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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잔혹 호러의 미학!!

 

이태리 호러를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마 다리오 아르젠토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며 적어도 <서스페리아>라는 작품의 제목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서스페리아>가 세계적으로 미친 충격의 강도는 컸다. 국내에서도 <서스페리아>의 흥행성적은 서울에서만 무려 50만명의 관객동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당시의 배급환경과 극장수를 감안해 볼때 지금의 서울관객 150만명과 맞먹는 수치라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13일의 금요일>이나 <헬나이트>등이 30만 선을 동원한 것에 비교한다면 낯설디 낯선 이태리 영화가 국내에서 세운 기록적인 흥행은 가히 사건으로 기록될 만 했다.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한마디로 혀를 내둘렀다. 그것은 기가 막힌 경험이자 이제껏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공포의 최고점이었다. 시작부터 관객의 혼을 빼놓는 극한의 잔혹함은 여성관객들의 비명소리로 극장안을 떠나가게 했으며 강렬한 사운드는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잊지 못할 끔찍한 악몽을 선사했다. 극장을 나서는 그들은 <서스페리아>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날 줄 몰랐으며 그들에게 제대로 된 공포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다리오 아르젠토에 관심이 모아졌다. 비로소 호러 매니아들 사이에서 마카로니 호러의 발견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태리의 히치콕이라 불리우는 현존하는 최고의 공포영화감독 다리오 알르젠토의 1977년도 작품 '서스페리아'는 한마디로 말해서 유럽을 대표하는 호러무비다.

흔히들 마카로니 호러무비란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서스페리아><데몬스><아쿠아리스>로 대표되는 마카로니 호러란, 유럽의 공포영화들이 미국으로 수입되어 지면서 붙여진 유행어 다.

미국호러물이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 이태리나 스페인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미국식의 거대한 호러물과는 달리 색다른 스타일과 미학적인 공포로 미국시장을 위협하기 시작했는데 그무렵 이태리에선 마리오 바바, 루치오 풀치, 다리오 아르젠토가 미국의 기계적인 슬래셔무비와는 느낌이 다른 예술적인 호러무비들로 그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공포영화를 만들어 내며 수준높은 고품격 호러란 이런 것이라는 일침을 가했다. 그것은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이태리 호러 3인방이 만들어낸 호러물은 분명 헐리웃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그것들과 차별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호러세계였다.

호러 3인방 중 단연 최고의 명성을 떨친 감독이 바로 다리오 아르젠토 이며 <서스페리아>가 바로 그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다.

<서스페리아>를 논할 때에는 크게 세 가지를 손 꼽는다.

첫번째는 바로 역대 호러영화사상 단연 최고라고 회자되어지는 충격의 오프닝 씬이다. 이루 다 설명이 되지 않을 잔인함과 충격의 극한을 달리는 아트한 살인장면들은 보는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함과 동시에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금 만든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만큼 타공포영화들과는 비교도 안될 강렬한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96년 만들어진 <스크림>의 오프닝씬이 잘 만들어졌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서스페리아>의 오프닝을 패러디 한 것이며, 그 충격의 강도면에선 <서스페리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두번째로 영화 전반에 걸쳐서 풍겨져 나오는 환타스틱하면서도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들수 있다. 그 분위기라는 것은 글로서 설명하기가 힘든데,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상당히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칼라플한 악몽속을 허우적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붉은 색깔의 조명들과 극단적인 원색의 색체들은 이태리의 유명한 락밴드 '고블린'의 기괴한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서 공포의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특히 고블린의 테마음악은 강렬하면서도 극도의 공포심을 자아내는 그로테스크함이 뿜어져 나와 보는 이를 극도의 긴장상태로 몰고간다. 공포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곡임엔 틀림없다.

세번째로는 이 영화가 유명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잔혹한 살해장면들이다. 그 잔혹한 살해장면들은 다리오 아르젠토만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함의 한계를 뛰어넘어 예술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 어떤 호러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그만의 살해장면은 보고난 후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충격적이다. 과연 다리오 아르젠토가 아니면 결코 흉내낼 수도 없는 아트호러의 진수를 보여준다.

<서스페리아>의 줄거리는 수지라는 여자가 발레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미스테리한 일들을 겪게 되다가 결국 학교에 숨겨진 충격적인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그다지 독특할 게 없는 내용이다. 마녀라는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헐리웃 슬래셔무비와 교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듯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서스페리아>의 미덕은 결코 스토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매니아라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초반부의 강렬한 살해장면 이 후 후반부로 갈 수록 약간 처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과, 마지막을 너무 성의없이 끝내버린 것을 들 수 있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다리오 아르젠토의 진정한 최고걸작은 <서스페리아>가 아니라 그보다 2년전에 만든 <프로폰도 로쏘>임이 틀림없다고 본다.

-국내 개봉당시 이 대단한 영화는 서울 관객만 50만명을 동원하며 엄청난 히트를 했다!! 놀라운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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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상 최고의 반전이 주는 충격적 메시지!!

이 영화는 사실 유령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이는 브루스 윌리스가 맡은 말콤 박사이지만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이는 꼬마 아이 콜 이다. 이제 잠깐 콜의 이야기를 해 보자. 콜의 눈에는 유령이들이 수시로 보인다. 그것은 육감이 아주 발달된 특별한 능력이다. 그 능력 덕분에 콜은 반 아이들로 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더구나 콜에겐 아버지가 없다. 또 어머니도 바쁜 일과때문에 아이에게 세심한 신경을 쓸 수 없다.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만의 비밀을 홀로 간직하게 되고 쉽사리 어머니께 말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는 곧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미국의 파괴되어가는 가정사를 대변하는 전형이다. 그리고 감독은 그러한 환경속에서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버린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소년은 스스로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홀로 고민하게 되고 공포와 고립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콜은 자신의 명성이 과장되어진 빈껍데기였음을 깨닫고 번뇌하는 심리치료사 말콤 박사와 조우하게 된다. 이들의 만남으로 인해 내러티브는 사실상 안정된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배려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해 간다는 보편적인 플롯으로 접어든 것이다.

말콤 박사는 화려했던 자신의 인생경력이 한 사건을 계기로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고 심리치료사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빠져든다. 나는 누구인가, 심리치료사이다. 심리치료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 주는 일을 한다. 상까지 받은 나는 이제 껏 상처받은 이들을 제대로 치료해 주었던 것인가, 하지만 나에게 치료를 받았던 이가 미치광이 연쇄살인범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제 껏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치료했던 거란 말인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정도 뒤로하고 깊은 고뇌에 시달리고 있던 말콤 박사는 콜을 통해 자신의 지난 과오를 회복하고자 한다.

샤말란 감독은 영화를 굉장히 차분하고 안정되게 이끌어간다. 다소 지루하리만치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기법이었다. 정말로 제이슨 친구는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 도중에 깜빡 졸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문에 희미하게 놓쳐버린 몇 몇 주요 복선장면들을 재 확인 하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다시 보아야만 했으니~!

이 영화의 조상이 <엑소시스트>와 히치콕의 영화들임은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하더라도 쉽게 수긍이 갈만한 사항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소시스트>도 히치콕의 스릴러들도 결코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이다. <엑소시스트>의 90년대 판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을 정도로 <식스센스>는 오컬트 무비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샤말란 감독은 기존의 장르적인 연출법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비법으로 영화에 기묘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한 편의 심리드라마 혹은 휴먼드라마처럼 기복의 변화없이 침착하고 조용하게 진행된다. 관객들로 하여금 금방이라도 뭔가 근사한 장면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하게 하지만 끊질길 정도로 차분한 호흡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의 거리에는 마치 말콤 박사와 콜 외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없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식 스쳐지나가는 무존재의 존재인 유령들이 더욱 강렬한 느낌으로 와 닿을 수 있었던 것일게다. 샤말란만의 이러한 독특한 호흡법은 영화의 적재 적소에서 보석같이 빛을 발하다가 최후에 이르러서는 폭발하듯 최대치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것이 샤말란 식 충격효과인 것이다.

샤말란의 각본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흔한 소재를 가지고도 관객들의 호흡을 자유 자제로 조절하며 결국 대중들의 감정을 기가 막히게 이끌어내는 탁월한 스토리 라인은 가히 천재적이다. 반전을 제외한다면 <식스센스>의 스토리는 그저 뻔한 심리극 혹은 가족애를 불러일으키는 디즈니용 휴먼드라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비슷한 예로 <스튜어트 리틀>역시 흔하디 흔한 가족용 드라마라는 소재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샤말란만의 재기 넘치는 각본덕에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일단 재미면에서 말이다~!

샤말란은 조용히 영화 곳 곳에 복선을 숨겨두었다. 그리고 콜의 특출한 능력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저 소외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차츰 존재감이 짙은 유령들을 등장시키며 사건에 대한 모호함을 시각적인 공포감으로 흐려놓는다. 관객들로 하여금 진실에 관한 조금의 갈피도 잡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선 마지막에 가서야 결정타를 날린다. 그리고 관객들이 유령이란 존재에 대한 놀라움, 기이함, 경외감에 빠져 있을 때 결국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말하며 감동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인도 출신의 젊은 감독, 샤말란. 그는 애초부터 인간의 정체성과 고립에 관해 끝없이 탐구하는 감독이었다. <식스센스> 이전의 두 편의 영화 <분노의 기도><와이드 어웨이크> 역시 이러한 사상에 기초를 두고 만든 영화이며 그의 후속작이었던 <언브레이커블>이라든가 최신작 <싸인> 역시 비슷한 주제와 갈등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그는 <식스센스>를 통해 오컬트 영화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방식에서 접근해 보고자 했던 것일게다. 성장기에 막 접어든 콜이 느껴야만 했던 유령들에 대한 두려움은 곧 그 시기 소년들이 겪게 될 미지의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기댈 수 없는 홀로서기에 대한 불안감과 세상 속에서 과연 나는 누구일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일련의 인생과정이다. 소년은 결국 두려움의 존재에 맞서 과감히 부딪히게 되고 해결방안을 찾는다. 비로소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콤 박사는? 그도 역시 정체성과 소외감에 고뇌하는 인간이다. 화려한 명성들이 거품에 불과함을 깨닫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지금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는 결국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숙제이다.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여기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또, 대답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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