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선택 - 전 세계를 뒤흔들 시진핑호 중국에 대비하라!
양중메이 지음, 홍광훈 옮김, 강준영 해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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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5세대 지도자 시진핑의 시대가 개막되었다.중국이 숨가쁘게 달려오고 있는 개혁.개방을 기조로 여전히 중국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중국이 과연 그들만의 경제성장 이면에 풀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예를 들어 빈부격차,소수민족,환경오염,정치민주화 등을 들 수가 있다.이러한 상황을 안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이 중국의 당 중앙 총서기에 오르게 되고 총리격인 리커창과 함께 중국의 5세대를 10년간 쌍두마차식으로 이어갈 것이다.

 

마오저뚱의 공산혁명 이래로 중국은 변치않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공고하면서 한 편으로는 시장자본주의를 도입한 지가 1세대가 넘었다.중국의 동부 연안도시는 이미 서구식 자본화가 팽배하고 시민들의 소득격차도 크다.나아가 중국이 비록 서구식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지만,국영기업이든 사영기업이든 그들이 거래,경영에는 수많은 '관계'망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 특색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중국은 집권(중국 공산당) 귀족 자산 계급이 통치하는 것이 관례이고,공산당의 모든 정책이 귀족 자산 계급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마오저뚱,덩사오핑,장저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중국 공산당 영수들은 지금까지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공고히 해왔으나,노동간의 빈부격차,부동산 거품,관의 부정부패,비리,소수민족(티벳,신장위구르족 등) 그리고 6.4 천안문 사태로 촉발된 정치민주화의 불씨는 시진핑이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중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선망과 경이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정치민주화에 대한 뜻있는 지식인과 인사,시대의 요청 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진핑은 혁명1세대이고 마오와 노선을 같이 했던 부친 시중쉰의 후광을 입고 정치계에 입문한다.다만 그는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아버지는 반당분자(류즈단 사건)로 몰리면서 그의 집안도 파락호로 변한다.그는 지방 산시성 산골로 하방운동을 하면서 농민,노동자의 삶을 깊게 체험한다.도중에 노동운동이 힘들어 도망을 치기도 하지만 이모부의 권유로 다시 하방운동을 하게 되는데,그의 미래는 공산당에 입당하는 것이라고 믿고 입당원서 10번을 쓰면서 간신히 입당에 성공하고 국방부장이었던 겅바오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여느 공산당 서기와 같이 지방에서 정치경륜을 쌓아가게 된다.광동성,저장성,상하이시 서기 등을 거치는데,아버지 시중쉰과 덩사오핑,장저민 등과의 인맥관계에 의해 그의 정치적 입지가 넓혀져 가고 결국 후진타오에 의해 5세대 지도자로 지목을 받게 된다.첫 번째 부인과는 이혼을 하고 두 번째 부인 군인이면서 국민가수인 펑리위엔을 만나며 멋진 내조,부인의 톡톡한 덕을 입기도 한다.

 

그는 하방운동을 통해 자신의 재주와 재능을 어설프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때가 되면 그것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정신을 그대로 실천한다.시진핑은 겉으로 보여주는 외양에서 나타나듯 묵직하면서 인내력이 강한 소유자이다.또한 독서를 많이 하는 인물인데 맹자,공자의 가르침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도 한다.

 

 

중국은 꽌시(關係)에 의해 촘촘하게 인맥이 형성되어 있다.중국 사회주의 노선과 규율을 기본 강령으로 하면서 중국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숙제를 시진핑은 과연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5세대가 할 일이 아닐까 한다.소득 분배의 불평등과 부의 편중,식량과 에너지,환경 오염,소수민족,민주적 정치개혁의 드라이브를 어떻게 이어나갈 지가 주목된다.중요,조화,민본이라는 공자의 사상을 현실정치에 어떻게 접목하여 거대한 중국인민을 리드하고 집권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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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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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태어나 기초사회 단위인 국민학교부터 민주국가가 최고로 좋고 공산국가는 나쁘다는 이념과 사상 교육을 직.간접적으로 들어왔다.민주국가의 핵심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가의 주체는 국민이다라는 헌법 조항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자체로만 봐서는 분명 국민의 힘이 최고이고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국민의 공복이 되어야 함은 마땅하다고 생각되는데 민주주의라는 말자체를 시대와 정책에 의해 이리 저리 훼손시키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휘두르며 힘없는 다수의 민중들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정권 유지를 위한 민주주의는 한낱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정권을 잡고 있는 핵심계층들만 민주주의를 넘어 절대권력의 달콤함과 그들만의 잔치를 벌여 온게 현대 한국사의 슬프고도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이 글에서도 밝혔듯이 민주주의는 시대에 따라 다르고 정권을 누가 쥐는 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실천해 왔다.그리스 에피다우루스 원형 야외 극장의 아고라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의 시에나,캄포 광장과 푸블리코 궁전은 민주사회의 시원이 되고 원형이 되고 있으며,왕과 교황의 세력이 막강하면서 인본주의를 부르짖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이 계속되고 20세기 들어서면서 영국에서 최초로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는 등 실질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날이 갈수록 변화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도 만델라를 비롯한 민주 인사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민족차별의 중지가 결국은 '민주'라는 시대적 요청 앞에서 본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요근래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진전되고 있는 민주화의 거센 물결은 시대의 사명이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아직까지도 국민을 섬기고 국민에 의한 법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북한,쿠바 등도 시대적 요청과 물결 앞에 1인독재와 세습이라는 폐단이 무너지리라 믿는다.사회주의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다수의 국민의 생각과 의견,표현의 자유 등이 수렴되고 개진되지 않기 때문에 속칭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시대'이고 인간의 본능은 늘 보고 배우고 남과 비교하며 보다 나은 방향과 질이 무엇인가를 계속 궁리하고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탈출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클레이스테네스가 개인과 집단이 시민에게 상당한 권력을 쥐여준 정치제도 개혁안이 정치적 영향력이 컸으며,나아가 이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로 이어지게 되며 선거 문화의 확산되며 이는 도시,상거래,종교 협의회,인구의 다소를 떠나 어떤 형태로든 선거라는 형식를 치뤄내는 본보기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중세에선 특이한 점은 그라우뷘덴의 관행과 전통의 차이가 공익에 대한 중세적 관념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 그라우뷘덴의 시민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규정하는,코뮌에 충성을 맹세하고 개인의 덕성 및 천부적 자유권과 같은 사상은 단지 공동체에 참여했기에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나아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정치 세계는 신성하고 질서정연한 하나의 우주가 다수의 주권국가들로 탈바꿈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의 대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시민들의 의식 수준과 사회참여율이 높아지면서 급진적인 민주형태를 보여 준다.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의회 정치,유권자 의식도 한층 증가되는데 18세기초반부터 19세기초반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선 정기 선거와 보궐선거가 36번이나 이루어졌다는 점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 준다.

 

미국은 영국에서 넘어온 청교도 혁명세력에 의해 정당정치와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지고,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이라는 만인 평등과 국민에게 주권이 있음을 만천하에 선포하게 된다.

 

20세기 접어 들면서 세계는 민주주의냐 공산국가로 양분되면서 이념과 사상의 문제가 대두되는데 소련,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와 미국,영국을 위시한 민주주의 진영으로 양분된다.그리고 소련과 동구 유럽은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과 폐단이 국민들의 삶에 핍박을 안겨 주고 경제적인 위기가 처참한지를 깨닫게 되면서 20세기말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이 시장 자본주의를 태생시키며 중국은 국체는 사회주의이고 외형은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면서 경제성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자본주의가 민주화를 낳게 되고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가속화 시키면서 둘은 양분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시대와 지도자,흐름에 따라 변화와 개혁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절대 다수의 국민의 생각과 욕구마저도 획일적인 국가시스템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놓는다면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그들이 언제가는 밖으로 뛰쳐 나가려 사회와 국가에 대해 분노의 폭발이 없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또한 한국의 경우에도 정치 민주화는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현정권과 같이 정권유지에 반하는 세력에겐 감시와 처벌의 끈을 놓지 않고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폭압정치를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다만,깨어있는 지성인과 양심 세력들이 연대하여 세를 불려 나가는 길이 대다수가 원하는 민주주의의 꽃이 피고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과 사회부조리,부정부패,부의 세습 등이 완화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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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트라우마 - 어느 외교 전문기자가 탐색한 한미관계 뒤편의 진실
최형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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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이 있다.필요할 때는 긴요하게 사용하다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면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말인데 한.미관계는 구한말 개항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버릴까 말까,버림받을까 아니면 잘못 엮일까를 두고 저울질을 해왔다.그것은 양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고 정치,경제의 역학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한국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미국의 그늘을 쉽게 벗아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사회 구성원의 시각차도 크다는 것은 말할 나뉘도 없다.

 

한국은 해방직전부터 미국,영국,소련에 의한 카이로,포츠담 선언 등에서 한반도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를 놓고 미국과 소련이 주축이 되어 왔다.겉으론 조선이 주체국이 되어 한반도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론 해방이후 남한은 미군이 통제하고 북한은 소련에 의한 사회주의 체제가 뿌리를 내린다.남한은 이승만정권이 들어서면서 친일세력과 미국식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북한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공고한 사회주의 체제,유일 사상 등이 뿌리를 내리면서 남과 북은 이념과 사상면에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나아가 한국전쟁을 기화로 일본은 경제적 도약을 이룩하게 되는데 그것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덕이 크고 전범국에서 합법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게 해주며 일본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략적 요충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미일동맹국으로 변질되고 일제 강점기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이 불참하면서 전쟁 배상,보상 문제들이 철저하게 왜곡되어 버렸던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이승만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으면서 미국에 대한 거센 항의였다.미국을 협박하면서 1905년 조선을 팔아먹고 1945년에도 남북한 모르게 38선을 긋고 조선의 반을 떼어주느냐는 약자의 울분이었는데,결국 미국과 맺은 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주둔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승만정권의 3.15 부정선거로 인한 대학생들의 이승만 하야와 민주화의 요구,이틈을 타서 박정희에 의한 5.16 군부쿠테타와 장기 집권으로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저항과 희생,탄압이 이어지면서 정치,군사,이념적인 면에서는 동토의 왕국이 되시시피했다.특히 미국은 1960년대 들어 베트남전에 온힘을 쏟아 붇지만 패배하게 되고 한국 역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는 의미에서 대한의 건아들을 베트남에 보내면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다.

 

미국은 한국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니 주한미군을 일정부분 감소해야 한다는 단계적 주한미군철수를 시사하니 한국측에선 자주적으로 핵개발 등을 서둘렀던 것이다.박정희에 의한 군부독재와 관료들의 부정부패,인권탄압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이루어졌고 지식인,종교인,작가 등이 합세하여 독재정권에 맞섰지만 철옹성과 같은 군부독재의 요새는 끄덕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정희를 이은 전두환의 신군부의 출현과 눈에 가시와 같은 민주인사들의 탄압이 거세어지면서 미국도 전두환의 인권 탄압에는 좌시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박정희시대의 김대중과 전두환시대의 김근태에 대한 구명운동이 대표적이다.또한 5.18 광주민주화 항쟁의 배후 세력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컸지만 당시 릴리 대사 등의 증언에서는 전두환에 대한 증오심이 대단했고 마지 못해 그가 정권을 잡는 것에 동의했다는 것이 레이건 대통령을 통해 알게 되었다.

 

21세기에 접어 들면서 부시 전(前)정권은 석유 등의 천연자원에 탐욕을 드러내면서 이라크를 무차별 공격하게 되고 미국의 민심은 그에게서 멀어진다.즉 민생을 외면한 정치이고 보여주는 정치였기 때문이다.그러한 와중에 한미간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무역보복 전쟁을 선언하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양국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여 주는데 이 문제는 이명박정권 들어서면서 촛불시위가 말해 주고 있다.미국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현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이제 경제문제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G2국가로 우뚝 솓은 중국이 21세기를 이끌어 가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거 같다.중국도 개발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한국은 지정학적이고 실리적인 면에서 미국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중국은 한반도의 역사문제까지도 왜곡(동북공정)하면서 북한을 경제적,정치적으로 흡수하려는 판에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북한 역시 경제적 낙후 속에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 나가는 상황이 속출하며 글로벌한 시대에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에 전력을 기울여서는 안된다.동족인 남한은 중국,일본,러시아,미국 등 정치,경제적으로 앞서 있는 국가들 속에서 구한말 시대와 같은 샌드위치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될 것이다.일본은 아직도 독도 및 센카쿠 열도,북방 4도 문제 등의 영토문제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는데 일본과는 일의대수(一衣帶水)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차원에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되며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가 의도하는 한반도의 역학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한은 이제 좋아도 싫어도 미워도 예뻐도 북한을 보듬고 감싸야 할 시대라고 생각한다.헝클어진 실타래를 조심조심 풀어 내듯 중단되고 있는 남북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경직되고 가르치려는 자세보다는 남북한 주민이 원하는 통일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북한 수뇌부와의 만남과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할 시대이다.한반도가 지정학적 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이니 만큼 남과 북이 열강들에 둘러 싸여 이리 저리 휩쓸리는 사태가 오기 전에 남북한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되찾는 시간이 조속히 실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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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 시골촌뜨기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다
소마 마사루 지음, 이용빈 옮김, 김태호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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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남을 알고 나를 알면 어떠한 싸움에서도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로 삶의 처세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두루 적용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는 더욱 무역과 자본 등으로 나라마다 국가 살림을 위하고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말 그대로 소리없는 전쟁이라고 해야 할거 같다.특히 이웃 나라 중국은 G2국으로서 중국의 입김이 세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며 그들이 21세기를 리드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듯 하다.다만 13억5천의 인구를 거느리고 있는 대국이고 소수민족,도농간 소득격차 해소,생태계,인권 문제 등이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고 이를 조화롭게 풀어가야 할 당면 과제를 그들은 안고 있다.2012년이 되면 한국이 대선을 치르고 중국 또한 공산당에 의한 선출직 주석이 탄생될 예정인데 그 다크호스가 '시진핑(習近平)'이다.한국 나이로 59세인 그는 듬직한 체격에 그와의 라이벌인 리커창(李克强)이 있다.둘 다 칭화대학을 나온 엘리트이다.

시진핑은 중국 공산혁명 투사(李仲勳 리중쉰)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권력투쟁에 밀려나면서 수년간 하방(下放)생활과 연금 생활을 하면서 시진핑 또한 암울한 청소년기를 보내야만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저우언라이의 비서로 잘 나가던 아버지가 정치적 타격을 받고 보니 시진핑 또한 일종의 연좌제에 걸려 악당(黑幇)의 자제로 몰리고 그가 택한 것은 지방에 내려가 스스로 노동과 농민들과의 부딪힘을 통해 노동의 신성함과 순박하고 솔직한 농민들의 마음을 읽어 갔던 것이다.샨시성 량자허는 황색대지로 여름엔 혹서의 날씨에 먹을 것은 중국식 만두 하나와 닭고기 스프로 빈곤과 고통의 생활을 해야 했다.주거지는 샨시성 특유의 움막동굴인 요동(窯洞)에서 지내면서 농민들과 유대관계를 끈끈히 했으며 그에 대한 평가도 남달랐던거 같다.마오쩌뚱이 사망하면서 지긋지긋한 하방생활이 끝나고 공산당에 가입되면서 그는 아버지의 후광 덕에 자천타천으로 중앙 정부의 명을 받고 복건성 부성장 등을 거치면서 정치수완을 착실히 쌓아 갔던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권력만 잡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오만이 가득한데 시진핑의 경우는 민중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기다릴 줄 아는 덕목을 겸비한 인물같다.그의 정치적 신조이며 즐겨 쓰는 말 중에 덕재겸비(德材兼備)이다.덕으로 정치를 한다,정치로 덕을 구현한다면서 덕과 정을 기본으로 하는 사자성어를 자주 사용하는거 같다.정치적 라이벌인 리커창 역시 뛰어난 수재이고 자신의 재능을 전면에 내세워 능력을 과시하는데 시진핑은 태도 그 자체가 태연자약하며 중국적인 지도자라 할 수가 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그는 5세대 중국의 지도자로서 거의 내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거 가탇.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시진핑은 석유파,상하이방,공청단파,태자당파,실무관료 그룹이 든든하게 그를 지원해 줄 정신적 무기이다.그러나 중국이 안고 있는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그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다.그의 뒤에 포진하고 있는 수많은 파벌을 하나로 통합하고,중국 권력의 핵심인 군을 완전장악할 수 있어야 하며,도종간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며,차츰 피어 오르는 민주화의 불씨와 소수민족을 어떻게 안을 것이며,국제 사회에서 리더의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으며,이웃 나라 한국,북한,일본과의 관계 정립은 어떻게 해야 할것인지가 주요 사안일 것이다.특히 MB정권하에서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은 중국과의 밀월관계를 보이고 있다.이는 분명 한국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문제라고 생각한다.김정일 사후 그의 후계자 김정은이 남한과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할지도 관심사이며 시진핑과 김정은이 양측간 정치,경제,군사 문제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도 관심거리이다.특히 시진핑은 한국전쟁을 "한국이 먼저 북한을 침공했기에 우방국으로서 참전하고 도와줬다"고 발언을 하고 있는 만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외교노선과 중국전문가 양성이 시급한 싯점이 아닐까 한다.주지하다시피 대미관계와 대중관계의 비중이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무역을 통한 수치보다 국가의 자존심과 국익이 달려 있는 '동북아 문제'에 더욱 치중해서 작금 중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동북공정 문제 등을 위시해 역사와 국체의 보전을 위한 내실있는 문제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당간부의 아들로 태어난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은 분명 중국적인 기질을 담고 있다.그는 또한 젊은 시절 노동과 농민과의 진솔한 체험을 통해 민중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정치인이지만 대외관계에선 아무래도 선린우호보다는 자국의 이익과 선배 정치인들이 진행하고 있는 정책을 이어받을게 분명하기에 중국의 현대정치 구조 및 시진핑을 비롯한 그의 수족들의 생각과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고 먼저 선수를 칠줄 아는 선제외교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특히 시진핑의 언동에는 "생기,특징,강직함도 없지만 실수도 없었다"라는 정쩌민의 평가 속에는 시진핑의 그릇의 무게를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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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일상 2011-11-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시진핑' 이름을 알게 됐네요~

우보 2011-11-19 16:23   좋아요 0 | URL
시진핑(習近平)의 진핑은 중앙정부가 있는 북경과 늘 가까워지라는 의미에서 진핑이라고 작명을 했다는군요..어느 나라나 수도가 동경과 선망의 대상인거 같습니다.감사합니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의료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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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가 의료천국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경제수준과 사회주의 국가라는 선입견로 인해 수긍하기가 힘들었다.과연 무엇을 어떻게 사회적인 정책을 실천적으로 해왔기에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복지의료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는지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1959년 카스트로에 의해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었으며 그들만의 의료정책을 펼치고 국민들에게 거둬들이는 세금을 줄이고 국방비를 감액하는등 가난하고 병들어 병원에 못가는 약자들을 위해 의료시설과 약재등을 개발하고 쿠바식 복지의료제도를 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또한 쿠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약자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복지의료 개혁이 크게 뒷받침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은 민간주도형 의료정책 즉 미국식 의료정책을 시행하다 보니 의료수가도 나날이 급등하고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의료 보험이 적용 안되는 것들도 부지기수이다보니 말 그대로 경제활동이 불가하고 수입이 없는 저소득계층은 큰 병이라도 날라치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그만큼 병원 문턱이 너무나 높고 고액에 해당하는 병들은 돈이 없어 병원 꿈도 꿀 수 없는 채 꼼짝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신음해야 하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이와 대조적으로 쿠바는 모든 병에 대해 국가에서 전액 무료로 치료해 주고 학생들의 학자금 또한 전액 무료라고 하니 지상의 천국이 바로 쿠바라는 생각이 든다.물론 쿠바라는 나라의 사회 체제 및 시스템이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카스트로가 국민을 위한 교육과 의료 정책만큼은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각본을 잘 짜고 밑에서는 일사분란하게 실행해 왔다고 생각한다.또한 살아서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이 진료받고 치료받으며 죽음을 맞이하는등 지극히 인간을 생각하는 카스트로의 발상과 실천적인 정책이 오늘의 의료 천국을 낳지 않았나 생각한다.

쿠바는 로마이에 의해 천연두 백신을 도입하고 1923년엔 세계 최초로 천연두를 근절한 나라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카스트로에 의해 쿠바 혁명이 일어났을때 농촌 의료를 시작으로 패밀리 닥터운동에 이르기까지 환자와 의사가 1:1로 접촉하면서 의사는 환자를 자상하게 대하고 환자는 의사를 친밀감으로 다가감으로써 서로간에 신뢰가 형성이 되었으며 국가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는등 삼위일체가 공고했던거 같다.나아가 쿠바는 국경없는 의사단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파키스탄등 전쟁과 내전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찾아가 치료해 주면서 쿠바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으며 헬스 투어리즘이 불어 외국에서도 안과 치료등을 위해 쿠바를 찾는 환자도 증가하고 있음도 눈에 띈다.

나아가 대체의료와 전자정보 네트워크에 힘입어 침뜸,허브,자연식,기공,요가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는 쿠바 건국의 아버지 호세 마르티가 말한 ’최고의 의료는 예방이다’라는 말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식물도 자연의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이기에 식물을 이용한 대증요법이 성행하고 치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쿠바 헌법 9조에는 복지의료의 권리가 명확하게 위치지어지고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는 없어야 한다’고 국가가 의료를 보장할 것을 의무시하고 있는 만큼 국가는 국민이 의료혜택을 받고 건강이 확보될 권리를 갖으며 예방의료에 토대를 둔 복지의료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쿠바는 누구나 자신의 능력이나 노동에 걸맞는 급료를 받는다는 ’평등사회’를 내걸고 경제위기라는 곤경을 모두가 고생을 나누면서 헤쳐나갈 수 있었으며 이는 복지의료 사회를 통해 풍요로운 사회적 자본이 쿠바를 위기에서 구했다고 생각한다.미국으로부터 경제봉쇄와 제재조치가 잇다르고 있지만 근접국들과의 원활한 교류와 쿠바인들의 사회에 대한 불평등 요소가 적은 만큼 그들은 마음 놓고 경제 활동을 하고 쿠바 사회 전체에 깔려 있는 사회 복지정책이 쿠바를 살만한 나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하며 한국은 빈익빈 부익부가 날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쿠바의 복지의료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갈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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