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모종혁 지음 / 서교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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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 년 전 중국 술을 난생 처음 입에 대었다. 그 기억은 너무 강렬해서 엊그제 같기만 하다. 주로 팩스로 업무 교환을 하다 직접 (나는) 중국 땅을 밟게 되었는데, 얼굴 모양만 한국인과 흡사하고 일상의 모습은 덜 개방된 낙후한 모습을 띠었다. 그런데 무역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즉 총경리, 경리, 통역, 기사 등은 외국물을 먹어서인지 제법 때깔 나는 입성으로 나를 극진히 대해 주었다. 한국 인천에서 위둥 페리를 타고(22시간 정도) 닿은 곳이 바로 웨이하이였다. 나는 그곳에서 인생 처음으로 중국이라는 민낯을 몸과 마음으로 맘껏 흡수했다.

 

 대학 시절 배우고 익혔던 중국어는 소통에는 어느 정도 가교 역할을 해 주었지만 심오한 대화는 불가능했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4주 정도를 머물게 되었는데, 일정에 따라서는 무역부 사무실 직원과의 생산 리드 타임 조율과 제품 하자 최소화, 선적 등에 관한 문제를 협상했다. 내 옆엔 한족이면서 평양에서 한국어를 배운 통역이 있었다. 그의 말투는 북한 말투에 가까운 듯 투박하고 단조롭기만 했다.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지의 살아있는 중국어를 익히려고 귀로 듣고 손으로 메모하기에 바빴다. 현지 무역부 직원과 생산 공장 책임자(공장장급 등)와의 식사는 으례 목이 타들어가는 도수 높은 중국 술이 '약방의 감초'와 같이 주석을 빛내 주었다.

 

 처음 웨이하이 땅을 밟고 식사 대접을 받았던 음식점은 규모나 분위기 면에서나 최상은 아니었다. 당시 최신 유행가가 식당 공간을 휘감아 주고, 이윽고 내오는 중국 음식의 가짓수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방불케 했다. 색, 향,맛이 삼위일체가 되어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를 만난 듯 했다. 음식의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라탕에 우량예(五糧液)라는 술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에서 소주, 맥주는 기분에 따라 '벌컥벌컥' 마실 수도 있겠지만 50도가 넘는 중국 술은 살금살금 문지방을 넘어가는 것처럼 눈을 딱 감고 입과 식도를 넘겨야 하는 수순, 의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중국 술 자체를 사양했지만 그 자리의 주인공이고 펑요우(친구)로서의 체면(몐즈)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인간관계를 고려해서 아니 마시고는 제대로 일과 관계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목이 타는 듯한 고약하고 매서운 느낌은 위 속으로 유영해 들어갈 때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뒤끝은 없었다.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은 오랜 시간 중국에서의 생활 경험과 지식 등을 두루 소개하고 있는 모종혁 저자는 중국 현지의 선구자로 불릴 정도로 중국통(中國通)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중국 오지 등을 밀착 취재하면서 폭넓은 지식과 식견, 현장감 있는 현지 소식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나 역시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중국 소수민족이 사는 곳인데, 이 글에선 소수민족과 관련한 역사, 문화, 술 등에 얽힌 고사를 들려 주고 있다. 풍수지리에 입각하지는 않았더라도 좋은 물, 토양, 원료 등이 제대로 배합되고 오랜 세월 숙성시킨 술이라면 술의 품격은 살아 있지 않을까. 특히 중국은 94%를 차지하는 한족을 위시해서 조선족 등의 55개 소수민족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 제1의 인구 대국이다. 게다가 세계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황허 문명과 역사 속의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남긴 술과의 고사 등은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를 더해 준다. 강물과 지하수를 끌어와 전통주를 빚기도 하고, 수많은 소수민족과 굴지의 대표 요리(베이징, 상하이, 쓰촨, 광둥)들이 특색 있는 지방 술과 더불어 중국의 문화를 한층 더 빛내고 있다. 근자에는 포도 생산량을 증대시켜 중국 와인의 격조를 높이려는 야심찬 기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후, 풍토, 산물 들과 어울려 중국 술은 중국인의 뇌리에 깊은 문화적 DNA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삼국시대의 조조, 손권, 유비, 제갈량 등을 비롯하여 시(詩) 세계의 거인 두보, 이백 그리고 현대 중국사에 있어 마오저둥, 덩샤오핑, 저우언라이 등이 중국 술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다. 쿵푸쟈주, 마오타이주, 우량예주 등을 넘어 셀 수 없이 많은 중국 술은 직접 그 곳에 가서 음미하고 느껴야 비로소 중국 술과 중국인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세계 제1의 인구 대국 중국은 명실공히 술의 왕국이 아닐 수가 없다. 운치와 기품이 넘치는 리장과 우전(수로와 민가의 조화)의 술이 익어가는 풍경이 인간의 온갖 시름을 달래 주기에 족하다. 중국 술은 갖가지 곡류를 이용하여 제조하는 것이어서인지 마음 든든하게 다가온다. 모종혁 저자의 중국에 대한 애정과 폭넓은 식견은 새삼 중국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새롭게 전환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술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를 떠나 중국 역사와 문화, 고사를 다시 체득하는 시간이 되어 내게는 매우 유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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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꿈꾸는가 - 성 심리학으로 쓴 21세기 사랑의 기술
에스더 페렐 지음, 정지현 옮김 / 네모난정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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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性)에 대한 담론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누는 세 가지 일은 가장 기본욕구로 본능에 가깝다.이것 가운데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결핍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가운데 그 어떠한 이유로든 세 가지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만 무척 어렵다. 일과 삶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부부 사이에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불만족스러우리 만큼 삐걱거리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외부적 환경과 타성에 젖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두루뭉술하게 흘러가고 만다. 부부는 두 개의 성이 모여 한 배를 타고 인생의 항해 끝을 향해 가는 것인데,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분명 부부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키는 윤활제일진대 그렇지 못하는 데에 문제의 발단이 아닌가 싶다.

 

 현재 나는 오십 초반으로 신혼시절과 두 아이가 어릴 때엔 자주 스킨십도 하고 성적인 욕구도 강했다. 본능과 사랑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라는 단어만 생각하면서 살아갈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일까. 부부 간에 침대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교환은 파라다이스의 심연을 유영하는 기분일 때도 있고, 의무감 내지 책임감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성적 행위도 있다. 전자가 당연히 이상적이고 멋진 성 행위이면서 부부의 금슬을 더욱 빛나게 한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사회적 지위, 삶의 질 등이 커다란 변화를 보이면서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마음 만큼 쉽게 굴러가지 않는다. 인간의 성 행위는 단지 번식 행위 및 심심풀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부 사이에 녹이 슨 성적 욕구에 윤활유를 주입하여 활기차고 윤기나는 삶의 패턴으로 전환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요즘 부부는 외벌이보다는 맞벌이가 대세다. 업무의 양, 질이 어떠하든 사회라는 격랑 속에서 헤쳐 나가야 한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현실에 부합하는 대목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지출이 큰 교육비와 생계비, 알 수 없는 불안한 내일에 대한 걱정, 조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하는 것들 등으로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머리와 내면은 초췌해 간다. 무덤덤하고 재미없는 생활의 연속이다. 게다가 놀이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선 부부가 주말과 같은 휴일을 활용하여 부부의 금슬을 쌓아 가는 마음의 여유가 크지 않다. 내 경우엔 휴일엔 다음 주를 맞이하기 위해 부족한 수면을 채운다. 기껏해야 놀이터, 외식, 사우나에 가는 것이 고작이다. 신혼초엔 새파랗다고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싱싱한 야채와 같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목마른 채소밭의 야채와 같이 몸과 마음은 시들시들해져 간다.

 

 심리치료 전문가로 활동 중인 에스더 페렐 저자는 현대 사회의 부부들이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해 성적 행위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성 상담자들의 사례를 들어 얘기하고 있다. 성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어도 이 글을 읽다 보면 부부라는 명제와 성 행위의 근본이 무엇인가, 왜 성 행위가 줄어들고 있는가, 뜸해진 성 행위를 개선할 방법은 없는가 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 가운데 인간은 동물과 같은 야수적 성 행위가 아닌 매력과 탐닉을 추구해 가는 심리적 작용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성 행위는 기분 좋은 친밀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에로틱한 욕구의 본질과 가치를 충분히 느껴야 한다. 부부라는 형식과 의례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르는 성적 행위는 '속 빈 강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또한 남자는 힘으로 여자는 사랑을 받는 것으로 전통적인 성 행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 성 행위를 하기 전에 서로가 이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의견을 나눠야 한다. 성 행위를 전제로 부부의 도리, 친밀감, 쾌락,오르가슴, 육체의 신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성 문화가 개방되어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것은 성 행위에 대한 계층 간의 인식의 차이가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유교적 문화의 지배를 받은 연령층과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젊은층들과이 느끼는 성 행위에 대한 인식은 사뭇 별세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고 애정을 느낀다면 속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몸과 마음으로 생각과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이상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친밀감과 우정의 깊이가 깊어갈수록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사랑을 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가 있고 생각하는 것이 복잡해져 가고 삶의 질이 팍팍해질수록 사랑만큼 애정을 확인하고 친밀도를 더 깊게 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새삼 해 본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서 "에로티시즘은 타인에게 다가가는 움직임이다. 이것이 에로티시즘의 본질적인 특성이다."라는 말을 새삼 되새겨 본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성에 대한 호기심, 욕구가 싹튼다고 한다. 이러한 호기심, 욕구가 이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과 책임, 결과 등을 알아가는 데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일선 교육현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이제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성적 욕구, 행위도 노력과 의지, 타협이 뒤따라야 한다. 일방적이고 비도덕적인 성 행위가 빈번해질수록 사회적 건강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몸보다 머리와 내면과의 적절한 타협과 소통을 통해 부부 간의 성 행위가 친밀감과 애정의 깊이로 전환해 갔으면 한다. 가장 편안하고 멋진 공간에서 부부만의 이상적인 에로스가 펼쳐지기를 나 또한 노력해 가련다. 부부 간의 성 행위에 앞서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는 '신뢰'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것이 성적 유대감을 깊게 하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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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한빛문고 1
이문열 지음 / 다림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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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의미다. 예나 지금이나 크고 작은 집단 속에는 호랑이는 못되지만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의 행세를 톡톡이 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다. 게다가 인간의 속성상 알찬 내면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개개인을 평가하고 행세하려 든다. 그러한 행세를 하는 사람을 일종의 힘께나 쓰는 권력자라고 여긴다면 과연 그것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까. 그러한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속편하게 따라가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속은 새까맣게 타들고 만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힘깨나 쓰는 사람들의 수명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이 진리다.

 

 누구나 추억이 서린 학창 시절이 있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보다는 누군가의 두터운 배경을 뒤로 삼은 위압적인 존재감을 갖은 자가 있을 것이다. 같은 또래이지만 몸집, 목소리 톤, 위압감 등으로 주위를 지배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만다. 나도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 몸집도 크고 공부도 잘하며 선생님들의 신임을 듬뿍 받던 동창이 있었다. 나는 몸집도 크지도 않고 싸움을 잘하지도 못해 그가 내겐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약간 껄렁껄렁하는 아이들과는 보이지 않는 갈등과 알력으로 가득찼다. 앞서도 말했듯 그는 놀기도 잘하지만 언제 시험공부를 했는지 성적 결과는 최상위권이었다. 거북이의 걸음으로 쉼없이 걷고 움직이는 나는 시험결과는 그보다 뒤떨어져 열등의식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다만 나는 쉼없이 노력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에게 인정받아 격려와 칭찬이 힘이 되었다.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주인공이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형식의 이야기를 스케치하고 있다. 학창시절은 바로 엊그제 일처럼 선연하게 다가오는데, 학창시절의 갖가지 에피소드가 마치 한 사회의 단면을 압축해 놓은 파일과 같다. 서열, 위계의식, 권력 등으로 똘똘 뭉쳐진 급우 집단 속에서 불세출과 같은 하나의 영웅이 나이가 들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지만, 예상외로 그 영웅은 학창 시절의 기억 속에서만 영웅이었지 성장하여 사회인이 되었을 땐 물거품과 같은 초라한 행려자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앞선다. 주인공은 바로 엄석대이고 이 글의 전반을 이끌어 가는 자는 서울에서 남쪽 바다 미포가 있는 곳으로 전학 온 한병태이다.

 

 또래보다 두 서너살이 많았던 엄석대는 공부도 잘하고 담임 선생님의 신임도 두터웠던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읽어가다 보니 엄석대에겐 담임의 힘을 빌어 급우들을 짓밟는 뭔가가 다분하다는 생각이 하나 둘씩 들게 되었다. 엄석대는 반의 보스 역할을 자처하고 반 아이들은 그를 따르는 호위무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인 신분의 아버지를 따라 전학 온 한병태는 엄석대의 꼬락서니가 맘에 들지 않아 담임께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러 바치려다 되레 본전도 찾지도 못하고 교무실에서 쫓겨 나고 만다. 한병태는 합리적 사고와 자유가 몸에 배여서인지 엄석대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행위들이 영 맘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간이 흘러 담임도 바뀌고 엄석대를 위한 대리시험 행위가 발각되면서 엄석대의 영웅은 산산조각이 되고 만다. 게다가 반장 선거에서 엄석대는 선출되지 않는다. 그의 자존감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는 교실을 뛰쳐 나가 영영 한병태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26여 년이 흐른 뒤 경찰에게 잡혀 가는 엄석대의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내게 국민학교 시절의 영웅은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했던 친구가 있다. 나이는 같은데 몸집도 크고 공부, 운동, 싸움 모두가 만능이다. 그러나 엄석대와 같이 누군가의 힘을 빌려 행세를 했던 친구는 없다. 나는 꾸준하게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고 그 친구는 공부하는 방법과 포인트를 잘 파악하는 학생이었다. 시험이 닥쳐오면 3당4락이라는 마음자세로 시험준비에 돌입한다. 시험결과는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그 때는 그것이 최고였는지 모르지만 어른이 되고 자식을 기르고 노후가 가까워지면서 내 마음 속의 영웅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을 제쳐 놓고 마음 편하게 행복한 시간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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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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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긴장감과 설레임을 품고 까칠하게 자란 수염을 면도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결혼식이나 중요한 이벤트, 드물게 만날 법한 사람과의 면담을 앞두고 면도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의 묘한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수염이 많지 않은 타입이라 촉감으로 까칠다 싶으면 바로 전기 면도로 손질해 주면 그만이다. 매우 심플하다. 기대와 설렘, 긴장이 섞인 의례적인 면도식이라고 하면 거창한 표현일까. 이제 오십을 넘은 인생길이지만 기대, 설렘, 흥분, 긴장을 더 품을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덜 스트레스 받고 부풀어 오르는 소소한 세로토닌이 몸 안에 퍼져 갔으면 더 좋겠다.

 

 잡지 안안(Anan)에 실린 50여 편의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엮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는 무라카미 작가다운 풍모가 선명하게 연상된다. 어디에 구속받지 않은 작가만의 자유분방함과 모던함이 어우러진 일상의 풍경을 담백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무미건조하게 재미없게 살아 온 내게는 이 50여 편의 글들이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기도 하고 약간의 샘이 나기도 한다. 그만큼 세속의 기준에 내 자신을 까워 넣어 살아 왔던 것이 몹시 후회가 된다. 이왕지사 다 잊고 지금부터는 더 멋진 내일을 향해 질주해 나갈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어느 정도 인생의 강판 두께가 두툼해질 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족과 함께 맛난 음식 기행도 하고, 중국 칭장 열차를 타고 산업화에 때묻지 않은 청정지를 온몸에 담아 내고 싶다. 수도없이  마음으로만 갔다 오는 곳들은 마치 몇 번이라도 다녀온 듯한 착각과 친근감을 안겨 준다. 무라카미 작가는 여행과 음악, 케쥬얼한 차림으로 여러 곳을 주유(周遊)했던 체험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내려져 있다. 또한 그가 쓴 원서(原書)를 보면 군더더기 없는 현대 일본 표준어가 특색이다. 재즈와 클래식에 심취했던 무라카미 작가는 이러한 장르의 에피소드를 늘 싣고 있다. 누구나 음악을 싫어할 리는 없겠지만 무라카미 작가만큼 음악의 독보적 애호가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세상은 중고 레코드 가게이기도 하다"라고 한 멋진 대목은 연륜과 경험치가 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재킷을 만져 보고 냄새를 맡아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시기에 발매된 것인지 대충 안다. 무게와 종이 감촉만으로도 '이건 오리지널이군' '이건 재발매로군'하고 순식간에 구분한다. -p83

 

소소한 일상의 소재들을 한 편의 글로 실어 낸 이 글을 읽다 보니, 작가란 많은 곳들을 유랑자가 되어 듣고 쓰고 렌즈에 담아 내는 정신적 노동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러한 행위들이 누적되어 창작의 모티브가 되고 수많은 독자들과의 교신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 글은 무라카미 작가의 사고방식과 느낌과 취향가 표현방법과 다양한 요소들이 골고루 배여 있다. 그가 쓴 다른 글을 읽는데에도 그의 생각과 취향,사고방식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명곡 윌슨의 〈캐롤라인 노〉를 들어 보련다. 인생과 시간의 합주를 고요히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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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권정생 소년소설, 개정판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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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참혹함에 보리고개 시절까지 겪어야 했던 인생 선배들의 삶의 애환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연명(延命)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기에 언감생심 학교 근처에 가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은 머슴살이, 식모, 바느질 삯 등으로 생계를 도모해야 했다. 빈곤한 가정에서 부모가 경제적 뒷받침을 못하니 어린 딸 자식은 식모로 떠나고, 친모는 새집 살림을 차리기도 했다. 그러한 가정, 사회의 모습이란 생기도 없도 초근목피도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는 모습과 다름 없다.

 

 나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식모 생활을 하던 친척이 있었다. 한참 감수성이 강했던 사춘기 시절 남의 집에 들어가 온갖 궂은 일을 하고, 명절이 될 무렵에나 고향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를 일찍이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친척은 착한 심성을 지녀서인지 꿋꿋하게 남의 집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못난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친척이 식모살이 하던 집은 지금도 옛모습 그대로이다. 나로서는 친척을 누나라고 불렀는데 식모살이 하던 집 문 앞에서 그 누나를 부르면 바로 뛰쳐나올 것만 같다. 그 잔상이 엊그제만 같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권정생 작가의 작품은 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접했던 작품은 『강아지 똥』 이었다. 강아지 똥은 하찮은 소재처럼 다가오지만 읽고 나면 세상엔 쓸모 없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강아지 똥이 민들레 꽃의 자양분이 되어 주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하찮게 여기는 사물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 권정생 작가의 글쓰기의 모티브가 매우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몽실 언니》는 한국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 가정의 애환과 이념으로 죽고 죽이는 처절한 상흔의 모습을 되짚어 내고 있다. 몽실이는 이 땅의 언니이고 누나이고 딸이고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원래 아버지를 버리고 딴데 시집 간 어머니를 따라 갔던 몽실이는 김씨라는 의붓 아버지에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쫓겨 난다. 김씨에게 이복 동생 둘을 둔다. 고모의 부추김에 의해 몽실은 김씨 집을 나오고 새어머니 북촌댁을 맞이한다. 북존댁이 낳은 딸이 난남이다. 난남이를 구걸을 해가면서 먹여 키운다. 그러한 가운데 마을과 사회는 한국 전쟁의 난리통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된다. 단지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게다가 몽실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기도 한다. 어리디 어린 몽실은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긍정적으로 여기면서 극복해 나간다. 친부모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몽실은 어엿한 성년이 되어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된다. 어린 몽실이가 지근거리에서 만나고 부딪히고 겪었던 일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만다. 가엾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몽실이는 한국 전쟁 당시 한국 사회의 초상화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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