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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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관련자들은 톨레의 세계관과 기독교 신비주의의 맞닿음을 이야기 한다. 명상가들은 그가 동양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톨레의 이야기들이 전통적 영적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불교의 무상 고 무아가 현대적 색채로 전해지고 있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체라는 개념 역시 마인드 바이러스 밈, 라엘리안 무브먼트가 이야기 하는 신념, 마크 우르반의 상이라는 개념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개념이었다. 


새로울 것 없고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들을 서양인 답게 젠체하며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가 세계 3대 영적 교사라니 의아할 뿐이다. 이 책은 영성 관련 저작과 담쌓고 있던 이들에게라면 혹할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명상서들이 친숙한 분들은 큰 감흥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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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house8 2020-11-1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아시는 분 같은데 말씀하신 것들을 깊이 보려면 무엇을 보면 좋을까요? 책 추천 부탁드려요 ^^

이하라 2020-11-12 23:56   좋아요 0 | URL
저도 영성분야에 대한 지식은 얇습니다. 다만 이런 리뷰를 남기게 된 건 초기불교나 선불교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고 서양의 신비주의와도 유사한 이야기뿐인데 그를 세계3대 영적 교사라고 하는 게 의아해서에요. 제 블로그에 오셔서 화두 카테고리에 보시면 최근 1~2년 사이의 리뷰말고 이전 리뷰에 있는 책들 중에 영성관련 책들이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개로 길러진 아이 - 사랑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보여 준 아이들
브루스 D. 페리 &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 황정하 옮김 / 민음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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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슬프다. 아주 아주 다행스럽다. 

아이들의 고통이 아주 아주 슬프지만 그것이 치유되는 과정은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아이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과정과 그 증상 그리고 치료 과정이 담겨있다. 



유년기 뇌가 성장하는 3년 사이 학대와 방임에 놓이게 되면 아이들의 뇌는 발달하지 못하고 장애를 지니게 된다고 한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중 주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화된 스트레스에는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지만 예측 불가능한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아이의 뇌와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한다. 지속적인 고통에는 모두가 둔감해지리라 짐작하겠지만 예측 불가능하게 지속적인 고통은 감작 작용이라하여 오히려 더욱더 민감해지고 나날이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성적 육체적 정신적 학대만이 아니라 보살핌이 없이 방치되는 상황만으로도 발달되어야 할 뇌와 기능에 지연과 손상을 가져온다고 한다. 이에 대한 치유 과정은 유년기에 경험했어야 할 엄마의 손길을 대신하는 맛사지와 엄마의 얼름과 심장박동을 연상케 하는 리듬, 춤 등의 놀이를 들고 있다. 



물론 해리와 과각성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저자가 적용하는 발달과정에 따른 순차적 치료법이 신비하게도 아이들을 치유케 하는 과정이 슬프면서도 다행스러웠다. 



저자는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환경과 제도와 사회에 대해 지적하면서 아이들을 치유하는 과정은 적절한 환경과 발달 과정에 맞는 패턴화된 자극이라고 말하고 있다. 10장에서는 또래 집단에 의해 치유되어가는 아이의 예를 들며 사회와 집단의 지원이 아이들의 치유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고 있다. 



이 책은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면서 그 원인과 증상과 치료 과정을 아울러서 주목하게 해 준다. 환아들과 환경적 문제가 가정에만 있지 않고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을 보면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고 그러면서도 살인과 사이비종교의 사례나 악마주의 마법종파의 사례가 나올 때는 너무도 흥미진진해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자체가 미안해 지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 책은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게도 만들고 치유되는 아이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될 것이다. 



바람직한 육아가 궁금한 이들, 상처 받은 아이들의 치유에 관심있는 이들, 자기 자신의 오래묵은 트라우마로 상처난 채 버티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유익한 저작이리라 생각한다. 그저 독서에 몰입해 보고 싶은 누구에게라도 권하고픈 소름 돋도록 흡인력 있는 저작이기도 하다.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더라도 꼭 한번쯤 많은 이들이 읽어 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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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7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18-10-27 09:40   좋아요 1 | URL
네. 아이를 무책임하게 방임하는 경우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이를 방임하는 부모들도 치료가 절실한 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픔은 유전되고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북프리쿠키 2018-10-27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든 어른들이 넘치는 무서운 사회에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습니다.
이하라님의 글 공감합니다.

이하라 2018-10-27 13:55   좋아요 1 | URL
병든 어른들이 넘치는 무서운 사회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도적으로 아이들과 성인들의 치유를 돕는 지원이 적절히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정호 2018-11-05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동학대는 너무 가슴 아픈 일이지요...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이하라 2018-11-05 18:41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아로새기는 일이지요. 읽어볼만한 책이에요.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eBook] 인간과 초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09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이후지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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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제법 재밌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베이스인 철학, 사상의 나열이 너무 진부했고 태너와 돈 후앙의 여성관과 결혼관은 대개의 꼰대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기 이전에 하던 (자기들 딴에는 진보적인 발상으로 여겼는지는 모르지만) 고리타분한 사고다. 


나로서는 피와 살, 그저 행복을 추구하는 악마적 인생관이 더 이 시대와 결이 맞는다고 보지만 아마도 시대는 뉴에이지를 말해오던 시대 부터 더욱 영성에 이르러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드라마는 드라마가 생명이라고 본다. 돈후앙과 마왕이 등장해 이 시대에 와선 고리타분할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재미나는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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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릴케 시집 문예 세계 시 선집 4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문예출판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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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서정적이나 고독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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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개정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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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하느님만이 최고의 진지함을 행사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놀이를 놀아 주는 자이고 그것이 그의 가장 좋은 역할이다. 


놀이 개념 그 자체는 진지함보다 더 높은 질서 속에 있다.

왜냐하면 진지함은 놀이를 배제하려고 하는 반면,

놀이는 진지함을 잘 포섭하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에서든 게임을 망치는 자는 마법 세계를 망치는 자이고,

따라서 비겁한 자이며 축출되어야 마땅하다. 


놀이가 끝나도 그 효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놀이 바깥에 있는

일상적 세상에 안정, 질서, 번영의 광휘를 뿌려서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한다.

다음번의 신성한 놀이-계절이 돌아올 때까지. 


놀이하는 사람은 그 게임에 무아 상태로 몰두하고 

그것이 '단지'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잠시 사라진다.

게임에 결부되어 있는 즐거움은 긴장을 낳을 뿐 아니라

정신의 고양을 가져온다. 놀이는 무의미함과 황홀감이라는 

두 기둥 사이에서 움직인다. 


문명이 놀이 속에서 혹은 놀이로서 발전해 온 과정에는 

두 개의 반복적인 형태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신성한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축제의 경기이다. 


어떤 행위가 진지하고 신성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놀이의 특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는 곧 놀이를 의미한다. ...... 
어떤 경기가 되었든 거기에 놀이의 요소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가면을 쓰는 사람을 다른 '존재'로 변모시켰다. 


일정한 규칙을 따르는 싸움은 바로 그 제약 때문에 놀이의 형태적 특징을 띠게 된다. 


놀이의 행동 뒤에는 고양과 긴장의 감정이 뒤따르고 이어 환희와 이완이 수반된다. 


아이스킬로스에선 가장 비범한 진지함은 놀이의 형태로 체험된다.
에우리피데스에선 어조가 충만한 진지함과 경박함 사이를 쉴 새 없이 왕복한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시인은 비극적인 동시에 희극적이어야 하며, 
인간의 삶 전체는 비극과 희극의 혼합으로 체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요한 하위징아는 18세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러 놀이의 요소가 쇄락해 왔다고 말하지만 그가 사망한 이후 세계의 역사와 경제, 문화에 있어 놀이의 요소는 더욱더 강해져 오지 않았나 싶다. 


신자유주의의 옷을 입고 국제경제기구를 등에 업은 초국적 기업들의 각국 경제 침탈의 국면도 그렇고 중동에서의 전쟁과 각국에서의 테러는 문명충돌이라는 색깔을 띠며 벌어진 잔인한 놀이였으며 그로 인해 그에 대한 각국의 대처와 각국 정치, 이슬람의 확장 등이 진지한 놀이의 형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 최근의 K-pop과 한류의 재확장도 시대의 흐름을 타고 흐르는 놀이의 색깔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경제와 군사, 정치가 특정 플레이어들이 다수의 눈치를 보는 순간도 있으나 다수의 삶에 형태에 영향을 끼치는 게임의 진행이라면 인터넷, SNS, 유투브, 개인방송 등은 개인이 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이라는 놀이의 형태가 아닌가 싶다. 


세계의 역사가 하나의 게임(아곤)으로 인식 되었었는데 호모루덴스를 읽고 세계를 보니 "모든 것은 놀이다"라는 관념이 좀더 와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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