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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36-50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우리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대들보는 깨닫지 못합니다.(마7:3) 남에게 있는 작은 허물은 쉽게 발견하지만 자기에게 있는 커다란 허물은 금방 깨닫지 못합니다. 남의 사소한 실수는 눈에 거슬러 하면서 자신의 중대한 실수는 살짝 넘어갑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경우입니다. 본문을 보면 극명하게 대조적인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 시몬입니다.(눅7:36,40) 바리새인은 유대교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리새인을 존경하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죄를 지은 여인입니다.(눅7:37) 이 여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본문을 통해 느껴지는 분위기로는 몸을 파는 여인으로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창녀를 멸시하였습니다.

본문은 바리새인 시몬이 자기 집에 예수님을 초청하면서부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를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말씀도 듣고 하였습니다. 요즘도 교인들이 목사님을 초청하면 목사님은 교인들을 위해 간절히 축복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잖아요? 유대인들은 귀한 손님이 집을 방문하면 먼저 종이 나가 손님의 샌들을 벗기고 물로 발을 닦아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더운 나라라 땀도 많이 흘렸고 석회암이다 보니 먼지도 많이 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에 양말도 신지 않고 뛰어놀다 보면 발이 시커먼 해 졌잖아요? 종이 발을 닦아주면 주인은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볼에 입을 맞추고 감람유(올리브기름)를 머리에 부어주었습니다. 거실에는 좌식탁자가 ‘ㄷ’ 자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음식이 소북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귀한 손님이 정중앙에 앉고 아니 앉는 게 아니라 비스듬히 눕는 거죠. 우리나라는 똑바로 앉아서 음식을 먹습니다만 유대인들은 비스듬히 누워서 왼손으로는 쿠션을 기대고 오른손으로는 음식을 집어 먹었습니다. 머리는 탁자를 향했고 다리는 쭉 뻗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했지만 커다란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집에 들어올 때에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볼에 입을 맞추지도 않았고,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습니다.(눅7:44-46) 시몬은 아주 불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라는 사람이 말씀도 잘 전하고 병도 잘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정말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어서 집으로 부른 모양입니다. 그 당시는 명예와 수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였습니다. 주인이 정성껏 대접하면 손님을 명예를 얻었지만 소홀히 대하면 손님은 수치를 당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해놓고 수치를 안겨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시골 출신의 하찮은 순회 설교자라고 무시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이웃집에 거지가 왔는데 가족들은 마루에 앉아서 밥을 먹었고 거지는 마당에 앉아서 먹더라고요. 거지니까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거죠. 시몬은 거지에게 음식을 차려주듯이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 상만 차려 주었지 주인으로서 손님을 접대하는 의식을 생략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여인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여인은 식사 자리에 초청을 받지는 못했지만 바리새인 시몬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초청 받지 않은 사람이 잔치 집에 찾아가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남이 불러주지 않는데 찾아간다는 게 여간 어렵잖아요? 여인은 외국에서 수입한 향유를 부어드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요즘도 은혜 받은 할머니가 금붙이를 헌물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여인이 시몬의 집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여기에 왔느냐는 눈치였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에게 곧장 달려가 발 앞에서 엎드렸습니다. 여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여인은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시자 자기의 긴 머리털로 닦아주었습니다. 감히 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님의 발에 연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인은 유대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감람유가 아니라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눅7:37-38) 감람유와 향유는 이마트에서 파는 식용유와 시골에서 부모님이 농사지은 참기름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존경했습니다. 그녀는 그 어떤 주인보다도 예수님을 최고의 손님으로 예우했습니다. 예수님의 발을 머리털로 닦아 주었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명예롭게 했습니다. 여인은 초청 받지는 않았지만 주인보다도 더 예수님을 극진히 환대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여인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기는커녕 여인이 죄인이라는 걸 문제 삼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죄를 지은 사람과 접촉하면 죄가 옮겨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여인을 쫓아내지 않고 만지도록 방치하는 게 못마땅했습니다.(눅7:39) 시몬은 여인을 정죄했기 때문에 여인의 행동을 본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존중했기 때문에 회개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했지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여인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이 보이신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확신했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여전히 예수님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에게 물으셨습니다.(눅7:41-42)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님은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일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은 노동자의 오백일치 품삯을 빚졌고 또 어떤 사람은 오십일치 품삯을 빚졌는데 갚을 수가 없어 탕감해 주었다면 누가 더 주인을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했습니다.(눅7:43)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예수님도 그 판단이 옳다고 동의하시고 시몬에게 이르셨습니다.(눅7:47)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예수님은 죄를 지은 여인은 오백일치 품삯을 탕감 받았고 바리새인 시몬은 오십일치 품삯을 탕감 받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시몬은 자신은 의인이라고 자부했기에 죄를 조금만 탕감 받았지만 여인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회개했기 때문에 더 많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의 티끌이 아니라 나의 대들보를 보는 사람이 용서받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선언하셨습니다.(눅7:48)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여인이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하나님만이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었습니다. 여인이 죄를 용서받은 것은 예수님의 발에 묻은 눈물을 머리털로 닦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눅7:50)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여인이 죄를 용서받은 것은 예수님께 헌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2장 8-9절을 통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인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하늘에 승천하셨다가 다시 재림하신다고 믿는다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보십니다. 우리의 죄가 아니라 믿음을 보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었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헌신은 복 받으려고 가 아니라 감사해서 하는 겁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행함으로 감사를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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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37-41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성령님의 능력)

저는 지지난주에 성령님의 강림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사도들은 마리아의 집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바람처럼 임하셨습니다. 불처럼 임하셨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성령님의 동행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어머니가 자식을 보살피듯이 성령님을 보내셔서 사도들을 보살피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난처할 때 변호해 주시고 어려울 때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또 다른 친구이십니다./ 

성령님은 오순절에만 강림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강림하십니다. 성령님은 사도들의 친구만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도 되십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셨고 사도들의 친구가 되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어떤 능력을 베푸실까요? 첫째, 성령님은 우리가 회개하면 구원을 베푸십니다. 구원은 성령님이 베푸십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자 120명의 성도들은 외국어들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몰려든 순례객들은 이 일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인지 아니면 술주정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부어주셔서 외국어들을 말하는 겁니다. 성령님은 말세에 부어주십니다. 말세에는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입니다.’ 고 설교하였습니다. 순례객들은 예수님이 주님인지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친데 대해 마음이 찔렸습니다. 순례객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물었습니다.(행2:37) 순례객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선물을 다른 말로 하면 성령님의 선물을 받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영혼의 설거지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나면 물로 깨끗이 닦아놓습니다. 그래야 다음에 음식을 담아서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릇이 지저분해지듯이 영혼이 지저분해집니다. 그러면 물로 그릇을 깨끗이 씻어야 하듯이 회개로 우리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음식을 지저분한데 담아 먹지 않듯이 성령님은 지저분한 영혼에 임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현상은 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무거운 죄의 짐을 벗어버리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물밀 듯이 밀려옵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느껴집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확신하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예식입니다. 교인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삼 천 명이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회개시켜서 죄를 용서받고 교인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회개하고 교인이 되는 겁니다.

둘째, 성령님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십니다. 공동체는 성령님이 이루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시자 예루살렘 교회는 120 명에서 3,000명이 회개하고 3,120 명으로 급성장하였습니다. 300 배로 성장하였습니다.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성도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행2:42)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도들 중에 120 명은 성령님을 체험한 교인들이고 3 천명은 새로운 교인들입니다. 성령님을 체험한 교인들이나 새로운 교인들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교제는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교제는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필요도 충족해 주는 겁니다. 성도들은 부유한 교인들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가난한 교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성도들은 떡을 떼었습니다.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성전에서는 하루에 두 차례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도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집에서도 모였습니다. 성도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예배도 드렸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성찬식도 하였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애찬식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도들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은 기도하는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성도들이 기도하자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기적이 많이 일어나자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오로지 기도하자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칭찬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도하더라도 교회가 욕을 먹는다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인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칭찬을 받자 하나님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이미지가 좋으면 저절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칭찬받는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교인들을 보내 주실 겁니다.

셋째, 성령님은 전도하게 하십니다. 전도는 성령님이 하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전도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내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증인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려면 성령님이 임하셔야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야 권능을 받습니다. 권능을 받아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증언해야 할까요? 사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신다고 재림하신다고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가 효과적으로 증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계적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까지 증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사도들이 지금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마을부터 증언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들부터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대로 가야 합니다. 유대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지역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경상북도 입니다. 우리나라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전도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사마리아입니다. 사마리아는 유대 인근지역으로 문화가 다른 지역입니다. 아시아권입니다. 다른 나라로도 나가 선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땅 끝입니다. 땅 끝은 로마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입니다. 온 세계입니다. 온 세상으로 나가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나가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강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퍼져나가듯이 지금 있는 자리부터 시작하여 지구촌 전체까지 나가 예수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따라도 되고 안 따라도 되는 권고가 아니라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자 한다면 주님은 우리가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으로부터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구원을 거저 받았으니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예수님이 주신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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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16 너희와 함께 하리니(성령님의 동행)

유대인의 지혜와 철학이 담긴 탈무드에 보면 ‘신은 모든 사람을 보살필 수 없기에 대신 어머니를 선물로 보내셨다.’ 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신은 모든 사람을 보살필 수 없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보살필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분이라 우리를 세밀하게 보살피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보살피라고 어머니를 선물로 보내셨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속을 썩여도 여전히 사랑합니다. 자식이 못 생겼어도 자랑거리를 찾아냅니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잘될 거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를 선물로 보내셔서 우리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보살피듯이 우리를 보살피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어머니가 자식을 보살피듯이 성령님을 보내셔서 제자들을 보살피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4가지를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요한복음 14장 16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보혜사도 있다는 말씀인데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이고(요일2:1)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새번역은 ‘변호해주시는 분 또는 도와주시는 분’으로, 공동번역은 ‘협조자’로,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또 다른 친구’라고 번역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난처할 때 변호해 주시고 어려울 때 도와주시는 친구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의 어머니도 우리가 난처할 때 변호해 주시고 어려울 때 도와주시잖아요? 하나님이 어머니를 보내셔서 우리를 보살피게 하듯이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성령님을 보내셔서 제자들과 친구처럼 함께 하실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처럼 성령님은 예수님의 대리자입니다. 성령님은 제자들과 친구처럼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와도 친구처럼 함께 하십니다./

두 번째는 14장 26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성령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실 겁니다. 성경은 성령님이 영감을 주셔서 제자들이 기록했습니다.(딤후3:16-17) 성경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됐기 때문에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도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여러분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고, 여러분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도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깨닫고 싶거든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성령님은 성경을 풀어내는 열쇠입니다. 다른 열쇠로는 자물쇠가 열리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열쇠로 성경의 문을 여십시오. 성령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가르치시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세 번째는 15장 26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혜사라고도 말씀하셨고 또 진리의 성령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는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마음의 사역을 하신다면 진리의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머리의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성령님이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증언하실 겁니다. 어떻게 증언할까요? 강에 돌을 던지면 물의 파장이 점점 퍼져나가듯이 제자들은 지금 있는 자리부터 시작해서 지구촌 전체까지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전파할 겁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준비시키실 겁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의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농부가 씨를 뿌리기 위해 밭을 갈아엎듯이 우리의 지성과 영혼을 갈아엎어서 복음이 싹 트고 자라서 열매 맺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증언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증언하십니다./

네 번째는 16장 8절-11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새번역은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로, 공동번역은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로, 메시지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내실 것이다.’ 로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성령님은 믿지 않는 세상을 책망하시고 깨우치시고 꾸짖어 바로잡아 주시고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드러내실 겁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회개시키기 위해 책망하시는데 무엇을 책망하실까요?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요3:18)라는 것을 책망하실 겁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책망하셔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십니다./ 또 무엇을 책망하실까요? 성령님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하여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치실 겁니다. 우리가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속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나님과 벌어졌던 간격을 메우셨고, 하나님과 막혔던 담을 허무셨습니다. 우리가 강을 건너려면 다리를 지나야하듯이 하나님과 화해하려면 반드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깨우치십니다./ 그리고 또 무엇을 책망하실까요? 성령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사탄이 이미 심판과 정죄를 받았다는 것을 바로 드러내실 겁니다. 사탄은 이미 패배했는데 우리가 그 사실을 아나 모르나 시험해봅니다.(벧전5:8) 예수님은 사탄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탄을 꾸짖으면 도망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니까 사탄이 굶주린 사자처럼 공격하는 겁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 패배한 사탄의 종이 되지 말고 사탄을 이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라고 알려주십니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믿지 않는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깨우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믿지 않는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깨우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지금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기억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님은 구세주라고 증언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사탄을 이길 수 있다고 우리를 깨우치십니다. 하나님은 어머니를 보내서 우리를 보살피듯이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서 우리와 친구처럼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또 다른 친구입니다.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는 친구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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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1-13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성령님의 강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님의 강림을 기념하는 주일이죠.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이 땅에 사십 일간 계셨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사도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임하셔야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아야 사도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성령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도들이 기다리던 성령님이 드디어 임하셨습니다.

1) 성령님은 언제 임하셨을까요? 오순절에 임하셨습니다.(1절) 우리나라는 민족의 명절이 설날과 추석입니다. 이스라엘은 무교절과 칠칠절(맥추절, 오순절)과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이 절기(명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설날로부터 15일이 되면 정월대보름인데 이스라엘은 유월절로부터 50일이 되는 날이 오순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명절이 되면 서울에 사는 자녀들이 시골로 내려가는데, 이스라엘은 절기가 되면 시골 사람들과 해외 동포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평소에는 8만 명에서 10만 명 정도가 살았는데 절기가 되면 해돋이를 보려고 동해안에 관광객들이 몰리듯이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돌아가셨는데 성령님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오십일 째인 오순절에 임하셨습니다.

2) 성령님은 어디에 임하셨을까요? ‘한 곳’(1절)과 ‘온 집’(2절)에 임하셨습니다. 한 곳과 온 집은 같은 장소로 사도들이 유하는 다락방이었습니다.(행1:13) 이층 방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층에 있죠. 사도행전 12장 12절을 통해 사도들이 머문 집은 마리아의 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가부장적 시대라 마리아의 집에 임했다면 어색해지니까 마리아의 아들인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성령님은 누구에게 임하셨을까요?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1,2절) 그들은 사도행전 1장 13-15절을 통해 11 사도들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을 포함하여 120 명의 교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성령님이 특별한 사람들에게 임하셨는데(민11:26-29,삼상10:6-12), 신약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도 임하십니다.

4)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사도행전 1장 14절을 통해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부터 기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셨고 성령님은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오십 일 만에 임하셨으니 그들은 일주일 또는 열흘 동안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습니다. 7과 10은 거룩, 완전,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우리도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5) 성령님은 어떻게 임하셨을까요? (1) 2절을 통해 성령님이 임하시는 소리가 귀로도 들렸습니다.(청각)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와 집(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스어로 성령님(프뉴마)과 바람(프노에)은 발음과 철자가 비슷했습니다. 바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2) 3절을 통해 성령님이 임하시는 모습이 눈으로도 보였습니다.(시각)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불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성령님은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셨습니다.  

6) 성령님은 왜 임하셨을까요? 예수님을 증언하라고 임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님이 임하셔야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아야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7) 성령님이 임하시자 무슨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4절을 통해 그들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영적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죠. 성령 충만은 예수님으로 가득 차는 동안입니다. 영적으로 교제하는 기간이죠. 성령 세례는 딱 한번 받으면 되지만(일회적) 성령 충만은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지속적) 그들은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님이 시키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무아지경에 말하는 천상의 방언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지상의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8)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들이 외국어로 말하는 동안 예루살렘에는 오순절을 지키러 온 해외 동포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해외 동포들의 귀에 자기가 사는 나라 말이 들렸습니다. 그리스어로도 들렸고 이집트어로도 들렸습니다. 해외 동포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어 말소리가 들리는 장소로 몰려갔습니다. 그들이 외국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해외 동포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랐습니다. (1) 이 광경을 보고 무식한 갈릴리 사람들이 외국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자 놀라면서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도하면 귀를 기울입니다. (2) 이 광경을 보고 무식한 갈릴리 사람들이 술에 취해서 외국어를 지껄인다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도하면 썩 가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한세대학교의 김성혜 총장은 성령님을 컴퓨터의 백신에 비유했습니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아무리 수고해서 작업한 파일이라도 한순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컴퓨터를 백신으로 치료하면 다시 검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듯이 우리 인생도 아무리 좋은 목표와 계획을 세웠다 할지라도 마귀가 방해하면 혼란에 빠지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치료하시면 다시금 인생의 목표를 바로잡고 힘차게 전진하게 됩니다. 이처럼 백신은 컴퓨터를 성령님은 우리를 치료합니다. 그러나 백신은 치료만 하지 예방은 하지 못하지만 성령님은 치료도 하시고 예방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면 마귀라는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예방도 되고 혹시 마귀가 침투했다 하더라도 성령님으로 치료받아 다시금 활력을 되찾게 됩니다.

9)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령님으로 충만해 질 수 있을까요? 우리도 그들처럼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세상 걱정은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기도에 몰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교인들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고 신앙의 확신을 갖게 되고, 신앙이 시들어버린 교인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서 열심을 회복하게 됩니다. 성령님을 체험하면 교회를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성령님의 능력을 받으면 복음을 전하고픈 열망이 생깁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자 존 웨슬리 회심 272주년 기념 주일이기도 합니다. 사도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서 초대교회를 시작한 것처럼, 존 웨슬리가 성령님으로 뜨거워져서 감리교 신앙운동을 펼친 것처럼, 우리도 성령님을 체험하고 창대교회를 부흥시키는데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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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5:24 사망에서 생명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7절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사랑하셨습니다. 질문 1. 그렇다면 부모님이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부모와 자녀 간의 정상적인 관계를 원할 겁니다. 그것을 효도라고 합니다. 그 다음은 자녀가 잘 되는 것을 원할 겁니다. 즉 부모와 함께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요.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질문 2. 그러나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네, 불효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완벽한 생활공간인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는데 인간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것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9장 2절을 통해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라고 말씀합니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후손에게도 유전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모두 죄를 저질러 죄인이 되었습니다.

질문 3. 여러분은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닐 겁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겁니다. 이 말씀에 동의합니까? 동의할 겁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6장 23절을 통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지으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을 통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죄인은 한번 죽고 나서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을 통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지으면 육적으로도 한번 죽고 영적으로도 또 한 번 죽습니다. 둘째 사망은 지옥에 던져지는 겁니다. 지옥은 죽을 라야 죽을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질문 4. 여러분은 혹시 잘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까? 인간은 죄를 저지르면 본능적으로 죄책감을 느낍니다. 또한 인간은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는 본능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서 3장 11절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영원한 세계를 가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통해서 영원한 세계를 깨달으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선행을 통해서 좋은 데를 가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완전한 인간이 되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질을 통해서 영원한 만족을 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4장 12절을 통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종교로도, 선행으로도, 교육으로도, 물질로도 영원한 세계에 이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 등산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습니다. 한번 잘못 간 등산길은 되돌아올 수 있지만 한번 잘못 간 인생길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잠언서 14장 12절을 통해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자기가 간 길에 대해서 책임도 져야 합니다. 우리는 깜깜한 밤을 항해하는 배처럼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때 등대에서 빛을 비추어 주듯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질문 5. 여러분은 부모님에게 회초리를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있을 겁니다. 부모님이 우리가 미워서 때리지 않았듯이 하나님도 우리가 죄를 저질렀어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생명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통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인이라서가 아니라 죄인이었는데도 예수님을 죽이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셔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을 통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질문 6. 여러분 부활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인데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솔직히 안 믿어지죠. 영국에 루이스 월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은 특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신앙을 가지고 군인의 길에 들어서 대영제국의 삼성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는 역사에도 박식했고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장군으로서의 명예와 역사학자로서의 지식과 문학도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증명하려고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2년 후 그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검토해보니 예수님의 부활은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부활을 주제로 두 가지 책을 썼습니다. 첫 번째 책은 [무덤의 돌은 어디에?]였고 두 번째 책은 [벤허]였습니다. 여러분 벤허아시죠? 불후의 명작 벤허는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분기점입니다. BC는 예수님의 탄생 이전이고 AD는 탄생 이후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기 위해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여러 사람이 여러 차례 목격했기 때문에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5장 24절을 통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질문 7.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심판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영원한 삶을 선택하겠죠? 그렇죠?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겁니다. 영접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초청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통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은 여러분과 여러분은 예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을 통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저를 따라해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께서 저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이제 저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이합니다. 저희 마음에 들어오시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이제는 저희의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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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0-05-1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인생의 분기점...예수님이 맞지요.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사역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