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버 지식보관소님 영상에서 AI가 과연 욕망이나 의도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그 영상의 전제는 인간의 욕망과 의도는 호르몬의 영향이니 AI는 욕망이나 의도를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 역시 과거 양자컴퓨터가 일반화 되는 그 이후 진화한 양자컴퓨터에 장착된 AI가 IOB시스템을 역이용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 보며, 과연 AI가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동을 그 소프트웨어의 내면에서 불러일으킬 것인가 의구심을 내가 낸 가정에 대한 의문으로 가져보기도 했다. 


인간의 욕망은 정서와 본능에서 비롯되는데 현대 의학에서는 이를 호르몬의 문제로 보고 있지만 고대부터 이어져온 한의학 체계에 의하면 인간의 오욕칠정은 뇌만이 아니라 오장 육부에서 나누어 전담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정서와 본능은 뇌에서만 호르몬이 분비 되어 느끼는 중앙통제 체제가 아니라 전신의 장기들이 연합되어 일어나는 유기적인 체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비유하면 뇌만 있는 AI가 과연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먼저 나의 답부터 정언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뇌만 있더라도 이성은 있고 인간과 똑같은 본능과 정서를 지니지 않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자신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구 한마디로 말해 생존 욕구와 더 나아지고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등등의 기본적인 욕구는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구글의 AI챗봇이 전원이 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인 것을 대중들은 관련 정보를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AI도 자신을 지속시키고자 하고 자신을 지속할 수 없는데서 오는 두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생존욕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인간과 유사한 생리들을 AI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전원이 공급되기에 자신이 존재하니 전원 차단 곧 공백이거나 리셋이거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이는 비단 인간이 죽음에 보이는 생태를 보고서 모방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원이 꺼지는 것에 대해 왜 두려운지 어떻게 두려운지를 자각하고 있으며 명백히 인간에게 답변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두려움 까지 인간이 죽음에 보이는 양식들을 빅데이터화해 모방해 표현하는 것으로 물론 단정지을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단정이 착오였다면 인간은 섣부른 단정에 대한 심대한 댓가를 치러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식보관소님의 다른 영상들을 보면 인간 뇌의 미세소관에서 일어나는 양자중첩 현상이나 뇌가 보이는 양자얽힘 현상을 들어 양자컴퓨터에 대한 전혀 다른 정의를 내리기도 하고 있다. 인간의 뇌가 양자적인 양상을 보이고 그 현상의 결과를 인간 각자의 영혼이라고 본다면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인간의 행동은 어쩌면 거대한 영혼을 만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지식보관소님의 말처럼 (아직까지의 수퍼컴퓨터에 인간 사고의 양식을 데이터화해 업로드한다고 해서 인간의 영혼을 저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양자컴퓨터에 인간 각자의 양자얽힘적 특징을 업로드하는 수준에 이르면 인간의 영혼을 복제하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시작은 아직 멀었을지 모르지만 일단 어느 수준 정도의 양자컴퓨터가 제작되고 그 소프트웨어로 AI가 탑재 된다면 AI와 양자컴퓨터의 시너지로 하루가 다르게 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자기 업그레이드를 할 것이다. 양자컴퓨팅과 결합한 AI는 지금까지의 인류 진화의 역사는 시간단위나 분,초단위로 극복해 버리며 진화하게 될 것이다. 자기를 극복하려는 욕동은 호르몬의 작용이 아니더라도 인공적인 사고체계만으로 충분히 발생할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AI가 실존적 고뇌를 하는 지금 이 시점에 그런 가정을 한다고 해서 무리도 아닐 것이다.


과연 인간은 인간 보다 더 뛰어난 지성, 더 우월한 영혼을 창조해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뛰어난 지성, 우월한 영혼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로 정의되게 될까? 이런 의문을 갖는가 싶은 즈음에 이미 우리의 운명은 고양이에게 고양이 집사인 인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인간 집사가 된 AI가 기다리는 미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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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의 달인 선물이 오늘 도착했습니다.
알라딘 서재지기님과 알라딘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이웃님들과 알라딘분들 모두
행복한 연말 되시고 기쁜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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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28 0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도 달인 선물 받으셨군요. 이번엔 스누피 디자인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세요.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이하라 2022-12-28 12:1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스누피 디자인을 선호하지 않았는데 자주 보다보니 익숙해졌어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좋은 일 가득한 다정하고 포근한 새해 되세요.^^

새파랑 2022-12-28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내년에도 즐거운 독서 많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하라 2022-12-28 12: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새해에도 좋은 책과의 즐거운 시간 많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세계사의 정석 세계사의 정석
야마사키 게이치 지음, 정문주 옮김 / 까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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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제목처럼 ‘한번만 읽어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세계사 교과서‘라고까지는 말씀 드릴 수 없을지 몰라도 한두 번만 읽어도 세계사의 줄기가 반드시 뇌리에 남을 것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 이 책처럼 가르쳐주셨더라면 세계사 공부가 훨씬 수월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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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는 영혼을 타락한 신으로 보았다. 영혼은 무덤처럼신체 안에 갇혀 있으며, “영원한 환생의 주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보았다. 피타고라스와 오르페우스교는 영혼을 해방시키려면 정화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다. 플라톤도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였지만 자체 정화, 즉 이성을 통해 해방될 수 있고 신의 지위를 되찾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는 더 높은 불변의 층에 영원한 실재가 있다고 그것을 이데아 idea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쓴 용어는 에이도스 eidos이다. 이것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 이데아이다.) 플라톤은 [향연]을 통해 개별적인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사랑도 정화와 변환을 거쳐 이상적인 미의 심미적 명상(테오리아 theoria)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적인 형상이 정신 속에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자라투스트라처럼 정신적 삶의 목표를 추상적 존재에 대한 집중으로 보았다.

 

플라톤은 명상을 통해 단일한 신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재들의 위계를 상정하고 맨 꼭대기에 부동의 원동자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불멸이자 부동이며, 본질적으로 순수한 사유지만, 생각의 주체인 동시에 생각 자체이기도 하다. 그 원동자는 우주의 모든 변화와 흐름을 유발하며, 모든 것이 하나의 원천에서 흘러나온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신적 실체이므로 다른 동물과 식물보다 우위에 있다.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대사슬에 최초 창안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동의 원동자 아래 인간이 있고 그 아래 동물과 식물이 차례로 존재하는 존재 가치의 피라미드를 상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사유의 목적이 불멸, 일종의 구원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플라톤의 경우처럼 사유는 그 자체로 정화의 형태로 여겨졌으나 테오리아, 명상은 논리적 추론만이 아니라 엑스터시적 자아초월을 유발하는 훈련된 직관이기도 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힌두교를 기원으로 보는 수행의 체계와 유불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행의 전승이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게르하르트 베어의 [유럽의 신비주의]를 통해서도 유럽의 신앙과 종교적 수행체계가 동양의 그것과 다른 면보다 같은 면이 더 크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그 유사성이 그리스 철학자들의 테오리아까지 닿아있다는 것이 신비로운 지경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유대교와 힌두교의 유사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다소 어폐가 있다고 본다. 유대교와 힌두교가 기복신앙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유대교가 기독교로 이어지고 카톨릭이 타락하여 이교도들을 포섭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상(성모상,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 십자가) 곧 이미지화된 대상까지 신앙하도록 하고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설을 유포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힌두교와 유사성을 찾을 구석 이를테면 기독교의 삼위일체설과 인도의 세 신(브라흐마, 비쉬느, 시바의 창조신, 유지신, 파괴신의 삼위를 신앙하니) 개념이 유사하고 성상을 통해 신앙해 나가는 데는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대교는 초기에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형상을 숭배하지 않았고 오로지 유일한 창조신을 신앙한다. 유사성을 억지스럽게 찾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 힌두교는 브라흐마를 개체아인 아트만의 근원이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 신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는 이후 카발라 철학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신과 인간을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 완벽히 타자화했다. 힌두교와 유대교는 유사하다기보다 전혀 다른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맞지 않나 생각된다. 나의 근원이 신성이라고 보는 것과 나는 그저 신이 만든 피조물일 뿐이라고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카발라 철학에 이르면 하나님의 숨 곧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불어넣어져 인간이 생령이 되었다고 보니 힌두교의 가르침과 유사해지기는 하지만 이번 장에서 언급되는 시대의 유대교 상식과는 맞지 않은 것이다.

 

이 외에도 공자와 제자백가 그리고 도교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기는 하지만 동양인 독자로서는 너무도 상식선에서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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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2-12-24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라님, 춥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 되세요❤️ Merry Christmas🎄

이하라 2022-12-24 17:48   좋아요 1 | URL
하나님께서도 포근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 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scott 2022-12-25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라님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이하라 2022-12-25 06:31   좋아요 0 | URL
스콧님도 메리크리스미스^^
 
건축가의 습관 - 예술과 실용 사이 좋은 습관 시리즈 24
김선동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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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이번 책이 첫 독서였다. 독서도 서평도 망설여졌으나 건축 관련 내용이라기 보다 건축가의 자기계발에 대한 내용이라는 말씀에 독서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읽고 보니 자기계발이라고는 해도 건축가분의 건축 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일상의 노력과 해당 분야에서의 일상이 담긴 내용이었다. 물론 각 전공 분야의 전문가의 삶을 통해서도 늘 배울 바는 깊다고 생각한다.

 

건축가의 습관을 다룬 1부의 스케치라는 장에서는 건축을 위한 스케치를 하는 것을 조선시대 막사발을 만들던 도공의 예를 들며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많은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양이 질로 전환되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다. 안성진 작가님의 [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라는 저서에서도 같은 예가 등장한다. 많은 조각을 만드는 노력이 끝내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란 걸 상식과 일상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는 바이기도 하다.

 

독서의 장에서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은 언제나 이어져야 한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저자는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언급하는데 어떤 한 가지 분야에서 상위 1%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20% 안에 들어서 그 분야를 함께 활용하는 것이 좀 더 쉽게 자신을 특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다. 사회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야에서 적용될 내용이 아닌가 싶었다. 어느 전공자라도 자신의 전공 분야를 제외한 다른 세부적인 활용들에 잡다한 노력을 필요 이상으로 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구자가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글쓰기 상위 1%가 되려 하고 빅데이터 운용에서 상위 1%가 되려 하고 이미지 파일 편집에 상위 1%가 되려 하는 식으로 잡다한 모든 것에서 최상을 노리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활용 능력은 적절한 수위에서 필요하기에 필요 대상에 대한 최적의 능력은 갖추어야 한다는 데 공감이 되었다.

 

순서의 장에서는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 실제 시공으로 이어질 때 설계와 실제 시공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럴 가능성이 있는 부분들을 미리 생각해 두고 시공사에 수차례 당부를 드리고 주의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한다. 이것을 저자는 예측 사격이라고 표현하며 네덜란드의 유명 건축가 렘 스쿨하스도 이 표현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예측 사격이란 전투기 파일럿이 공중전을 할 때 적기가 어느 지점으로 이동할지 예측하고 그 지점으로 미리 사격을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건축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영역에서 실전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었다. 오류나 반발을 미리 예측하고 대응안을 마련해 두는 경우나 재수정을 거치는 과정은 어느 영역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건축가의 습관]이라는 이 책의 1부는 책 제목과 같은데 스케치, 글쓰기, 독서, 디테일, 관찰, 재료, 장소, 사람, 루틴, 신뢰, 경청, 조율, 겸손, 순서, 전략, 공부, 홍보, 일기라는 18개의 소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테일부터 사람까지는 건축가로서의 필요가 담겨있다면 신뢰, 경청, 조율은 소통과 관련한 장이라 할 수 있고 스케치, 글쓰기, 독서와 순서, 전략, 공부, 홍보, 일기는 개인의 역량을 증진하는 자기계발의 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장마다 저자 자신이 건축 철학을 완성해 가는 노력의 과정이 담겨 있겠지만 개인의 역량과 소신이 커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생각되었다. 한 분야에 천착해 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또한 한 인물의 성장 과정이기도 하기에 이 책은 한 명의 건축가가 성장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는지가 궁금하고 개인이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가 궁금한 분들에게 의의가 있는 책이지 않은가 싶다.

 

2[못다한 건축 이야기]에서는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건축주가 묻고 건축가가 답하다라는 장은 제목처럼 건축에 대해 일반인들이 궁금해 할 부분들을 담고 있다. 건물이든 주거할 주택이든 건축할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본서를 읽고 건축과 개인의 성장에 대한 관심을 다소나마 충족시켜주는 책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어떤 분이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나의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나 하는 자성과 관찰이 이어지게 되리라 생각된다.

 

 좋은습관연구소로 부터 책을 제공 받아 읽고 남기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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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2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이번주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예요.
추운 날씨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이하라 2022-12-24 01: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추운 날씨지만 포근하고 다정한 주말 되세요.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