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보게 한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회복력과 힘과 상상력이 존재하는지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우울증의 끔찍함 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력의 복잡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 받을 수 있다.  

우울증을 겪는 동안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고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저자의 말을 경청하게 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지독한 우울증 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결점투성이의 사람이지만 우울증을 겪고 나서 전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우울증을 겪지 않았더라면 이 책도 쓰지 않았을 것이며, 우울증을 통해 가난하고 짓밟힌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심없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간추리면 이렇다. 글쓴이가 스물다섯 살 나던 1989년 8월, 어머니가 난소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의 흠잡을 데 없던 세계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말한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인생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그 사건이 조금만 덜 비극적이었더라도 어쩌면 발병은 없이 우울증이 성향들만을 지니고 살거나 아니면 나중에 중년의 위기 때 발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어머니는 실용주의를 당신의 통제 불가능한 슬픔을 막는 힘의 장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해야 부분적인 효과만 있다.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엄격히 통제하는 방법을 통해 우울증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이제 생각하니 어머니가 질서에 그토록 맹렬하게 집착했던 것은 고통이 겉으로 표출되지 못하도록 억누르기 위해서였던 듯하다. 내가 약물의 도움으로 쉽게 피할 수 있는 고통에 어머니가 평생 시달려 온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한편으로는 동요성 우울증이 따분할 정도로 전형적인 증상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불안 증세는 끔찍해서 증오, 고뇌, 죄책감, 자기혐오로 가득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평생 그토록 덧없는 느낌에 사로잡혔던 적이 없었다. 잠도 못 잤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무섭게 화를 냈다. 그때 절교한 친구가 여섯 명이 넘는데 그 중 하나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던 여자였다.  


167쪽

정신은 뇌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실용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저긴 문제이다. 미시간 대학교의 신경 과학과 명예교수인 엘리엇 벨런스타인의 말이다. 경험적인 것이 물리적인 거에 영향을 미치도록 이용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사우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 제임스 밸린저는 이렇게 말했다.

“심리치료가 생물학을 변화시킨다. 행동치료가 (아마도 약물과 같은 방식으로) 뇌의 생물학을 변화시킨다. 불안증에 효과가 있는 특정 인지 치료들은 약물 치료와 마찬가지로 뇌의 대사 수치를 낮춘다.  

밤마다 잠이 안 오면 잡념을 잊기 위해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모기에 물리기라도 하면 피가 날 때가지 잡아뜯었고 딱지가 앉으면 기어이 뜯어냈다.

218쪽

수면은 생체 주기의 주요 결정 요소이며 수면 패턴이 변화하면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분비에 혼한이 온다. 우리는 수면 중에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상당 부분 밝혀냈고 수면이 우리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하강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것들의 직접적인 상관 관계는 알지 못한다. 수면 중에 갑상선 호르몬의 수치가 내려가는데 바로 그 때문에 기분이 저조해지는 것일까?
나는 우울증 시기에 낮잠의 욕구에 시달리곤 했었는데 낮잠은 깨어 있는 동안에 나아진 것을 무효로 만드는 역효과를 낸다.

277쪽

어린이들의 경우, 우울증이 성격 발달을 저해한다. 우울증과의 싸움에 전력을 기울이다 보니 사회적 발달이 지연되고 삶은 점점 더 우울해진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시 되는 세계에서 자신만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350 쪽

사실 난 술에 취한 밤에 글이 잘 써지고 코카인에 도취해 있을 때 멋진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물론 항상 그런 상태에 있는 건 원하지 않는다. 내 임의대로 나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쯤이 좋을까? 지금 상태보다는 몇 단계 높여야 할 것은 분명하다. 나는 무한한 에너지와 빠른 정확성과 확실한 탄력성을 소망한다.

361~363쪽

자살은 힘겨운 삶의 정점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의식을 넘어서는 미지의 장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 자신이 체험했던 유사 자살 시기를 돌아보면 당시엔 온당하다고 믿어 마지않았던 논리가 지금은 몇 해 전에 내게 폐렴을 안 겨 세균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강력한 세균이 내 몸에 들어와 나를 점령했던 듯한 기분이다. 이상한 것에 공중납치라도 당했던 듯 하다.

죽음을 원하는 것과 죽고 싶은 거소가 자살하고 싶은 것 사이에는 미세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따금 죽음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슬픔을 넘어서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우울증에 빠지면 많은 이들이 죽고 싶어 한다. 현재 상태에서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기를, 의식의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하고 싶어 하는 것은 특별한 에너지와 특정한 방향성을 띤 폭력성을 요한다. 자살은 수동성의 결과가 아닌 행동의 결과이다. 자살을 하려면 현재의 고통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과 최소한 약간의 충동에 덧붙여 엄청난 에너지와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자살자는 네 부류로 나뉜다.

1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살을 시도한다. 이들에게 자살은 숨쉬는 것만큼 긴박하고 피할 수 없다. 이 부류는 가장 충동적이며 특정한 외부 사건에 의해 자살에 이르기가 가장 쉽고 이들의 자살은 갑작스럽다. 수필가 앨버레즈가 자살에 관한 빛나는 명상서인 <야만적인 신>에 듯이, 자살은 삶을 통해서는 점차적으로 무디어질 수밖에 없는 고통을 “귀신을 쫓아내듯 몰아내려는 시도”이다.

2. 안락한 죽음과 반쯤 사랑에 빠져 있으며, 자살이란 것이 철회 가능한 행도이기라도 하듯 복수하기 위해 자살을 기도한다. 이 부류에 대해 앨버레즈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에 자살의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야망을 넘어서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야망에 찬 행위이다.” 이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갈 때 삶에서 멀리 달아나지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존재의 종말이 아니라 소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3. 죽음이 견딜 수 없는 문제들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라는 그릇된 논리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이들은 선택 가능한 방법들을 고려하고 자살 계획을 세우고 유서를 쓰고 외계로의 여행이라도 계획하는 것처럼 관련 실무자들과 접촉한다. 이들은 죽음이 자신의 상황을 개선해 줄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짐도 덜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은 대개 그 반대인데도 )

4 합리적인 논리에 따라 자살을 기도한다. 이들은 육체적인 질병이나 정신적인 불안정이나 환경의 변화로 인한 괴로움을 겪고 싶어 하지 않으며 삶의 기쁨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현재의 고통을 보상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예단은 정확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망상에 빠진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아무리 많은 항우울제의 사용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사느냐 죽느냐 . 글의 주제로서 이것보다 더 많이 쓰인 것도 없지만, 이것처럼 사람들의 입에 올리기를 꺼리는 화자도 없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그 결정은 그곳에 들어서면 아무도 돌아올 수 없는 미지의 땅 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도, 이상한 체험의 영역으로 기꺼이 모험의 발을 내딛고자 하는 이들도, 전혀 알려진 것이 없는, 두려운 것이 많으면서도 모든 것을 희망할 수 있는 상태로 가기 위해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뎌야 한ㄴ 이 세계를 그리 기쁘게 떠나지는 않는다. 햄릿의 말처럼 ’분별심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며 결단은 창백한 사색으로 인해 본래의 색조를 잃고 흐릿해진다. 여기서 분별심은 의식을 의미하며 겁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존재하고 통제력을 갖고 행동하고자 하는 잠재적인 의지를 통해서도 소멸에 저항한다. 더욱이 스스로를 인정한 정신은 그것을 다시 부정할 수 없고 이것은 자기 성찰적인 삶이 파멸을 부른다는 견해와 반대된다.

“창백한 사색‘은 우리 안에서 자살을 막는 것이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은 아마도 절망에 빠졌을 뿐 아니라 순간적으로 자의식을 잃은 것이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자살이 목적이라면 진정으로 의식적인 자아는 옆으로 젖혀 놓아야만 한다. 존재하는 것과 무가 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해도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존재는 체험의 부재는 이해할 수 있지만 주배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그건 존재하는 것이니까. 건강한 상태에서의 내 견해는 죽음 저편에는 영광이 있을 수도 평화가 있을 수도 공포가 있을 수도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으며 그것을 알기 전에는 모험을 걸지 말고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을 바로 자살이다.” 실제로 20세기 중반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탐구에 생을 바쳤으며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과거에는 종교가 충분한 대답을 제공했던 질문들에 매달렸다.


606쪽

우울증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들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강한 것은 우울증이 유익한 기능들을 수행하는 메커니즘의 불발이라는 주장이다. 우울증은 대개 슬픔에서 생겨나는 슬픔의 변종이다. 멜랑콜리를 애도와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울증의 원형은 슬픔 속에 있다. 우울증은 우리에게 유익한 매커니즘인 슬픔이 장애를 일으킨 것일 수 있다. 심장은 우리가 다양한 환경과 기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온몸에 피를 공급한다. 우울증은 손가락과 발가락에 피를 공급하지 못하는 심장처럼 더 이상 고유의 장점을 갖지 못한 극단 상태이다.

슬픔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나는 슬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애착의 형성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만큼의 상실감을 겪지 않는다면 강한 애정을 가질 수 없다. 사랑이 깊고 넓어지려면 슬픔이 개재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존재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면 (더 나아가 그들을 도우려는) 마음은 종의 보존에 기여한다. 사랑은 우리가 세상의 고난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살아 있게 만들어 준다. 만일 우리가 자의식만 키우고 사랑은 키우지 않았더라면 인생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결과를 본 적은 없지만 사랑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삶에 대한 집착도 강하고 사랑 받기도 쉬우리란 것이 나의 믿음이다. 케이 제미슨의 말을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문제가 없는 곳이라기보다는 무한한 강렬함과 다양성이 있는 곳으로 여긴다. 우리는 감정이라는 연속체의 극단을 제거하고 싶어 하긴 하지만 그것을 두 동강 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고통을 겪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감정의 폭을 갖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만이 존재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고, 그런 상태를 거부하는 것은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631쪽 

나는 이 책에서 내 친구들의 약혼자와 남편 같은 사람들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았다. 자료 조사 과정에서 나는 부정적인 느낌을 주거나 아무 느낌도 주지 않는 우울증 환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했다. 칭찬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쓰기로 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대부분 강인하거나 똑똑하거나 끈질긴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는 표준적인 인간이란 것이 존재한다거나 소위 원이란 것이 모든 진실을 아우른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나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 노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이야깃거리가 없어요. 우리는 할 얘기가 없어요.”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진정한 생존자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다. (중략) 어떤 이들은 가벼운 우울증에도 완전히 무능력자가 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물질 남용에 대해 연구하는 데이빗 맥도웰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덜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다.” 절대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638~639 쪽

사실 실존주의는 우울처럼 진실하다. 인생은 헛되다. 우리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육체적인 개체성으로 인한 고립은 피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이루든 우리는 결국 죽게 된다. 이런 현실들에 굴하지 않고 인생의 다른 면들을 보면서 계속 추구하고 모색하고 꿋꿋이 견디는 것이 진화에서의 선택적인 이점이다. 나는 르완다에서 학살당하는 투치 족과 방글라데시의 굶주린 무리들을 본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잃었고 돈도, 먹을 것도 없으며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개선의 가망이라곤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내가 보지 못하는 미래상 때문일 수도 있고 존재를 위한 싸움을 지속하게 만드는 맹목적인 생명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들은 세상을 너무도 명료하게 보기 때문에 맹목성이라는 선택적 이점을 상실하고 만다. (중략)

우울증을 겪은 뒤 안정을 되찾은 사람들은 일상의 즐거움에 대한 감수성이 강한 경향이 있다. 그들은 삶의 긍정적인 면들이 지닌 진가를 절실히 느끼고 그것들에 대해 쉽게 희열에 젖는다. 원래 너그러운 인물이었다면 우울증을 겪은 후에는 더욱 관대해진다. 물론 다른 질병에서 회복된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말기 암에서 기적적으로 희생한 이라도 중증 우울증을 체험한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기쁨을 느끼고 주는 능력’은 갖지 못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6-16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취향 - 미술, 패션, 인테리어 취향에 대한 내밀한 탐구
박상미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22쪽

취향은 때로 심오하게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어떤 친구와 같이 놀고 싶지 않으면 “넌 왜 그렇게 옷을 못 입니?”라든가 “너의 독서 취향은 왜 그 모양이니?”라고 취향을 무시하는 몇 마디를 던지면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차별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타인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딸기를 좋아한다고 치자. 딸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줄지는 의심스럽지만, 누군가 내가 딸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이에 대해 비판적이라면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상하고 만다. 어떤 음식을 차별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한 개인의 엄숙한 선언과도 같고, 어떤 불가침의 영역처럼 존중되는 것이다.

 

56~57쪽

이번 뉴 뮤지엄의 전시가 신선했던 건 보여주고자 하는 톤 때문이다. 현재 예술계를 정의하는 트렌드와는 달리 이 저시는 어둡고 심각하다. 지난 아무리 쇼에서도 후마 바바의 작품을 보았지만, 번쩍거리는 아무리 쇼에서 그 작품은 팔리기 위해 존재했다. 이번 전시회의 어두운 조명 아래서 비로소 작가의 작품이 제대로 보였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미술관의 일이란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적당한 공간, 온도와 습도, 조명, 그리고 맥락. 어떤 전시를 하는 것 자체가 이 세상 속에 특정 작품들이 설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고, 각각의 작품들은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 기획된 전시라는 맥락을 갖는다. 어떤 전시냐에 따라, 관객들이 작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작품의 존재와 의미는 변한다. 그렇게 해서 변용을 거친 작품은 다시 작품을 보는 관객과 전시와 세상의 각도를 조금 틀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72쪽 

한 벌의 드레스에 대한 환상이 꼭 황당한 건 아니다. 엄청난 양의 쇼핑을 일삼던 여성이라도 결국은 고작 몇 벌, 대개 한 벌의 드레스로 기억된다. 코코 샤넬조차 수많은 옷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녀를 떠올리면 진주 목걸이를 내려뜨린 검정색 드레스가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19세기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의 ‘패션’ 전략은 한 벌의 드레스였다. 말 그대로 딱 한 벌만 입었던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스타일의 검정색 실크 드레스만 입었다. 이유는 패션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 시간뿐 아니라, 다른 여성들과 경쟁하듯 치장하는 데 드는 정신적 에너지조차 아까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티에 초대를 받을 때는 꼭 내실을 요청했다. 현명한 사상가들과 친지들을 따로 불러, 쓸데없이 치장을 할 빌미 자체를 없애기 위한 거였다. 조르주 상드가 돈이나 취향이 없어 한 벌만 입은 게 아니라 일종의 전략으로 그렇게 했기에 내가 패션이란 말을 썼지만, 한 벌의 옷만 입는 건 엄격한 의미에서 패션이 아니다. 패션이란 것의 전제가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갈망과 ‘필요’ 이상의 것들을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78~81쪽 

그 여자의 옷 입기 - <토니 타키타니>(2004)

책장을 넘기는 속도로 진행되는 영화 <토니 타키타니>엔 하루키의 원작엔 없는 장면이 살짝 삽입되어 있다. 토니가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는데, 옆에서 쇼핑을 하던 젊은 여자가 오렌지 더미 옆을 지나자 갑자기 오렌지가 와르르 무너진다. 주인이 달려오자 그녀는 옆에 이떤 토니를 보며 붇는다. “내가 그런 거 아니죠? 맞죠?”

<토니 타키타니>의 인물들은 ‘오렌지가 무너지는 세상’과 직접적인 연루를 피해 가며 사는 사람들이다. 영화에선 폐쇄된 공간, 감옥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영화 속 인물들이 각자 나름의 상자 안에 갇혀서 살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듯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그렇겠지만, 이는 특히 일본인들의 삶의 조건을 보여주는 데 적당해 보인다. 벤토 박스에 점심을 먹고 성냥갑처럼 작은 집에 들어가 잠을 자는.

태어난지 며칠 만에 엄마를 잃은 토니는, 미국식 이름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혼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나중에 미술 대학에 진학하는데, 다른 학생들처럼 데모도 안 하고, 인간의 감정을 담은 예술에 대해선 ‘조악하고 미숙하고 부정확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복잡한 기계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던 토니가 “외로움은 감옥과도 같다.”라는 사실을 처음 느낀 건 사랑에 빠졌을 때다. 그런데 토니는 다른 것도 아니고 한 여자의 아름다운 옷 입기에 매료된다. 그는 여자가 “먼 곳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처럼 옷을 입고 있었다.” 라고 자신의 인상을 고백한다.

토니가 옷 입기를 칭찬했을 때 여자는 옷은 자신의 빈곳을 채워주며 월급의 대부분을 옷 사는 데 써버린다고 고백한다. 토니가 여자와 결혼하고 자폐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함께 있는 행복감에 젖는 순간, 아내의 쇼핑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내가 다른 것엔 관심이 없고 쇼핑에만 몰두하는 것도 자폐적이지만 좀 다른 데가 있다. 토니는 아내가 쇼핑을 할 때면 “얼굴 표정이 변하고 목소리까지 변한다”는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녀가 샀던 옷을 되돌려주고 돌아오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은 “쇼핑을 그친 여자는 존재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토니의 아내에게 패션과 쇼핑은 그 자체로 실제하고 텅 빈 현실을 대체해줄 수 있는 하나의 ‘자족적’인 생존 방식이다. 직장이나 집에서의 일들이 존재의 유일함을 매순간 거스르는 하잘것없는 것이어도 쇼핑몰을 찾으면 애기가 달라진다. 브랜드 이미지가 가장 앞서가면서도 배타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약속해주고, 크레디트카드의 구매력은 그 세상 속에서 그녀의 위치와 권력을 보장해 준다.  




96~97쪽

아침에 그라놀라에 얹어 먹거나 팬케이크에 곁들여 먹기에 딸기만큼 예쁘고 맛있는 것이 없다. 친지를 불러 저녁 식사를 할 때도 디저트로 가장 만만하다. 딸기와 산딸기, 블루베리와 블랙베리를 화이트 와인과 설탕에 절여 하룻밤 재운 후 민트 잎사귀를 띄워 내면 그럴 듯한 디저트가 된다. 이도 저도 귀찮을 때는 딸기를 한 아름 사다가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아낸다. 여기서 포인트는 사람들이 작게 ‘와’ 할 정도로 많이 담아내는 것이다. 모두들 그저 한두 알 집어 먹어도 상관없다. 그 탱탱하고 빨간 딸기들이 놀랄 정도로 많이 담겨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디저트는 먹는 거나 다름없다. 꽃이 있는 식탁에선 밥을 조금 먹어도 배부르고 행복한 것과 비슷한 이유다.




106~107쪽

사람들이 좀 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개인 차원의 미적 분별력이 중요성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17~18세기경 영국인들의 취향에 관한 발언들을 보면 재미있다. 영국의 한 철학자는 취향이란 영혼에 달린 액세서리 같은 것이라 했고, 한 작가는 취향이 생기는 순간 악덕과 무지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 했다. 그 시대는 취향이라는 말이 교양이나 사회적 매너까지 아울렀다고 할 수 있다.

취향이 갖고 있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오늘날 취향은 대개 소비의 문제로 귀착된다. 취향이란 결국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소비할 때 드러나는 것이다. 

숨길 수가 없다는 건 취향의 나쁜 점이자 좋은 점이다. 언제든지 돈으로 ‘좋은 취향’을 살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 취향이 근거가 없다면 어디서든 드러나게 된다. ‘고급 취향’을 통해 자니의 경제 능력이나 지위, 뛰어난 감각을 뽐내려 노력할 때 조차 그 상대에 따라 하릴없이 자신의 몰취향을 드러낼 수도 있으니 얼마나 낭패인가.

어린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방향성을 자신과 남에게 알리는 차원에서 유의미하지만 어른이 되어서까지 단순히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로 버틸 수는 없다. 느끼고 배우지 않은 인간을 상상할 수 없듯이, 미적 경험과 교육으로 연마되지 않은 취향이란 취향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 잡고, 목표 잡았으면 다음 단계는 시간 투자라는 생각을 한다. 매사가 그런 이치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글을 쓰는 일도 이것이 신 내림이 필요한 예술 영역의 아니라, 노동의 영역이기 때문에 뭐가 됐든 매일 엉덩히 붙이고 앉아 쓰는 일, 그리고 고치는 일, 그것을 ‘충분히 됐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겁 먹을 거 없고, 흥분할 것도 없고. 

근데 내가 쓰지 못하는 이유는 뭐냐고! 시간도 낼 수 있고, 응당의 노가다도 할 수 있으면서....그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려는 쓰고자 하는 열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이유가 될까? 아주 훗날 혹시 모른다. 그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어떤 열망 때문에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할런지도.

나에게도 소설가의 재능이 있을 법하다, 고 설핏 생각한 적도 있다. 정말 농담처럼 든 생각이다. 뭐냐면, 난 그럴싸한 거짓 이야기를 꾸며서 즐기는 재능 아닌 재능이 있었다. (과거형이다. ㅎㅎ) 그 증거를 어디서 찾냐면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간다. 나는 어릴 적에 지독하게도 불행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글쎄, 이거다 하고 내세울 특별히 불행의 씨앗이 될 만한 사건 같은 것도 없었고, 부모님들이 심각한 문제가 있으신 분들도 아녔고,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었고, 허나 행복하지는 않았다. -- 우리 엄마가 들으시면 섭섭하게 생각하실 거다.--

그래서 나는 ‘나’를 대타할 만한, 상상의 여자 아이를 만들어서 놀곤 했다. 그 아이 이름은 수민이거나 수진이거나, 수정 여하튼 앞에 ‘수’자가 들어간다. 예쁜 옷이 많고, 얼굴도 예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잘 나고 행복한 캐릭터다. 이 아이에게 일어나는 행복한 얘깃거리들을 만들어서 그걸, 즐기느라, 정신을 안드로메다에다가 놓는 일이 잦았다. 동생도 가끔 그 때의 내 모습이 기억나는지 말한다. 언니는 “멍 때리는 아이”였다고. 근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어불성설이다. 어린 시절 내적 불행이 큰 아이는 소설가의 재목이 보인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네?

잡설은 이쯤 해서 접고, 스누피에게 갖은 교훈을 들이대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좀 옮겨 보자.

-새벽 세 시에 찾아오는 영감을 기다리지 마라 / 다니엘 스틸

: 글을 잘 쓰는 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이렇게 하면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죄다 사기꾼 아니면 거짓말쟁이다. 책 한 권을 쓰려면 겁도 나고 흥분되 되고 마음도 다잡아야 하는 등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 존재가 하찮다고 생각할수록 책은 더 좋아진다.

-대화에 녹여내라 / 클리브 커슬러

: 나는 등장 인물보다 플롯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등장 인물이야 영화 감독이 배우를 선발하는 것처럼 나중에 선발하면 되는 거야. 악당이라면 주인공이 혼내주는 장면에서 독자들이 박수를 칠 수 있도록 정말 야비해야 해. 좋은 사람이라면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해야 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충고는 다음과 같아. 전문적인 것을 자세히 설명하려고 지겹기 짝이 없는 묘사를 늘어놓거나 뻔한 얘기를 설교조로 이러쿵저러쿵 문장을 늘어놓지 말라는 거야. 독자들은 따분해서 그 부분은 읽지도 않을거야. 그런 게 있다면 대화로 녹여내는 거야.

-베스트셀러를 쓰는 공식 / 시드니 셀던

: 베스트셀러를 쓰는 공식은 간단하다.

*자기가 정말, 진짜로 좋아하는 글감을 택하라.

*멋지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그 글감을 발전시켜라.

*모든 단어들이 빛을 발할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다시 써라.

-작가가 되기 위해 황소와 싸울 필요는 없다 / 토마스 맥구안

: 작가에게 딱 맞는 경험이란 없다. 작가가 되기 위해 로데오 경기에 나가거나 황소와 싸울 필요는 없다. 작가는 글을 잘 쓰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하면 된다. 

-쓰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 / 레슬리 딕슨

작가들은 투덜투덜 괴롭다고 말할 뿐이야. 신기한 일이지만, 성공을 거두면 신음소리가 더 커지지. 성공하기 전, 진짜 고통스러울 때는 사실상 불평할 겨를이 없는 거야.

-거짓말도 공들여 만들어라 / 오클리 홀

스토리텔링이란 공들여서 거짓말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 거짓말쟁이들에게는 우리가 만든 허구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이야기꾼은 자기가 만든 소설을 독자들이 진짜처럼 읽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하려고 노력한다. 

-절름발이도 탭댄스를 출 수 있다 / 패니 플래그

잘 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나는 글을 쓰고 싶었어.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주가 끝나갈 즈음에 나는 대학의 학위나 어휘 능력이나 문장을 분석하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려는 쓰고자 하는 열망을 이길 수는 없는 거야.

-악평을 두려워하지 마라 / 윌리엄 F. 버클리주니어

자기 작품에 대해 악평을 쓴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가 더 쉬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세게 받아치면 되는 거니까. 그러고 나면 정말 이상하게도 서로 친해진단 말이야.

-모든 글쓰기는 독학이다 / 수 그래프턴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도와주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던지는 이런 충고 중에서 받아들일 충고와 무시할 충고를 잘 알아내 자기 식대로 글을 쓰는 일이다. (...) 나는 아직도 자각라면 모름지기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을 충분히 써보면 좋은 문장과 설익은 문장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단편 소설을 스물다섯 편만 써보면 되는소설과 안 되는 소설의 차이를 알아낼 수 있다. 큰소리로 소설 속의 대화를 읽어보면 겉멋 들고 허황된 것과 ‘진짜’ 대화가 금방 구분된다. 

몸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 엘리자베스 조지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글을 쓸 때 몸의 상태에 대해 늘 깨어 있으라고. 마음은 늘 거짓말을 하지만, 몸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해준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 버드 슐버그

행동하는 등장 인물들이 플롯에 필적하는 것이라면, 목적이 있는 플롯이 바로 주제가 될 것이다. 주제 따위는 치워버려라. 그걸 교묘하게 감추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거니까.

연애소설에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법 / 솔 스타인

작가는 플롯이 등장 인물의 성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등장 인물의 성격과 그들의 욕망을 , 그리고 이와 부딪히는 다른 등장 인물들의 성격과 욕망을 잘 이해해야만 연애의 각 국면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다.


계속되는 폭풍우는 없다 / 레이 브래드베리

그뿐만 아니라 1937년과 1938년에도 거절 편지의 눈보라가 있었고, 내 나이 스물한 살과 스물다섯 살에는 더 심한 거절 편지의 눈폭풍이 몰아쳤다. 그 편지들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열다섯 살에 처음으로 단편소설들을 '에스콰이어' 같은 잡지에 투고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들은 내 원고를 받기 이틀 전에 반송할 정도였다! (...) 집에 가면 거절 편지의 눈보라로 뒤덮인 벽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몰랐던 모양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견디며 더 무시무시한 단편소설을 천여 편 썼는데, 그것들도 차례대로 퇴짜를 맞았다. 그리고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단편소설들을 팔기 시작했고, 내 사십 평생 동안 몰아쳤던 눈보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최근에 펴낸 단편소설집을 보면 그중 일곱 편은 적어도 미국의 여러 잡지사들에서 퇴짜를 맞은 작품이다. 그 중에는 스웨덴에서 퇴짜 맞은 소설도 있다!


주인공의 욕망을 간파하라 / 레어드 쾨니그

이야기는 쓰는 게 아니라 계속 고쳐 쓰는 것이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되는 거야!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07-11-2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완전정복한것 같습니다.
완전정복은 동아전과,표준전과와는 좀 다르고 이달학습,다달학습 시리즈와 연관성이 있다는 거군요.^^

icaru 2007-11-2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런가요? 말탄 나폴레옹 아저씨가 한 손 높이 든 동상 같은 게 두둥! 하고 떠올라요~ 완전정복의 어원이 되는 인물인가?? (심한 동문서답)

2007-11-28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투명인간 2007-11-2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너는 대단하다. 결혼하고 한 동안 책읽을 여유가 없더라. 어제는 신랑이 그림을 봤는데 그 그림 한 점을 사서 벽에 걸었으면 하더라. 어떤 그림이냐고 하니 한 번 인터넷에서 찾아보겠다고 하더니 찾아도 없다며 대신 다른 그림을 찾아 보여 주는데 책을 읽는 소녀라는 제목의 그림이더군. 내가 책 읽는 모습과 닮았다나? 요즘의 나의 생활에 반성을 하며 책 몇 권을 살까하고 요즘은 어떤 책이 좋은 거 써핑 중 니가 읽어 추천하는 책이라면 참 좋은 책일텐데 하는 생각에 혹시나 하고 들러보니 넌 계속 책을 읽고 이렇게 서재를 관리하고 있었구나. 역시 대단한 친구구나! 목표 12월 한 달 동안 책 5권 읽기!ㅋㅋ 가능할까? 신랑이 결혼하고 내 책을 보더니 묻더군. 이 책 다 읽은거냐고?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있는 책 다 읽고 책 또 사라고 했는데 ㅋㅋ 또 책 지름을 한다. 에구.. 사들이는 속도만큼이나 내가 책을 읽으면 좋으련만...

2007-11-28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일리 2007-11-30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총정리 끝내셨으니, 실기 평가로 들어가셔야겠는데요^^
영감과 글감과 마감이 함께 임하시길~

icaru 2007-11-30 19:23   좋아요 0 | URL
아웅 지가 실전에 약해서요~ ㅎㅎ
3감이 늘 함께 임하길요~ 배트마담 님에게도 ^^
 
바보 같은 상사와 일하는 법
덤보스 연구회 지음 / 한언출판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플라시보효과라도좋으니의지하고싶다면추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umpty 2007-10-18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목과 40자평이 참 의미심장하군요.ㅋㅋ

icaru 2007-10-19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본적인 해결책 같은 게 없다는 게 참 ㅎㅎ
우리 또 만나야제??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휴가철에 도심을 벗어나서 읽어야 제맛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