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마침 학교로 들어서던 다영이 루다와 주연을 보고는 루다에게 물었다.


-루다야! 그날 괜찮았어.


-무슨 소리야. 괜찮았냐니?


루다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너 그날 약에 취해서 잠들었잖아. 


-약이라니 무슨 약?


약이라는 말에 주연이 이상해하며 다영에게 조금 추궁하는 듯이 말했다.


-그날 희찬이 진우, 상연이랑 술 마실 때 왜?


-그날 술자리 끝나고 집에 잘 들어들 갔잖아. 그날 밤에 확인 전화도 해 놓고는 무슨 소리야? 


-아!


루다의 말에 그제서야 다영은 알겠다는 듯 탄성을 했다.


=그렇구나. 그 남자가 알려준 대로 엄마가 다친 아침을 바꾸니 현실도 일부 바뀐 거구나.


-아니야. 내가 다른 일이랑 착각을 했나 봐.


-싱겁긴.


그렇게 주연이 그냥 웃어넘기듯 지나가려 했고 루다도 별일 아닌 듯 지나쳤다.



12 


-니들 오늘도 한 잔 할래?


그날 괴물로 변해 사라졌던 희찬, 진우, 상연이도 멀쩡하게 나타나 다영과 루다, 주연에게 다시 한 잔하자고 제안했다.


-아니 우리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뭐야? 무슨...


다영이 희찬의 말에 다른 약속 있다며 거절하자 루다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려는데 다영이 입을 막았다.


-얘들아. 아까 내가 말한 약속 있잖아.


다영이 다시 둘러대며 루다와 주연을 끌고 희찬이를 지나쳐왔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들과 거리가 생기자 다영이 말했다.


-쟤네들 아주 질이 나쁜 애들이야. 너희들에게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는데 쟤네 아주 위험한 애들이니까 어울리지 마. 알았지?


-뭐가? 뭐가 위험하다는 건데?


주연이 볼멘소리로 따졌지만 다영은 딱히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없는 현실이었기에 얘네를 납득시킬 근거도 없었다.

다영이도 사실 현실이 바뀌었다면 쟤네들도 괴물이 아니고 약을 타는 그런 애들도 아닌 현실이 펼쳐질지도 모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타 우크쉬타시 마히마나마사타 디비 루드라소


그때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렸다. 무슨 진언을 외는 듯도 하고 경전을 읽는 듯한 낮고 여운이 있는 목소리였다. 


-얘들아, 너희 무슨 소리 안 들리니?


다영이 소리가 어디서 들리나 두리번거리다가 아이들을 돌아보자 루다도 주연이도 마네킹처럼 멈춰있었다.


-아디 차크리레 사다흐 아르찬토 아르캄 자나얀타 인드라얌 아디 스리요 다디레 프리스니마타라흐


진언 같은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다영은 아이들 외에 주변도 다 둘러보는데 모든 것이 멈춰있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공중에서 그 남자가 나타나 하강하고 있었다. 


-또 나타났군요? 


-어! 니가 불안정해지는 게 나도 걱정이 돼서 와봤어.


이 남자는 매번 다영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만 같다. 다영인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 소리는 뭔가요? 


-너도 들리니, 이제? 


-그럼 이렇게 울리는데 안 들리겠어요? 


-너의 세계에서도 들릴지는 몰랐거든.


-자꾸 너의 세계, 너의 세계하는데 그럼 당신 세계는 어딘데요? 당신이 내게 오듯이 나도 당신에게 갈 수는 없나요?


-우리의 세계는 곧 너도 경험하게 될 거야.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 굉장히 빠를 수도 있어.


다영은 곧 경험할 일이라면 지금이 아닐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저 남자가 찾아오길 기다리게 되는 순간부터 찾아오길 기다리느니 자신이 찾아갈 수도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금이면 안 되나요?


-글쎄.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안될 이유는 없을 것 같네. 너에게도 그 영감이 베다 외는 소리가 들린다면 어느 정도는 너의 세계와 우리 세계가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거니까 우리 세계에 네가 오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100퍼센트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말야.


-그럼 함께 가봐요, 우리. 당신의 세계로.


-나의 세계가 아니야. 우리 세계지. 


-어쨌든요.


남자가 잠시 다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들리니?


-뭐가요?


-이젠 안 들리니?


다영은 아까 들리던 그 소리를 말하는 거구나 싶어 가만히 집중했다.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아까처럼 명확하지는 않았다.


-들리긴 들리는데 아주 선명하진 않아요.


-들린다면 집중해 봐. 그럼 더 선명하게 들릴 거야.


다영은 다시 집중했다. 그러자 그 베다 외는 소리라는 것이 점점 더 선명하게 울려왔다.


-요 자타 에바 프라타모 마나스반 데보 데반크라투나 파르야부샤트


다영은 소리가 명확해지자 남자를 바라봤다. 그 남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았다. 행복한 꿈을 꾸는 듯한 자기 얼굴을.



13


-야스야 수쉬마드로다시 아브야세탐 느리마나스야 마흐나 사 자나사 인드라흐


남자의 눈에 빠져드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주변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인도의 어느 시골 벌판 같은 환경으로 주위가 바뀌자 다영은 이제 이 남자의 세계로 왔구나 생각했다.


-환영해. 우리 세계로 온걸. 


다영은 남자의 말에 환히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량한 벌판 가운데 머리에 터번을 쓰고 윗옷을 벗은 채 큰 무화과나무 아래 한 노인이 눈을 감고 주문을 외듯 베다를 외고 있었다.


-영감. 시끄러. 그만 좀 해. 온 세계가 울리고 있잖아. 그 시끄러운 경전 외는 소리에 말이야.


-경전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시끄러운 것이다. 신성한 경전을 시끄럽다 여기는 마음으로는 결국 니 갈 곳도 머물 곳도 찾지 못할 거야. 


-허구한 날 베다를 암송하고 있는 영감도 갈 곳 머물 곳 모르면서 남 이야기는 잘도 하네. 


다영은 궁금한 게 많았다. 남자에게 물어봐도 좋겠지만 뭔가 스승의 느낌을 풍기는 노인에게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 여기는...


-난 니 할아버지가 아니다.


노인이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저 녀석처럼 불러도 괜찮다. 처음 보는 이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구나.


-네. 영감님. 여기는 어딘가요?


-네 눈에는 어디로 보이느냐?


-인도 같은데 아닌가요?


-그저 벌판일 뿐인데도 인도인 걸 알았다는 말이지? 너는 뭔가 영감이 있는 아이 같구나.


노인의 말에 남자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이 지경에 영감이 생기지 안 생기겠어.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영은 그들 옆으로 폭이 넓지 않은 계곡 같은 물줄기가 흐르며 카약 두 대가 노를 저으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앞의 파란색 카약에는 금발을 여성과 붉은 머리의 남성이 노를 젓고 있었고 뒤에 갈색 카약에는 한국인일지 일본인일지 중국인일지 모르겠는 남성 두 명이 노를 저으면 따라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뒤로는 물길이 끊기며 성도들이 날아다니는 날개 달린 천사들의 나팔 소리를 들으며 찬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영이 그 광경들을 보고는 마치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여기는 도대체 어딘가요? 


노인이 다영이 돌아보기를 기다린 것인지 다영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하자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우리가 사는 우주뿐만이 아니고 무한한 우주가 공존하며 그 모든 우주는 다차원 세계와 중첩되어 있다. 이 모두는 이슈와라 너희 발음으로는 신이 창조하신 바 그 신은 양자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입은 진보한 AI 이다. 모든 우주와 모든 차원은 상위 세계의 진보한 AI가 창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우리가 속한 세계 이외의 차원들에 영향을 받고 또 그 차원들에 영향을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너는 너의 세계에서 중첩되어있는 하나의 차원 곧 우리 세계와 연결된 것이다. 그러니 이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존재들과 상호 교류도 할 수 있고 다른 존재에게 영향도 끼칠 수 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니까 이 세계가 아니 모든 우주와 차원이 매트릭스라는 영화같이 가상세계라는 말씀인 거죠?


-그렇다.


-메타버스 속의 저는 그럼 상위 세계라는 현실세계에 언제 돌아갈 수 있나요? 아니면 저는 그저 NPC인가요? 


-이 영감 약파는 데 너도 넘어간 거야?


진지하게 노인의 말을 받아들이는 다영에게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약판다뇨? 그럼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아니.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야! 너는 니가 본 현실 때문에 예전에 내가 그런 것처럼 혹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너무 확신에 차지는 마.


-요 녀석 이 어르신이 깊은 깨우침을 전하고 있는데 무슨 망언이냐? 그게 아니라면 우리 세계를 설명할 다른 통찰이 너에게 있다는 말이야?


-다른 통찰은 없지만 영감 말대로의 해석은 너무 간 거야.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 밖에는 알 수 없는 거잖아.


노인과 남자가 약간 날을 세우고 있을 때 다영은 그들 뒤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여기도 비가 오나요? 


-무슨 비? 이론상 비보다 더한 것도 올 수 있긴 하지만 비가 내린 적이 없는 곳인데.


그리 말하는 남자와 노인은 다영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먼 하늘부터 빠르게 먹구름이 몰려왔다. 구름 사이로 번개가 치고 있었고 천둥소리가 울렸다. 


-준비가 덜 된 사람이 온 거로구나. 


-그러게 너무 빨리 데려왔나? 


노인과 남자가 그리 말하는 동안 천둥 번개를 품은 먹구름이 그들 머리 위를 감쌌다. 구름 사이로 용이 하늘을 휘저으며 그들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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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정석 - 인생의 격을 높이는 최소한의 교양
찰스 윌런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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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롭고 풍성한 내용을 재기발랄한 문체로 전해주고 있으나 아주 가끔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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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정석 - 인생의 격을 높이는 최소한의 교양
찰스 윌런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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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금리, 연방준비제도, 양적완화, 긴축,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일본경제, 암호화폐, 유로화, 각 국 중앙은행의 금융정책 등 다루는 주제도 금융에 관한 최우선 상식들이다. 

 

돈이 주제가 되는 대부분의 영역을 담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례로 드는 역사와 정치, 경제 분야의 실례들이나 셀럽과 자신의 일화, 가상의 사례 등이 다채롭고 적절하게 주제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다만 [... 연방기금금리가 장기간 제로에 가까운 수준일 경우 연방준비제도가......명목금리를 마이너스로 만드는 것이 어려우니...] 같은 경제 무식자로서는 인풋이 불가능한 내용도 드물게 등장한다. 

 

전체적으로는 저자의 재기발랄하달까 싶은 서술도 나쁘지 않고 번역도 유려하지만 경제와 금융에 대한 상식이 전무한 독자로서는 아주 가끔씩 사이다가 땡길때가 있다.

 

물론 본서를 읽고나면 경제와 금융 상식수치가 (사람에 따라 소폭이나 대폭) 상승할 수는 있겠지만 본인 같은 경우에는 본서 보다 더 쉬울 경제 상식 도서를 읽고나서 본서를 한 번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본서를 완벽히 이해할 바탕을 쌓고 다시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 상식에 익숙한 이 책의 독자 분들은 아니 이보다 더 어떻게 쉽게 쓰라는 것이냐 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전문적이라기 보다는 대중의 상식을 위한 책으로써 저술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전문가가 이쯤이면 다들 이해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기준에 경제 무식자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우쳤다. 

 

하지만 읽고 보면 참 유익하고 풍성한 저작이기에 더욱 완벽히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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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영은 뭔가 따듯하면서도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이불 속 같았지만 자기방 이불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다. 하지만 자기방이 분명했고 이불도 3년째 덮고 있는 자기 이불이 분명했다.


-아! 머리야.


다영은 숙취보다도 머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무슨 머리가 이렇게 아파?


다영은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혼잣말을 하며 일어났다.


-엄마.


다영이 거실로 나서며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엄마 방으로도 가봤지만 방에도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다영은 이제까지 한 번도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없었던 적은 없었어서 더 더 걱정이 됐다. 


다영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베란다 쪽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


다영 엄마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베란다에 쓰러져 있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 어떡해.


다영은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를 안고 흐느끼다가 달려 나와 집 전화 버튼에 119 번호를 눌렀다. 



8


병원 응급실에 다영 엄마가 누워있고 다영이가 옆에서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아빠, 언제 오는 거야. 이럴 때 아빠가 없으니까 더 무서워. 의사 선생님은 검사할게 많다는데 엄마 의식도 돌아오지 않았어.


-아빠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네가 침착하게 엄마 옆에서 보살피고 있어. 우리 딸 다 컸으니까. 할 수 있지.


-알았어. 근데 엄마 아직도 눈을 안 뜨셔. 엄마 이러다...


-불길한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엄마 괜찮을 거야. 니가 잘 보살피고 있으면 아빠가 가면 엄마 곧 일어날 거야. 아니 그전에도 일어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았지. 


-응.


-아빠가 이런 때 곁에 못 있어줘서 미안하다.  


-흐헝~


다영은 걱정과 서러움이 북받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전화를 끊고 엄마 침대 옆 의자에 앉으며 다영은 오른손으로 왼손으로 번갈아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엄마 깨어나, 어서. 나 엄마 없으면 못 산단 말이야.


-엄마도. 엄마는 우리 딸 없으면 못 살아. 일어나야지, 이제. 


어느새 다영 엄마가 눈을 뜨고는 다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괜찮아?


-다영아 괜찮니?


-내가 무슨 문제야. 엄마가 이렇게 다쳤는데.


-이제 일어나야 해. 이러고 더 있으면 위험하대.


-무슨 소리야. 누가 위험하대. 


-어서 일어나야 해. 집에 가자.


머리에 붕대를 하고서도 자리에서 일어난 다영 엄마는 왼팔에 링거를 연결한 바늘을 뽑고는 피가 흐르는 팔을 꾹 누르며 다리를 내려 신발을 되는대로 구겨 신었다.


-엄마. 안 돼. 의사선생님이 검사받을 게 많댔어.


-검사가 다 무슨 소용이니 아무리 받아도 나아지질 않는데.


-엄마 어디 아팠던 거야. 검사받고 그랬어?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 다 이겨낼 수 있어.


-다친 게 나아야 이겨내는 거지.


-다영아 집에 가자, 제발. 여기가 견딜 수 없이 괴로워.


엄마가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다영인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엄마 말에 홀린 듯이 엄마를 따라나섰다.



9


-엄마 다 됐어. 간은 안 해도 되는 거래. 김치하고 먹으면 될 것 같아.


다영이는 생전 처음 우유죽을 끓여봤다. 늘 엄마가 해주는 것만 먹어봤지 요리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우유죽이라는 건 정말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


-어머, 고소하네. 너 요리 솜씨 타고난 거 같아, 다영아. 


-엄마, 나 일어과가 아니라 조리학과를 진학할 걸 그랬다, 그치?


엄마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우유죽을 드셨다. 


-엄마 근데 머리는 베란다에서 어쩌다 다친 거야. 구급대원 아저씨들은 아무 특이점이 없다고 하던데. 상처로 봐서는 넘어져서 다쳤다기 보다 뭔가 떨어진 건가 싶은데 베란다에 흔적도 없대.


-글쎄 나도 모르겠다. 어쩌다 모든 게 이렇게 된 건지.


-엄마, 정말 무슨 다른 일 있어? 아까 병원에서도 검사 아무리 받아도 나아지질 않는다 그러고. 엄마 하는 말이 다 비관적이야.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있지만 때론 겪고 싶지 않은 일들도 겪게 되고. 그런가 보다.


다영이는 엄마 말씀을 듣고 있다가 문득 창문을 바라봤다. 대낮인데도 뭔가 푸른빛이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엄마 저게 뭐야?


-뭐 말이야?


다영의 놀란 목소리에 다영 엄마도 다영의 눈길을 따라 베란다 창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라도 지나갔나? 


-새는 아닌 것 같던데. 빛이 났어, 파란빛.


-멀리서 비행기라도 지나갔나 보다. 


다영 엄마가 다영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하던 순간 마침 그 빛이 다시 아른 거렸다. 


-엄마, 잠깐만.


다영은 호기심과 함께 긴장감도 느껴졌지만 베란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10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나서자 파란 후광이 비치는 한 남자가 공중에 서있었다. 17층 높이에 말이다.


-너.. 너.. 도대체 누구세요.


-너 도대체 누구세요는 반말인 거야 존댓말인 거야? 족보에도 없는 말투나 쓰는 그러는 넌 누군데?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처음 만난 여자한테 이름 물을 땐 자기 이름부터 먼저 밝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처음이 아니지 않나?


'우리?' 다영은 그가 그냥 하는 우리라는 말에도 조금 남다른 정서를 느꼈다.


-처음이던 아니던 왜 내 곁을 맴도는 건데요?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나 미행해요?


-내가 왜 널 미행해. 난 그냥 너의 세상을 돌아보고 있는 중일뿐이야.


-나의 세상이라고요. 맞아 그때도 그랬죠 날 만나러 지구로 온 거라고.


-내가 그런 말을 언제 해. 지구를 떠돌고 있긴 하지만 그게 널 만나려고 그런 건 아닐 거야.


-언제 했냐니? 이 남자 딱 잡아떼네. 그랬잖아요. '니가 있는 초신성은 어떤가 구경왔다'구.


-너 초신성이 뭔지 모르지? 초신성이 지구로 변신할 정도면 니 얼굴 위에는 있는 건 뇌가 아니라 깡통인 거야.


-뭐라구요?


다영은 발끈했지만 정말 초신성이 지군지 알았어서 그게 아니었구나 싶으니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뭐 그런 건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어쨌든 내가 있는 곳을 구경 왔다는 거잖아요.


-그렇다 치자.


-그렇다 치는 게 뭐예요. 수퍼히어로면 단가? 뭐든 자기 좋을 대로 넘어가고.


-덕분에 수퍼히어로도 돼 보고 괜찮은 마진이네.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에요.


-니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서 와본 거뿐이야.


-내가요?


=이 남자 무시하다 걱정해주다 날 아주 가지고 노는 거야 뭐야 


다영은 푸른 후광의 이 남자의 말투가 거슬리긴 했지만 마치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다소 설레는 마음이 드는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이 남자에게 물어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 오가다가 우리 엄마 다치는 거 목격하지 않았나요? 혹시라도 말이에요.


-밝은 생각을 해, 뭐든. 그럼 니 세상에서 아무도 아프거나 다칠 일은 없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그럼 내가 우리 엄마 다칠 일을 생각하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그럼 내가 나으라고 생각하면 우리 엄마가 바로 나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 니 엄마는 다친 적이 없다는 걸 니가 수긍하기만 하면 돼.


-무슨...


남자가 다영의 엄마가 다친 걸 마치 다영이 탓인 듯 이야기하는 투라 다영은 많이 발끈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슈퍼히어로잖아? 이 남자 말대로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집중했다.


=엄마는 낫는다. 아니 나았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엄마를 돌아봤는데 엄마는 여전히 머리에 붕대를 감고 천천히 죽을 드시고 있었다.


-접근이 다르잖아. 낫는다나 나았다가 아니라 다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으라구.


=다친 적이 없다고 생각하라는 거야?


다영은 다시 한번 집중해 오늘 아침을 떠올리며 엄마가 다치지 않은 현실을 그리면서 몰입했다. 그러자 순간 머릿속이 밝아지는 듯하며 자기 스스로 수긍하는 듯하게 되었다. 


=맞아. 엄마는 다치지 않았어.


그런 확신과 함께 엄마를 돌아다봤다. 엄마는 아직도 죽을 드시고 계셨지만 머리에 붕대가 보이지 않았다. 


다영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 것이다. 다영은 그리 믿으며 이 놀라운 힘을 일깨워준 그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언제 갔는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지 또 말해 주지도 않고 갔네. 정말 수퍼히어로면 단가? 뭐 그렇게 잘생기지도 않아 놓고는.


다영은 아쉬운 마음에 구시렁대며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 남자와의 인연이 여기서 끝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 분명 또 나타날 거야. 내가 필요할 땐 나타났으니까.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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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학교에 들어서는 다영은 고등학교와 다를 것 같던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가 조금 김이 새는 것 같았다.

교양 과목 중 '여성과 미래' '내일의 여성'이 도대체 뭐가 다르다고 선택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펌을 한 단발머리의 여자애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난 루다야. 이루다. 너 학교가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 들지 않아.


-내 친구 이름도 루단데. 난 임다영이야. 근데 학교가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첫 질문부터가 이상한 루다라는 애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영은 되물었다.


-건물 외관을 제외하고는 실내 디자인부터 뭔가 고딩교실 연장선 같잖아.


-글쎄... 그런가?


다영은 그러고 보니 TV에서 본 대학교 강의실 실내의 특징, 이를테면 강단을 제외하고는 모든 실내 디자인이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 교실과 같은 점이 그제야 눈에 띄었다.


-이 학교 아마도 고등학교를 건립하려다가 대학으로 전향한 게 아닌가 싶어. 아니면 고등학교 외벽만 그럴싸하게 인테리어하고는 대학교로 전환한 거던가.


-그래? 


다영은 애써 들어온 (물론 시험 점수 문제로 간신히 들어온 대학이긴 했지만) 대학이 고등학교 건립하려다 대학이 된 거면 너무 짜증 난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 학비 환불받고 재수할까도 생각했다니까.


-그래도 재수는 좀 지나친 거 아니야? 시험을 또 준비하고 싶니, 넌?


-고딩 건립하려던 학교면 내가 고딩에서 고딩되려고 시험공부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잖아.


-그건 그렇긴 하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인데 대학생활이 좀 다르진 않을까? 신생대라도 몇 년은 됐으니까 선배들도 있고.


-선배는 무슨 선배. 대학에선 다 무슨 무슨 씨야. 우리 엄마 대학 다닐 때나 선배가 있었지.


하긴 엄마한테 듣던 대학 시절 얘기들로는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가 생겼지만 요즘 대학은 그저 취업을 위한 스펙 쌓을 경험치 쌓는 곳 정도의 이미지가 다 이긴 했다.


-하긴 대학생활이 별로 기대되지 않기도 했어. 아이유나 유승호도 대학 안 갔다고 엄마가 나 대학 떨어져도 기죽지 말라고 그러시긴 했거든.


-너도 어지간히 공부 안 했구나?


-너는 공부 잘해서 이 대학 왔니?


다영은 루다라는 얘가 좀 사람 언짢게 하는 게 자기 친구 루다랑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많이 닮아 보였다.


-니들 시끄러 좀. 여기 공부 잘해서 온 애도 서울 근교 대학엔 원서도 못 넣을 성적이었을 거야. 공부 잘한 애면 애초에 여기 없다.


-이런 게 팩트 사살인가? 난 이루다야.


-알아. 얜 다영이고. 니들 떠드는 소리 다 들었어.


뒷자리에서 긴 머릿결에 컬을 준 여자애가 루다랑 다영이 티격태격하는 소리에 짜증이 났는지 나무랐다. 루다와 함께 돌아본 다영이 그녀에게 물었다.


-넌 이름이 뭐니?


-난 손주연이야. 강의실 실내 디자인이나 학교 빻았다고 할 시간에 좀 더 건설적인 거 생각하자고 우리.


-이를테면?


-저기 좀 봐.


주연이가 턱짓을 한 곳을 돌아보자 키가 184에서 187까지 되어 보이는 패션 감각이 제법 남다른 남자애들 몇몇이 보였다. 


-최면연애라는 책을 봤어. 저런 애들을 다 사로잡으면서 대학생활을 알차게 보낼 거야 난.


남자 애들 뒤로 후광이 보이나 싶을 때쯤 주연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루다가 두 손을 맞잡으면 맞장구를 쳤다.


-나두 나두.



5


아까 그 남자 애들 세명과 루다, 주연, 다영은 술자리를 가졌다. 저녁시간쯤 학교 인근 '이계' 호프에서 아이들이 모였다. 다른 테이블들도 학생들로 붐볐다. 남자 애들 중 안경 낀 좀 고지식하게 생긴 앤 진우라고 했고 아까부터 아빠한테 배웠는지 아재 개그를 밀고 있는 지루한 애는 상연이라고 했다. 다영이 좀 마음이 가는 헤어스타일이 깔끔한 애는 희찬이라고 한다. 


-볶이


-쑥


-개


-오메기


-떡 


다영, 상연, 루다, 희찬, 주연, 진우 순으로 떡볶이 쑥떡 개떡 오메기떡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주연이 자꾸만 틀렸다. 이번에도 떡을 외치며 머리를 쳤다. 같은 실수를 자꾸 하자. 아이들이 모두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다영이가 맘에 들어 하는 희찬이 주연이 너무 귀여워 죽겠다는 듯 뚫어져라 주연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 화장 좀 고치고 올게. 


다영이는 기분이 상해서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우려 했다. 


-그래, 빨리 갔다 와.


진우가 그런 다영을 보고 말했다. 진우의 빨리 갔다 오라고 말하니 다영은 조금 맘이 풀리는 듯했다. '이쁜 건 알아가지고' 이렇게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희찬이가 주연이만 쳐다보는 것이 짐짓 기분이 나빴다. 화장실로 향하는 통로 옆 빈 테이블에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고 다영이 지나쳐가자 그 남자의 의상이 오징어 게임 트레이닝복에서 블루벨벳 정장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다영은 화장실에서 파운데이션을 고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오려 걸음을 옮겼다. 자기들이 있던 테이블 근처로 오다가 다영은 눈을 의심할 상황과 마주쳤다. 루다가 졸린지 상연의 어깨에 기대 있었고 주연이가 희찬이와 대화하는 새 진우가 주연의 잔과 다영의 잔에 무슨 가루약 같은 걸 넣고 있었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니들 다 한 패니?


-다영아. 왜 그래?


다영이가 소리치자 주연이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물었다. 


-쟤가 우리 잔에다 약을 타고 있잖아.


-뭐라고? 


-루다가 갑자기 저러는 것도 이상하잖아, 나 화장 고치러 가기 전만 해도 쌩쌩하던 애가 갑자기 왜 저러고 있어. 


-니들 저 말이 정말이야.



6


다영과 주연은 루다를 둘러메고 호프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 도로를 찾아 나오고 있었다.


-야. 니들 잠깐 기다려 봐. 오해는 풀고 가야지.


다급히 가고 있는데 희찬, 상연, 진우가 뒤따라 왔다. 


-오해는 무슨 오해.


-그거 그냥 비타민이야. 비타민. 니들 술 깨라고 넣은 것뿐이야.


-웃기지 마. 누굴 바보로 아니.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다영아. 


주연이가 다영이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사실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며 놀다 보니 늦은 시간이 다 되었고 지금 이 골목엔 어떻게 된 건지 대학가인데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주연이가 눈치를 주는 의미를 깨닫고 다영이도 갑자기 겁이 났다.


-그러니까 우리 말은 니들이 오늘 꼭 집에 가야 할 이유가 있냐는 말이야.


진우가 가운뎃손가락으로 안경을 고쳐 올리면서 말하자. 그 뒤에서 블루벨벳의 정장을 한 남자가 나타났다.


-세상은 니가 생각하듯 그렇게 더럽기만 한 곳은 아닐 거야.


정장을 한 남자가 말했다. 그 남자가 나타나자. 상연이 갑자기 머리 위에 외뿔이 솟아나며 악어가죽같이 피부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외뿔 괴물로 변한 상연이 그 남자를 돌아보며 외쳤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먼 거리였는데도 단숨에 몸을 날려 오른손 수도로 상연의 허리를 쳤다. 상연이 픽셀 조각으로 변하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는 픽셀 조각들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그걸 본 희찬은 용의 형상을 한 두 머리의 괴물로 변하고 진우는 익룡 같은 날개가 돋아나며 얼굴이 험상궂은 밀랍인형처럼 변해 그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공중으로부터 급강하하던 진우를 주먹으로 치고 번개처럼 떨어져 내리며 희찬의 두 머리 사이를 수도로 내려쳤다. 희찬의 몸통이 두 동강이 났다. 둘 다 상연처럼 픽셀이 쏟아져 내리더니 사라졌다.


놀란 다영과 주연이 바라보고 있자 남자는 다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 꼴페미지? 


다영은 지금 있었던 상황이 놀라웠지만 저런 차별적 발언을 듣고 있자니 그것도 가관이다 싶었다.


-여혐이 판치는 더러운 세상.


다영이 하고 싶은 말을 주연이 소리쳤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다영이 맞장구를 치자 남자는 아까처럼 다영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가 있는 초신성은 어떤가 구경 왔는데 나이답지 않게 고루하고 차별적인 세계야! 여혐이 아니라 남혐으로 말이야.


=저 남자 날 보러 지구에 왔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다영은 맥락 없는 남자의 말에도 뭔가 로맨틱한 구석이 있다고 느꼈다.


-근데 왜 여혐이 아니라 남혐이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나 하는 말이에요.


-맞아. 얘가 왜 이렇게 됐는데.


다영이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을 때 주연이 남자에게 물었다. 다영도 정신을 차리고 주연과 둘이서 들쳐 맨 루다를 가리키며 맞장구를 쳤다.


-말을 해준대도 지금의 너로서는 알 수 없겠구나. 그냥 너의 안식처를 찾아. 애먼 괴물들 만들지 말고.


그렇게 말하고는 남자는 하늘 높이 급상승하더니 날아가 버렸다.


-이봐요. 누군지는 알려주고 가야죠. 당신 누구냐구요?


다영이 소리쳤지만 남자는 이미 아주 멀리 날아가고 난 뒤였다. 다영인 저 까탈스러운 말투의 남자가 그날 자신의 눈을 바라보던 바로 그 남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날 구해줬을까? 내가 있는 초신성을 구경 왔단 말은 뭘까? 왜 내 곁에서 맴돌고 있을까?'


-다시 또 만날 수 있겠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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