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뇌과학 - 당신의 뇌를 재설계하는 책 읽기의 힘 쓸모 많은 뇌과학 5
가와시마 류타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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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본 뇌 영상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의학자로서 닌텐도 두뇌 트레이닝시리즈의 감수를 맞기도 했던 전력을 가진 분이다.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뇌과학 분야 의학자라고 한다.

 

이 저작은 대부분의 일본 대중서가 그렇듯 큰 분량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밀도 높게 관련 분야의 정보를 전하고 있다. 상식적인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검증한 과학적 연구의 성과를 담고 있기에 상식이 증명되었다는 견지에서 신뢰가 더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독서의 뇌과학]은 독서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주지시키기 위해 스마트폰의 악영향과 대비하기도 하고 알츠하이머 환자가 독서 후 증세가 완화되고 유의미하게 치매 상태에서 벗어난 예를 들기도 한다.

 

뇌과학을 제목으로 삼은 만큼 독서가 뇌의 사고를 담당하는 배외측 전두엽과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 그리고 어휘를 담당하는 측두엽 하현 등 전방위적으로 뇌를 자극한다는 것이 초반의 검증이다. MRI를 통해 검증된 사항이라 반론을 크게 제기하지 않아도 될 만한 정보가 아닌가 싶다. 창의적 발상을 할 때는 배외측 전두엽 아래에 위치한 브로카 영역과 측두엽 하현의 기능이 활발해진다는데 독서 자체가 이 영역들을 자극하기에 독서만으로도 사고하는 부위인 배외측 전두엽을 비롯해 창의적 발상의 영역인 이곳들을 자극함으로 독서만으로도 사고와 창의적 발상을 다 향상시킬 수 있다.

 

입으로 읽는 것이 무엇보다 뇌 기능 향상에 효과적이라고도 하는데 짧은 낭독만으로도 기억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효과가 혹시 알츠하이머를 완화하는데도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연구를 진행했다. 현재까지는 약으로는 알츠하이머 진행을 둔화할 수는 있어도 치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고 약을 써서 알츠하이머가 나았다는 보고는 전무하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의 연구로는 알츠하이머 환자분들에게 지속적으로 낭독을 시행하도록 한 결과 알츠하이머 진행이 완화되고 유의미한 회복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낭독이 가장 독서의 효과를 크게 보는 방법이라는 데 입으로 읽는 것만으로 뇌의 전 영역이 가장 크게 자극받는다고 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읽어주는 사람의 사고하는 뇌인 배외측 전두엽이 자극받을 것 같지만 마음의 뇌라고 하는 배내측 전두엽이 작용한다고 한다. 이 부위는 정서를 당담하는 부위라고 한다. 이때 듣고 있는 아이도 청각 영역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뇌라고 하는 변연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양육자와 자녀 모두의 안정감과 만족감이 커지는 행위가 책을 읽어주는 행위이며 당연히 양육자와 자녀 사이에 정서적 교감과 안정감이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는 스마트폰이 뇌에 미치는 악영향을 다루고 있다. 태블릿PC도 그렇지만 이런 기기의 화면은 작으면 작을수록 뇌에 주는 악영향이 커서 스마트폰의 경우에는 뇌를 파괴한다고 해석되리만치 폐해가 컸다. 스마트폰 사용을 지속할 경우 사고하는 뇌인 배외측 전두엽의 기능은 중단되고 사고뿐만이 아니라 기억과 회상에도 악영향이 지대하다고 한다. 스마트폰 이용은 이해와 기억과 회상 그리고 사유 전체에 막대한 악영향을 준다는 게 저자의 연구 결과이다. 학습에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스마트폰 이용 자체가 기억을 막기 때문에 옛 방식인 사전 찾기 등이 오히려 기억에 유용하다고 한다. 저자의 연구 외에 나 개인적으로 찾은 정보에서도 기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7초에서 20초간의 지속이 중요하다는 정보가 있다. 스마트폰으로는 단어를 찾을 때부터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7가 걸릴 일도 없기 때문에 확인한 단어가 기억에 저장되기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독서도 기기를 이용한 독서보다 종이책 독서가 유용하다고 하며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이때는 연구보다는 독서가들의 증언을 기반하고 있기에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사안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본서는 독서를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상식이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 확신으로 남는 경험이 될 저작이기도 하다. 짧은 분량이고 상식적인 내용이라 독서를 망설일 분들도 계실 듯하지만 앞서 말한 감상처럼 상식이 확신이 되는 경험으로 즐거운 독서를 이어나가시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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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본질 - 환생의 증거와 의미, 카르마와 생명망에 대한 통합적 접근
크리스토퍼 M. 베이치 지음, 김우종 옮김 / 정신세계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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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카르마,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 등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다. 특히나 군대에서는 일본에서 활동한 심령가 안동민 씨의 [업장소멸] 시리즈를 읽고 또 20대에 마이클 뉴턴의 [영혼들의 운명] 시리즈를 읽으며 사색에 빠질 때도 있었다. [티벳 사자의 서]에 대한 번역서 몇 권과 [이집트 사자의 서]에 관심이 간 이유도 인간의 시작과 끝, 진정한 인생의 목적이자 운명은 무언지가 궁금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겪는 깊은 운명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오히려 운명에 초연해졌다. 죽음도 삶도 그다지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자체가 인생이 살만하고 운명이 그다지 무겁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성장과 성숙의 과정만도 아니고 인간의 삶과 이 세계라는 것이 교육의 장만이 아닌 거라면 도대체 인간이 인식하는 운명은 뭐고 윤회나 카르마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숨 돌릴 만한 무게로 생의 체감 무게가 달라지니 이런 희론적인 사유도 하게 되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성장과 교훈을 빼고도 태어남과 삶과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윤회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게 되었고 살아오며 내가 지니게 된 생사관, 내세관, 인생관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본서는 철학과 종교학을 연구한 저자가 윤회에 관해 연구한 자료들을 근거로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집필한 저작으로 이런 류의 책들을 자주 탐독해온 분들에게는 크게 색다를 건 없는 저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회를 바탕으로 삼고 생의 이유와 목적을 처음으로 사유해 보고자 하는 분들께는 유익할 수도 있을 책이다.

 

저자의 서술을 통해 잊고 있던 정보들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윤회는 유대교 하시디즘과 이슬람 수피들, 그리고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정설로 인정받던 것이라는 것도 저자의 서술을 통해 새삼 일깨워지기도 한 기억이다. 저자의 말이 아니었다면 다시 회상해 보지 않았을 지식은 이것인데, 찰스 폰즈의 [카발라]라는 책에서도 카발리스트들은 윤회를 길굴이라고 하며 삶과 죽음과 재탄생의 거듭되는 순환을 통해 인간이 완전성을 회복하라는 창조자의 배려로 보고 있다.

 

대개의 윤회론을 주제로 한 저작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서술한 저작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생과 죽음 그리고 내세와 환생은 우리의 성숙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여정은 영혼이 성숙하기 위해서이고 세상은 그를 위해 주어지는 교육의 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입장은 지나 서미나라의 [윤회]라는 책을 리뷰하며 서술한 바대로 성숙을 위해서라면 인간이 윤회를 기억 못하고 거듭되는 윤회만이 아니라 한 생 안에서도 거듭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이어서 퇴보하기도 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반복과 어그러진 순환은 생의 목적이 성숙이 아니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인생과 윤회는 성숙이나 성장이 아닌 그 자체를 감상하라고, 다시 말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다채로운 양식으로 연기하며 스스로에 삶의 선택들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동을 하라고 주어지는 것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 나의 견해다.

 

본서를 보면 어느 여성 저자의 [전생요법]이란 책에서 인용한 전생 회상 기법은 내담자와 상담 후 그의 구술에서 인상적인 몇 단어를 최면 기법 없이 생각이나 말로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내담자가 자유연상처럼 떠오르는 대로 전생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저자의 저작에서 인용한 전생 퇴행 최면을 통한 내용들은 한 인물이 거듭 같은 인생의 루틴을 다채로운 시대에서 다채로운 환경에서 거듭 환생하며 반복적으로 만나는 인물들과 비슷한 루틴의 잘못을 다양한 양식으로 반복하며 환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의 주장과는 다른 결론도 유추할 수 있다. 전생을 회상하거나 전생 퇴행 최면을 받는 인물들이 최근의 자신에게 인상적이거나 각인되는 생의 요소에 매몰되어 최면 암시 속에서 하나의 스토리나 둘 셋 넷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일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루틴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한 생과 다음 생과 그다음 생 등 몇 생의 텀을 두고 순환하는 몇 가지 인생 루틴이 한 인물에게서 발견되기도 한다. 생과 생과 생을 반복할 때 순환 주기에 텀을 두고 몇 가지 주제들을 다른 순환주기마다 각각 거듭 반복하며 윤회해 왔다고 결론 짓는데 이것도 한 인물에게 인상적인 몇 가지 주제가 최면을 걸 때마다 또는 최면에서 다른 생으로 퇴행해 갈 때마다 내담자가 자신에게 인상적인 몇 가지 주제를 주기적으로 각각 반복해 여러 생을 연상해 구술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짐작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의 최면 시 구술이 같다고 한다면, 우주 공간이나 지구 내 공간에 입력 저장된 과거 다른 인물들의 인생 데이터와 현재의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접속되며 그 데이터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자신들의 생으로 착각해 발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각몽을 집단이 함께 꾸고 공유하는 사례도 있으니 좀 전 말한 경우를 가정하거나 집단의 암시 동조화로도 충분히 의심할 만 하다고 본다.

 

더욱이 카르마가 관계성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이 자각하거나 명상 수행을 통해 카르마의 악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힌두교와 불교에서 하는 주장을 저자도 반복하는데 그것 역시 어폐가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B라는 사람이 A의 가족을 몰살하고 나서 깊은 수행을 하면 AB 사이의 카르마는 해소되고 A는 기다렸다는 듯이 B를 용서하게 된다는 게 카르마의 원리라는 것인데 이게 카르마의 우주적인 형성과 해체의 원리라면 합리적인 구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무작위의 대상에서도 패턴을 읽어내고 스토리를 찾아내는 독보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스스로의 과거부터 현재와 미래까지의 절대적인 주도권을 확보할 관점도 그 독보적인 능력을 사용해서 창조해냈다고 보는 게 윤회와 카르마에 대한 관점으로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윤회가 몽상이거나 윤회가 있다 해도 그 근간이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없는 원인과 없는 결과와 없는 과정을 통해 구속받기도 성숙하기도 자유로워 질 수도 있는 게 인간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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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트 - 타인을 지배하는 어둠의 최면 마인드해킹 시리즈 1
Dr.Z 지음 / 성숙한삶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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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최면 심화 단계 또는 대인 통제 기술의 하나라고 인식되는 개념에 대한 강의서와도 같은 책이다. 본서를 통해 저자의 가르침을 다 듣고 보면 휴먼 해킹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공학 기술과도 맥락이 같아 보이기도 한다. 저자 자신이 스스로를 최면 계통에서는 상위 몇 %에 속한다고 자신하고 1만 시간의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하다는 언급을 하기도 하리만치 저자의 긍지와 전문성이 드러나는 저작이기도 하다.

 

최면, 세뇌, 사회공학, 콜드리딩 등에 관심이 깊은 분들이 호기심 가질 만한 책이 분명하고 전문 용어들과 개념들이 쉽게 인지되지 않기도 하는 저항은 있지만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니기에 몇 차례의 독서를 더해 가면 흘러가듯 내면에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나로서는 [세뇌와 탈세뇌] 그리고 호오포노포노에 대한 저자의 저술들을 통해 저자의 깊은 전문 지식에 대한 신뢰가 있어 더 본서에 지식들이 궁금했다. 내가 처음 이런 가르침들에 관심이 깊어진 이유는 초딩 시절부터 최면에 관한 책을 읽으며 누군가로부터 최면당하거나 세뇌가 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공학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부터 그 두려움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타인에 의해 내 의지를 통제당하는 경우의 수를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본서와 같은 류의 가르침들을 알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자의 저작들을 접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저자의 가르침들은 최면에서 시작해 마법 계열에 이르며 영성 체험 전반을 아우르는 규모였다.

 

본서의 내용도 최면 테크닉을 이론적으로 담기도 했으나 또 실행 가능하도록 설명한 책이기도 하다. 그 가르침을 체화하는 양식으로 선도와 토마베치 기공술 그리고 레이키를 담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가르침 전반에서 호오포노포노나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현실을 제어하는 마음의 힘 같은 느낌도 있고 사회공학의 양식이라고 느껴지는 대목들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양식들의 바탕은 모두 인간 심리의 이해와 심리에 대한 제어의 기법들이기에 당연히 저자의 가르침들에서 심리학과 최면과 영성의 기운이 아울러 인식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 않나 생각된다.

 

저자는 이론이 아닌 일상에서 적용되는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기법을 선호하고 있고 그것이 본서에서 가르치는 기법들을 선도와 기공, 레이키의 양식에 더해 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계열의 가르침들에 목마르신 분들 가운데 다양한 교육 세션과 대학의 전문적 과정에 부담을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저자분의 여러 저작들이 상당히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모든 과정을 마치신 분들이 자신의 이해를 돌아보는 차원에서 읽어보아도 좋을 저작들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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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 행복한 삶을 위한 마음공부
지나 서미나라 지음, 강태헌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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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에는 에드거 케이시는 예언자로 더 유명했다. 하지만 본서에서는 에드거 케이시의 남다른 면을 케이시 리딩이라 말하며 그걸 피지컬 리딩과 라이프 리딩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니까 에드거 케이시는 예언 외에도 피지컬 리딩이라고 해서 다른 이의 병을 읽어 내고 치료법을 알려주는 일도 했으며, 라이프 리딩이라고 해서 다른 이의 사회적 문제와 심리적 문제, 육체적 문제를 전생부터의 풀어지지 않은 과제가 있어서 그렇다며 해결책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케이시 리딩 가운데 라이프 리딩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에드거 케이시는 19세기 후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가 되지 않으려 도시로 나갔으나 뚜렷이 진가를 보일 만할 일을 찾지 못하다가 성대의 이상으로 강제적으로 묵언을 하게 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20세기 초 그가 아직 젊은 시절이던 당시 최면술이 유행하던 때였던 것 같다. 그의 성대 문제가 의학으로는 치료되지 못하자 그의 주변에서 최면을 통해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었고 최면 상태에서 케이시 스스로 치료법을 찾도록 유도하여 그 치료법대로 행해 케이시의 성대 문제는 바로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케이시에게 최면을 걸었던 사람이 케이시에게 자신의 병도 케이시의 최면에 의지해 보겠다고 했고 케이시가 그에 응하면서부터 케이시의 타인에 대한 피지컬 리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피지컬 리딩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치유를 찾던 가운데 우연히 누군가의 라이프 리딩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케이시에게 질병만이 아닌 여러 사안에 대한 라이프 리딩 의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소개이다. 저자는 주로 라이프 리딩에 대해 이야기하며 본서에서는 라이프 리딩과 함께 전해진 피지컬 리딩이 약간 더해졌을 뿐 케이시의 예언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본서는 케이시의 라이프 리딩 사례들로 시작해 힌두교, 불교, 기독교 경전을 근거해 윤회론에 대한 타당성을 담론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케이시의 라이프 리딩들을 근거해 보편적인 삶의 의미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이 저작의 차별화된 의의가 아닌가 싶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삶의 전반적인 주제들을 아우르는 의미를 찾고자 시도하고 있다. 저자도 여느 종교인들이나 심령학 이론가들처럼 삶은 성장과 성숙을 위한 교육의 장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관계적 문제, 심리적 문제, 육체적 문제 등 개인의 내재적 문제부터 살아가며 찾아오는 많은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카르마가 원인이고 이런 문제들을 갖게 된 원인과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성숙에 이르고 영적 인식의 도야를 가져오기 때문으로 가르치려 하고 있다.

 

~ 이 다음 부터는 나의 감상과 독자적인 견해만 담긴 장이니 읽지 않으셔도 된다.

 

아마도 이런 인식은 사람에게 통제권이나 해결해야 할 여지가 자신에게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심리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자기가 역할을 함으로써 해결된다거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주어지는 문제들이라는 인식은 안도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의혹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 전생의 내가 행한 일로 현생의 내가 받는 결과라는 밈이 과연 통제권이 나에게만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세계대전을 비롯한 인류적 차원의 커다란 문제들에 개입할 여지가 있는 개인이 몇이나 될까, 팬데믹을 야기한 상황도 대부분의 개인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분명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며 더 생각해 보면 개인의 인생에서도 자기 유년 시절을 가꾼 원인과 자신의 가치관 정립에 유년기가 차지하는 사안들에 자신은 반응 정도의 개입만 할 수 있었을 뿐이지 않은가.

 

그러니 인간이 윤회를 믿는 자체가 자신의 무력함을 회피하고 스스로를 기만하여 그 무력함을 자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로서는 인간이 태어나고 존재하는 이유는 성장이나 성숙이 아니라 삶의 긍정성과 부정성 둘 다나 어느 한 면을 통해 생을 살아내면서 즐기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성경에서는 창조주가 태초에 피조물들을 만드는 순간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반복된다. 창조도 피조물의 존재 자체도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즐거움 자체를 위한 것인지 어찌 아는가. 어떤 장대한 목적보다 즐거움과 재미가 존재의 의의 자체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극도의 서스펜스나 공포 영화 또는 극단적으로 슬픈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감흥이 컸다면 한국 사람이라면 진짜 재밌었어라고 말하기 마련인 것처럼, 극단적으로 괴로움이 가득한 삶에서도 우리는 그 삶을 연기하며 스스로의 관객이 되어 감동받고 또한 창조주를 감동시키기 위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삶이라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어쩌면 삶이나 인간의 역사가 어떠한 성숙과 교육의 장이거나 거대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즐기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여기서부터는 이 책의 내용과 별개의 사적인 견해이자 이론이니 읽지 않으셔도 된다. 윤회에 대한 나의 입장은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윤회는 없다는 것이다. 우주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는 온 우주의 공간에 데이터로 저장되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최면 등을 통해 전생이라고 자각하는 것은 이러한 공간 자체에 입력된 데이터에 접속됨으로써 자신의 전생이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부분이 경험해봤을 예를 들자면 누구나 꿈속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진짜라고 믿고 실제 자신의 현실과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깊은 꿈을 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 공간에 입력된 데이터에 접속하며 실제 자신의 전생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짐작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환생은 한다지만 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 그러니까 인종, 성별, 키와 체격, 목소리 등의 피지컬적인 특징, 지능, 감성, 사교성, 일에 대한 적응력과 효율성, 야심과 유유자적의 정도 등등의 속성들이 각기의 수준으로 조합되어 우리의 개성을 이루지만 죽고 다시 태어날 때는 이것들이 각기 분해되어 다른 이들의 그것과 다른 이들에게는 나의 그것들이 각각 다양하게 조합되어 각각의 개인을 이룬다면 이는 윤회하면서도 윤회의 주체를 뚜렷이 규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이 경우는 붓다께서 무아론을 주장하신 근거가 이런 경우이기 때문이기에 그러셨던 것은 아닐까 짐작되기도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나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주의이다. 이것도 무아론의 나라고 할만한 속성을 찾을 수 없다는 붓다의 말씀을 대입해 생각해 본 것인데 우리의 속성을 이룬다는 내가 위에서 말한 요소들을 다른 이들과 재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속성을 이루는 요소들이 차크라의 각성 정도에 따라 각 차크라가 지닌 속성들의 수준에 편차가 생기며 전생과는 다른 나라는 속성들로 조율되지 않는가 하는 짐작이었다.

 

만약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 거듭 태어나는 것이라면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잊는다는 건 부적절하고 비실용적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과거를 잊고 한 생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로서는 그래서 인간이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 존재하고 환생한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데 만약 성숙과 성장이 인생의 목적이 맞다면 다양한 양식으로 삶을 경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고 전생을 기억하면서 내적 특질을 재조율해 가며 환생하는 것도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내가 든 세 가지 경우 중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양식으로 환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세팅된 게 아니라 미지의 무언가가 인간의 표면 의식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게는 하지만 무의식은 기억하고 있다는 가정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첫 번째의 경우가 아니면 인간이 최면을 통해 자신의 전생을 회상할 수 있는 이유로 적절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모든 건 가정이지만 이 안에 맞는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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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9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25-01-20 19:4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마힐님^^ 지금도 윤회에 대한 또 다른 책인 [윤회의 본질]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도 마힐님 말씀처럼 카르마를 무의식과 같은 개념으로 보더군요.
우파니사드에서 처음 카르마가 언급되었다는데 힌두문화에서는 카르마를 행위로
결과는 비카파로 언급했다며 나누어 논하던데, 현재의 세계 대다수 문화에서는
행위와 결과 를 통칭해 카르마로 논하는 것 같다고 보았습니다.
행위와 결과 결국에는 인과란 얽히는 관계로 이전 결과가 다음 원인이 되니까
원인과 결과를 뚜렷이 구분하기는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카르마에 대한 깊이 사색해 본 적은 없지만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과
자신이 겪는 것에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마도 이유를 안다는 자체로 무력감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생에 대한 주도권이나 영향력이 자신에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살아갈 의지가 꺾이기도 할 것 같았습니다.
업에 대한 상식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한 주도 평화로운 날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 - 건강을 책임진다고 믿었던 현대 의학은 어떻게 우리를 더 병들게 했는가
로버트 러프킨 지음, 유영훈 옮김 / 정말중요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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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정말중요한]으로부터 도서제공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건강을 책임진다고 믿었던 현대 의학은 어떻게 우리를 더 병들게 했는가]가 부제이다. 제목과 부제에서 직시되듯 기존의 임상 의학에 실제 적용되는 의학 이론과 치료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부정하기도 하는 내용이다. 보수적인 분들에게는 그렇다면 기존의 의료 기준과 의사들은 모두 돌팔이란 말이냐?’라며 발끈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대중 언론에서도 이미 우리가 흔히 찾는 임상의들이 적용하는 치료법들이나 처방약들이 기존에 30~40년 또는 그 이상 사용되어 오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신약 사용에 있어서도 보수적이라 오랫동안 검증되어왔다고 인식되는 의약품들의 복제약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 처방이 일반적이라는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란 걸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본서의 주장과 정보가 거부감만 가지게 하는 내용은 아니라는 데 동의하실 것이다.

 

대체의학이라는 분야에서 역시 기성 의료체계에서 다년간 활동하시던 의사분들이 진로를 바꾸어 환자와 만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이나 미국을 비롯한 유럽계열 국가들에서 출간되고 한국에도 번역된 (기성 의학 체계와는 다른 치료체계를 전하는) 대체의학서들의 저자들을 보면 다들 기존 서양의학의 임상의셨던 분들이 저술하신 것들이었다. 예전에 출간 소식을 우연히 듣고 소개글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분량이 부담스럽고 전문적인 내용 같기에 선택하지 않은 대체의학서가 있었는데 그 책의 저자분도 기존 서양의학의 임상의셨던 분이었다. 많은 의사분들이 기존 임상의학에서 불만족이나 불완전함을 느끼고 전향하시기도 하는 것이다.

 

모두 기존 의학의 불완전한 면이 없지는 않다는 걸 직감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기존 서양의학을 완전히 신뢰하기만 해서는 차도가 없을 질환이나 증상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에 이에 대해 언급한 책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본서의 저자분은 의사이고 저자분 어머니는 전문 의료 영양사셨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의 아버지께서는 고혈압, 통풍성 관절염, 이상지질혈증, 당뇨 전 단계로 돌아가셨고 저자 역시 수년이 지나고 나서 같은 네 가지 질병에 걸렸다고 한다.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저자가 기존 의학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게 되었고, 의료 탐사보도를 하는 친구의 도움과 영상진단의학을 전공해 여러 질환에 대한 상식과 징후를 눈으로 보아 아는 저자의 특징이 더해져, 기존 의학에서 통용되고 있는 그릇된 통념과 상식에 대해 지적하고 정정하는 본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200편 이상의 평가논문과 14권의 저작을 집필한 의학 전문 저자이기도 하며 의학 교과서를 집필한 현직의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기존 서양의학 상식에 배치되는 치료법을 상담으로 전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타인의 질환을 대체의학적 시선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부터가 자신이 의대에서 가르친 대로 살았더니 내 건강이 망가졌다는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이라 다른 대체의학 연구로 전향한 임상의들보다 더 신뢰할 만하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한다.

 

본서에서는 신진대사, 비만, 당뇨병, 지방간,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 , 알츠하이머병, 정신건강, 수명 등 10가지의 질환이랄까 스펙트럼(정신 의학은 다양한 질환을 다루고 있기에 스펙트럼이라고 했다)을 다루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신진대사의 이상을 초래하는 요인들을 제거하면 인체가 정상 기능을 회복한다는 주제가 근간이며 기존 의학에서 한 질환의 한 요인을 대상으로 처방하여 집중해 치료하려는 치료 방법이 오히려 병의 치유를 더디게 하거나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는 걸 임상 경험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 장인 12장의 건강설계에서는 그 전 장들에서 줄곧 언급한 식생활과 생활습관의 변화로 오히려 병원에서 얻은 질환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건강 유지의 비결과 질환 치료의 방법은 단순명료하기도 해서 실천하기가 너무도 쉽다. 어제 다 읽은 책인데 나는 이미 조리에서 사용하는 기름과 식습관을 바꾸었다.

 

저자가 저술한 내용들이 너무도 명쾌하고 명료해서 독자가 불신할 대목들이 없으며 어렵거나 비싼 치료법을 제시하지도 않기에 일상에서 실천하기 너무도 적절해 보인다. 자신이나 가족 또 친지의 건강 문제가 있는 분들과 평소 건강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분들은 누구라도 상식 차원에서 읽어보시라 권해도 좋을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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