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누워있었더니 욕창 생길 것 같아서 동생 꼬셔서 오랜만에 연희동 책바 왔다! (그리고 한 시간만에 동생이 졸려해서 돌아가는 중.... 야, 너 책 읽는다며..) 게으름뱅이는 그래도 밖에 나온 것 자체가 기쁘고 뿌듯합니다!!!🥳🥳

설 연휴에 읽으려고 <캘리번과 마녀>딱 빌려왔는 데, 또 안펴보고 미루다가 여기와서 30페이지 돌파하다 말고, 결국 “어머!이건사야해!!” 급 알라딘 결제.. 올해엔 책 덜사겠노라 다짐, 이렇게 설날 첫날부터 무너지고...🤷🏻‍♀️🤷🏻‍♀️

“(30) 맑스가 남성 임금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에서, 그리고 상품생산의 발달과정의 관점에서 시초축적을 검토했다면, 나는 시초축적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가져온 변화의 관점에서, 그리고 노동력 생산의 관점에서 시초축적을 다룬다. 따라서 내가 시초축적을 설명할 때는 맑스는 다루지않았지만 자본주의의 축적에 엄청나게 중요했던 일단의 역사적 현상들을 함께 다룬다. 여기에는 1) 여성의 노동과 재생산 기능을 노동력 재생산에 종속시킨 새로운 성적 분업의 발달 2) 임금노동에 대한 여성배제와 남성에 대한 종속에 기초한,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의 구축 3) 프롤레타리아트 신체의 기계화와, 여성신체의 노동자 생산기계화 등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시초축적을 분석하는 중심에 16세기와 17세기의 마녀사냥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신세계의] 식민화와 유럽소작농의 토지로부터의 축출이 자본주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만큼 유럽의 마녀박해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그러게 왜 맑스는 노동력의 생산에서 가사노동의 영역을 다루지 않았던 걸까. 
그 자신도 돌봄, 가사노동 없이 삶을 유지할 수 없었을 거면서.

“(13)다시 말해서 맑스의 분석은 [일부 돌발적인상황을 제외하고는] 노동의 위계와 차별의 여러 층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생산수단의 파괴만큼이나 자본주의의 구성 및 영속에 중요하고, 실제로 계급관계 규제에서 생산수단의 파괴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임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서문만 봤는데도, 오오-뭔가 가려운데가 긁어지는 느낌이다. 여튼 2월의 페미니즘책 읽기에 돌입합니다. 
(1월 책 아직 다 못읽음ㅋㅋ 원래 책은 한번에 여러권 읽는 거 아닌가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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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2-06 0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시작하고(사실 시작은 진작에 했지만.. 서문만.....) 곧 따라잡겠습니다! 빠샤!!
 

“(113-4)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1973~1978)의 한 대목에서 이 러시아 작가가 겪은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전방에서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를썼다는 이유로 지위를 빼앗기고 감방에 갇힌 후 ‘부드러운 검은 헬멧을 쓰는 전차병으로서 진솔하고 다정한 군인’인 세 명의 감방 동료를 만나는데, 그 세 명이 목욕탕에 침입해 두 명의 독일 여성 농민을 강간하려다가 기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솔제니친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 독일 여성들이 ‘천박한 계집들’이라고 단정한다. 엄격하고 타협 없는 공산주의 윤리의 판관인 솔제니친이 보기에 세 명의 동료는 잘못된 판결로 보복당한 것이었는데, 그 여자들 중 한 명이 ‘방첩 부대 대장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솔제니친은 전시 강간의 의미나 문제점, 실제로 효과가 있는 강간 억제 및 처벌 시스템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기는 커녕, 강간은 애초에 범죄가 아니며 그저 술에 취하는 것을 과하게 즐기는 성향 때문에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비열한 경찰국가의 참상을 폭로하는 것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렇다! 독일 영토에서 전쟁을 벌인 3주간 우리 모두는 여자가 독일인일 경우 강간하거나 쏴버려도 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전공을 세우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중략)

—>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감이 1도 없는 솔제니친.......
이쯤 되면 그가 옹호하고자 했던 어떤 보편적 인류애(?)적 가치는 ‘남성’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닌가 의심 할 수 밖에 없다. 아, 그가 위선자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아주 오랜기간 ‘보편’이 ‘남성’이었을 뿐. 

“(116) 로슨의 이런 비판은 강간에 대한 구좌파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이다. 적이 강간을 하면 그 적이 얼마나 짐승 같은 자들인지 보여주는 증거가 되지만, 우리 편을 강간하면 그 사실을 화제로 꺼내는 행위가 정치적 협잡이 된다.

—-> 뜬금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안희정이 생각났다. (일단은 그의 2심 판결에 대해 박수먼저 짝짝짝👏👏) 이어서 김지은씨의 미투와 그를 대하던 세상 일각의 반응들도. 엉망진창 댓글들을 보아하니 여전히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안희정이 ‘작은 일로 큰 일을 그르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입맛 써하는 빻은 인간들이 천지 삐까리인듯 하지만.

수전 브러운밀러가 각주에 꼬아서 단 댓글 처럼 “(114)자신의 정치적 고뇌를 너무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극단적일 만큼 둔감한 모습을 보인 사람”들 너무 많은 듯 하고 특별히 내가 지긋지긋하게 염증을 느끼는 부류들도 그런 자들이다.

정권교체 너무 중요하다며 용기내서 열심히 싸운다는 ‘대의’에 도취하여 “작은 것” 작게 취급하는 치들. 인기 얻으려고 거기 꼭 여혐멘트 넣고 당당하며, 좋아요 얻은 뒤에 자의식 빵빵 차가지고, 그래도 자기는 ‘존경받을 만한, 사랑스러운’ 아재인줄 착각(!)하는. 앜ㅋㅋㅋ 쓰면서도 싫어서 소름 돋았어.

여기까진 싫긴하지만 그런갑다 하고 봐줄 수는 있다. 소름이 아니라 토나오는 치들이 아직 남았다. 입 가벼운 진보 아재에서 좀 더 나간 류 - 이를테면 안희정. 이미 그 자신이 ‘대의’가 되어있는 중증 왕자병. 자기가 너무 잘나고 소중해서 “나는 어떤 여자와도 잘 수 있다”  그 자신은 넘나 머싯는 사람이기에 이여자도 당연히 원하고 있다고 착각.. 권력과 힘도 가지고 있으므로 가까운 동료 지인들을 성적으로 (혹은 정신적, 물질적으로)착취하면서도 .. 그게 착취인 줄도 모른다..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안희정이 너무너무너머머머머무 싫은 데, 솔까 꼭 정치권 아니라도 그런 왕자병 인격들 어디든 넘쳐나고, 그게 ‘남자다움’과 ‘자신감’,’리더십’등등으로 포장되어 꽤나 인정 받는 것 같아서 더 싫다.. 진짜. 하아....

*

이 책의 3부 “전쟁과 강간”은 전시강간을 다루고 있는 데, 저자가 어떤 부분을 답답하게 여기면서 쓰고 있는 지 눈에 빤하다. 나도 함께 고구마 먹을 것 같다. 독일(나치)군대의 전시 강간이 아니라 연합군 및 소련군의 강간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적지 않게 진영논리로 뭇매 맞으셨겠지. 

‘지금 연합군이 나치 군대와 똑같다는 겁니까?
근데여.. 아니 지금 이야기가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여..
그런데 굳이 뭐 본질 적으로 대답하자면... 네 같아여.. 근데 질문이 잘못됐어여...
정말 뭐시 중요한 지를 모르는 포인트의 질문들.
(요 질문이랑 묘하게 겹치네.. 모든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란 말입니꽥??)

“(112)물론 모든 러시아 군인이 강간범은 아니었으며, 붉은 군대의 잔혹 행위에 대한 독일 측 증언록을 보면 여성에게 친절을 베푼 사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소련군이 저지른 일의 책임을 에렌부르크의 선동 탓으로 돌리거나, 스탈린이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한 탓으로 돌리거나, 심지어는 어떤 민족적 특성 탓으로 돌려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전쟁 시기든 평화 시기든 남자들은 명령이나 허가, 특별한 전통 문화 없이도 언제나 강간을 저질러 왔다.”

—>개별 병사들의 일탈로 간주하는 것도.
아. 구태의연해. 그리고 반박도. 너무 남탓...
그건 남자 답지 못한거 아니냐고ㅋㅋㅋ 남자면 남자답게 인정하라고!!! ㅋㅋㅋ 그냥 나치나 연합군이나 붉은군대나 다 빻았다곸ㅋㅋㅋㅋㅋ 전시나 평시나 강간만큼 공고한 남성연대와 남성문화가 없다고..!!. 흐읍.. 😭😭

시인할리 없으니 페미언니들이 샅샅이 밝혀주시겠지..
그저 저는 열심히 읽어 은혜받고 속지 않겠나이다.

마지막 좀 긴 문단 이지만 중요한 부분 같아 옮겨둠.

*
“(61) 승리를 거둔 군대의 시점에서 강간은 순전히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저지르는 행위가 된다. 국가 단위의 테러와 정복이 보여주는 커다란 패턴의 일부로 강간을 인식하는 일은 사후에만 가능하다. ‘사후에야’ 이런 인식이 가능한 이유는 강간하려는 충동이 복잡한 정치적동기 부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언제나처럼 여성의 신체온전성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강간은 충동이 생겨 어쩌다 저지른 일에 그치지 않고 군사적 효과도 불러일으킨다. 피해를 입은 쪽에게는 협박을 당해 사기가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가해한 쪽의 국가가 강간을 시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군 예외) 전시 강간기록은 전쟁의 포연이 가신 후 적이 저지른 일을 취합해 분석하고 정치선전용으로 가공하면서 남게 된다. 정복당한 나라의 남자들은 ‘우리의 여자가 강간 당한 일을 궁극의 수치이자 치명타로 여기기 마련이다. 패배한 국가의 국민은 강간을 적이 그들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남자들은 ‘내 여자가 강간당한 일을 사실상 자기가 겪는 패배의 고통으로 전유해온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자기중심적 관점은 어느 정도 실용적인 쓸모가있다. 딸과 아내처럼 자기가 아끼며 함께 지내는 여성들이 강간당할경우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남성에게 지배자가 벌인 강간이란 정복당한 처지에서 겪게 되는 성性불능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줄 증거가 된다.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 남성으로서 성공을 보증하는 징표였듯, 여성을 보호하는 일 역시 오랫동안 남성으로서 자부심을 보증하는 징표였다. 그런데 점령군이 벌인 강간은 패배한 쪽 남성의 힘과 소유권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파괴한다. 강간을 통해 여성의몸은 상징적인 전쟁터가 되며, 승리자가 개선식을 벌이는 광장이 된다. 여성의 몸에 가하는 행위가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메시지가 되는데, 한쪽에게는 승리의 산 증거이고 다른 쪽에게는 패배와 상실의 산증거인 것이다.”

—> 아니, (심한욕) 내 여자가 당한 강간이 ‘패배’의 고통이라니... 아니요 저기요... 이건 니가 당한 ‘패배’가 아니라... 여성이 당한 강간이라니까요... 강/간/이/요... (읽다가 대 환장해서 잠시 덮었었다🤯🤯..)

전시 강간의 메커니즘. 그리고 ‘전시 강간’을 ‘전시’하는 이들의 뇌구조.. 물론 ‘니 여자’도 아니지만.. 
어디 강간도 안당해 본 ‘패배자 따위’가 고통을 느껴...진짜 코웃음이 쳐져서 답답해 미침.

쓰면서 점점 더 열받고 있으므로 딴길로 새면서 마무리 짓자면

그러니까!!
스카이캐슬 뒤에서 세편!!!
노콘준상 털깎고 정신 차리고 참회하고 끝나면 다야?
남자가 각성하고 남자가 구원해주거나 참회하면— 그럼 다 용서해야해!!!?!!
확 아갈머릴... 
(스카이 캐슬의 결말은 정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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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2-04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열차게 읽고 계시는 중이군요!
분노하면서 읽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ㅜㅜ
솔제니친이나 구좌파 그리고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진보진영의 남자들은 왜 유독 여성 이슈에서 만큼은 오히려 백래시를 하거나 주변부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가. 그들 역시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중에 이어질 챕터도.. 빡(?)칠 내용도 많으실 것 같네요.
 


이 책이 나온 1975년까지 강간의 역사가 “여성의 입장”에서도 아니고 ‘그냥’이라도 분석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지금까지 “역사”자체가 남자들만의 것이었다는 게.. 실감나네??
허허, 그놈의 남성연대 참 대다나시다😑
하아.. 그리고 인류의 갈 길은 참 멀다...😔

“강간이 역사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역사를 분석하는 도구를 이용해서” 연구한 기념비적인 저작. 수전 브라운밀러 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를 본격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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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스아실 오늘은 1월 29일이고.. 이 책은 1월 안에 읽어야 했을 책이었다는 것ㅋㅋㅋ
별수 없이 2월의 책도 밀리겠지만~ 그래도 오늘이라도 시작하기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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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1-29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며칠 안남았는데 저는 아직도 반이나 남았어요. 달리자, 달려!!

공쟝쟝 2019-01-29 17:27   좋아요 0 | URL
🏃🏽‍♀️🏃🏽‍♀️🏃🏽‍♀️🏃🏽‍♀️ 그런데 다음 책은 혹시? 정하셨나요?

다락방 2019-01-29 17:31   좋아요 0 | URL
아, 그 때 쟝쟝님이 말씀하신 혁명의 영점과 캘리번과 마녀요! 셋트로다가... ㅎㅎ 페이퍼 쓰도록 하겠습니다!

공쟝쟝 2019-01-29 17:38   좋아요 0 | URL
그럼 두권인거군용~!! 아이고 좋아라 ㅋㅋ

다락방 2019-01-29 17:40   좋아요 1 | URL
미치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부터 막 밀리기 시작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욕심이 똥구멍까지 차가지고 두 권을 선정했으니 이를 어쩝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자, 부지런히 읽어봅시다, 쟝쟝님!! 아직 읽지 못한 많은 책들이 쌓여 있다구요!!

공쟝쟝 2019-01-29 17:57   좋아요 0 | URL
우리의 (독서) 의지에 반하는 미루기 ㅋㅋㅋㅋㅋㅋ 전 설날만을 벼르고 잇삽니다!

블랙겟타 2019-02-01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준비물을 단단히 챙기시고. 이제 시작하시는군요. 푸쉬해드릴께요~^^ㅎㅎㅎ

공쟝쟝 2019-02-02 21:07   좋아요 1 | URL
후후-! 달립니다. 런런런런!

카알벨루치 2019-02-01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설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굿뜨한 시간 아시죠?🎶

공쟝쟝 2019-02-02 21:07   좋아요 1 | URL
오로지 읽을 책만을 앞에둔 지금 너무 굿뜨 행복합니다. 벨루치님도 메리한 설 되시기를!
 
페미사이드 - 여성혐오 살해의 모든 것
다이애나 E. H. 러셀.질 래드퍼드 엮음, 전경훈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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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페미니즘 읽기책 <페미사이드>의 늦은 리뷰를 올립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심각하게 읽었던 부분은 4부(매스미디어, 포르노그래피, 고어노그래피) 입니다. 종종 ‘포르노그래피’를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하는 논리들에 가끔 꿀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기 때문이죠. 일상에서는 “그거 다 여혐이야~!”라고 나이브하게 맞받아치긴 하지만 야동을 보는 것 보다 안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요즘세상에 모든 인간관계에 “님 노답! 차단!”을 맥일 수도 없고.. 감정적 대응 이전에 나름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책 덕분에 조금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단 저자는 포르노그래피와 성애물erotica을 구분합니다. 여기서 성애물은 성차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성을 묘사한 것이라면 포르노그래피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394)포르노그래피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성차별의 선전물이다. 앤드리아 드워킨과 캐서린 매키넌Catharine MacKinnon은 포르노그래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포르노그래피는 ‘이미지 그리고/또는 언어를 통해 여성의 성적인 예속을 노골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 사항 중 하나 이상이 포함된다.
① 여성이 성적 대상, 물건 또는 상품으로서 비인간화되어 제시된다. ② 여성이 고통이나 모욕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제시된다. ③ 여성이 강간당할 때 성적 쾌감을 경험하는 성적 대상으로 제시된다. ④ 여성이 묶여 있거나, 난자당하거나, 신체를 절단당하거나, 멍들거나, 육체적으로 상처를 입은 성적 대상으로 제시되다. ⑤ 여성이 성적으로 복종 또는 굴종하거나 전시되는 자세나 위치로 제시된다. ⑥ 여성의 신체부위들이 - 질이나 가슴이나엉덩이를 포함하되 거기에만 한정되지는 않고 - 전시되어 여성의 존재가 그 신체부위들로 축소된다. ⑦ 여성의 본성이 창녀인것으로 제시된다. ⑧ 여성이 물건이나 동물에 의해 삽입당하는 모습으로 제시된다. ⑨ 여성이 비하, 상해, 고문을 당해 피를 흘리거나 멍들거나 상처 입은 모습으로 불결하거나 열등하게 제시된다. 맥락상 이러한 상태에 성적 매력을 부여한다(Dworkin andMacKinnon 1988, 36)’ 헬렌 론지노Helen Longino는 포르노그래피를 ‘비하적이거나 가학적인 성적 행위를 재현하거나 묘사하여 그와 같은 행위를 승인하는, 그리고/또는 권장하는 성적으로 노골적인자료(Longino 1980, 44)라고 정의한다.”


“(411)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그래피를 선전의 한 형식”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여성을 소유하고 사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대상, 상품, 물건으로 보는 관점을 유포하며, 그에 수반되는 믿음을 강요”한다고요. 물론 주류학계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무시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좀 달리해서 우리가 거북해하지 않게 받아들이곤 하는 이론들을 검토해봅시다. 저자는 ‘광고’와 ‘욕망’을 끌어오죠.

갤브레이스는 《부유한 사회 The Affluent Society》에서 “(413)[현대 광고의] 중심 기능은 욕망을 창조하는 것 -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를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라고 말합니다. 그 밖에도 광고가 대중들의 의식과 욕망을 형성한다는 류의 언설은 특별히 새로운 이론이 아닙니다.

그리고 “(412) 이것은 정확하게 러셀이 ‘어떤 남성들에게 여성들을 강간하길 원하는 성향을 갖게 하는 역할’이라 부른 포르노그래피의 능력이다. 포르노그래피가 이런 역할을 행하는한 가지 방법은 ‘이전에 강간 묘사 장면에 자극되지 않았던 남자들에게 자극적인 여성 누드를 반복적으로 강간과 연결하여 보여준 뒤 나중에는 강간 장면에 자극되도록’가르치는 것이다.”

저는 이 부분이 사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비재 광고’가 ‘자본주의’의 선전방식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면 현대의 ‘포르노’란 ‘가부장제’의 또 다른 선전방식일 수 있다는 주장도 비약은 아니다 라는.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서웠습니다. 가부장제의 선전물들이 얼마나 여성을 끔찍하게 다루는지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요.

현실은 더 시궁창입니다. 강간을 넘어 살해로. 포르노그래피는 페미사이드로 연결됩니다.

“(398) 페미사이드와 포르노그래피 사이에 그나마 존재하던 구멍이 숭숭 뚫린 경계는 스너프 필름(snuff 여배우를 고문하고 사지를 절단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모든 포르노그래피가 스너프 필름은 아닙니다만, 궁극의 포르노(?)에 스너프가 위치한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저자의 글에 따르면 미국의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어렵지 않게 ‘성인’ 혹은 ‘호러’섹션에서 소프트 스너프 영화들을 구할 수 있다고 해요. 예상하셨겠지만, 소프트가 연출된 살해라면 하드 스너프는 정말로 살해하는 장면을 담은 필름으로 이 경우는 비밀리에 비싸게 거래된다는 군요. 오늘날 처럼 데이터를 공유 복제하기 쉬운 사회에서 스너프 류의 영상들은 더 구하기 쉬워졌겠죠. 마치 몰카가 ‘국산야동’으로 둔갑해 흔해져버린 것 처럼요.

물론 포르노를 보는 모든 남성들이 여성을 강간하지는 않습니다. 포르노그래피가 ‘페미사이드-여성혐오살해’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히 ‘모든’이들이 그럴리 없죠.

그러나 아주 ‘일부’라도 영향을 받는다면? 
그에 대한 피해를 여성들이 일방적(그것도 강간과 살해라는 방식)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라면?

범람하는 ‘포르노의 시대’.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강간 - 그리하여 결국 여성에 대한 살해로 이어지는 야만에는 그러한 욕망을 부추기는 미디어들의 선전이 분명 작용합니다. 저 역시 이전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권력의 작품 검열과 규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며,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입니다만, 어디까지가 ‘자유’와 ‘권리’로 허용되어야 하는지... 정말 어렵네요.

다만 이것 하나는 알겠습니다. 포르노그래피와 스너프 필름은 적어도 여성인 제가 자유롭게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권리를 신장해주지는 않는 다는 것을요. 꼭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도 토막나고, 난자당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류의 작품을 요즘처럼 흔하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관련한 페미사이드의 한 단락을 가져옵니다.

“(378-9) 포르노그래피가 “기술적으로 정교화된 여성 인신매매”라면, 더 나아가 스너프는 일종의 하이테크 린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실제 성차별 살인을 담은 영화나 비디오를 시청하는 남성들의 행위가 미국 내에서 문화적 관례로 ‘정상화될’수 있다는 악몽 같은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실제 살인을 촬영한 영상물과 구분되지 않는 ‘연예 오락’자료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되는 한, 정부 역시 연쇄살인의 공모에 직접연루된 것이다.
미국 헌법은 기업의 통제를 받는 미디어가 없던 시절에 작성되었다. 그때는 사진이나 영화도 없었고, 대량파괴용 기술도 없었으며, 여성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헌법이 여성들에게 제공한 미심쩍은 혜택 가운데 으뜸가는 것은, 오락과 광고가 포함되는 ‘매스mass’미디어에서 동료 여성이 모멸을 겪고 사지를 절단당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권리다. 그에 버금가는 혜택은 공격무기를 지닌 남성에게 공격당할 권리다. 이 두가지 권리 모두 포르노그래피 비즈니스와 총기판매 사업에 종사하는 백인 남성들에 의해 철저히 보호받는다. 이들은 진보적인 변화를 막기 위해 정계에 로비하고 선전활동을 벌이는데 수백만 달러를 지출한다.
권리장전은 글로벌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의 기술수준을 지닌 다원주의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 업데이트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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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 - 존재를 절멸시키는- ‘(여성)살인’에 대한 이야기. 영아살해와 인도의 사티, 마녀사냥. 이 책을 그저 ‘그런 일도 있구나’ 수준으로 모르는 먼 나라의 옛날 이야기처럼 읽고 싶은데도 그렇게 안된다. 

여남이 동등한 인격이 아니라는 오래된 소유-통제의 가부장적 개념들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당연히 ‘청산’되지도 않았으므로 지금, 우리에게서는 관계에서의 불협화음으로 폭력으로 그리고 종래에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원리가 된다.

페미니즘은 공기처럼 익숙해서 보이지조차 않았던 폭력을 보게 해준다. 때문에 ‘살인’을 읽고 있지만 일상에서 맞닥뜨렸던 (공기같아서 인식조차 못했던) 촘촘한 가부장제의 폭력적 경험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숨막히는 것은 나역시 가부장제의 산물이라 당시 상황들에서 스스로를 문제시 했다는 거다.

무서워서 혹은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 ‘그래, (화를 돋군) 내가 문제구나.’ 재빨리 참고 침묵했었다. 미안 잘못했어, 진심없는 사과를 하고 웃은 적도 많았지. 그토록 참고, 때로는 반성까지 했는 데, 나를 조절하는 것이 더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관계에서 ‘자아조절’은 나 일방의 노동이었겠구나 하게 되니 참 허탈하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게 마련이므로, 내가 조절하는 만큼 상대도 자기를 통제하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곰곰이 되짚고 있는 데, 그건 나의 착각.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으니 그렇게 생각해 버린 것이다. 지겹다. 이해의 코르셋.

*

“ (214) 가부장제 가정 : 여성에게 가장 치명적인 장소
단 5명 (8퍼센트)의 여성만이 낯선 이에게 살해되었으며, 그 중 4명은 강도사건 도중에 살해되었다. 8명(12퍼센트)이 신원미상의 남성에게 공격을 받아 살해되었으며, 5명은 강간까지 당했다. 이 5명이 해당 기간에 데이턴에서 낯선 이에게 성적 살인을 당한 사람의 전부였다. 이러한 살인사건은 비교적 드물게 일어남에도, 미디어의 주목을 많이 받는다. 성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에만 관심이 집중되는탓에, 여성들이 낯선 사람보다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더 많은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이 간과되는 불행한 결과가 빚어진다.”

우리가 페미니즘 을 공부하는 이유, 어쩌면 페미니즘을 알고부터는 이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울타리’가 사실은 그 선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울타리’였다는 것. ‘강남역 여혐 살인사건’도 문제지만, 정말의 문제는 너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친밀한 그의 위협이라는 것.

*

리메모리 “(57)기억이 우리를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억해야 한다.”

솔직하고 싶지만 솔직할 수 없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 말하려고 하면 다시 기억해야하고, 기억하기 시작하면 일상을 살아갈 수 없다. 그 모든 이해와 노동을 통해 겨우 안주하고 있는 이만큼의 안정도 포기해야하는 것이다. 이미 어떤 의미에서는 기득권이며 부역자이기도 한 나는 솔직히 페미니즘이 힘들고 어렵고, 버겁다.

모든 텍스트들이 나에게 ‘너 그렇게 살지마!’ 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는 데, 당장 이 삶의 방식을 멈추기는 어려우니까. 너무 너무.

읽는 것과 사는 것의 괴리가 심해지면 결국에는 살기를 멈추던가 읽기를 멈추던가 해야하는 거겠지. 그때의 난 뭘 멈출까. 당장은 둘다 멈추고 싶지 않은데. 이 심각한 불균형을 앓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미치거나 합리화의 달인이 되거나. 그렇게 되겠지. 결국 나는 위선자가 되는 걸까. 그건 진짜 싫은 데.



이 세계에 별로 기여한 바가 없는. 그러므로 지은 죄가 없는. 젊고, 그래서 더 잘 말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지적할 수 있으며,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젊은 페미니스트 동생들을 떠올린다.

“(57) 그 기억 위에서 살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아마도 앞으로 나아갔을것이다… 하지만 페미사이드 세계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 또한 참상을 직면하되,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방식으로해야 한다.”

아직은 살아가지 않은 너희는 앞으로 나아가라고. 함께 나아갈 수는 없으나 기꺼이 비키겠노라고.

가부장제에 기여하고 있는, 당장 이 모든 것을 박찰 수 없으며, 코르셋을 벗어 제낄 수도 없는 (모순적인) 나는 조용하지만 굳건하게 너희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요지는 얇디얇은 지갑을 열자.. ...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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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2-13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리메모리‘ 라는 단어에 밑줄 쫘악 그었었어요. 기억이 우리를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게 해야 한다... 한 단어인데도 너무나 멋진 말인 것 같습니다.

공쟝쟝 2018-12-13 12:57   좋아요 0 | URL
그쵸. 눈에 딱. 꽂히면서 위로 되는 단어 ㅜ_ㅜ 토니모리슨의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지더랍니다.

단발머리 2018-12-13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아주 마음을 콕콕 찌르네요.
저도 페미니즘 읽어갈수록 그런게 힘들어요.
내가 알게 된 지식과 내가 사는 현실 사이의 간극. 그래서 쟝쟝님처럼 저도 그런 의문을 자주 갖게 되요.
나도 위선자 아닐까.
나도 가부장제의 부역자 아닐까.
아침부터 고민되는 질문들이지만 쟝쟝님 글 읽으니까 좋으네요.

공쟝쟝 2018-12-13 12:58   좋아요 0 | URL
힝..... 마자여.. 부역자....... ㅜ_ㅜ
인정은 하겠는 데, 그 후에 무엇을 해야할지는 너무도 고민되요.
다들 너무 가까이 있는 것들이라. 흙흙..

다락방 2018-12-13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습니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으며 같은 고민 또 각자 다른 고민들을 하게 되네요.
가장 많이 우리는 자신 안의 여성혐오를 돌아보고 잘못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 그래도 앞으로 또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겠죠.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기 위해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어제 몇 장 못읽고 잤어요. 너무 졸려서...
우리, 12월에 최선을 다해 함께 나아갑시다!

공쟝쟝 2018-12-13 13:00   좋아요 0 | URL
읽는게 사는 것을 초과하지 않게 하고 싶은 뎅... ㅜㅜ.. 갑자기 다른 선택들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아직 없다 말이죠 ㅜ_ㅜ 그래도 함께 읽고 있다는 것이 주는 묘한 안전한 기분이 있습니다. 같이 읽어나가요. 서로에게 필요한♡ 우리!

cyrus 2018-12-13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르셋을 하지 않는(못하는)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그 사람한테 ‘모순적이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늘 완벽할 수 없고,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유독 페미니스트의 ‘인간적인 결함’을 거론하면서 페미니스트 자격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를 구분하면서 페미니즘 자체를 문제 삼으려고 해요. 그런 말을 들을 필요가 없고, 자책하지 않아도 돼요.

공쟝쟝 2018-12-13 19:57   좋아요 0 | URL
탈코운동은 넘사벽이고.. 사실은 저도 모르고 지었던 죄들과..일상에서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웃고 참고, 괜찮다고 넘겨버리는 것들이요.. 그런 것들이 맘이 아프게 하네요~ 자책은 좀만 할게요!

cyrus 2018-12-13 20:31   좋아요 1 | URL
제가 ‘코르셋을 하지 않는‘이라고 쓸려고 했는데 ‘탈코르셋을 하지 않는‘다라고 잘못 썼네요.

공쟝쟝 2018-12-13 20:42   좋아요 0 | URL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