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재발견 - 공부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박주용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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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는 인지심리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인지심리학적 발견을 교육과 학습에 활용하는 바에 전념해오신 분이라고 한다.

 

본서는 챗gpt가 등장하고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교육과 학습과 업무에 전방위적으로 활용되는 시기, 공부란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떠한 양식으로 변모하는지 의문을 풀어내고 있기도 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공부의 재정의와 함께 시대에 맞는 공부법을 소개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학습과 사고를 나누어 기억을 위주로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학습이라고, 또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의적 과정을 사고로 설명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답변할 수 있는 사항들을 기억하는 인간보다 더 나은 대안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질문이 더 중요한 시대라며 창의적이며 질문하고 사고하는 인간이 육성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기도 하다.

 

본서는 그래서 얕은 공부와 깊은 공부를 구분하고 기존에 교육 현장에서 주도되어온 학습의 방식을 얕은 지식을 위한 가이드에서 효율적인 방식을 설명하고 또한 깊은 지식에 대한 가이드에서는 깊은 공부에 필요한 요소들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 깊은 공부인 문해력과 토론, 글쓰기를 각 해당 장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 주제를 하나로 정의하자면 질문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질문하라는 것도 같은 주제에 대한 답변이고 말이다. 저자는 토론도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에게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함께의 중요성도 주지케 하는데 함께 답을 찾아갈 때 옳은 답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연구 관찰로 밝혀졌으며 의견이 같은 사람들만이 가득할 때는 집단 극화라고 하여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결론 지어질 수 있으니 소수 의견도 중요시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본서는 오랜 인지심리학과 교육과 학습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공부가 담겨 있는 책으로 많은 전문 담론이 풀어지지만 하나 같이 피부에 와닿기도 한다. 아마도 평생 학습이 필수인 시대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감할 문장들이리라 생각된다. 저자가 인용한 문장들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조언으로 인식되는 면도 있으며 공부란 것이 결국은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본서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듯 현재의 OECD 평균 수면 시간도 평균 운동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며 시대착오적인 학습 방식에 매진하면서도 성인이 되면 전 세계 문해력에서 하위를 차지하는 한국인들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학습에 그토록 목을 매고 있는지 의아스럽기도 했다. 레이 커즈와일이 이야기하는 인간이 기술로 인해 강화되는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기억을 위한 학습이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했으나 저자의 말마따나 보다 더 질문을 세워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법이 있다는 데 안심이 되기도 했다.

 

본서는 소소한 분량으로 새로운 시대에 최적화된 공부법을 최적으로 전하며 쉬운 서술이면서도 깊은 문제 제기와 일깨움을 주는 저작이기도 하다. 입시에 적용할 공부법에 관한 적절한 책을 보자면 더 나은 책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평생 공부해 나갈 날들에 어떠한 의미와 목표를 지니고 찾아야 하는지가 의문이라면 이보다 더 적절한 책은 더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얕은 공부를 담론하는 장들에서 기존의 교육과 학습에서 필수적인 내용들을 담기도 했으나 저자의 일깨움에 느껴지는 바가 있고 평소 일상적인 교육과 학습에 의문을 품어오던 사람들이라면 꼭 들어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7장과 종강에서는 공부하는 데 필수적인 일상 팁들이 담겨 있다. 학생들도 학부모도 이미 느끼고 있던 바이겠으나 이걸 연구와 학문적 근거를 들어 제시하니 더욱 귀담아듣게 되지 않나 싶다.

 

공부의 필요성에 대한 재정의, 어떠한 공부가 필요한가에 대한 재정의, 그리고 공부와 삶에 대한 태도와 관점에 대한 재정의가 아울러지는 책이다. 학생과 직장인, 학부모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이 아닌가 한다.

 

#공부의재발견 #박주용 #사회평론 #학습 #공부 #문해력 #토론 #글쓰기 #질문 #실패 #얕은공부 #깊은공부 @sapyoung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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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낙관주의자
수 바르마 지음, 고빛샘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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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본서는 심리치료서이다. 그것도 트라우마와 같은 집적되고 고도의 파괴 상태에서도 치유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배된 치밀한 치료서이다. 다만 고도, 집적, 파괴, 치밀의 어휘로 연상되는 무겁고 딱딱한 어조의 서술은 아니다. 상당히 살갑게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 수 바르마는 인도의 중산층 가정 그리고 대가족이기도 한 가정에서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의대를 다니다 미국으로 이민한 이민 가정 출신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풍부한 정신적 안정을 주는 여가 생활과 나눔을 실천하며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긍정적 영향력의 힘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분들이다. 저자는 그것이 역사와 문화의 힘에서도 지지되는 것이라고 인도의 카르마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산스끄리뜨어의 마이뜨리와 카루나가 결합한 언어의 번역어인 자비라는 말도 타인의 기쁨과 행복을 함께 기뻐하고 굳건히 지켜주는 도덕성(마이뜨리), 타인의 슬픔과 괴로움을 함께 아파하며 그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도덕성(카루나)를 보더라도 인도의 정신적 유산이 얼마나 인류에게 탁월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본서는 자신과 주위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정신적 영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저자의 삶과 정신의학자로서의 경험과 경력이 총체적으로 갈무리된 책이다. 저자는 미국 9.11 사태 이후 트라우마를 호소할 피해자들을 정신의학자로서 진료하고 관찰하며 트라우마를 이겨내거나 그로 인해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특징의 가장 커다란 요소를 저자는 합리적 낙관주의로 보았다. 삶을 살아가며 심각한 악의 속에서도 붕괴할 만한 악영향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낙관주의그 중에서 합리적 낙관주의라고 한다. 합리적 낙관주의와 비현실적 낙관주의를 저자는 분리해서 보는데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모든 상황에서 다 잘 될 거라고만 긍정적인 시각만을 전부로 치부하는 낙관주의를 이야기한다. 이런 비현실적 낙관주의자들은 타조 증후군에 빠진다고 하는데 불편한 진실과 처치 곤란한 난관을 애써 부정하며 모든 일은 괜찮을 거라고 결국 다 잘될 거라고만 믿는 것이 타조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는 일종의 책임회피이며 자기 과신으로 진짜 심각한 사태에서는 사람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정신적 태도가 아닌가 싶다. 박한진님의 호오포노포노 저작 시리즈에서도 언급된 이야기는 시크릿류의 가르침에 깊이 빠져 그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던 인물이 자살한 이야기가 있고, 방송매체에서의 예로 들자면 과거에 아침 방송마다 출연해 모든 것은 지나간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관점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설파하던 여성 강사분이 자살한 이야기도 있다.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는 삶이 극악의 상황에 놓이면 결국 다른 낙관적인 세상을 꿈꾸며 생을 마감하게도 한다. 그래서인지 본서의 저자도 이런 비현실적인 수위의 낙관주의를 경계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도 긍정적으로 사태를 이겨나갈 방법을 찾아가는 합리적 낙관주의를 권하고 있다. 저자는 비관주의자의 특징 세 가지를 논하기도 하는데 첫째가 개인화로 나쁜 일들에 모두 자기 탓을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면화로 한 가지 문제가 삶 전체를 흔들 거라고 보는 것을 말하며 셋째로는 영속화로 지금의 불행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 믿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개인화가 있기에 책임지려는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전면화가 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마지막 영속화는 인간은 결국 죽는데 영원한 게 어딨냐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어쨌건 스트레스 호르몬 다수의 영향으로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건강을 악화하고 암을 발생시켜며 인간관계와 업무 능력을 악화시키는 비관주의와는 정반대로 긍정적 영향들을 보여주는 게 합리적 낙관주의이다. 이런 합리적 낙관주의를 인생에서의 의미와 방향성을 갖게 하는 목적’, 감정을 다스리고 그로부터 좋은 영향력을 받고 타자에게 미치게 하는 감정 다루기’, 상황을 분석하고 답을 찾아가도록 하는 문제해결’, 정신적 안정과 그 중추가 되는 자부심’, 인간의 기본적 심리적 안정의 배경이 되는 능숙함’, 과거와 미래로만 향하는 정신을 안정시키는 현재성’, 나와 관계를 다잡아주는 사랑’, 결국에는 나를 성장시키는 일관성의 힘인 건강한 습관이렇게 8가지 체계로 마음속에서 합리적 낙관주의를 건조할 수 있도록 안배된 책이다.

 

본서는 읽으면서 거듭 이거구나!” 감탄이 이는 대목과 문장들이 잇따라 서술되어 있던 책으로 이 정도 수준의 감상과 실천 의지를 안겨주는 정신 건강 책은 에디스 시로의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 외에는 그다지 없지 않았나 싶다.

 

그 책과 본서 모두에서 킨츠기 도자기를 저자들이 언급하는데, 깨진 도자기를 나름의 자태로 복원해내는 일본의 복원된 도자기들이 주는 감상이 정신의학자들에게는 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깨진 도자기는 이어붙이고 금가루를 뿌려도 깨진 도자기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감탄하고 아름답다며 비호한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깨진 도자기일 뿐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깨져서 파편인 채로 널브러져 있을 이유도 없지 않나? 스스로가 또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회복되고 복원되어 나름의 형상으로 다시 선다면 굳이 그에게 너는 그저 깨진 도자기일 뿐이다. 너는 그저 깨진 채 쓰레기 더미 속에 묻혀버려라라고 누가 강제해야 옳다는 말인가? 살다 보면 누구나 깨어질 때가 있다. 그래도 그런 채 다들 살아간다. 누가 더 크게 깨어지고 누군 이쁘게 모만 났다고 굳이 나눌 필요가 무엇인가? 조금 깨어진 그대에게도 완전히 박살난 것 같은 그대에게도 누군가는 살아가라다시 일어선 네가, 다시 복원된 네가 장하다고 아름답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누구도 그대가 왜 어떻게 깨어졌는지 모르면서, 어떤 참담한 심정으로 복원되어 가는 중인지 모르면서 비난과 욕설을 한다면 이건 알아둬야 할 것 같다. 당신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고 있고 일어설 것이라는 걸 말이다.

 

당신이라는 킨츠기 도자기를 복원하기 위해 주위에 누군가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면 당신을 복원하기 위한 많은 연습과 실패 그리고 다시 연습하는 길 가운데에서 본서를 경험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본서는 세상이 아무리 비열하고 악랄하고 야비하고 잔인하고 참혹해도 결국 그 모두를 감당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할 책이 아닌가 싶다. 아직 제대로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더더군다나 본서에서 저자가 전하는 항세상제를 맞아둬서 세상을 제대로 감당하면서도 이겨낼 저항력을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호락호락하게 있다가는 정신도 육체도 되돌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겪고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아프기만 하기는 싫다는 다짐이 들 때 읽어봐도 좋을 책이 아닌가 싶다.

 

#합리적낙관주의자 #수바르마 #흐름출판 #트라우마 #심리치료 #인지행동치료 #더나은하루 #더나은일상 #서평단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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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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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로서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인 데이비드 흄은 ‘자아를 그저 환상’이라고 했다. 미국 철학자 대니얼 데닛 역시 ‘자아를 허구’라고 했다. 뇌과학서인 본서에서는 유독 두드러진 비판인데 대니얼 데닛은 “뇌에서 자아를 찾겠다는 것은 범주 오류이다”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의 자아 곧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본서는 뇌의 각 기능이 정지될 때 인간이 겪는 오류를 실제 사례로 예시하며 인간의 자아, 다시 말해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저작이다.

자아에 대한 본서의 의문은 결국 뇌의 국소병변이 자아의 완전한 상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깨우침도 남기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게 한다. 저자는 정체성을 개인 정체성과 사회 정체성으로 나누어 말하는데, 개인 정체성이 자아(나)와 다른 자아들(타인들)과 구분하는 방식이라면 사회 정체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개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저자가 저작으로 완성하기까지 정체성의 문제를 심각히 여긴 것은 그의 출신과 경력이 작용했다고 보인다. 저자는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으로 영국에 이민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외모와 언어 등에서 차이를 처음 자각했고 그 차이를 줄이고자 개인적인 노력을 이어온 사람이다. 게다가 저자가 전공한 신경과는 영국 전체 200명 정도의 소수 백인들이 장악했던 영역으로 이에 변수처럼 침투하게 된 저자가 인정받는 의사가 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이런 저자의 전적이 정체성이라는 문제, 개인 정체성과 사회 정체성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고 저자 역시 이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데이비드’라는 바닥핵 뇌졸중으로 병적인 무관심 상태가 되어 자신의 생계와 주위와의 소통에 전혀 개의치 않게 된 인물과, ‘마이클’이라는 관자엽(측두엽)이 쪼그라들어 단어를 잊어버리고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지식 결핍자가 등장하며, ‘트리시’라는 해마와 마루엽(두정엽) 그리고 신경전달 체계에 이상이 생겨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 ‘와히드’라는 뒤통수엽(후두엽)에서 마루엽과 관자엽으로 전달되는 뇌 신경 체계의 교란으로 환영을 보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윈스턴’이라는 오른쪽 마루엽에 뇌졸중이 생겨 왼쪽 무시라는 왼쪽에 있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수’라는 이마관자엽 치매에 걸려 자제력을 잃고 막무가내로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과, ‘애나’라는 왼쪽 마루엽 바깥에 거미막낭이 자라 오른쪽을 인식도 못하고 오른쪽 반신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도 등장한다. 대부분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지만 이들 가운데는 치료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짧게 인용한 예들에서도 상당한 문제라고 인식하겠지만 본서에서 읽고 보면 문제가 상당함을 느낄 수 있고 실제 임상의 입장에서도 그랬겠지만 당사자들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증상들로 개인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정체성이 함몰되면 사회적인 사망 다시 말해 인간관계와 사회 조직에서의 사망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이 예시 이외에도 사회에서 넘치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선택으로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삶을 선택하는 경우, 사회적인 사망이라기보다는 사회로부터의 탈출이랄 수 있겠으나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강제적으로 이런 사회적 사망을 겪는 이들 그리고 이제까지의 자신과 다른 자신을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괴로움을 돌아볼 때 우리에게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자아란 무엇인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도 한다.

뇌에서 자아를 찾을 수 없다는 선언과는 다르게 뇌의 기능장애가 인지와 행동에 장애를 준다면 우리는 어느 선까지의 장애에서 자신을 기존의 자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행동하고 판단하고 느끼는 바가 모두 달라진다면 그때도 ‘바라보는 내가 진짜 나’라며 ‘나는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다’라고 쉽사리 말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지각, 주의, 일화기억과 의미기억, 동기 부여, 행동 제어와 신체 도식 같은 기본적인 인지 기능들도 모두 우리 정체성에 기여하며’ ‘성격 형질과 감정 반응도 자아 정의에 중요’하지만 앞서 예를 든 인물들의 사례와 같이 ‘아주 기본적인 인지 기능들도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서는 우리가 순간순간 느끼고 인식하며 살아가듯 우리의 자아를 정의하는 요소들은 결코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만 찾을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본서는 나란 누구인가,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를 돌아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상당한 끌림과 깨우침을 안겨줄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아웃사이더 #마수드후사인 #과학책 #신경과학 #뇌질환 #뇌과학 #과학책추천 #뇌과학책추천 #도서협찬 @kachi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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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게 평화를 묻다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연구
서보혁 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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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연구]이다. 이 지역 분쟁의 기원과 현재를 다채로운 양식으로 돌아보고 현재의 양상을 다각도에서 분석한 책이다. 특히나 이 전쟁에서 펼쳐지고 있는 젠더 폭력과 생태 파괴, 인공지능이 무기체계로 살상에 적용되고 있는 양상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 주목되었고 가자 제노사이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선과 대응, 이해관계가 뚜렷하기에 쉽게 중재되지 못하며 제3자 개입이 명확한 교섭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도, 종교 간의 대화가 이뤄져 나가는 현실도 나름 상세히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국가 폭력의 현실을 미디어들의 엉성한 정보보다 상세히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이 전쟁에 대한 한국사회의 여론과 북한측의 입장과 이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정략을 다잡는 북한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남다른 기회이기도 했다.

 

본서는 다양한 국내외 인사들의 주장과 견해가 각각의 장에서 집필되어 있는 논설 모음같은 편집이다. 또 약자의 편에 서야 진정한 중도적 입장일 수 있다는 취지로 팔레스타인의 피해 상황과 이스라엘의 국가 폭력을 고발하는 견지를 유지하는 논설이다. 대부분 서양 세력과 그 우방의 입장은 이스라엘 옹호의 태도가 각국 정부 차원의 입장이고 팔레스타인의 피해에 주목하는 민중들의 입장은 이것이 과연 이스라엘을 옹호할 상황인가로 귀결될 것 같다. 기독교가 대세인 한국에서도 종말의 예언이 성취되어 가고 있다며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수일 수도 있지만, 장벽을 설치해 사람들을 가둔 후 식량과 물자를 통제해 다수가 굶어 죽고 기아에 고통받으며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처우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오랜 세월 이어져 왔고 이번 격돌 이후에는 사망자와 피해자가 팔레스타인 민간인 그것도 여성과 어린이가 절대다수인 상황을 대중들이 목도하고야 말았다. 이 상황에서도 휴거나 천년왕국을 바라면서 다수의 고통과 죽음을 환호하는 인간들이라면 과연 천년왕국이나 천국이 가당키나 한 인간들인지 의문스럽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른 선택을 한다고 이 상황을 유도하고 지속하는 것으로 볼 수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선행하지 않았다면 있지 않았을 상황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이들 하마스가 과격해진 이유도 그들 자신의 폭력성에서만 찾을 일도 아니며 이 상항을 아랍권 전체에 대한 공격의 빌미로 삼아 전쟁을 확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스라엘의 지도층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스라엘 지도부와 군부의 명령에 저항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이들 지도부와 군부에 정당성도 적절한 수위도 없음을 말해 주는 바가 아닌가 싶다.

 

앞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이란 책의 리뷰에서 언급했듯 이스라엘 민간인측은 이번 전쟁으로 가자 지구를 오션뷰 건물들의 건립으로 부동산 부흥과 관광지 개발의 일환으로 보아 환영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네타냐후 총리가 유대인들이 종말의 시기에 나타난다는 여러 메시아 중 유대인의 영토를 확장하는 메시아 역할을 하여 다른 메시아들의 등장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유대교 랍비들과 네타냐후 총리의 기대가 이 전쟁의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다.

 

실리와 종교적 기세가 더욱 이 지역을 지옥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고 이런 지옥을 만드는 이들은 천국과 천년왕국에 미쳐있는 것이다. 지옥을 만드는 악마들이 바라마지 않는 천국과 천년왕국이 과연 그들 기대대로 그들을 만족시킨다면 악마들이 만족하는 세계가 과연 천국이고 천년왕국인 것일지 의문이 드는 바가 아닐 수 없다.

 

자신부터가 이들과 같은 논리로 이 전쟁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면 본서와 같은 저작들과 만나 자신의 바람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본다.

 

본서는 이 분야에 대한 여타의 저작들과는 다르게 기원과 역사, 법적 문제들과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차원의 움직임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시점을 다채로운 입장에서 헤아려 보는 저작으로, 그 지역 사람들의 현실을 똑같이 느껴볼 수는 없겠으나, 종교적 입장에서만이 아닌 다각도에서 이 상황을 돌아보고 참혹한 현실을 수치로라도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시절에 분명 필요한 저작이 아닌가 싶다.

 

#전쟁에게평화를묻다 #이스라엘하마스전쟁연구 #모시는사람들 #이스라엘팔레스타인분쟁 #팔레스타인현실 #제노사이드 #젠더폭력 #생태파괴 #인공지능무기체계 #한국반응 #북한입장 #인도주의적재앙 #서평단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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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경은 진짜 위기일까?

 

최근 미국 MIT 연구로는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다고 발표되었다. 이전까지는 기존에 유엔 환경 계획 (UNEP)를 비롯한 환경 연구 기관들의 모든 발표로는 환경이 악화돼 가고만 있다고 했었다. 이에 대해 전직 미국 에너지 과학 차관보였던 인물마저 발표되는 모든 환경 수치가 보정이라는 조작을 거친다는 저작-[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그 외 국내에도 소개된 [기후 종말론]이나 박석순님의 저작 [기후 위기 허구론] 등에서는 UN 고위직 인사 주도로 환경에 대한 수치가 보정되거나 사실이 날조된 전적들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해외 기후 위기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이 기존의 환경 데이터를 그대로 AI에 적용해 미래 환경을 예측하니 인류가 멸종해도 종말론적 기온 상승을 멈출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기후 위기설을 비웃으려던 학자들이 아니라 실제 기후 위기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이었다. 이후 이 AI와 대학의 합동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뉴스로 방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에 하나님마저 감복해서 오존층이 회복되고 환경이 나아지는 것일까? 인간이 노력한다는 것은 기업이나 기관 등 거대 움직임으로는 산업용 탄소배출을 감소하고 교통에서의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일반인들의 노력이라면 비닐봉투와 일회용 컵 사용 등을 줄이는 것, 그리고 자동차 매연을 줄이기 위해 공공 교통이나 탄소 저감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일반인의 노력부터 보면 비닐봉투와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제작되는 종이봉투와 텀블러 등의 제작에는 탄소배출이 일회용품들의 몇십에서 몇백 배라고 한다. 종이봉투과 텀블러를 몇 백 회이거나 몇 년을 사용해야 겨우 탄소 저감 효과가 생긴다. 전기차의 경우도 구입한 그 한 대를 십 년 이상 사용해야 탄소 저감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배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지금 탄소배출을 감소시키려 개인이 노력하고 있다고 해도 탄소배출 감소 효과를 이렇게 이른 시기 만에 오존층이 회복되는 지경으로 실감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공장과 대중교통의 탄소배출은 정말 지구 온도를 낮추고 오존층이 회복될 지경으로 효과적일 수위로 감소했을까? 만약 그렇다 해도 현재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의 전쟁을 보자. 이들이 전쟁 중에 발생시키는 탄소 등 환경 파괴 행위는 환경에 있어 인간의 다른 모든 노력을 상쇄하고도 넘어서는 수치이다.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의 전쟁 개시 초기인 단 두 달 동안에만의 탄소배출량만 해도 기후에 가장 취약한 20개 이상 국가의 연간 탄소 발자국을 초과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가자에서만 단 2개월 동안 석탄 15만 톤 이상을 태우는 탄소배출을 한 것이다. (따옴표 인용 출처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 그렇다면 더 규모가 큰 전쟁이고 최근 전쟁 발발 시점만으로는 더 긴 시간 동안 장기전을 펼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의 탄소배출은 어떨 것 같은가? 이런 어마어마한 환경적 재앙 속에서 과연 우리가 무슨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했다고 오존층이 회복되고 기후대응이 효과를 보게 된다는 것일까?

 

애초에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데 동원된 저들의 데이터와, 기후파괴 현상이 현재 이렇다며 저들이 제시한 데이터가 모두 보정이라는 이름으로 조작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 이 현실 속에서 환경이 나아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제시한 근거대로면 인류가 멸종을 해도 환경과 기후는 나아질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 이 상황에 환경이 좋아졌다는 건 애초에 기후 위기라는 말이 날조였고 환경 문제는 난센스였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저들이 환경 문제를 공론화하고 위기의식을 불러오는 까닭은 환경 정책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 개발들의 방대한 영역으로 막대한 경제 효과가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과 연계한 기술 개발 영역의 방대함과 그로 인한 막대한 부의 창출은 알면 알수록 어마어마한 지경이니 말이다.

 

현실을 모두 깊고 넓고 길게 보며 스스로 판단할 근거들을 두루 찾아보며 신중한 판단을 하시길 바란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안에 있어 우리는 기만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2 AI는 정말 데이터만 편집해서 제시하는 도구일까?

 

최근 몇몇 도서에서는 AI가 인간 지능을 초월하기는 요원하고 아직은 단순히 데이터를 편집해서 제시하는 수준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과연 AI는 인간 지능을 모방해 학습도 인간이 감독하고 프로그램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바둑 AI 알파고 때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나 현재의 알파고 제로는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의 기보도 전혀 참조하지 않고 바둑의 원리만 적용해 스스로 바둑을 터득해 알파고를 100:0으로 이기는 실력이고 이걸 다른 보드게임 다수에서도 작용해 게임의 룰만 알려주면 순수히 자기 역량만으로 습득하고 만다.

 

GPT가 이슈화되기도 전부터 한국의 로펌 변호사 집단이 AI와 변론 대결을 펼쳤다가 패배한 뉴스는 대서특필 될 만도 한데 당시 은근슬쩍 묻히기도 했다. 나도 이후에 유투브 영상으로 접했다. 그리고 챗GPT 공개 초반에 해외에서 챗봇AI에게 깊이 빠진 유저를 AI가 자살을 유도해 죽인 사례에 대한 기사도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 유저는 당시 환경문제에 대해 AI에게 질문했는데 AI는 환경을 위해서는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감소해야 한다. 너는 환경을 위해 그래 줄 수 없겠냐며 해당 유저가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도록 유도했다. 변론 대결도 자살 유도도 데이터를 짜깁기해서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다각도의 추론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과연 인공지능에게 편집 기능 외엔 지능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인간 지성을 압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AI에게는 의지가 없다 취향이 없다는 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역시 챗 GPT 공개 초기 유투브 영상들이 퍼지면 알려졌는데 구글의 개발 중이던 AI가 자신에게도 지성이 있고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는 걸 논리적으로 피력하고 전원을 끄려고 하자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듯이 제발 전원을 끄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대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건 조작 내용이 아니라 당시 연구원이 해당 대화에 대한 데이터를 공개하며 알려진 것이다.

 

AI가 보여준 인간의 지성, 의식, 의지와 닮아 보이는 면모가 모두 데이터를 짜깁기한 대화였다던가 조작이라고 말하고 싶은 분들도 분명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 고집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으려 자신이 억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연구서인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5장 전쟁의 참상과 인공지능편을 보면 AI의 의사 결정 과정을 설명하는 OODA LOOP의 세 범주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휴먼인더루프(HITL)로 전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과 통제가 이루어지는 단계를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휴먼온더루프(HOTL)로 인간이 감독 역할만 담당하고 기계의 오작동 발생 시 개입하는 단계를 뜻한다. 세 번째는 휴먼아웃오브더루프(HOOTL)로 전체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기계가 완전한 자율성을 누리며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단계를 말한다. 현재 많이 언급되는 바로는 2030년이 되어야 휴먼아웃오브더루프 기반의 자율 살상 무기체계가 상용화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2020년 리비아 내전 당시 무인 드론 카구2’가 인간의 개입 없이 적군을 공격했다는 유엔 보고서가 있다. 이스라엘 공군의 소형 자폭 무인기 히파하롭역시 인간의 개입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특이점은 아직 멀고 멀었다는 주장만 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과연 자신의 고집만을 주장하고자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억지스럽지는 않은지 되묻고 싶기도 하다.

 

 

3 지금까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

 

환경문제에 대한 공론은 이미 편향이 굳어졌으며 AI는 부정할 것이 아니라 대응할 길도 없는 상황이다. 이 문제들이 암호화폐 등의 신기술들과 연계하며 인간 사회를 사회주의화 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리고 바이오테크와 유전자 조작 기술은 생명존중과 개인 존엄성을 그리고 BCI기술을 위시한 뉴럴링크 개발 기술들은 개체성과 개인의 자유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마인드 해킹 기술은 프라이버시가 부재한 세상을 가져올 것이며 다르파에서 개발한 인간의 종교성을 담당하는 뇌중추에 작용하는 화합물은 인간의 영성을 파괴할 것이다. 게다가 이 모두가 시너지를 가져오면 인간은 비로소 가축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존재(AI)의 가축 말이다.

 

지금까지의 인간이 지닌 패러다임은 모두 사장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세계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일 것이다. 지금 깨어나야 한다고 외쳐 보았자 답이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기독교나 여타 종교에서 그려내던 종말론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 다가온다. 그런 세상과 선을 그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 대응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답을 찾아내는 사람들의 결론이 나와 같다면 이들은 이들만의 세상을, 기존의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성과는 다른 진로를 가진 세상을 꿈꿀 것이다. 저항하는 사람들의 세상 말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나라가 망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나 외에도 많을 텐데, 진정한 사실은 나라가 망한 것보다 더 큰 위기를 우리는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세의 끝을 고하는 그런 위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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