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람 살려. 윽윽. 카악.


물괴 천지인 전답, 들녘,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은 금새 물괴의 괴성으로 바뀌고 있다.

 

도성 안이 온통 물괴의 천지가 되었다. 


궁이라고 안전할리는 없었다. 오히려 폐쇄된 그 공간을 침범하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로 인해 궁 안 전체에 물괴가 창궐할 터였다. 



왕좌를 차지한지 오래지 않은 이유는 왕이 어찌 궁을 버리겠으며 도성을 떠나겠느냐며 버텼다.


이제 궁인들과 공신들 중 몇몇만이 그의 곁에 남아있지 모두가 떠나버린 상황이다. 


소용 박 씨,, 근빈 박 씨,, 숙원 신씨가 모여있는 정희왕후의 처소에서 이유는 참담한 심정으로 말했다. 


-이제는 벗어날 수도 없소. 


-신첩 최후까지 전하의 곁에 남겠습니다.


-소첩도 전하와 마지막을 함께 하겠나이다.


정희왕후의 비장한 말을 소용과 근빈도 입을 맞춘 듯 따라 했다. 


그때 숙원은 낯빛이 해쓱한 채로 아무 말 못하고 앉아있었다. 


-숙원 어디가 편치 않은 게요? 어찌 그리 죽을 상을 하고 앉아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는 거요?


-전하 그것이 아니오라.. 그것이 아니오라.. 윽.. 캬아악.


숙원이 느닷없이 돌변하며 물괴의 낯으로 변하더니 바로 곁의 근빈의 목을 물어뜯고는 소용의 얼굴을 씹어 뜯어냈다. 


처소에서 괴성이 들리자 호위무사 이계가 뛰어들어 숙원의 복식을 한 물괴의 등을 베었으나 물괴는 돌아서 이계에게 달려들었다. 


이계는 한걸음 물러서며 아직 공중에서 뛰어오른 채인 물괴의 목을 잘랐다. 


피가 낭자하게 퍼지며 그의 의복과 처소 바닥에 스미었다.


-소용 근빈 괜찮은 것이오. 


공격을 받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소용과 근빈은 몇 번 경련을 하듯 몸을 뒤틀더니 일어나, 하나는 놀라 일어선 정희왕후를, 하나는 이유에게 달려들었다.


이계가 재빠르게 이유에게 달려드는 소용의 목을 쳤으나 근빈을 막지 못해 정희 왕후는 왼쪽 눈을 뜯기고 말았다.


-아아악~


이계가 정희왕후의 눈을 파먹은 근빈의 목을 쳤다. 


-중전. 중전. 이를 어이 한 단 말이요.


-전하 신첩을 죽여주시옵소서. 더 늦기 전에 저의 목을 어서 빨리 쳐주시라는 말입니다. 


얼굴 전체가 피투성이가 된 중전은 피가 쏟아지는 휑한 한 쪽 눈을 왼손으로 가리고 처참한 지경이 되어 이유에게 애원했다.


망설이던 이유는 중전이 경련을 하려 하자 이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10


궁인 몇과 호위무사 이계만을 데리고 이유는 근정전으로 향했다. 하루 아침에 왕후와 비빈을 모두 잃은 이유의 표정은 무겁기 그지 없었다.


그는 궁인들과 이계를 남겨두고 홀로 근정전 안으로 들어섰다. 근정전 내부에는 피 냄새가 진동하며 시신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널브러져 있다.


그가 용상을 올려다보자 피를 뿜는듯한 혈색의 보랏빛 입술의 피 범벅을 한 재상 복장의 물괴가 그를 내려다보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이유는 참담한 심정으로 토해내듯 이 말을 내뱉었다.


-어찌 거기 있느냐? 그것은 나의 자리다. 내가 어찌 그 자리에 오른 것인지 네 정녕 모른다는 말이냐? 썩 내려오거라.


물괴가 그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달려들려 몸을 날렸다.



11


예탁은 가마 위에 덮어두었던 호피를 뒤집어쓴 채 동영 곁에서 다시 집으로 향해 걷고 있었다. 며칠을 어렵게 온 길을 되짚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민은 예탁의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지만 동영이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으며 묵묵히 걷자 조금 빈정이 상했다.


지성이 그런 그녀를 흘깃 보더니 동영에게 말했다.


-마님, 이제 처가에 피신하는 길 밖에 없는 것이겠죠. 


동영은 대답 없이 하늘을 한번 쳐다봤다. 


-이제 달이 떴구나.


-서방님. 가문의 안위는 걱정되나 후일을 도모하시고 지금 이 순간을 이겨 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디 묵을 자리부터 보아야지요. 


본가가 어찌 되었는지도 모르는 동영의 처지가 예탁은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달을 보며 한숨을 쉬며 한마디를 하는 동영에게 예탁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말했다.


-마님, 힘을 내셔요. 사람들이 저리 많으니 노숙을 하더라도 오늘은 안전할 거여요.


지민은 동영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피난민 같은 무리더라도 그들을 뒤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니 안심이 되지 않는가?


동영이 지민을 돌아보며 약간은 책망하는 눈빛으로 이리 말했다.


-사람이 많으면 산짐승들이 덤벼들 우려가 더 크지 않겠느냐? 호랑이라도 덤벼든다면 어찌 안전할 수 있겠어.


-안심하시오. 호랑이도 사람이 이리 무리 지어가면 피해 간다오. 


철재가 차분한 말로 동영을 안심시키려 했다. 염석은 지쳐서 그만 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말했다. 


-어디 적당한 자리 찾아서 오늘은 예서 묵자. 계속 걷는다고 마을이 나올 것도 아니라잖아.



12


조금 전 저녁 아낙에게 손목이 끌려왔던 투실한 소녀가 아껴두었던 말고기 한 점을 뜯어 먹으려 했다. 그 아낙이 나서며 말고기를 낚아챘다.


-아까 얼마나 받았길래 이것이 남아있는 거여. 어린 계집이라고 더 챙겨준거여 뭐여.


-아니랑께요. 지가 아껴둔 것이랑께유. 


아낙이 못 들은 체하고 제 입에 집어넣으려 하자 소녀가 아낙의 손을 잡고서 팔뚝을 물었다.


그때 예탁은 먼 발치에서 그들을 향해 문득 고개를 돌리다 그 모습을 보았다. 그들을 바라보던 예탁의 눈빛이 점점 떨려왔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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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래서 지금 한양은 고사하고 왕도를 둘러싼 지역 전체에서 사람들이 물괴로 변해 멀쩡한 사람 하나 없는 지경이오. 사람들 말로는 궁도 범해져서 임금도 물괴가 되었다 하더이다.


-네. 이놈, 그 요망한 입 다물지 못할까? 어디 전하의 안위를 가지고 망발이란 말이냐?


-망발은 무엇이 망발이란 말이요. 그것이 작금의 현실이오.


한성부 소식을 전하던 사냥꾼에게 동영이 놀라고 대노해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무엇이 망발이란 말인가? 그들 주위에 바위와 평지마다 피난민을 방불케 하는 지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쉬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도 그런 그들을 거쳐 동영이 예까지 왔던 길을 서둘러 짚어가고 있지 않는가? 


-임금이 그리된다 해도 뭐 그리 망측한 일이겠소. 충신인 김종서 대감을 비롯해 숱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조카에게서 왕좌를 찬탈한 대악인이 아니오. 이제는 그 조카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지 않소. 


-옳고 그름은 역사를 누가 쓰느냐에 달린 것이다. 결국에는 현군으로 기록될지 뉘 알겠느냐?


-옳고 그름을 그리 알 수 없는 시대라 이런 일이 나는 게 아니겠소?


........................................................


예탁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옹기종기 앉아있는 틈바구니를 다니다 치마와 저고리가 피투성이인 자기 또래의 한 소녀보았다.


-괜찮으시오? 


-예, 아씨. 저는 괜찮습니다. 흑흑.. 괜찮아요.


예탁이 자기 또래의 천민 소녀에게 안스러워 묻자 소녀는 아마도 가족을 흉사에 잃은 것인지 괜찮다는 말을 하며 서러움에 북받쳐 울고 말았다.


-쟈도 그렇네. 


예탁 뒤 건너 자리에 있던 무리 중 아낙네 한 명이 예탁과 말을 주고받던 소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다친 손을 잡아 유심히 보더니 말을 이었다.


-야도 물리고 멀쩡하네. 다른 사람들은 다 물리면 물괴로 변하던데 너는 어떻게 괜찮은 거여. 


-저도 모르겠어요. 


아낙은 뭐 시비 붙을 꺼리라도 발견한 것처럼 자기 자리에서 그 소녀와 비슷한 또래의 소녀 손을 끌고 왔다. 아낙이 핏자국이 낭자한 그녀 저고리의 고름을 풀어 당기자 어깨의 깊은 상처가 보였다.


-니랑 쟈랑 뭣이 어떻길래 괜찮은 거여?


-내가 그걸 어떻게 안대유? 아프니께 그냥 놔 주시랑께유. 


예탁도 두 소녀를 유심히 보았지만 깡마른 천민 소녀와 아낙이 데려온 투실하게 살찐 소녀에게서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딸도 저 처자들과 같은 또랜데 물괴가 되고 말더만 이 처자들은 어떻게 괜찮은 거야?


아낙이 소녀들을 모아 놓고 시끄럽자 소녀들 뒤에서 농부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놀라 물었다.

..............................................................


지민은 놀라 가마 옆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다른 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곁에서 지성은 가마꾼들과 함께 이게 무슨 일이냐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때 그들 곁으로 사냥꾼 무리가 걸어왔다. 


-철재야, 저거라도 먹자.


도끼를 든 남자가 잠시 전 동영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 사냥꾼에게 나무에 메어진 동영의 흑마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염석아. 한 명 정도라면 타고 빠져나가는 게 더 낫겠지만 저 사람들 예까지 도망 오며 먹지도 못했을 테니 먹는 게 맞겠다 싶다.


-맞긴 뭐가 맞다는 말이요. 이런 명마를 잡아먹는다는 게 말이나 되오?


도련님이 애지중지하는 명마를 잡아먹겠다며 들이닥치는 무지몽매한 자들을 가로막으며 지성이 나섰다. 


-명마? 명마가 사람을 살리면 그때는 더 유명한 말이 되는 거 아니냐? 


-내버려 두거라.


도끼를 든 염석의 말에 동영이 지민 곁으로 다가오며 지성을 말렸다.


-마님, 신행길에서 타고 가던 말을 잡아먹는다니요.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쩐단 말이냐? 신행길에서 더는 갈 곳이 사라졌지 않느냐?


지민이 하는 말은 당연한 말이었으나 동영은 본가의 모두가 어찌 되었을지 걱정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살고 나서 후일을 도모하자는 생각이 앞섰다.

예탁은 가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며 동영을 먼 발치에서 보고 시댁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이런 일을 겪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본가를 걱정할 동영의 마음을 헤아리기 쉽지 않겠구나 싶어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무슨 물괴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사람이 다 당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그들 곁에 와 예탁이 다행스러울 수도 있는 소식을 전했다.


-그게 무슨 말이요, 부인. 


-저들 중에 물괴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는데 상처만 있을 뿐 멀쩡하지 뭡니까?


-이들 말로는 물괴에 당하면 끝이라던데 그게 아니었소.


동영은 희소식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어찌 된 일일까 하는 의아함이 일었다. 


-그거 너무 기대 마시오. 내가 이미 살아난 이들을 보았는데 오직 젊은 처자들 중에서 일부만 그러하오.


-젊은 처자는 괜찮단 말씀이셔요?


철재가 희소식을 부정하는 말을 했지만 지민은 너무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거 내 생각에는 아마도 처녀만 괜찮은 것 같아. 그러니 첫날밤은 보내고 신행을 나섰을 이 신부는 걱정을 해야 할테고 아마도 처자는 괜찮겠지.


염석의 그 말에 지민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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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웹소설 쓰기 - 단계별로 따라가는 웹소설 맞춤 수업 Daily Series 17
김남영 지음 / 더디퍼런스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웹소설을 도전해 봤는데 예전 수필만 올리던 때와는 다르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걸 본서를 읽으면서 깨우쳤다. 장르를 분류하는데 있어 숙련 저자도 오해나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데 우선 놀랐고(그래서 나도 장르 분류를 다시 고쳤다) 키워드로 작품의 개성과 대강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유치하고 긴 제목이더라도 작품이나 등장인물의 개성을 보여줘 제목만으로 어떤 내용일지 제시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로그라인이라고 한 줄 줄거리로 작품을 소개하는 법도 배웠다. 분량에 대한 부분에서도 놀랐는데 연재 분량의 1일 권장 글자 수가 5,500자라는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분량의 거의 2배에 가까운 분량이라 연재가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다.


실제 집필 그러니까 웹소설쓰기에 대한 장에서는 일반적인 소설 쓰기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들도 있었다. 일반 소설의 지문보다 적어야 하며 장면전환이 빨라야 한다는 것은 이미 실천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웹소설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이 아니다. 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라 순수문학 보다 융통성이 있으리라 믿고 희곡 작법과 소설 작법을 절충한 글쓰기를 시도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소설의 차이점이라는 3인칭+1인칭 시점이라는 것은 사실 시도해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게 등장인물마다 3인칭이었다가 1인칭이 되면 뭔가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은 글 같을 듯한데... 다른 웹소설을 읽어봐야 어찌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말 줄임표의 사용 그러니까 말을 얼버무리는 듯한 대사는 쓰지 말라는데 나로서는 그게 습관적으로 그러던 경향도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관작수(관심작품등록수)가 늘면 좋아라 했는데 그게 하등 관련 없고 댓글이나 관작수 보다는 연독률 그러니까 조회수가 중요하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짧은 분량의 책인데 웹소설만의 특징을 모르고 입문하는 이들에게는 유익한 책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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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이 만드는 뇌 혁명
제임스 킹스랜드 지음, 구승준 옮김 / 조계종출판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마음챙김이 만드는 뇌 혁명]이라는 본서의 원제는 [SIDDHARTHA'S BRAIN]으로 30년 경력의 영국 과학 저널에 편집자인 제임스 킹스랜드 씨가 쓴 저작이다. 명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뇌의 상태와 심리적 기능에 대해 논하고 있는 저작이다. 영어 원제마따나 초중고급의 명상자들의 뇌에 대한 연구를 일반인 또는 심리학적 이상이 있는 이들의 뇌와 비교하며 붓다의 뇌는 이러했을 것이다는 추론을 더해 독서의 몰입도를 높인 책이다.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뇌 보다 왜 심리학 상의 문제를 가진 이들의 뇌와 비교했을까 하는 의문이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범주에 속하는 일반인들도 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일생 동안 대낮에도 환영이나 환청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20~40퍼센트의 사람들이 잦은 피해 망상에 시달린다고도 한다....... 또 불안증, 우울증, 신경증은 정신질환 중에서 여타 다른 증상보다 흔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정신질환을 한 번도 앓은 적이 없는 사람들조차 일상다반사로 겪는 일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 망상이나 환영, 환청 등은 중증 우울증 환자들도 자주 경험하는 증세라는 것이다.'

 

간략히 더하면 여기다 양극성 장애(우울함과 고양감, 과잉 행동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증상)라고 하는 다행증은 미국과 유럽 인구의 1~1.5퍼센트가 해당된다고 진단받는다는데 실제로는 25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런 증상을 경험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우리도 TV에서 우울증 외에도 폐소공포증이라던가 범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연예인을 흔히 보는데 일반인 중에도 이런 진단을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고 정신과 방문을 꺼려서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증상을 경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정신병이라던가 정신질환이라는 진단 자체를 정신과 약제를 판매하기 위한 선동이라고 주장하는 정신의학자가 쓴 저작도 있으리만치, 우리가 터부시하는 정신질환은 우리가 그리 쉽게 경계를 지을 수 있도록 우리와 명확한 선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본서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기억의 되새김이나 미래를 상상하는 사고 작용을 '마음 이론'과 '마음의 시간여행'이라는 용어를 빌려 정의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당연한 심리적 상황이라며 '디폴트 모드' 또는 '흔한 마음의 방황'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인간의 공감과 사회활동, 창의력 등 다양한 이점을 주는 이 특성이 역기능을 할 때가 문제가 되는데 인간이 트라우마와 우울증, 신경증 등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는 이것이 과도하게 기능하는 순간들과 같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적 평범한 특성이 가장 인간적인 문제인 괴로움을 자아낸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인 주장이다.

 

본서는 이 디폴트 모드 신경망의 일상적인 기능을 조율하는 해당 뇌의 부위들과 그 기능을 설명하면서 일반인 또는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과 초보 명상가, 숙련 명상가, 그리고 일생을 수행에 전념해 온 노련한 명상가의 단계적 뇌의 차이와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간간이 불교 교리와 붓다의 생애에 대한 기록도 보이지만 종교적인 호불호를 배제하고도 충분히 의의가 있는 책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어떤 정신과적 문제로라도 정신과 약제를 복용해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뇌의 상태 변화가 심리적인 영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구나 하고 느껴보셨을 것이다. 하지만 명상 수행이나 쿤달리니 요가 수행, 소주천 수행 등이 어떻게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을 품는 분들도 많을 듯한데, 그에 대한 부분적인 답변이 되는 저작이면서 납득하기 쉬운 이론적 근거가 될 수도 있을 저작이라고 생각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뇌는 손상을 입으면 되돌릴 수 없고 우뇌의 기능 향상이 창의력을 넘어 뇌 기능의 전반적인 도약을 위해 필수적이며, 알파파가 뇌의 가장 유효한 최적의 기능을 불러오는 뇌파라는 식의 정의가 상식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뇌는 회복될 수 있다는 뇌 가소성이 상식이 되었으며 일상에서 명상적 평온을 불러오는 것은 우뇌가 아니라 좌측 전전두엽(결국 좌뇌)이고 알파파 상태의 뇌 기능은 뇌의 기능에 일부만 설명할 뿐 세타파와 깊은 명상 상태의 감마파까지의 기능도 논하고 있는 과학적 발전이 있었다. 앞으로의 발전이 더더욱 심도 높은 우주와 존재에 대한 해석의 틀이 되겠으나 굳이 지금까지만의 과학적 발견을 근거의 모든 것으로 오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본서가 말하는 뇌 과학뿐만이 아니라 어느 과학이던 현재의 과학적 발견과 시대적 한계를 간과하고 우주와 존재에 대한 모든 해석의 틀의 다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수긍할 근거 정도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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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유를 치고 선왕을 복위시키자는 것이 아니오.


-이 자가 미친 게로구나. 네 정녕 목숨을 내놓고 싶지 않다면 어이 내게 와 폐왕 복위를 운운하는 것이냐?


공신인 홍윤성을 찾아와 재야 사림의 남효온은 당당한 것인지 미친 것인지 폐왕이 된 이홍위의 복권을 논하고 있었다. 홍윤성은 남효온의 주장보다도 자신을 찾아온 것 자체가 이후 자신에게 문제 삼을 이들이 있을 것이 자명하기에 '이 자를 어찌 처리해야 할 것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도 그리 오래 할 고민이 아니었다.


-이 중차대한 문제를 내가 왜 공을 찾아와 논하는 것인지 정녕 모르겠소?


남효온은 홍윤성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다소 짧은 그 시간 동안에도 계속 얼굴을 쓸어내리고 점점 땀을 흘리며 눈은 점점 충혈되어 갔다. 그가 그런 낯색으로 발작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몇 차례나 꺾으며 홍윤성에게 묻자 홍윤성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방 한편에 장식된 사인검을 조용히 들었다. 


하지만 그가 등을 돌린 사이 남효온은 어느새 온 얼굴의 혈관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땀구멍으로 피를 흘리는 듯 붉은 기가 가득한 낯빛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뜻을 내 알 필요가 있겠는가.. 공이야말로 오늘이 공의 마지막 날임을...


홍윤성은 말을 하며 남효온이었던 이 생명체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을 향해 돌아서며 사인검을 휘두르려다가 흠칫 놀라 말을 잊고 말았다.


-무엇이냐... 네 정녕 무엇이란 말이야?


붉은 피를 덮어쓴 듯한 그것을 향해 소리치는 홍윤성에게 그것이 달려들었다. 혈안이 터질 듯이 크게 뜬 눈으로 보랏빛 입술 사이의 흰 이빨을 드러내며 그것이 자신에게 달려들자 그는 검을 들어 그것의 배를 관통하였다. 하지만 배가 뚫리면서도 그 기세 그대로 달려든 그것은 홍윤성의 양팔을 부여잡고 선 미친 듯이 홍윤성의 목을 물어뜯었다.



5


-여기서 좀 쉬어 가시지요. 다리도 아플 텐데...


아직 해가 서산마루에 있을 때쯤 가마꾼 네 명이 메고 있는 호피로 덮여있는 가마와 그 옆에 가마를 지친 듯 따라오는 지민을 돌아보며 흑마를 탄 신랑 동영이 말했다. 가마 안의 예탁은 가마를 타고 있는 자신이 다리 저릴까 봐 걱정해 주는 동영의 세심함에 가슴 깊이 '참으로 다정하신 분이구나' 생각했다.


-아니옵니다. 서방님 어찌 이 늦은 시각에 지체하겠사옵니까?


-그래도 오랜 신행길이니 잠시 쉬어 가는 것이 맞겠지요. 아픈 다리도 좀 풀어야 하지 않겠소.


신부인 예탁의 말에 대꾸하는 듯했지만 동영의 눈은 지민을 향하고 있었다.


-예. 아기씨 아니.. 마님 가마꾼들도 지칠 터이니 잠시 쉬어가시지요?


-잠시들 쉬시게나.


동영 곁의 종자인 지성이 동영의 눈치를 보고는 가마꾼들에게 지시했다. 


가마에서 내린 예탁은 가마를 향하고 있는 동영의 눈길을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인 영 대감을 찾아온 동영의 모습을 보고 잘생긴 도령이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호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년 사이 사주단자가 오가고 혼사에 이르기까지 말도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사이였다. 게다가 첫날밤에도 합환주 몇 잔 마시고 곯아떨어져 첫날밤도 치르지 못한 사이였기에 신랑에 대한 커다란 호감 같은 건 없었는데 가마 안의 자신이 피로할까까지 걱정해 주는 따스함에 소록소록 정이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에 말을 메어둔 신랑이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다. 예탁은 낭군의 배려와 애정만 있다면 시집에서의 삶도 견딜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탁은 그를 보며 마주 미소 짓고 있는 지민을 보지 못했다.


-힘들지는 않으셨소.


-제가 힘든 것보다 가마꾼과 이 아이가 힘이 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기 저 바위에 앉아 조금 쉬시겠소?


널따란 바위 위에 예탁과 동영이 앉자 예탁의 앞에 지민이 동영의 곁에 지성이 서있었다. 


-정아, 너도 예 앉거라. 


-제가 어찌..


예탁이 지민을 보고 권하였으나 지민은 짐짓 사양하는 체 했다.


-어서 앉으라는데두.. 나야 예까지 앉아 왔지만 넌 그 먼 거리를 꼬박 걷지 않았느냐?


-예, 마님... 


-부인 잠깐 쉬고 계시오. 요깃거리라도 구해 오겠소. 가자 지성아!


지민이 바위 위에 앉자 동영이 사냥을 하려는 것인지 열매라도 따오려는 것인지 지성과 함께 가자고 재촉했다. 지성은 조금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예탁과 지민이 있는 바위를 돌아보고 말았다.


-정아. 저 지성이라는 이가 너를 맘에 있어 하는 모양이구나.


-마님, 망측한 말씀 마셔요.


지민은 예탁의 말에 짐짓 화가 났지만 용케 참으며 대답했다. 


-어이. 뿔이 난 게야. 너와 내가 나이가 같은데 이제 나도 혼인을 하였으니. 너도 짝을 찾아야 할 게 아니냐? 지성이라는 자가 나이도 너와 비슷하고 용모도 저리 출중하니 네 짝으로 어떻겠느냐?


지민은 이미 자신에게 마음을 보인 동영에게 남은 생을 의탁할 생각이다. 비록 자신의 본래 신분을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앞길이 창창할 대제학 자제의 첩이 되어 남은 생을 여유롭게 보내고픈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저런 종자놈과 짝을 이뤄야 한다니... 순간 예탁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분노가 일었다.


-그런 흉한 소리 마셔요. 저는 그냥 혼자 살겠습니다.


-하하.. 알았다. 알았어. 네 마음이 정해지면 그때 얘기하자꾸나.



6


-도련님, 이제 이 산만 넘으면 마을인데 길을 재촉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는 다리도 안 아픈 게냐? 네 말마따나 산만 넘으면 마을인 것을 좀 쉬어간들 어떻겠느냐? 


동영이 말하는 찰나 지성은 나무들 사이에서 빛 좋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다행이다 싶어 소리쳤다. 


-도련님 개복숭아 열매가 있습니다. 저것으로 마님 쉬시는 동안 잠시 요기는 되겠습니다.


-이놈아 너는 어찌 같이 걸어서 온 소녀 배주린 것은 걱정 안 하고 마님 걱정만 한단 말이냐?


개복숭아를 열심히 따고 있던 지성은 뭔가 들킨듯해 서둘러 둘러댔다.


-저희 같은 종들이야. 조금만 먹어도 힘이 나겠지만 마님은 귀하디 귀하게 자라신 분이라 금새 배가 주리면 어쩌나 걱정을 했을 뿐입죠.


-뛸 일도 없고 걸을 일도 적던 규수와 뛰어야 살 수 있고 허드렛일에 힘겨운 소녀 중 더 주린 이가 뉘겠느냐?




동영과 지성이 개복숭아를 싸 들고 오는 사이, 산 넘어 마을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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