리고 싶었던 기억 한 자락.

- 3개월 뒤의 나를 위해 제철 행복 미리 심어두기: 프로젝트 기간에 맞춰 사는 게 일상인 나는 3개월 뒤를 감히 예약할 엄두를 못 냈다. 12월에는 연력을 사서 미리 미리 계획해보기.

 

7. 입하

- 5,6월에 피는 하얀 꽃을 검색해 이름을 익히고 주변에서 찾아보기. 이따만해서 이팝, 조그마한 조팝. 사실 난 비속어로 배웠지만.

- 나만의 '입하 꽃'을 고르고 보러 가기에 좋은 장소도 알아두기: 사과나무꽃, 배나무꽃, 과수원 옆 걷기. 평택에 가자꾸나.

- 5월의 화창한 어느 날, 자체 '솔라르프리' 감행하기. 그냥 화창한 날 말고 비 온 다음날 걷기

 

8. 소만

-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 생각난다면 싱거운 안부 전해보기: 제일 많이 하는 건 업무 연락을 위해 초성으로 전화번호부 검색하다 지인도 검색되면 그 핑계로 전화하기.

- 효도가 제철. 이맘때 하면 좋은 일을 찾아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잔인하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는데. 노동절을 맞아 시댁 식구들과 점심 먹다가 어머니 부고를 받았는데. 시댁에 갈 때마다 남편을 질투하는 내 마음이라니...

- 여름을 부르는 개구리 소리, 소쩍새 소리 주변에서 채집해 보기. 내가 사는 동네에는 맹꽁이가 산다. 그런데 난 개구리와 두꺼비와 맹꽁이 소리를 구분 못 하는 도시촌년이다.

 

9.망종

- 바깥을 즐기기 좋은 장소를 알아두고 가까운 이들과 약속 정해보기: 경기옛길 마스터하는 그날까지!

- 살구, 자두, 앵두처럼 장마 전에 먹야야 더 다디단 과일 찾아 먹기: 복숭아!

- 지역 축제, 영화제, 음악 페스티벌 일정에 맞춰 제철 행복 계획해보기: 평창 계촌 클래식 축제

 

10. 하지

- 제철을 맞은 하지 감자를 다양한 요리로 즐겨보기: 감자전, 알감자조림, 감자수제비, 구운 감자, 메쉬드 포테이토, 감자볶음, 감자스프...

- 보리 맥주를 함께 마실 친구들과 하짓날 약속 정하기: 술은 못 마신다고! 여름에는 집순이가 최고라고!

- 1년 중 가장 긴 날을 기념하여 두고두고 얘기할 추억 남기기: 추억은 아니고 하지 전에 에어컨 청소하고 시험 가동해보기.

 

11. 소서

- 비 오는 날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들어줄 음식 얘기해보기: 비빔국수

- 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기 좋은 나만의 '비멍당' 찾아보기: 어디든 툇마루가 필요함

- 기와가 있는 곳에서 빗물 웅덩이의 행렬 찾아보기: 그러니까 툇마루.

 

12. 대서

- 여름 더위를 식히는 나만의 방법을 여덟 가지만 적어보기: 에어컨 + 무엇이든

- 그 목록을 하나씩 실천하면서 내게 맞는 휴식의 자세를 취해보기: 에어컨 틀어넣고 커피나 차 한 잔, 1, 음악도 내 맘대로

- 무더위의 보상이기도 한 여름 제철 과일 찾아 먹기: 우리 애들은 과일보다 삼계탕. 초복, 중복, 말복이 설/추석에 버금가는 명절

 

13. 입추

- 군청색 턱시도를 빼입고서 나는 제비 찾아보기: 제비요? 도시에서요?

- 크게 부푼 뭉게구름을 관찰하고 노을 감상하기: 서파랑길 걷기

- 늦가을까지 하늘을 기록한 후 '올해의 구름' '올해의 노을' 뽑아보기: 이건 우리 딸이 잘 하는 거

 

14, 처서

-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여보기: 풀벌레 소리를 구별하고 싶지만, 풀벌레를 보고 싶지는 않다.

- 여름내 눅눅해진 나를 데리고 나가 햇볕과 바람에 말리기: 지구온난화로 이제는 입추 매직이 아니라 처서매직. 아 슬프다. 기후정의행진 걸어야지

- 하루 종일 잘 말린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 집으로 돌아오기

 

15. 백로

- 가을 숲에 찾아가 도토리 6형제를 구별하기: 불가능

- 도토리 수업 이수 후, 산 아래 식당에서 도토리묵으로 책거리하기: 이건 대찬성

- 주변에서 다람쥐나 청설모가 만든 새우튀김 모양 솔방울 찾아보기; 이건 모르겠고 걷다 보면 다람쥐나 청설모는 보겠지

 

16. 추분

- 바닥에 떨어진 갈색 잎에서 달고나 향기가 나는 계수나무 발견하기: 이건 진짜 해보고 싶다

- 일몰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나만의 '노을 명당' 찾아보기: 누구나 다 아는 궁평항

- 밤 산책이 제철. 고궁의 달밤기행이나 별빛야행 일정 알아보기: 일정은 늘 알아보지. 광클릭에 실패할 뿐...

 

17. 한로

- 햇볕과 바람과 이슬이 알알이 담긴 가을 제철 과일 먹기: 드디어 사과대추닷

- 등고하기 좋은 주변의 산을 찾아보고 시간 내서 다녀오기: 만만한 건 광교산

- 성곽 길, 왕릉, 고궁, 사찰 등 세월이 오래 쌓인 곳 어디든 걸으며 그곳에 담긴 옛이야기 찾아보기: 이번 가을 역사기행은 인천 차이나타운.

 

18. 상강

- 아래를 보며 걷는 단풍 산책하기, 가을의 색감을 모아서 찍어보기: 난 위를 보며 산책할테야

- 한 번쯤 보러 가고 싶은 커다랗고 근사한 나무 찾아보기: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은행나무. 언제나 가보려나.

- 막바지단풍을 보러 남쪽으로 짧은 기차 여행 다녀오기: 공주교도소 은행나무

 

19. 입동

- 다가올 연말 모임을 위한 선물 틈틈이 사두기: 여바라 송년회를 위한 책 엄선하기

- 올해 남은 두 달 동안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 적어보기: 돌아가시기 전에 이모랑 고모. 한 번 더 안부 전하기

- 감나무 가지 끝에 달린 다정한 마음, 까치밥 찾아보기: 이 핑계로 걷기

 

20. 소설

- 나만의 '겨울철 작은 기쁨의 목록' 적어보기: 귤과 만화책이 진리. 그런데 요새는 만화가게가 없지요. 슬픔.

- 눈사람, 트리 등 만날 때마다 찍어서 모아두고픈 주체 찾아보기: 해보고 싶은 건 독립서점

- '굳이' 먹으러 가고 싶은 겨울 제철 음식에 무엇이 있나 살펴보기: '굳이'는 아니지만 어묵탕, 떡국, 미역국

 

21. 대설

- 눈 오는 날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계획 세워보기: 궁궐! 궁궐에 가보고 싶습니다! 특히 후원이요

-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숙소 찾아보기. 이제는 제법 가는 귀가 먹어가고 있는 거 같은데 과연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 운 좋게 눈이 온다면 우리 동네 구석구석으로 눈사람 순례 나서기: 눈 곰돌이 만들어야 함. 순례할 시간 없음

 

22. 동지

- 올해 좋았던 일을 하나씩 얘기하며 서로 축하해주기: 11일에 하던 건데 1231일에 해도 좋을 듯

- 말하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김칫국 토크' 이어가기: 이것도 11일에 하던 건데

- 새해의 이미지로 삼고 싶은 일력-달력-연력 나에게 선물하기: 꼭 연력을 사리라

 

23. 소한

- 빈 가지만 남은 나무에 숨겨진 봄, 겨울눈 찾아보기

- 눈이 쌓여 있는 장소에 남겨진 새 발자국 찾아보기

- 겨울이 허락해야 볼 수 있는 제철 풍경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중적 감정

 

24. 대한

- 다락방 같은 나만의 겨울 아지트 마련하기: 집이 최고

- 마음과 일상의 닳은 곳을 수리하고 다듬는 시간 보내기: 이건 해 봐야 할 듯

- 우리의 제철은 지금, 언제나 알맞은 시절을 보내고 있음을 잊지 않기: 지금도 동문회에 가면 내가 막내뻘. 나이 먹었다 움추리지 말고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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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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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 있는 거 인정, 베트남 전쟁과 결부된 역사의식도 통렬하다. 덕분에 다양한 주변 지식도 많이 얻었다.


하지만 말이다. 작가의 필력이 폭발하는 순간마다 여자는 사물화된다. 이 정도면 상업적 고의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시아인이 가진 가부장제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만, 그런 변명따위 집어치우라고 악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제3자 일인 양 비극조차도 객관적으로 건조하게 기술하다 말고, 온갖 묘사와 형용구와 비유가 터진 방둑마냥 처음으로 쏟아져 나온 게 오징어 얘기라니. 가슴골에 대한 집착과 끊임없는 플레이보이 잡지 타령도 지긋지긋했다. 무엇보다 고엽제 피해나 양민 학살은 딸랑 몇 줄로 요약하면서 2번의 강간 장면은 꼼꼼히 공들여 쪽수를 할당하는 게 욕지기가 나온다.


실컷 욕하고 난 뒤 그래도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어머니의 비석 장면은 애틋했다. 그 어머니가 13살 때 프랑스 신부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더더욱 스산했다. (하지만 끝까지 아동성애변태를 편드는 어머니라니, 말이 되냐고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통렬한 자조. 마찬가지로 "냉전이라는 실험의 피실험자"로 희생당해 분단의 비극을 겪는 한민족으로서 당연히 공감이 간다.

성적 장면이 아닌데도 작가의 필력이 솟구쳤던 두 장면. 소니의 눈알, 만과 네이팜탄 이야기는 소름끼쳐하며 읽었다. 사실 쿠바르크 방첩활동심문서 현실판이 더 압도적이긴 했다만 내 수용치를 넘어서는 수준이라 감히 평할 수가 없고, 이 장면 때문에 퓰리처상을 탔겠구나 싶다.


<뱀꼬리>

1. 뒤마가 무어인 조상을 가졌구나. 베토벤이 흑인 외모의 특징을 가졌구나.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흑인운동의 한 축이 되나 의아했다가 여성 역사 발굴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기도 하고. 판단 보류 상태다.

2. 제인 폰다가 끔찍하다는 말을 쉽게 하는 거 보면 확실히 작가는 반여성주의자 같다.

3. 주석을 보다가 쯩 자매 이야기를 좀 찾아 봤는데 쯩 여왕에 대해 처음 알게 되어 감탄했다.

4. CIA가 직접 항공사도 운영했구나. 냉전 시대 미국의 방첩 활동은 확실히 미친 수준이다.

5. 베트남 작가 소설을 번역하면서 번역가는 베트남 음식점 한 번 안 가봤나? 나팔꽃 줄기 볶음이라니! 공심채(모닝글로리) 볶음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 중 하나인데!

6. 서구화가 잘못이라니 문화혁명이 떠오른다. 베트남도 그랬던 걸까? 요건 좀 찾아봐야겠다.

7.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면서 구성원들은 제마다 남자 작가의 한계를 욕해댔다. 박찬욱 감독은 과연 이 작품의 어디에 꽂힌 것인지 궁금한데, 분명 오징어에 꽂혔을 거라는 이의 말이 기억에 남아 드라마를 보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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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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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학살의 역사가 범람하는 책이다. 그리고 너무 과학 적대심의 역사까지 흠뻑 끼얹어져 있다. 제주 4.3항쟁 이후 벌어진 같은 민족끼리 벌어진 양민 학살과 세르비아의 보스니아 이슬람계 인종청소인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적대심"과 "학살"이라는 공통 키워드는 있으나 하나로 엮기 어려운 주제였다. 작가는 김영삼 정권 때의 남매 간첩사건과 전두환 정권 때의 구미유학단 간첩사건을 잘 버무려 가상의 간첩 조작사건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2갈래 학살을 꽤나 성공적으로 하나로 엮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은 김영삼 정권 때 벌어진 또 다른 학살사건으로 한 코룰 떴으면 어땠을까 싶다. 나와 다른 생각과 의지를 가진 자들에 대해 공권력이 벌인 과도한 적의가 미친 듯이 대학가를 점령했던 연대 항쟁과 한총련 이적단체 탄압이 그것이다. 하늘에선 헬기가 최루액과 형광액을 살포해대고, 건물의 물과 전기가 끊기고, 모든 식료품과 의약품의 반입이 차단되고, 범민족대회를 하던 2만명의 학생은 연대 안에 갇혀 절규했다. 하지만 공권력은 종북빨갱이 집단이 연대를 불법점령하여 농성을 벌이고 있다며 더욱 꽁꽁 봉쇄를 해댔고, 특공대를 동원한 강제진압 작전 결과 약 2천명의 학생이 연행되었다. 이후 운동권이든 아니든 학생회에 발을 걸친 자는 모두 이적단체 구성원으로 낙인 찍히고, 어느 날 갑자기 집이나 학교로 경찰이 쳐들어와 잡혀가면 한총련 탈퇴각서를 써야 했다. 탈퇴 각서를 쓰길 거부하는 학생 수백 명은 수배자가 되어 사방에 전단서가 붙여졌고 길게는 8년의 시간을 수배자가 되어 살아야 했다. 경찰에 쫒기다 죽은 선배, PTSD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후배, 누군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고, 30-40대에 암에 걸려 죽은 이의 비율이 평균보다 높은 거 같은데 아직도 체계적인 진상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그저 학생운동이 몰락한 계기라고 서둘러 마무리지어지는 그 시간들은 지금도 깊은 흉터를 많은 이들에게 남기고 있다.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엔 너무 무거운 소설이지만, 우연찮게 이 책을 고른 사람이 있다면 이를 계기로 학살의 기억을 나누어 가졌으면 한다. 마침 다음달은 4.3 제주민중항쟁 추모제가 있기에 핑계김에 찾아가보는 것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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