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이면 제일 먼저 들리는 소리는 돌 깔린 길을 타박타박 걷는 여공들의 발소리였다. 나는 더 일찍 깨본 적이 없어 못 들어봤지만, 그보다 앞서 공장에서는 경적을 울리는 모양이었다.

우리 침실에는 대개 네 명 정도가 함께 지냈다. 다른 방들과 마찬가지로 지독히도 불결한, 본 목적에서 벗어나는 방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일반 주택이었던 이 집은, 브루커 부부가 인수하여 천엽 가게 겸 하숙집으로 바꿔놓았다. (11쪽)


우리 나라라고 생각해도 별 무리없을 대목.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1936년 조지 오웰은 레프트 북 클럽이라는 한 진보단체로부터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책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당시 그는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활동을 하고 돌아와 그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파리와 런던에서 자발적 부랑자 생활을 하고, 그 경험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책으로 펴낸 후였다.     

기꺼이 제의를 받아들인 조지 오웰은 두달동안 위건, 리버풀, 셰필드, 반즐리등 잉글랜드 북부 탄광지에서 탄광 일에 참여하고 그들의 숙소나 집에 머물면서 취재를 위한 조사 활동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다.

지도상에서 보면 사실 위건 (Wigan)은 내륙에 위치하고 있고 그가 머문 곳이 위건 지역만은 아님에도 제목이 위건 부두 (Wigan Pier)인 것은 위건 부두라는 명칭이 위건과 맨체스터 지역의 Leeds and Liverpool Canal 을 둘러싼 지역을 통칭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진짜 석탄 하역 부두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었는데 부두가 붕괴된 후에도 여전히 그렇게 불리고 있다고 한다. 즉, 위건부두는 사실 위건 지역보다 훨씬 광범위한 북부 탄광 지대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Wigan Pier is an area around the Leeds and Liverpool Canal in WiganGreater Manchester, England, south-west of the town centre. The name has humorous or ironic connotations since it conjures an image of a seaside pleasure pier, whereas Wigan is in fact an inland and traditionally industrial town. (Wikipedia)    


맨위에 인용한 이 책 첫 문장은 조지 오웰이 묵었던 하숙집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다. 방인지 거실인지 모를 공간을 하숙인 네명이 함께 썼는데, 지독히 불결하고 족제비 우리 같은 냄새가 코를 찌르며 식탁에서 주인과 하숙인 모두 같이 식사를 하는데 식탁 위에 아침에 있던 부스러기나 소스 흘린 것이 저녁까지 그대로 있는 것은 예사이며 식사로 제공되는 빵에는 늘 집주인 남자의 시커먼 손도장이 찍혀있었다고 했다. 여기 머물면서 조지 오웰은 탄광 막장 일에 참여하는데, 막장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환경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막장 안에서 그리고 막장 밖에서 광부들과 그의 가족들의 삶은 어떤지, 그들의 수입이 어느 정도되고 그 수입이 어떤 종목에 어떻게 지출되는지, 주택 구조, 주택 공급 현황은 어떠한지, 그야말로 기자가 보고서 쓰듯이 자세히, 숫자로 제시된 자료까지 첨부하여 보여주고 있다. 

침대 두개를 세 사람이 쓰는 등, 기본적인 주거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고 슬럼가가 형성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지자체 주택을 지어 공급하기도 하였으나 노동자들은 지자체 주택으로 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여 들어가게 되어도 곧 다시 슬럼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예도 나온다. 슬럼의 악취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쁘고 자녀들이 뛰어놀 공간이 있는게 더 낫다는 걸 알지만 도무지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동주택을 불결함과 혼잡함으로부터 유지하기 위한 지자체의 제제와 관리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냄새나고 복잡할지언정 슬럼의 온기가 그리운 것이다. 이런 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이다.


슬럼 거주민들을 번듯한 집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긴 하지만, 우리 시대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그들이 누려온 자유의 마지막 흔적까지 박탈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96쪽)


노동 계급 가정의 가장이 실업을 당한 경우, 가족 구조 문제성도 지적되었다.


노동 계급 가정에서 주인은 남자이지 중산층 가정의 경우처럼 여자나 아이가 아니다. 이를테면 노동 계급의 가정에서는 남자가 가사의 일부를 맡아서 하는 경우를 도무지 볼 수 없다. 이런 관행은 실업 때문에 바뀌는 게 아니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좀 부당해 보이기도 한다. 남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둥거려도 여자는 변함없이 바쁘며, 그것도 살림이 더 빠듯해졌으니 더욱 바쁘다. 그런데도 내가 확인해본 바로는 여자들이 반발하는 경우가 없었다. 아마도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남자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줌마' 노릇을 한다면 사내다움을 잃는게 아닐까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110쪽)


여기서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뒤에 가면 경제가 나아진다고 꼭 더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것은 '학교에서 익힌 편견'이라는 장에서도 이어진다. 영국의 계급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돈이겠지만 돈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며, 돈으로 이루어진 계층 구조이지만 거기에 그림자 같은 계급 제도가 스며들어 있다고 했다. 그건 아마 조지 오웰 자신이 어릴 때 장학금 혜택으로 사립학교 예비학교에 들어가서 장학금 없이도 입학할 수 있었던 다른 학생들과 차별대우를 받았던 경험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직업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5년 동안 인도 제국의 경찰의 신분으로 일하며 몸으로 체득한 것은 제국주의에 대해 배우는데 더없이 중요한 바탕이 된다. 그는 제국주의에 대한 강한 염증을 느꼈고 비판하였으며 그것을 뿌리뽑고 그 자리를 대신해야할 주의와 제도를 찾고 알리기 위해 글로, 행동으로 활동하는, 죽은 지식인이 아닌 산 지식인이 되고자 하였다.


나는 경찰이었으니, 압제의 실행 기구의 일원이었다. 더욱이 경찰에 몸담고 있다 보면 제국의 악행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 악행으로 득을 보는 것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형을 찬성하면서도 교수형 집행인 노릇은 하지 않으려 한다. (197쪽)


그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범인도 교수형을 언도하는 판사보다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을 했고, 모든 정부는 악이며, 처벌은 언제나 범죄 자체보다 해로우며, 사람들은 믿고 가만히 내버려둬야만 점잖게 행동한다는 무정부주의 이론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와 다시는 그런 사악한 압제의 일원이 되지 않기로 결심하고, 양심의 가책때문에 속죄를 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어 스스로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당시에는 실패만이 유일한 미덕처럼 보였다.

내 마음이 영국의 노동 계급에게로 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210쪽)


그런데, 그렇게 그가 영국의 노동 계급에 섞여들어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들 (영국의 노동계급)은 불의에 당하는 상징적 희생자였으며, 버마에서 버마인들이 하는 역할을 영국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 와보니 압제와 착취를 찾아보기 위해 버마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영국에, 바로 자기 발밑에, 다르긴 해도 어느 동양인 못지 않게 비참한 생활을 하는 밑바닥 노동 계급이 있었던 것이다. (201쪽)


이 책중 한 챕터는 제목이 아예 '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이라고 되어 있다.

역시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말한다. 간단히 부랑자가 될 수는 있었지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내용), 건설 인부나 광부 처럼 평범한 노동 계급의 경우에는 훨씬 끼어들기가 어려웠노라고 (「위건부두로 가는 길」 내용). 평범한 노동 계급과 자기 사이의 벽은 돌담이라기 보다 수족관의 판유리 같아서, 없는 듯 대하기는 쉽지만 뚫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는 그의 고백은 얼마나 예리한가. 

그가 무정부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를 신봉한 의도는 한가지이다. 제국주의, 파시즘에 대한 진저리치는 혐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국주의나 파시즘은 이미 흘러간 과거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우리가 지금 그것을 제국주의나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섞여들어가 있을 수 있다. 세계를 어느 한 국가의 조절과 통제하에 두고 싶어하는 명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 나라'는 고도로 기계화 되어 있고 산업화 되어 있어서, 그런 단계가 오히려 사회주의가 실현되는 조건을 갖춘 셈이라고 저자는 생각했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전체주의, 제국주의, 파시즘으로부터 인간 사회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다. 그 나라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마지막 장에서 기계화가 인간의 인간다움을 어떻게 잠식해가는지 읽어가는 동안엔 절망스러웠다. 무분별한 기계화를 약물중독에 비유하여, 약이 조절되지 못하고 사용될때 어떤 결말이 올지 아는데, 기계화에 대해서는 그런 조절을 오히려 못하고 무한정 이용만 하려고 하며 발전의 척도로만 보려한다고 하였다. 1936년에 쓰여진 내용이 2021년 지금 이렇게 피부로 와닿을수 있는가.


다음엔 그의 어떤 책을 또 읽어야 할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말고 다른 책이 남아있던가 찾아봐야겠다. 기꺼이 읽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3-02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 버지니아 울프 시작했는데 조지 오웰을 다음 작가로 할까싶어요. hnine 님 조지 오웰 리뷰 글들 보다 보니까 자꾸 보고싶어져요. ^^

hnine 2021-03-02 09:02   좋아요 1 | URL
저도 한 작가의 책을 이렇게 연달아 읽어볼때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조지 오웰의 경우엔 집에 책이 있어서 있는 책들 읽기 시작해서 없는 책은 구입해서 찾아 읽게 되었네요.
비판적인 작가가 많지만 조지 오웰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다는게 다른 점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직접 간접으로 다가올 세계에 대한 예시랄까, 그런 것이 지금 현대를 본 듯이 쓴 것 같음을 느낄때는 정말 오싹한답니다.
 



















 

메리 올리버, 특색없는 평범한 이름.

천 개의 아침, 어디서 본 것 같은 제목.

그래서였는지 다른 분의 이 책 리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걸 보면서도 직접 읽어볼 생각까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1935년 미국 태생 메리 올리버는 서른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시집 이전에 우리 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그녀의 책들은 모두 산문집이었다. 짐작컨대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산문과 같은 느낌이듯, 산문집에 실린 글들도 시 같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2012년 Penguin press에서 출판된 A thousand mornings」를, 민승남 번역으로 우리 나라에선 2020년에 출간되었다. 36편의 시가 원문과 함께 실려있는데 번역된 시도 그렇지만 원문을 읽어도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쓰여진 시이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이 분명하고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일관성있게 분명히 내고 있다면 독자로서 더 반가울 것이 없다.

자연의 변화, 매일 일어나는 단조롭고 시시해보이는 일, 함께 사는 개, 주위의 식물과 동물 들에서 삶을 발견하고, 깊은 생각보다 그런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일깨워준다.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라는 시에서, 아침 바다로 내려가 파도가 밀려오고 물러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신세가 비참하다며 나 어쩌면 좋지? 라고 한탄하는 말에 바다가 대답한다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 라고.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아침에 바닷가로 내려가면

시간에 따라 파도가 

밀려들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지,

내가 하는 말, 아, 비참해, 

어쩌지.

나 어쩌면 좋아? 그러면 바다가

그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하는 말,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


비참해하지 말고 현재 눈 앞에 있는 너의 일에 충실하라는 파도의 대답은 곧 시인이 자신에게 가르치는 말이다.


'마침 거기 서있다가 (I happened to be standing)' 라는 시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일들로 가득 차서 나에게만 집중하며 세상을 걸어 다닌다는 것, 그것은 내가 진실로 살아 있다고 부를 수 없는 상태일지 모른다면서, 고양이가 햇살 속에서 토막잠 자는 것, 주머니쥐가 길을 건너는 것, 굴뚝새가 쥐똥나무에서 노래하는 것, 그런 행위들이 고양이, 주머니쥐, 굴뚝새의 기도가 아니겠는가, 기도보다 의미있는 것은 일상, 시시해보이는 일상일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정원으로 걸어 들어간 시인은 거기서 정원사가 장미들을 돌보고 있는 것을 본다. 자기 할일을 하고 있는 정원사를. 그는 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 ('정원사')

이렇게 시인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보다는 단순한 일상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다. 


'허리케인'에서는 끝장을 본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내 잎들이 포기하고

떨어지는 걸 느꼈어. 

허리케인의 손등이

모든 것들을 후려쳤지.

하지만

진짜 나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봐,

허리케인들이 다 후려치고 지나간 나무들에서 봄도 아닌 여름 끝 무렵, 새잎이 돋아나는걸 보았다. 잎이 돋아날 철이 아니었는데, 다 끝장난 것 같아보였는데.

이 시는 다음과 같이 맺는다.

어떤 것들에겐 철이 아닌 때가 없지. 

나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고 있어.


바닥까지 내려간 후 다시 시작되는 내용은 '어둠이 짙어져가는 날들에 쓴 시'에서도 나타난다.

해마다 우리는 목격하지

세상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풍요로운 곤죽이 되어가는지.


존재했던 것의 원기가 존재할 것의 생명력과 결합된다 (The vivacity of what was is married to the vitality of what will be.)는 것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면서, 세상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오늘 우리는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않겠냐는 시인의 말에 혼자 고개 끄덕거렸다. 


'썩은 그루터기에서, 무언가 (Out of the stump rot, something)' 라는 시에서도 같은 맥락을 발견한다.

예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 오지 마.

대신 그림을 봐, 

아니면 수선화를 기다리든지.


지금은 봄, 

어수선한 숲속, 소란스러운 연못가

봄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

위의 연은이 우리가 상상하는 예쁜 그림같은 봄이라면, 아래 연은 실제의 봄,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기 위해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실제의 봄이다. 생명은 치열한 것,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과정을 통해 시작되고 또 유지되는 것.


1984년 퓰리처상, 1992년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책 뒤에는 메리 올리버에 대한 유명인사들과 각종 출판사의 찬사가 실려있다. 자연을 교과서 삼아 가장 단순한 언어로 삶의 가장 밑바닥 진실을 말하고자 한 메리 올리버.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simple, yet sufficient. 단순하지만 충분한.

어쩌면, 삶의 가장 중요한 진실은 많이 배우고 많이 읽고 많이 말하고 많이 쓰는 것보다 매일 반복되는, 아주 단순해보이는 그 일상 속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하찮아보이는 그 일상 속에.

이 시집에서 내가 발견한 일관된 목소리는 그것이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2-28 0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hnine님 덕분에 좋은 시들을 얻어 가네요. 전 시집 전체를 읽는 것보다 이렇게 누군가가 좋다고 뽑아준 시를 읽는게 더 좋더라구요. ㅎㅎ 아 시인들이 저같은 사람은 싫어하겠죠? ㅠ.ㅠ

hnine 2021-02-28 05:44   좋아요 2 | URL
좋은 시라고 공감해주시니 저도 기뻐요. 시인을 알게 되는 과정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어쩌다 알게 된 시 한편에서 시작해서 그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어보고, 그 시집에서 공감가는 다른 시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견못하기도 하고요. 이 시집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메리 올리버에 대해 소개해주는 것을 듣고 구입하게 되었어요. 미국 현대시에 대해 제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듯, 어떻게 보면 동양적이기도 하고 어려워서 머리써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진리는 충분히 단순한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시인의 생각이 시에서 드러나는 것 같았어요.
메리 올리버의 산문도 한번 읽고 싶은데, 산문이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 않네요. 그래서 읽어보고 싶어요.

scott 2021-02-2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누군가 발췌한 시구절이 더좋은 1人!
[고양이가 햇살 속에서 토막잠 자는 것, 주머니쥐가 길을 건너는 것, 굴뚝새가 쥐똥나무에서 노래하는 것}
이런 자연의 모습을 목격한 시인의 천개의 아침은 도시인들의 아침과는 차원이 다를것 같아요.

원래 메리 올리버가 노벨상을 받았어야 하는데 ,,,
시인 메리 올리버의 반려견도 시인의 머리색과 같은 함께 늙어가는 모습까지 닮은
시인이 사랑하는 강아지 모습 그자체 였어요.

hnine 2021-02-28 23:00   좋아요 1 | URL
알라딘의 똘똘이 scott님! 메리 올리버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군요.
반려견 percy 가 시에 자주 등장하는데, percy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 한 마디 없이도 떠난 친구 그리는 내용의 시를 얼마나 뭉클하게 썼던지 몇번을 읽고 또 읽었어요.
책과 사람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지요. 책을 읽을수록, 사람을 알아갈수록 생각이 가지치기를 하고 더 복잡해져가는 것 같은데 (배움이 부족해서이겠지만), 자연과 가까이 하면 할수록 저절로 단순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21-02-2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가 할 일이 있다고 말하는 시가 무척 좋네요, 나인님. 저도 이 책 봐야겠어요.

hnine 2021-02-28 23:03   좋아요 0 | URL
바다가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는 뜻을 금방 파악하셨네요. 저는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야? 했답니다.
다락방님도 메리 올리버 마음에 들어하실듯해요. 오늘 이누아님과 하이드님 서재에 들렀다가 거기서도 이 시집을 만나 반가왔답니다. 저는 산문집도 한번 읽어보려고요.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글을 남기기에 조지 오웰은 마흔 일곱 나이로 너무 일찍 죽었지만 소설 여섯편, 르포 세권에 비해 에세이는 여기 저기 수백편을 발표하여 생전에 두권의 에세이집을 출판하였다. 그렇게 하고도 남은 글이 사후 지금까지 계속 이런 저런 에세이집으로 묶여나오고 있는 중인데 이 책도 그렇게 탄생한 책이라고 볼수 있다. 조지 오웰의 저작집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1~4권 (Nonpareil Books) 에서, 번역자 이한중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울림이 클 만한 에세이 29편을 골라 번역하여 그중 에세이 한편의 제목인 'Why I write' 를 책 제목으로 삼아 출간한 책이 이 책 '나는 왜 쓰는가'이다. 

스물 아홉편 중에는 '스파이크',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같은 비교적 짧은 글도 있지만 '민족주의 비망록', '정치와 영어', '스페인 내전을 돌이켜본다'같은, 거의 소논문을 방불케하는 글도 들어 있다. 글의 길이가 어떻든, 주제가 무엇이든, 일관된 그의 문체, 자기 경험이 바탕이 되는 글이라는 것은 공통이라고 볼수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가 된 글 '코끼리를 쏘다'를 먼저 펴서 읽었다. 어느 날 일흔 다되신 노교수님께서 '내가 조지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를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십대에 읽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서이다. Shooting an elephant. 말 그대로 코끼리를 향해 총을 쏜 경험에 대해 쓴 에세이로서 조지 오웰이 식민지 영국 경찰로서 버마에 주둔하던 시절의 경험담이다. 코끼리가 목격되었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그는 어떻게 해야할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 주위를 에워싸고 그의 행동을 주시하는 군중을 의식하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이 나를 얕잡아보지 않을까에 근거하여 행동을 결정하고 코끼리에 총을 쏜다. 그것도 한발의 총으로 죽지 않아 여러발을. 

백인은 원주민 앞에서 두려움을 보여선 안되기에 (39쪽)


<교수형> 역시 버마의 경찰 간부로 있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데 사형수가 교수대로 진행하던 도중 갑자기 형장으로 개 한마리가 뛰어든다. 사형수에게 달려들어 펄쩍 뛰어오르고 얼굴을 핥으려고 하는 개를 간수들은 형 집행을 위해 제지하여야 했다. 형 집행 전후 개의 행동및 상황묘사만 하였을뿐 작가 자신의 어떤 느낌과 감정을 직접 쓰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왜 이 글을 썼는지 읽는 사람은 알 수 있다.

조지 오웰의 글을 읽다보면 자연히 스페인내전에 대해 알게 된다.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원제가 재미있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스페인내전 복습, 총정리용으로 읽기에 좋은 에세이이다.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때문에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돌이 되기 전에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국인. 자기 모국인 영국에 대해 그가 얼만큼 객관적이고 얼만큼 주관적인지 우리야 정확히 알수는 없겠지만 <영국, 당신의 영국>은 다른 나라, 여러 주의, 여러 사상 속에서 영국을 들여다보고 쓴 글이다. 

영국에 대한 일반화 중에 거의 모든 평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것 몇 가지를 들어보고자 한다.

하나, 영국인들이 예술적인 재능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영국인은 독일인이나 이탈리아인 처럼 음악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회화나 조각은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영국에서 번성해본 적이 없다. 또 하나는 유럽을 기준으로 할 때 영국인들이 별로 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인은 추상적인 사고에 공포를 느끼며, 철학이나 체계적인 세계관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91쪽)

시대에 뒤떨어진 자질구레한 모든 것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태도, 분석을 허용치 않는 철자법 등에서 영국인들이 능률을 얼마나 중시하지 않는지 알수 있으며, 생각 없이 행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영국인의 위선은 세계적으로 손꼽힌다고 까지 했다. 여기서도 유럽과 영국을 따로 분류해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영국이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속해있지만 유럽과 영국은 다르다는 인식은 Brexit이전에 이미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읽다보면 조지 오웰은 문학가라기 보다 기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같은 면모가 다분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어 나오는 <민족주의 비망록 (Notes on Nationalism)>에서는 애국주의 (Patriotism)와 민족주의 (Nationalism)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민족주의에 공통되는 심리적 습성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여 강박증, 불안정,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 등을 들었다. 영국혐오증, 반유대주의, 트로츠키주의를 부정적 민족주의라고 따로 분류함으로써 이들 역시 민족주의의 한 계류로 본 것이 눈에 띈다. 조지 오웰은 한때 여기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었던가. 더 눈에 들어온 한 문장은 여러 종류의 민족주의가 심지어 서로 상쇄되는 종류들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도 있다 (203쪽)는 것이었다. 조지 오웰 자신도 비껴갈 수 없을 것이고, 어떤 한 주의로 사람을 분류한다는 것은 임시적이라면 모를까 지속성은 없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에세이는, 비과학자가 과학에 대해 쓴 글로 드물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었는데, 과학이 가진 객관성이 양면성을 가질 수 있음을 다른 누구보다 과학하는 사람 자신이 알아야 하고,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개념이라는데 동의한다. 

<행락지 (Pleasure Spots)>라는 에세이는 2021년을 사는 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인간의 한 사람으로써 얼마나 절실하게 와닿던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행락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중 상당수는 의식을 파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246쪽)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47쪽)


'정치'는 그의 글 여기저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중 하나일텐데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는 '정치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기를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라고 하였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라면서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쪽)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들어 정치 대 문학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은 그야말로 한편의 논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부적, 분석적이며 읽는데 집중을 요했다. 그의 예언자적 기질이 특히 두드러진, 조지 오웰의 대표 에세이 중 하나로 꼽아도 좋을 글이 아닐까 생각된다. 스위프트를 일컫기를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골라내어 확대하고 비틀어서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고 했는데 그걸 알아본 조지 오웰 역시 그런 능력자가 아니었을까.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라는 글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내내 반감과 따분함을 불러일으켰다는 톨스토이의 셰익스피어 공격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톨스토이는 리어왕을 예시로 셰익스피어의 저급하고 비도덕적인 면을 지적하며,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선 인류의 삶에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고, 저자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바를 표현해야 하며 바라는 효과를 낼 만한 기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셰익스피어는 세계관이 저급하고, 솜씨가 깔끔하지 못하며 한순간도 진지할 줄을 모르니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였다. 이런 톨스토이 글에 대해 조지 오웰은 동조 혹은 반발이라기 보다, 그런 평가를 내리게 된 톨스토이의 인생, 인생관, 문학에 대해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를 뜯어본 이상으로 파고 들어가서 톨스토이는 왜 맥베스가 아닌 리어왕을 들어서 셰익스피어를 평하려고 했는가에 이르기까지 추정을 하고 있는데, 조지 오웰이 어느 주제에 대해 글을 쓸때 어떤 정도의 지식과 사고를 갖추고 쓰는지 읽으면서 오싹하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의 얘기를 쓴 <정말, 정말 좋았지> 제목은 반어적인 제목이다. 어릴 때 자기는 약하고 못생기고 겁 많고 냄새나고 그럴싸한 데라곤 없는 존재였지만 그럴지라도 살고 싶으며 나름대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생존본능'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내가 근년에는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만 밝히기로 하자. (299쪽)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밑줄을 그렇게 많이 치며 읽었는데, 남는 문장이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만은,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다. 기발하게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각 페이지에 실린 주석, 책 뒤의 작가 연보, 역자 후기까지 빠짐없이 읽은 것은 나로서는 예외적인 일인데, 읽어서 확실히 도움이 되도록 번역자가 기울인 성실성이 느껴졌고 실제로 읽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1984>가 시작이었다. <1984>를 읽지 않았더라면 <동물농장>을 읽지 않았을것이고, <동물농장>을 읽고 나니 집에 있는 그의 다른 책 <카탈로니아 찬가>까지 읽게 되었고, 여기까지 오니 작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소설이 아닌 그의 에세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왜 쓰는가>를 읽게되었다.

간결하고 분석적이고 예리한 문장에 더해서 그에게서만 발견되는 어떤 예언자적 기질은 조지 오웰 글의 매력일 것이다. 그런 매력에 확실하게 끌려가고 있는 중, 이제 그의 또다른 작품 「위건부두로 가는 길」로 넘어간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2-1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문장 마다 통찰력이 번뜻이네요.
오웰 디에센셜 장바구니에 넣어요.
에이치 나인 리뷰도 오웰 처럼 ‘간결하고 분석적이고 예리한 리뷰‘

hnine 2021-02-17 12:54   좋아요 1 | URL
디에센셜 조지 오웰 알라딘엔 품절이던데, 그야말로 에센셜이라 할 만한 작품 구성이네요.
수백편의 에세이를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소설이나 르포는 몇편 안되니 다 찾아읽어볼만 한것 같아서 지금 위건부두로 가는 길 읽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명문 학교 진학을 위한 예비스쿨에서의 혹독한 경험 이후로 너무 일찍 계급과 가난과 차별에 눈이 떳을까요. 대학 교육도 받지 않았고 대신 버마로, 스페인으로,모로코로, 영국의 변두리 지역으로 돌아다니며 체험한 바를 글로 끊임없이 써냈지요. 말도 글도,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란 참 부러운 능력이예요.
저의 리뷰는 감히 근접도 못하지만 노력은 하고자합니다. 그렇게 용기 북돋아주시니 감사합니다~

scott 2021-02-17 13:23   좋아요 0 | URL
교보+민음사 합작 한정판 출간이라서 알라딘에서는 팔지 않아요.
수록된 작품들이
1984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는가?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

정치와 영어

나는 왜 쓰는가

작가와 리바이어던
이렇게 수록되었는데 몇개는 새로 번역하고 소설+에세이 묶음 시리즈 1권이 조지 오웰 ^.^

hnine 2021-02-17 14:1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수록된 작품들을 보니 에세이 중에선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는가?‘는 위의책 <나는 왜 쓰는가>에 포함되어있지 않은 작품이네요.

바람돌이 2021-02-17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조지오웰의 책들 리뷰가 많이 올라오는데 다들 참 좋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네요. 집에 있는 책부터 봐야하겠어요. 집에 있는 책은 1984 ^^

hnine 2021-02-17 13:03   좋아요 1 | URL
저도 1984로 시작했어요. 그 전엔 별로 관심없던 작가였고 심지어 미국 작가인줄로 알고 있었답니다.
아이 학교에서 필독서 리스트에 있었던가 그랬는데 아이가 제대로 안읽는 것 같기에 제가 한번 읽어보자고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기대보다 훨씬 좋은거예요. 두께도 꽤 되는데 말이죠.
동물농장 읽기 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제가 동물들이 등장하는 얘기에 별로 끌리지 않아서인데 (동물은 좋은데 동물을 의인화한 얘기들은 이상하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두께가 얇아서인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후딱 읽혔고 1984 만큼 깊은 인상을 받고서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급등했어요.
호불호가 갈릴수 있는 작가이지만, 이 사람의 소설이나 에세이는 꼭 한번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해요.
바람돌이님께도 추천드립니다.

scott 2021-03-0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나인님의 다음편 오웰리뷰도 다음달 당선작으로 예약 ㅋㅋ

주말에 볼더 먹을 간식 놓고 가여
  ∧_∧
 (´・ω・)
.c(,_uu 🍖

hnine 2021-03-08 04:26   좋아요 1 | URL
오웰 덕분이지요 ^^
감사합니다.
볼더가 좋아하는 간식이네요. scott님도 강아지 좋아하시나봐요.
 
기꺼이 오늘을 살다 -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나를 지켜내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이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어를 모르니 원제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영어로 되어 있는 제목에 "40 HINTO"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40 hint 라는 말이 원제에 포함되나본데 실제 이 책은 40가지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 아래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나를 지켜내는 심리학'이라는 설명으로 이 책 내용은 충분히 짐작이 될 것이다. 

저자 가토 다이조는 1938년 도쿄 태생으로 도쿄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와세다대학 심리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심리, 정신건강 관련 저서를 여러 권 낸바 있다. 

삶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삶이란 없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의 힘듦도 인정하면서 회피하기 보다 당당히 맞서려는 노력이 우리의 삶을 자신감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 요점이다. 시지프스가 매일 밀어올리는 바위도 알고 보면 삶의 무게, 인생의 짐을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짐이라는 표현대신 의무, 책임, 도전이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보라는 권유와 함께,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려는 태도, 회피하고 외면하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대신 당당히 짊어지겠다는 태도로 살아갈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행복이고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마지못해'와 '기꺼이'는 같지 않다. 어찌어지해서 결과물은 같게 나올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인생은 결과물로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거쳐온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제목 속의 '기꺼이'는 어쩌면 이 책의 키워드가 될수도 있을 것 같다. 마지못해가 기꺼이가 되기 위해서, 마지 못해 사는 삶이 아니라 기꺼이 사는 삶이 되기 위하여 이런 책도 읽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이라고 부르는 '탈진증후군'은 허버트 프로이덴베르거 (Herbert Freudenberger) 에 의하면 자기 자신보다는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일하고는 결국 만신창이가 되고 바닥까지 탈진한 후 남을 원망하며 좌절하는 증상이다. 번아웃되기까지 온 힘을 쏟아붓는 대상은 엄격히 말하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이라는 것이다. 자기애의 부족이고 나약함의 결과이며,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이고 집착의 결과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과 그 대상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한다는 것은 능동적이고 자기 감정의 작용이지만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할수 없을때 다른 누군가의 인정으로 자기애를 메꿔보려는 심리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느냐, 나를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 성공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것이다. 비참함으로 끝나는 인생이 대부분이다.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베란 울프의 "고민은 어제 생긴 일이 아니다" 라는 말을 저자가 바꿔 표현한 "불행은 난데없이 들이닥치지 않는다"는 말도 새겨들을만하다. 

자기애와 관련된 내용은 계속 나오는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무리해서 일하고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맺고 끊음없이, 부탁을 받으면 무리해서라도 해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에 부합하기 위한 것인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는 이면에는 열등감이라는 심리가 작용할 수 있음은 미처 생각못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남이 뭔가를 부탁하면 기분이 좋다. 자기가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의 역량을 넘어선 일을 하고, 결국 건강을 해친다. 건강을 해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원인이 자기 열등감에 있음을 자각하지 않는 한, 평생 동안 무리해서 일을 하고 결국 삶이 허망하게 끝날지도 모른다. (89쪽)

한순간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상대에게 낮게 평가받는게 두려워서, 무리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볼 일이다.

불행의 원인은 두가지, 외로움과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자기도 모르게 이것에 굴복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기꺼이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나의 문제나 나의 짐을 피하지 말고, 현재의 편함은 미래의 비극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짐을 내가 지고 갈 각오로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갈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때는 나오지 않는 에너지가 나온다. 힘이 들면서 동시에 힘이 만들어진다. 

수동적인 성격, 수동적인 성향은 100% 타고 나는 것일까?

수동적인 태도는 애정 결핍증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수동적이지 않다. 수동적인 태도와 자기 비하의 감각은 서로 떼어놓기 힘들 만큼 깊이 연관되어 있다. (182쪽)

'시켜서 했다'가 아니라 '스스로 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 내가 짐이라고 여기며 내 인생을 불행의 삶이라고 스스로 단정시키지 않기 위해, 자각과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런 일을 당했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나는 그만한 일도 견뎌냈다"라고 말하면 원망이 아니라 자신감이 솟아난다.

당신의 경험을 잘못 해석하지만 않는다면 틀림없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경험을 '손해 봤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살아가는 한,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자기가 들인 노력은 자신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230쪽)

편안한 인생은 애당초 없다는 전제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고, 그러니 그 짐을 당당하게 내것화하라는 말이 설득력있다.

내용을 다 읽지 않더라도 40개 소제목속에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 분량도 많지 않기 때문에 전자책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끝 - 로베르트 발저 산문.단편선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임홍배 옮김 / 문학판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베트르 발저의 산문집 <산책자>를 읽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어떻게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산책자>는 나에게 큰 공감대를 남겨 놓은 바 있다. <산책자>와 같은 해 (2017년)에 로베르트 발저의 다른 산문집이 출판되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바로 이책 <세상의 끝>인데,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역자에 의해 나왔지만 읽어보니 이 책에 실린 몇편의 글은 좀 더 먼저 출판된 <산책자>에도 실렸던 글임을 알수 있었다.

로베르트 발저는 1878년 스위스 태생이다. 8형제 중의 일곱째로 태어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계속 다니지 못하고 14살 나이에 취직을 하여야 했다. 이 책에 보면 실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건 아마 작가 본인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데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된다.14살에 시작하여 51세 요양병원에 입원하기까지 그가 거쳐간 직업을 보면 은행, 극단활동, 출판사, 보험회사 경리사원, 공장 사무직원, 종업원 교습소, 미술상 비서, 군복무, 보조사서 등 정말 다양한데,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주 옮겨 다닌 이들 중 어느 것도 일정한 직업이 아니었고 거처 역시 일정하지 않은 상태로 전전하며 살아왔다. 

51세때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아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는데 이 병력은 로베르트 발저 가족에게 있어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로베르트가 열여섯살 때 죽은 그의 엄마 엘리자 발저는 생전에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었고 화가였던 형 칼 발저는 자살로 삶을 마감, 넷째 형 에른스트 발저도 정신질환을 앓다가 사망, 둘째 형 헤르만 발저 역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51세에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78세에 사망하기까지 그의 요양병원 생활 대부분은 직업 대신 산책하는 시간으로 채워졌고 친구보다 자연과 교감했으며 산책하는 동안 혼자 느끼고 생각하고 꿈꾸는 것은 대화 대신 글로 남겨졌다. 글 쓰기는 그렇게 일종의 생계 수단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자연으로 가라. 그러면 자연은 그대를 반겨줄 것이니. 자연은 자신의 품에 안겨오는 모든 이를 사랑하고, 그대 또한 자연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자연에서는 잃을 것이 없으며, 자연은 누구도 해친 적도 없다. 

자연의 공간과 시간은 그 자체가 곧 즐거움이며, 맑은 공기는 청량음료처럼 마실 수 있다. 자연은 그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대가 이 세상을 아름다운 집처럼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대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30쪽,「자연」중에서)


저는 별을 좋아하고, 달은 저의 은밀한 친구입니다. 제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저는 사는 동안에는 하늘을 우러러보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저는 대지 위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입지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저와 농담을 하고, 저는 흘러가는 시간과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저는 이보다 더 소중한 즐거움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낮과 밤은 제 동반자입니다. 저는 아침저녁으로 친숙한 발에 의지하여 일어섭니다. (83쪽, 「어느 시인이 어느 신사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


특별히 튀는 표현이나 문장이 없어도 어느새 마음에 적셔들어오는 문장들. 로베르트 발저 글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부분 짧은 글들이고 그 속에서 화자는 시인이기도 하고, 사무원이기도 하고, 젊은 여인이기도 하고, 가난한 청년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인물들 속에는 로베르트 발저 자신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아래 인용부분을 보면 그가 자연과 교감했다고 해서 사람 사귀기에 아예 벽을 쌓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그는 자기와 어딘지 비슷한 구석이 있어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는데 영민했으며 친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같은 결말이다. 


밖에 나오자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 곁을 떠나왔다. 우스운 기분도 들었고, 익살맞은 느낌도 들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소담스럽게 함박눈이 내리는 허공으로 저녁종이 울려 퍼졌다. 도시는 한 편의 동화 같았다. 눈은 바람에 날려 회오리를 그리며 너무나 달콤하고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눈송이 하나가 마치 키스라도 하듯 내 입으로 떨어졌다. 내 모자와 외투는 주위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처럼 이내 하얀 눈으로 덮였다. 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등불이 빛났다. 이제 이 세상에는 오로지 아름다운 보금자리와 사랑스러운 사람들, 온갖 유쾌한 기분과 다정한 말들, 이루 형연할 수 없는 편안함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141쪽, 크리스마스이야기」중에서)


친해보려고 무작정 찾아갔던 사람의 집에서 나오며,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고 가벼운 자책에 빠지기도 하지만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위 상황과 배경 묘사를 통해 마치 잃어버린 무엇을 다시 찾기라도 한듯 개운함마저 보여주고 있다. 혼자가 되었을때 다시 찾는 안식. 외로움을 댓가로 하는 편안함인 것이다. 


<산책자>의 번역은 소설가 배수아가, <세상의 끝>은 서울대 임홍배 교수가 하였다. 두 권의 책에 중복되어 들어가 있는 글들이 있다보니 자연히 두권의 번역을 비교해보게 되었는데, 한 단편의 제목이 <세상의 끝>에서는 「주인과 피고용인」으로, <산책자>에서는 「주인과 고용인」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피고용인과 고용인은 완전히 반대의 뜻이지만 번역자가 잘못 번역하였다기 보다는 우리말스럽게 옮기려고 하다보니 번역자도 알면서 그렇게 번역한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혼자 산책하는 일은, 단지 시간 보내기 위한 수동적 활동만은 아니요,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 선택한 나를 찾아가는 방식이고 여정이며 허물어지지 않고 매일 새로 태어나려는 의지이고 노력임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그런데 저 마지막 인용문의 첫 문장 말이다.

밖에 나오자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 곁을 떠나왔다. 우스운 기분도 들었고, 익살맞은 느낌도 들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소담스럽게 함박눈이 내리는 허공으로 저녁종이 울려 퍼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안좋다. 너무 쓸쓸하게 읽혀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1-30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삶이나 가족력이 마음 아프네요. 그럼에도 산책을 통해 자신과의 타인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걸 보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hnine 2021-02-11 04:44   좋아요 1 | URL
그렇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그런데, 로베르트를 엄마처럼 돌봐주던 누이도 로베르트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고, 가깝게 지내던 친형도 자살로 세상을 마감하고, 본인도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나니 요양원 밖에 갈 곳이 없었어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의 삶과 생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글이 이렇게 세상에 남아서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진 않은거죠.

scott 2021-02-10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로베르토 발저
매일 걸었던 글쟁이 크리스마스날 산책 나갔다가 길에서 숨을 거둔 이 고독한 글쟁이,,,로베르토 발저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들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에이치 나인님 서재방에 들어 올때마다
프로필속 멍뭉군에게
뭐라도 주고 싶으 ㅋㅋ

/}__/}
( • ▼•)
🍖

hnine 2021-02-11 05:30   좋아요 1 | URL
제가 멍문군 (이름이 ˝볼더˝입니다~) 에게 말해주었어요. 너 귀여워하시는 분 한분 늘었다고요.
로베르트 발저의 마지막이 참 가슴아프죠. 고독한 글쟁이였으면서 끝까지 자기와 소통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날까 싶은 한가닥 기대가 그의 글 속에 나타나있어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님도 당선 축하드려요~
이번 설은 저희 집에서 저희 식구 세명만 차례 지내고 산소 방문은 설 연휴 기간 이후로 미루기로 했어요. 음식 준비만 해도 되고 교통지옥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어 그것은 한편 좋네요.
scott님도 평안하고 행복하세요.
(아래 강아지 그림 너무 귀여워요. 따라 그려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