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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센다이. 연일 연쇄 토막 살인사건이 보도되고 있어 다소 공포스러운 분위기다. 이 뒤숭숭한 거리에는 괴담까지 떠돌고 있다. 멀쩡한 시체가 토막토막 잘게 부서진 후, 그것들이 다시 붙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좀비처럼 저벅저벅 걸어다닌다는 믿지 못할 괴담이 소녀들 사이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히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미술산업 자체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늙은 갑부 도다와 손을 잡고 일을 하기 위해 센다이로 향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 미술가 시나코. 도다는 말한다. 세상에는 돈이 최고다. 돈이면 뭐든지 얻을 수 있다. 네가 네 전 동업자를 배신하고 나에게로 붙은 것처럼 말야. 시나코는 우울하다. 자넨 그걸 안 믿지? 도다가 캐묻는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우리가 센다이 역에 내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내가 빼앗아 보지. 그자에게 가장 소중한 거. 그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내가 돈으로 사겠어. 그렇게 내기가 성립된다.
한편 좀도둑 구로사와는 훔치는 것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날이다. 그는 훔친 집에서 나오기 전에 자신이 무엇, 무엇을 훔쳤는지를 메모해주는 친절까지 베푼다. 그런 그가 어느날 문을 열어두고 서랍을 뒤지던 중 한 남자와 마주친다. 내집에서 대체 뭐하는 거야? 남자가 외친다. 그런 남자에게 구로사와는 그냥 당신하고 인간관찰게임을 한 번 해보고 싶어, 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의 신상을 훤히 알아 맞춰버린다. 놀라는 남자. 그리고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 한편, 그림을 그리는 청년 가와라자키는 행방불명된 남자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17층에서 뛰어내린 아버지를 생각한다. 17층에서 뛰어내릴 때였어. 내 눈앞에는 점점 아스팔트가 다가 오는 거야. 자전거보관소의 녹슨 지붕이라든가, 쓰레기장에 모여든 새의 부리 같은 것이 선명하게 보이더군. 그리고 바로 그때 뭔가가 눈앞을 가로질러 갔지. 그게 뭔지 알겠니? 모기였어! 모기야말로 신이야. 우리가 일상적으로 죽여 버리는 것, 그런 존재만이 신이 될 수 있는 거야. 가와라자키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어쨌거나 그에겐 지금 할 일이 있다. 츠카모토라는 남자와 함께 '신'이라 불리는 남자를 해체해야만 한다.
그런 한편, 교코라는 여인은 남편에게서 이혼통보를 받고 기뻐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부인 아오야마에게 그 사실을 알린 후 이제 남은 것은 아오야마의 부인만 처리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함께 아오야마의 부인을 살해, 암매장할 계획을 세우며 차를 타고 달린다. 그러다가 도로위에서 사람을 치고 만다. 그들은 시체를 트렁크에 숨기고 다시 달린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잠가놓은 트렁크 안의 시체가 몇 번이고 퉁겨 나온다. 그러더니, 시체가 조각조각 토막나버린다. 이어서 시체가 다시 붙은 후 저벅저벅 걸어가버린다. 이 불가능한 사태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교코는 애써 이성적 사고를 놓치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던 한편, 도요타라는 중년의 실업자. 그는 마흔번째 입사지원에 퇴짜를 맞고 쓸쓸히 거리를 방황한다. 그러다가 거리를 배회하던 늙은 개 한마리와 친구가 된다. 함께 동행하던 중 우연히 권총을 얻게 되는 도요타는, 실업자를 벗어나기 위해 우체국을 털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자신을 퇴출시킨 상사에게 복수를 하고자 마음먹는다. 연이어서 거리의 불량청소년들과 맞붙어 싸움도 하게 된다. 그러한 사건 속에서 늙은 개는 도요타에게 기이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두려워하지마. 그리고 내게서 떨어지지마. 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은 전체적인 구성이 '펄프픽션'이나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와 무척 닮아 있다. 실제로 작가 이사카 고타로는 그런 류의 영화매니아라고 한다. 특히 코엔형제의 범죄 스릴러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러시 라이프'는 그런 치밀한 퍼즐과도 같은 범죄 스릴러의 느낌이 강한 소설이다. 그래서, 우선 굉장히 스피디하게, 무척 재미있게 잘 읽힌다. 흡입력이 엄청 강하다는 것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뒤가 궁금해서 확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사카 고타로가 현재 일본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읽는 맛'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무척 놀라운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작가의 깊이있는 재능이 칼날처럼 번뜩임을 알 수 있다. 치밀하게 뒤엉킨 무수한 스토리들은 놀랍게도 주제를 향해 압축되며 작은 단서하나까지도 결국은 최종적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수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한 치의 어수선함도 없이 깔끔한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얼마나 능수능란한지를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 순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감탄을 내지르게 될 것이다!(현실속에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기이해 보였던 사건들이 결국은, 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답을 찾게 될 때, 그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사카 고타로는 '중력 삐에로', '칠드런' 등의 작품으로도 이미 유명한 작가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모두 '엄청 재미있다!' 도무지 시간가늘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거침없는 상상력에 놀라운 재능을 지닌 작가다. 또한 '개'를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하루키' 이후 최고의 일본 작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는 글 속에 깊이 있는 삶의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그의 빼어난 화술에 경의를 표한다!
미모의 여화가와 갑부의 노인, 빈집털이범과 방문객, 신흥종교에 빠진 청년, 정부의 아내를 죽이려는 여자, 총을 갖게 된 실직한 남자와 떠돌이 개, 이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시속 1374킬로미터로 해가 지기 시작하듯, 이 모든 사건들이 1374킬로미터의 속도로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그 종착역에는 과연 어떤 결론이 기다리고 있을까!
살며, 일하며, 힘들때, 죽고싶을때, 이 한가지 사실만 기억하자. 어차피, 인생에 관해서는 누구든 아마추어다. 누구든 첫 출전이다. 모두가 아마추어고 신인이다. 처음 시합에 나간 신인이 실패했다고 의기소침해 한다는 건 웃기는 짓이다. 신인답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경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 '러시라이프'를 펼쳐들자! 유쾌한 해답을 제시해 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