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내겐 아무도 없다니까요. 난 자유예요"
모모의 이 말에 난 자유란 것이 때로는 너무도 서글프고 아픈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이런 서글프고 시린 자유가 주어져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타자를 위해 흘리는 눈물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연민은 실패자의 그것이라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듯한데 스스로에게 공감할 수도 연민하지도 않는 누가 타자에게 공감하고 연민할 것인가?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에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불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유태인의 눈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담뱃불로 다리미로 몸은 지져지고 굶주려 말라 비틀어진 뼈마디는 폭력 앞에 부러져 고통 받다 죽어가는 아이들도 말이다. 왜 그 아이들에게는 유태인의 눈이 없었어야 했다는 것인가?
-아줌마는 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데는 생일이 중요하지. 그밖의 것, 즉 엄마 아빠의 이름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정말이지 그렇다는 걸 더러 알게 되는 인생들도 있다. 권할만한 생이기 어려워 그렇지.
-나는 조금 울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내게도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이제는 그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나를 기쁘게 했다.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 기쁘려면 그리워할 수 있었어야 할텐데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생도 있다. 그저 이야기만으로는 어떤 상황인지 감이 잡히지는 않겠지만.
"모모... 모모..."
"네, 로자 아줌마. 나 여기 있어요. 나만 믿으세요."
"모모야... 난 들었다. 사람들이 구급차를 불렀어... 날 데리러 올거야..."
"아줌마 때문에 온 게 아니에요. 부아파 씨가 죽었어요."
"무서워..."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잖아요."
생의 기쁨과는 달리 공포와 두려움은 사람들에게 생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하지만 인간은 부푼 마음이던 지옥 같은 마음이던 모든 것을 감각하고 자각하라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그 모든 걸 즐기라고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면 즐긴다라는 개념에 대한 착오 때문에 반감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정서와 감정은 우리가 체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부푼 또는 지옥 같은 그 모든 것을 체험하라고 던져진 곳에서 즐긴다라는 말에 다른 무슨 의미를 둘 수 있다는 말일까?
"완전이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