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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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 센다이. 연일 연쇄 토막 살인사건이 보도되고 있어 다소 공포스러운 분위기다. 이 뒤숭숭한 거리에는 괴담까지 떠돌고 있다. 멀쩡한 시체가 토막토막 잘게 부서진 후, 그것들이 다시 붙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좀비처럼 저벅저벅 걸어다닌다는 믿지 못할 괴담이 소녀들 사이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히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미술산업 자체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늙은 갑부 도다와 손을 잡고 일을 하기 위해 센다이로 향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 미술가 시나코. 도다는 말한다. 세상에는 돈이 최고다. 돈이면 뭐든지 얻을 수 있다. 네가 네 전 동업자를 배신하고 나에게로 붙은 것처럼 말야. 시나코는 우울하다. 자넨 그걸 안 믿지? 도다가 캐묻는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우리가 센다이 역에 내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내가 빼앗아 보지. 그자에게 가장 소중한 거. 그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내가 돈으로 사겠어. 그렇게 내기가 성립된다.

한편 좀도둑 구로사와는 훔치는 것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날이다. 그는 훔친 집에서 나오기 전에 자신이 무엇, 무엇을 훔쳤는지를 메모해주는 친절까지 베푼다. 그런 그가 어느날 문을 열어두고 서랍을 뒤지던 중 한 남자와 마주친다. 내집에서 대체 뭐하는 거야? 남자가 외친다. 그런 남자에게 구로사와는 그냥 당신하고 인간관찰게임을 한 번 해보고 싶어, 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의 신상을 훤히 알아 맞춰버린다. 놀라는 남자. 그리고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 한편, 그림을 그리는 청년 가와라자키는 행방불명된 남자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17층에서 뛰어내린 아버지를 생각한다. 17층에서 뛰어내릴 때였어. 내 눈앞에는 점점 아스팔트가 다가 오는 거야. 자전거보관소의 녹슨 지붕이라든가, 쓰레기장에 모여든 새의 부리 같은 것이 선명하게 보이더군. 그리고 바로 그때 뭔가가 눈앞을 가로질러 갔지. 그게 뭔지 알겠니? 모기였어! 모기야말로 신이야. 우리가 일상적으로 죽여 버리는 것, 그런 존재만이 신이 될 수 있는 거야. 가와라자키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어쨌거나 그에겐 지금 할 일이 있다. 츠카모토라는 남자와 함께 '신'이라 불리는 남자를 해체해야만 한다.

그런 한편, 교코라는 여인은 남편에게서 이혼통보를 받고 기뻐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부인 아오야마에게 그 사실을 알린 후 이제 남은 것은 아오야마의 부인만 처리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함께 아오야마의 부인을 살해, 암매장할 계획을 세우며 차를 타고 달린다. 그러다가 도로위에서 사람을 치고 만다. 그들은 시체를 트렁크에 숨기고 다시 달린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잠가놓은 트렁크 안의 시체가 몇 번이고 퉁겨 나온다. 그러더니, 시체가 조각조각 토막나버린다. 이어서 시체가 다시 붙은 후 저벅저벅 걸어가버린다. 이 불가능한 사태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교코는 애써 이성적 사고를 놓치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던 한편, 도요타라는 중년의 실업자. 그는 마흔번째 입사지원에 퇴짜를 맞고 쓸쓸히 거리를 방황한다. 그러다가 거리를 배회하던 늙은 개 한마리와 친구가 된다. 함께 동행하던 중 우연히 권총을 얻게 되는 도요타는, 실업자를 벗어나기 위해 우체국을 털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자신을 퇴출시킨 상사에게 복수를 하고자 마음먹는다. 연이어서 거리의 불량청소년들과 맞붙어 싸움도 하게 된다. 그러한 사건 속에서 늙은 개는 도요타에게 기이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두려워하지마. 그리고 내게서 떨어지지마. 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은 전체적인 구성이 '펄프픽션'이나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와 무척 닮아 있다. 실제로 작가 이사카 고타로는 그런 류의 영화매니아라고 한다. 특히 코엔형제의 범죄 스릴러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러시 라이프'는 그런 치밀한 퍼즐과도 같은 범죄 스릴러의 느낌이 강한 소설이다. 그래서, 우선 굉장히 스피디하게, 무척 재미있게 잘 읽힌다. 흡입력이 엄청 강하다는 것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뒤가 궁금해서 확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사카 고타로가 현재 일본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읽는 맛'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무척 놀라운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작가의 깊이있는 재능이 칼날처럼 번뜩임을 알 수 있다. 치밀하게 뒤엉킨 무수한 스토리들은 놀랍게도 주제를 향해 압축되며 작은 단서하나까지도 결국은 최종적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수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한 치의 어수선함도 없이 깔끔한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얼마나 능수능란한지를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 순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감탄을 내지르게 될 것이다!(현실속에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기이해 보였던 사건들이 결국은, 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답을 찾게 될 때, 그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사카 고타로는 '중력 삐에로', '칠드런' 등의 작품으로도 이미 유명한 작가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모두 '엄청 재미있다!' 도무지 시간가늘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거침없는 상상력에 놀라운 재능을 지닌 작가다. 또한 '개'를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하루키' 이후 최고의 일본 작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는 글 속에 깊이 있는 삶의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그의 빼어난 화술에 경의를 표한다!

미모의 여화가와 갑부의 노인, 빈집털이범과 방문객, 신흥종교에 빠진 청년, 정부의 아내를 죽이려는 여자, 총을 갖게 된 실직한 남자와 떠돌이 개, 이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시속 1374킬로미터로 해가 지기 시작하듯, 이 모든 사건들이 1374킬로미터의 속도로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그 종착역에는 과연 어떤 결론이 기다리고 있을까!

살며, 일하며, 힘들때, 죽고싶을때, 이 한가지 사실만 기억하자. 어차피, 인생에 관해서는 누구든 아마추어다. 누구든 첫 출전이다. 모두가 아마추어고 신인이다. 처음 시합에 나간 신인이 실패했다고 의기소침해 한다는 건 웃기는 짓이다. 신인답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경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 '러시라이프'를 펼쳐들자! 유쾌한 해답을 제시해 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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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12-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교수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살인교수 2006-12-2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라~ 리뷰도 단번에 써내려갔던 것인데... 뽑히게 되어서 기쁘네요~^^
 
킬 빌 Vol.2 [dts] - 아웃케이스 없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우마 서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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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끝은 비애!

 

 

타란티노는 분명 90년대가 탄생시킨 최고의 감독이다.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은 천재 감독의 탄생을 알렸고 타란티노 이전 영화, 이후 영화라는 큰 획을 긋게 했다.(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이전은 고루함, 이후는 답습) 서부극, 홍콩 쿵푸영화, 일본 애니메이션과 사무라이 영화, 오우삼의 느와르, 드 팔머의 스릴러등 다양한 문화적, 장르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만들어낸 타란티노는 기존의 장르 관습을 해체, 재구성 하면서 잔혹하고 감각적인 테크닉으로 포장하며 헤모글로빈을 분출케 했다.

그런 그가 <킬빌>이라는 신작을 내놓았을 때 필자는 타란티노로 하여금 두 가지 사실을 짐작하게 했다. 우선 그가 전작인 <재키 브라운>으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었을 것이라는 것. 또 한 가지는 그렇기 때문에 <킬빌>을 만들어 보여 복수를 하고 싶었다는 것. <재키 브라운>은 타란티노가 밝혔듯이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보다 재미 없는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가장 만들고 싶어 했던 영화였다. <재키 브라운>은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이 보여준 시간의 재구성과 거미줄같은 캐릭터의 구성이 한층 치밀하고 복잡해진 영화였다. 전작들에서 보여진 현란한 잔혹 영상미가 줄어든 대신 서로 얽히고 설키는 뒷골목 인생들의 시니컬한 스토리가 꼼꼼하게 스케치된다. 타란티노의 많은 재능 중 필자가 가장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놀라운 입담이다. 그에 의해서 창조되는 무수한 캐릭터들은 그들이 내뱉는 불꽃튀는 대사들의 향연으로 생명력이 결정되어질 정도다.(헐리웃 내에서 그의 대사 처리 능력은 '특A급'으로 정평이 나있다. <크림슨타이드>의 경우 토니 스콧 감독이 완성된 각본을 일부러 타란티노에게 손보게금 했을 정도. 물론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크림슨 타이드>는 보석같이 빛나는 대사들의 향연으로 품격이 올라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뒷골목 3류 인생들의 저급한 농담에서부터 시니컬한 비애까지 훤히 꿰차고 앉아 자유자재로 캐릭터를 뽑아낸다.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들은 스스로 살아숨쉬고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정도다. 그러한 살아 숨쉬는 캐릭터와 꽉찬 스토리의 힘은 <재키 브라운>에서 가장 미끈하게 뽑혀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키 브라운>은 타란티노가 가장 애착이 갈만한 작품이고 그래서 가장 타란티노 다운 작품인 것이다. 타란티노는 <재키 브라운>의 아쉬움을 6년 후 마침내 <킬빌>로 풀어낸 것이다. 정말로 그가 하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근질했던 이야기, <재키 브라운>으로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한 그가 몸살 날만큼 보여 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애너지를 <킬빌>로 분출시킨 것이다.

그는 <킬빌>에서 <재키 브라운>과의 차이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바로 승부수가 되었다. 전작이 관객과의 소통에서 실패를 한 원인을 그는 재빠르게 캐취해낸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만의 전매특허 헤모글로빈의 시가 부족했던 탓이리라. 분명 <킬빌>은 <재키 브라운>과 일면 닮은 부분이 있다. 느와르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 그 여자 주인공이 거대한 세력에 휘둘리면서도 재치있고 당당하게 맞선다는 것.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느와르, 이것이야말로 타란티노가 오래도록 가슴 속에 품어왔던 이야기일런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완성된 <킬빌>을 두 조각으로 나눈다. 1부에서는 관객들이 자신에게서 그토록 목말라하던 헤모글로빈의 시를 현란한 테크닉으로 마음껏 분출시킨다. 피가 낭자하는 청엽옥의 결투씬, 오렌 이시이의 머리가 날아가는 충격영상으로 관객들의 얼을 빼놓은 후 그는 살며시 2부를 내보인다. 빌은 왜 그녀를 죽여야만 했는가, 그녀는 왜 빌을 죽여야만 하는가, 빌은 누구이고, 그녀는 누구인가? 퍼즐처럼 흩어져 있던 비밀의 조각들이 하나 둘씩 끼워지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타! 란티노는 <킬빌 1>을 통해 관객들을 강렬하게 끌어당긴 후 비로소 <킬빌 2>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를 완성시켜 나간다. 자극적인 영상미에 이끌려 흘려보낸 무수한 수수께끼들의 답은 오직 <킬빌 2>에 있는 것이고 관객들은 '상'권을 읽은 지금, 반드시 '하'권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 챕터를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

이러한 전략은 탁월했다. 타란티노는 다시한번 장르적 특성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관객들을 쥐고 흔든다. 전편에 암시되어졌던 브라이드의 살아있는 딸이 등장하고, 어째서 빌이 브라이드를 암살하려 했는지에 대한 배경이야기가 나오고, 브라이드가 페이 메이로부터 무술을 전수받는 과정이 나오고, 브라이드가 빌을 떠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빌과의 최후의 대결이 그려진다. 재미있는 것은 숨겨진 사연들에 대한 타란티노만의 놀라운 입담이다. 술집에서 해결사 노릇이나 하며 보스로부터 온갖 구박을 당하는 3류 건달로 전락한 버드의 사연이나, 한쪽 눈을 잃게 된 엘 드라이버의 사연, 브라이드가 조직을 떠나게 된 사연 등. 그들이 뿜어내는 대화의 힘은 전편의 청엽옥 결투씬 만큼이나 압권으로 와닿는다.(그만큼 살아있는 대사의 힘은 너무나 훌륭했다) 특히 빌의 사연이 절정을 이룬다. 잔인무도하고 얼음같이 차갑게만 비쳐졌던 전편의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애수짙은 빌의 모습은 가히 놀랍다. 브라이드의 결혼식장에 악기를 연주하며 나타난 빌, 자신을 찾아온 옛여인 앞에서 딸과 함께 노는 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브라이드를 향해 모든 진심을 얘기하는 빌, 그러한 빌의 진면목들은 전편의 관객들을 정서적으로 공략한다. 이처럼 계산된 감독의 연출에 관객들은 보기좋게 빠져들며 빌과 브라이드 두 캐릭터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게 되버린다. 결국 피할수 없는 최후의 대결은 운명처럼 다가오고 복수의 끝이 남긴 가슴저린 비애만이 관객들의 정서를 지배한다. 그리고 대서사시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강렬했던 두 권짜리 펄프 픽션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킬빌 2>에서 기대할 것은 청엽옥 결투나 오렌 이시이와의 진검승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1편을 한번더 보며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 복수의 서사시는 vol 1과 vol 2 즉, 상, 하권으로 나누어진 하나의 이야기다. 총 10개의 챕터를 가진 한 편의 소설이다.(장르는 느와르 혹은 하드보일드쯤) 싸구려 소설 제목 같은 '피의 복수를 다짐한 여자'가 있고 그녀의 잔혹한 복수극이 있고 후반부로 갈수록 숨겨져 있던 비밀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무수히 읽어 보았음직한 이런 류의 소설들, 그 틀을 우리는 알고 있다. 타란티노 역시 알고 있고 그는 그러한 소설들을 헤밍웨이나 포크너보다 숭배시한다. 이점을 잊지 말자. 우리모두 헤밍웨이나 포크너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을 원했던 것이다. 그는 그 장르에 충실했다. 혀를 내두르는 잔혹함으로 책장에 몰입하도록 만들었고 유려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과시하며 다음 챕터가 끊임없이 궁금하도록 만들었다. 챕터가 거듭될수록 비밀은 밝혀지고 최후의 대결만이 남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을 그는 적재적소에 배치한 음악과 현란한 영! 상미 감각적인 테크닉으로 포장했다. 이제 <킬빌 2>에서 복수는 마침표를 찍었고 우리들은 vol 3이 나오기를 혹은 그의 신간이 출간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테다.

장르를 충실하게 활용하면서 그것에 변칙을 가하는 것, 그러면서 그것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 이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공식을 타란티노만이 능숙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그의 펄프 픽션은 언제나 유쾌하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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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dts) - 할인행사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아난다 에버링험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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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찍는 카메라, 라는 익숙하지만 신선한 아이디어가 우선 영화 전체를 힘있게 이끌어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가 촘촘한 복선으로 꽉 짜여져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공포영화가 절대적으로 본받아야 할 부분이지요. 조금은 익숙한 설정이라고 할 지언정, 각본상에서 대충 '공포로 때우기'식의 전개가 나오면 영화는 아주 망쳐버리죠! 우리나라 공포영화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최근 유행하는 성공한 '공포영화'들의 '공포장면'을 차용해 오는 것 만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셔터가 좋았던 이유는 공포영화가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아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몇 몇 장면은 감독의 호러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진짜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지요) 적어도 감독은 관객이 어느 때에 지루해할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관객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감각적인 연출력을 보였고 '아주 걸작'이 아닌 이상 그정도면 관객은 대게 만족하는 편입니다. 복선은 치밀하게, 반전은 단 한번의 스트레이트로, 플롯은 복잡하지 않고 타이트하게, 공포는 화끈하게, 대략 이정도면 호러 매니아들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할 겁니다. 간단해보이지만 사실 이게 쉬운 게 아니죠! 복선은 산만하게, 반전은 시시한 잽으로, 플롯은 복잡하고 늘어지게, 공포는 짜증나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기 십상이죠!

특히 마지막 반전과(물론 예상 가능한 반전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앞뒤가 딱맞아 떨어지는 반전은 그 자체로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줌) 함께 이어지는 최후의 공포는 역시 이 작품이 꽤나 수작일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질질 짜면서 슬픈 호러, 감동 호러를 표방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각본상으로 안 되면 꼭 이런 식으로 한국인의 눈물 정서를 자극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공포 같지 않은 공포, 많이 봐 왔죠...!

크게 기대하고 본다면 크게 만족할 만한 영화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편차에 따라 시시하네, 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링, 주온, 디아이도 시시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주관적, 객관적인 평을 종합적으로 아우러 볼때 '셔터' 정도면 상당히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섬뜩했고, 으스스했고, 이야기가 재미있었으며, 무엇보다 귀신이 무서웠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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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쿵푸 허슬
주성치 감독, 황성의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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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설픈 건달 싱은 구태여 '악당'이 되고자 한다. 이유는 '선'해서는 결코 세상의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라도 그의 이러한 가치관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처가 아닌 이상. 때문에 악인인 척 하는 싱은 사실 진정한 악인이라 할 수 없다. 그저 현대인을 대변하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악당 '도끼파'의 일원이 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포부는 '돼지촌'이라는 빈민마을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별볼일 없어보였던 돼지촌에는 사실 숨은 고수들이 강호를 떠나 조용히 살고 있었던 것이다. 벌집을 들쑤신 꼴이 된 싱은 약삭빠르게 '도끼파'에 붙게 되고, 마침내 '돼지촌' 고수 대 '도끼파'의 전면전이 시작된다. '도끼파'는 '돼지촌'을 멸하기 위해 계속해서 킬러들을 보내고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절대 악 '야수'까지 불러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싱은 어린 시절, 자신이 구해주었던 벙어리 소녀와 재회를 하게 되고, 무공의 참 진리도 깨닫게 되어, 잠자고 있던 내공에 눈을 뜨게 되고, 여래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다.

시각적 효과는 '소림축구'에서 몇 단계 업그래이드 되었다. '쿵푸'액션은 이제껏 보아왔던 '최고'의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롬비아'측의 막대한 제작비가 낳은 현란한 CG와 '원화평', '홍금보' 콤비의 무술 액션이 환상적 조화를 이루어내니 현존하는 '최고'의 '쿵푸액션'이 나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과 귀의 즐거움은 충만했다. 생각보다 '액션'은 엄청 거대하고 오래도록 이어졌다. 대신 상대적으로 '코믹'이 조금 줄어든 것은 아쉬움이었다. 또한 주성치의 전작들에 비해 '주성치'의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액션'이 '주성치'마저 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영화들이 주성치의 압도적인 원맨쇼였다면 이번에는 골고루 분배를 한 주성치의 전략이자 배려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필자가, 주성치의 매니아가, 주성치의 영화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 '쿵푸허슬'에는 있었다. 3년간의 기다림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희극버라이어티로 그는 팬들에 보답을 한 것이다. 확실히 그는 누가 뭐래도 이 시대 '최고'의 희극지왕이다. 이번 영화에서 필자가 정말 좋았던것은, 개인적으로, 벙어리 소녀와의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남는 로맨스였다. 특히 극 중반에 우연히 마주친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명.장.면.이.었.다. '구원자'소년이 '약탈자'건달이 되어 나타난 그 절묘한 상황에서의 물결치는 듯한 음악과 영상의 조화는 말못하는 벙어리 소녀의 애틋한 심정만큼이나 보는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셨다. 주성치가 정말로 '감동'의 깊이를 조절을 할 줄 아는 명장의 반열에 들어섰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패러디 장면들도 영화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극 초반에 '소림축구'를 의식한 듯한 대사나, 김용의 소설 '신조협려'를 패러디한 설정들, 뮤지컬 고전 '탑햇'의 명장면을 연상시키는 극적인 재회장면. 그러나 무엇보다 압권은 '샤이닝'의 한 장면을 '공포'스럽게 패러디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개인적으로 과연 주성치다운 허를 찌르는 발상이었다, 라고 생각한 장면. 주성치가 호러영화에도 관심을 가졌을 줄이야, 하는 감탄과 함께)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악인'이 어떻게 '선인'으로 거듭나느냐 하는 이야기다. 그것을 주성치는 '도끼'와 '막대사탕'으로 대치시켜 절절하게 '인생'이야기를 그려낸다. '소림축구'는 물론 '식신''파괴지왕''희극지왕'등에서 무수히 다루어졌던 힘없고 나약한 '서민'들의 애환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처절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한 사랑이 이 영화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도끼'를 주형하는 금속액처럼 뜨겁고 강렬하게, '막대사탕'을 만드는 설탕과 색소처럼 달콤하고 아름답게!

이런 영화라면 정말로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세속의 '악'에 찌든 현대인 누구라도 '싱'처럼 아련히 간직하고 있을 어린 시절의 순수한 '선'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마법같이 자극하는 '라스트'의 특별한 여운은 세상살이에 시달리는 '삭막한 가슴'에 뿌려지는 '단비'같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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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물밑에서 (Dark Water)
팝엔터테인먼트아시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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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주연 여배우 구로키 히토미(천리안에서 무척 카리스마 있게 등장한 여배우)의 살아있는 연기다. '천리안'때부터 좋아한 배우이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나이가 40대인데 굉장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며~~ 더불어서 아역 배우들의 연기를 거론해 보자면 딸 이쿠코 역, 귀신 미츠코 역 두 꼬마 애들 모두 만점을 주고 싶다. 이쿠코 역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꼬마 여자애였는데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좋은 연기란 튀는 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캐릭터 속에 완전히 스며들어 연기를 하고 있다는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연기가 정말 좋은 연기) 그리고 미츠코 역을 맡은 여자애 역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귀신 꼬마애 하니 생각나는데 한국 공포영화 '폰'에서도 귀신들인 꼬마애가 한명 나온다. 미츠코는 극중에서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시종 침묵으로 일관한다.(마지막에 딱 한마디 하는데 굉장히 오싹하면서도 왠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카리스마란 굉장했다.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폰의 여자애는 굉장히 오버를 하며 나 무섭지,를 강조했었지만 조용한 미츠코가 정색을 하고 눈이라도 한번 흘기면 기겁을 하며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 보였다.


이 영화는 스즈키 코지의 동명 소설 '어두컴컴한 물밑에서'를 '링'의 명콤비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영화화 한 것이다. 그래서 굉장히 궁합이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즈키 코지의 소설을 가장 영화로 잘 옮기는 사람이 나카다 히데오 일 것이다.

검은 물밑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괴담이야기다. 식스센스처럼 기막힌 반전도, 링 처럼 기발한 스토리 전개도, 큐브 처럼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없다~

실종된 소녀가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는 단순한 귀신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평범한 스토리를 가지고 흥미롭게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야 말로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쾅쾅 울리는 사운드는 거의 없다. 조용히 물 흐르듯이 흐르는 소름끼치는 배경 음악 위로 열린 문틈, 좁은 엘리베이터, 혹은 비오는 거리 등에서 슬그머니 스쳐 지나가는 유령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인간이 어느 순간 진짜로 손에 땀이 나고 등골이 오싹해 지는지에 대해 꿰뚫고 있는 듯 해보였다. 주변의 소리와 일상의 사건들을 조합해서 미궁같은 두려움을 서서히 뽑아낸다. 관객들이 어느 순간 긴장감이 극대치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는 바로 그 순간에 상상 속에서 거대하게 부풀려진 공포의 실체를 단 한번 터트리며 결정타를 날린다~!  그렇기 때문에 짜깁기 스토리에 사운드의 기교로만 얼룩진 국내 호러물에 입맛이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좀 밋밋할 수도 있겠다~

공포란 무언가 거대하고 흉포한 인상을 풍길때 오히려 비대하게만 느껴지는 법. 그래 저거 정말 공포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 이미 그것은 공포가 될 수 없다. 나 귀신이야, 하는 느낌이 팍 들게 되면 그 순간 긴장감도 팍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누구라도 일상 속에서 경험 해 보았음직한, 이를테면 한 밤중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없을 때, 바로 그러한 때에 우리는 뼈 속 깊이 스며드는 진정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공포도 일상의 세심한 관찰과 인간 심리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외국의 거대 슬래셔 무비만을 쫓다가는(혹은 성공한 유령영화들의 모티브를 흉내내려고만 하다가는) 매니아들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법~!

이 영화는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불행과 그것이 아파트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참담한 비극을 그려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공포는 동떨어진 세계의 악마나 살인마 따위가 아니라 조용한 아파트(너무나 조용해 인적이 거의 끊긴듯한)가 어느 순간 위령제를 치루어야 할 지옥의 온상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악몽을 그린 것이다. 그러기에 그 공포감은 우리들의 불안한 영혼 깊숙이까지 스며들수 밖에 없는 진짜 공포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검은 물밑에서에 별 네개 정도를 주고 싶다. '링' 같은 불멸의 걸작은 아니더라도 꽤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무엇보다 검은 물밑에서는 헐리웃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완벽한 일본 적인 공포라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유령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식스센스'나 '디아더스'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으며 귀신영화의 교과서인 '엑소시스트'를 흉내내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이는 탄탄한 원작 스토리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지만 감독만의 독보적인 공포철학이 확고하였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대가 다운 솜씨가 아닐 수 없다.

물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한들 앞으로도 물을 소재로 이만큼 잘 만든 공포영화는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끝으로 몇 마디 더, 영화는 원작 소설과는 다른 면이 많다. 그러니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리고 라스트에 엘리베이터에서 쾅, 하고 물이 쏟아지는 장면은 공포영화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명장면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주는 슬프면서도 암담한 느낌의 공포감 때문에 오랫동안 가슴 한 쪽이 먹먹해 지는 경험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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