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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ㅣ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이상주의자였던 고흐에게 사랑하는 동생은 돈(현실)에 대한 인식을 끊임없이 환기 시켜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림을 추구하면 따라올 수 밖에 없는 자신의 경제적 무능이, 뒷바라지하는 동생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고 종래에는 그의 마음을 황폐하게 했을 것이다.
고흐가 조금 더 뻔뻔한 류의 자의식 과잉의 혹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기‘만‘너무 중요한 인간이었더라면 미쳐버릴 일은 없었을 것이고, 동생(테오)에게 당연한 듯 요구했을 것이며, 그랬다면 테오가 미쳤을 지도 모르겠다.
부인의 식모살이로 번 돈을 사업으로 날리는 인간, 누나가 여공으로 뒷바라지 해서 공부시켜놨더니 지가 잘나서 명문대(?)갔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어쩐지 예시에서 젠더가 강조되는 것은 요즘 읽는 책들 영향탓),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남모르는 희생과 헌신을 너무도 당연히 여기는 이기적인 인간들 (나포함) 세상에 꽤 많잖아.
˝(47)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해 네가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나도 가능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마.˝
하지만 이 인간은 정말 끊임없이 미안해 했고, 미안해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매번 최선을 다해서 생의 에너지를 다 소진시켜 버린듯 하다. 고흐는 너무 착하고 동생을 사랑했고, 동생 테오도 너무 착하고 고흐를 사랑했다. 이 형제들의 삶은 서로 너무 사랑해서 생긴 파국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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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구나, 돈 때문에 미안하구나, 돈을 좀 보내다오, 언젠가는 네게 돈을 부탁하지 않고 싶은데, 돈이 없구나˝가 슴슴이 베인 그의 편지. 먼저 서울에 취직한 죄로 3년 정도 경제적으로 신세졌던 동생이 생각나서 많이 괴로웠다.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정말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그 마음. 미련하고 안쓰럽고, 또 이해되기도 하고 해서. 결국엔 세상에 지고, 미쳐가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많이 울었다.
˝(243) 나는 단순하지만 지속적이고 결정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왰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 패배한 싸움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성격의 나약함이 문제인지도 모르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자책감만 남았다. 발작이 일어난 동안 그토록 소리를 많이 지른 까닭도 그 때문이겠지.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데 지킬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어려운 길, 돌아보지 않음,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해야한다는 강박.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로 중도반단한 (돈과 명성에 그림을 파는) 이들에 대한 분노. 그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와 현실과의 타협을 튕겨냈을 것이다.
아, 미련한 사람.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책을 읽으면서 그 미련한 열정을 응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흐가 미치지 않으려면 무용한 응원보다는 부자 후원자가 필요했겠지!? 성격상 멋진 후견인이 나타나도 미안해서 (고갱 등 더 고생하는 화가들) 더 자신을 질책하며 몰아붙였을 것 같지만. (넘 깨끗해서, 영원히 고통받는 영혼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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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타인의 우직한 신앙과 신념을 비웃기도 하고, 그것에 옳고 그름을 가져다 대려하는 나의 편협이 조금 비루하게 느껴졌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하나를 취하여 붙잡는 이들이 못나 보일때가 있다. 어쩌면 부러운 걸지도.
모든 열정을 낭만화할 필요는 없지만 고흐같은 낭만적 열정가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응원할 수있는 마음을 남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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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젊고 열정있는 예술가, 창작자들게 사회적 보장과 지원을 해주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85) 여전히 흡족해 할 수 없었다. 기억 속에는 낮에 본 장관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도저히 그 그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면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107) 나는 개로 남아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또 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169) 오늘 아침, 꽃이 핀 자두나무가 있는 과수원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멋진 바람이 불어오더니 다른 곳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보았다. 그럴대면 작고 하얀 꽃잎들이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반짝이곤 한다. 그 자면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순간순간 땅이 진동하는 걸 바라볼 각오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 하얀색 화면에는파란색과 라일락색, 노란색이 많이 있다. 하늘은 하얗고 파랗다.
(174)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220)테오 형은 내게 빚진 돈 얘기를 하면서 내게 갚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내가 형에게 원하는 것은 형이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내는 거야.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맞아. 우리 둘 다 가진 게 별로 없으니 너무 많은 짐을 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하지만 그 정도만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팔지 않더라도 말이지. ...하지만 그 많은 그림을 한점당 100프랑으로 계산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어. 그 그림이 100프랑씩에팔리기를 바란다면 그건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이 지긋지긋한 사회는 그걸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 편이거든. 하지만 이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도 사회가 하는 대로 하면서 이렇게 말하자고, 우리도 그거 필요 없다고 말이야. ...형이 너무 힘들게 일해 와서 마치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할 때면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를 거야. 다른 무엇보다 난 그게 사실이라고 믿지 않아. 실제로 형은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것도 이 땅의 위대한 사람들처럼 품위 있게. 물론 형이 지나치게 곤궁하게 살아왔다고 느끼지 않도록,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빵을 갖지 못해아프게 되는 일이 없도록 적절하게 내게 미리 경고를 해주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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