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2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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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1,2 권으로 나뉠만한 분량의 책인줄 몰랐다. 

19세기 영국의 대표 작가중 한 사람 찰스 디킨스의 대표 소설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는 주인공 소년의 이름에서 온 제목으로, 첫 장면은 구빈원에서 다 죽어가는 여자가 아기를 출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자는 출산이 임박한 몸으로 런던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급한대로 구빈원으로 옮겨져 힘들게 출산하고 곧 숨을 거둔다. 아기 올리버 트위스트의 인생은 이렇게 구빈원의 어둡고 누추한 방에서 부모의 따뜻한 손길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시작되고 거기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 못해 배급받은 죽을 조금만 더 달라고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이전보다 더 열악한 대우를 받게 되고 결국 구빈원장은 장의사에게 올리버를 팔아넘겨버린다. 장의사의 구박과 모욕은 훨씬 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장의사 일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올리버는 마침내 장의사 집에서 뛰쳐나와 런던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그것이 올리버로 하여금 범죄 집단의 소굴로 들어가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장물아비 유태인 페이긴, 도둑놈 싸익스, 소매치기 쪼무래기 소년들, 창녀 낸시등과 관여하면서 올리버는 물건을 훔쳐오는 일을 강요받는다. 이들이 찜해놓은 어떤 집에 직접 숨어들어가 강도 짓을 해오도록 종용받던 올리버는 그 집 하인이 쏜 총에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에 이르렀으나 전화위복으로 자비로운 메일리 부인과 로즈 아가씨의 보살핌을 받게 되어 구사일생 살아나고, 양심의 가책을 따른 창녀 낸시의 도움과 다른 선량한 신사와 보호자들의 도움으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만나본적 없는 아버지의 유산까지 찾게 되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1. 소설이 이야기를 강조한 문학 장르라고 볼때 소설로서의 매력은 더할 나위 없다. 두권 합쳐 팔백여 페이지의 분량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어내려갈수 있다. 

2. 주제가 확실하다. 우리 나라 고전에 권선징악이라는 공통주제가 있어 읽는 동안 안정된 흐름을 탈 수 있는 것 처럼 이 소설은 악의 위협과 꼬임이 도처에 널려 있어서 약자로 하여금 너무나 쉽게 발을 들여놓게 하고 우여곡절을 겪게 하지만 결국 선의 위력은 그보다 더 결정적이고 힘이 있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내용의 주제의 명료성에 더해서 당시 영국 사회를 재조정해가던 구민법등 공리주의에 입각한 개정이 실제 사회에 어떤 모순을 낳았는가 하는 작가의 사회의식도 확실하다.

3. 앞의 두가지 매력은 자칫 식상하고 뻔한 전개에 독자의 호기심을 떨어뜨릴 수도 있었는데 작가는 적절한 수준의 복잡성을 플롯에 더하였고 결말 부분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은 추리소설 느낌까지 들게 하여 그런 위험을 피해가고 있다. 또한 악의 세계와 실상을 관념적이 아니라 사실적,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본듯이 그리고 있어 독자들은 좀처럼 식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갈 수 있다. 

4. 찰스 디킨스 특유의 풍자와 해학, 비꼬는 식의 문장 표현이 독자의 관심을 끄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물이 배 속에서 쓰디쓴 독으로 바뀌고 피는 얼음처럼 차갑고 심장은 쇳덩어리인 어떤 살찐 철학자님께서 개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이 산해진미 요리를 올리버 트위스트가 허겁지겁 집어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굶주림의 화신처럼 사납게 달려들어 음식쪼가리를 정신없이 뜯어먹는 올리버의 이 끔찍한 식욕을 그 철학자님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철학자님이 이와 똑같은 종류위 식사를 올리버와 똑같이 맛있게 먹어 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70쪽)


원외 구제의 대원칙은 바로 극빈자들에게 그들이 원치 않는 것만 정확히 골라서 주는 것이라오. 그러면 그들은 진저리가 나서 찾아오지 않는다오. (327쪽)


-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로서의 매력만큼 문학성이 돋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찰스 디킨스가 스물 다섯살, 막 전업작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초기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어쩔 수 없이 우연이 많이 개입하고 특히 결말 부분에 가서 우연에 의해 해결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찰스 디킨스는 그의 작품 만큼이나 그의 생애와 작품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많은 작가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악과 빈곤의 세계를 그토록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열 세살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과 떨어져 구두약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했을 정도로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쳐온 사람이고 부모와이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나중에 젊은 여배우와의 구설수, 아내와 불화, 별거 등은 작가 개인사적 얘기라고 해두어도 말이다.

살아생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으나 거부한 그는 59세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하였고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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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4-06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읽을 예정인데요, 한 권짜리로 골랐습니다.
디킨스는 이제 그만 읽겠다, 작정을 했습니다만, 참 그게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hnine 2021-04-06 21:44   좋아요 1 | URL
올리버 트위스트로 검색하니까 어린이용까지 50권이 넘는 책이 나오네요.
저는 이제 디킨스 시작이라서 집에 있는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내친김에 읽을까 하다가 결국 다른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머지 않아 읽게 되겠지요.
어릴 때 고생, 가난, 애정 결핍등이 찰스 디킨스의 경우엔 문학적 결과로 남겨졌으니 다행이지만 올리버 트위스트의 내용에 본인이 어려서 경험한 가난과 악의 세계가 적지 않게 반영되었다고 하니 개인사로 볼때 결과만 보고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찰스 디킨스의 다른 책을 읽어본게 없고 이 책이 처음이지만 Falstaff님은 디킨스의 다른 책을 이미 읽으셨고 이 책을 읽으신다면 올리버 트위스트가 아마 이미 읽으신 작품들에 못미친다고 보실지도 모르겠어요.

stella.K 2021-04-06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는 책으로 읽지 않고 영화로 봤는데
생각 보다 별로다 싶더군요. 특히 알고 봤더니 올리버가 귀족의 아들이었다는 게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건 아마도 그동안 복잡한 플롯의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봐와서
그렇겠단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디킨스의 시절엔 워낙에 살기 팍팍했을테니 이런 이야기로
대리만족 내지는 위로를 받았을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왜 우리 자랄 때도 괜히 나도 어쩌면 어디서 주워 오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하잖아요.
나만 그런가?ㅋㅋㅋ

hnine 2021-04-06 21:53   좋아요 2 | URL
맞아요 이거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저는 못봤지만 TV에서도 여러번 방영해준 것 같아요.
빈민구제법이라는게 있을 정도로 가난이 심각하던 시기였고 공리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구제법이 등장한 후라서 찰스 디킨스는 가난이 뭔지 쥐뿔도 모르는 철학자들의 공리주의가 과연 얼마나 가난을 구제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가를 풍자와 해학 정도가 아니라 더 신랄한 표현으로 맘껏 비꼬아주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독자들은 후련하기도 하고 재미를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stella님 지적하셨듯이 우연이 너무 많이 작용한다는 것과 선과 악, 귀족과 빈민의 대립 구조로 끌고 가기 위한 약간 억지스러움은 옥의 티였다고 생각이 드네요.

페크pek0501 2021-04-11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2를 읽었죠. 인물마다 캐릭터가 개성 있고 반전이 있어요.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소설인데
이게 이 작가의 강점 같아요. 올리버 트위스트는 읽지 못했지만 작가의 소설 작법을 알 것 같아요.
충실한 리뷰, 잘 읽고 갑니다.

hnine 2021-04-11 16:03   좋아요 1 | URL
전 오래전에 <위대한 유산>을 영화로 봤거든요. 그런데 글쎄 내용이 생각이 하나도 안나네요. 기네스 팰트로가 나왔다는 것 외에는요 ㅠㅠ
위에 Falstaff님도 말씀하셨듯이 디킨스의 작품은 한권 읽고 말기에는 아쉬운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세익스피어 이후로 영국이 자랑하는 작가이기도 하고요. 올리버 트위스트도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소설인 것은 확실합니다.
적어도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읽을 생각이어요.

초딩 2021-05-15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것도 읽고 싶은 책!

hnine 2021-05-15 22:40   좋아요 0 | URL
페이지가 쑥쑥 넘어간다는 것은 보장합니다.
재미있어요.

그레이스 2021-05-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두도시이야기>
프랑스혁명과 그것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각.
그리고 모비딕과 함께 유명한 첫문장으로 손꼽히는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로 시작하는 암시.
좋았어요~♡

hnine 2023-09-07 16:25   좋아요 1 | URL
저는 두도시 이야기 아직 안읽었어요.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첫문장이 어딘지 찰스 디킨스 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Call me Ishmael. 모비딕 첫문장이지요 ^^ 짧은데 강한 인상을 팍 던져주는.
 



원래 Keane의 노래 <Somewhere Only We know>
들으며 마음이 울다 웃다 했던 하루.
살다보면 누구나 이 가사와 같은 독백을 하게 될때가 올 것이다.

가사 속의 you가 누구일까 생각했다.



I walked across an empty land I knew the pathway like the back of my hand I felt the earth beneath my feet Sat by the river, and it made me complete Oh, simple thing, where have you gone? I'm getting old, and I need something to rely on So tell me when you're gonna let me in I'm getting tired, and I need somewhere to begin I came across a fallen tree I felt the branches of it looking at me Is this the place we used to love? Is this the place that I've been dreaming of? Oh, simple thing, where have you gone? I'm getting old, and I need something to rely on So tell me when you're gonna let me in I'm getting tired, and I need somewhere to begin And if you have a minute, why don't we go Talk about it somewhere only we know? This could be the end of everything So why don't we go Somewhere only we know? Oh, simple thing, where have you gone? I'm getting old, and I need something to rely on So tell me when you're gonna let me in I'm getting tired, and I need somewhere to begin And if you have a minute, why don't we go Talk about it somewhere only we know? This could be the end of everything So why don't we go? So why don't we go? This could be the end of everything So why don't we go Somewhere only we know Somewhere only we know Somewhere only we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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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Need Social Science, Not Just Medical Science, to Beat the Pandemic

Human behavior and social inequity are huge confounding factors


by Nicholas Dirks on March 20, 2021






미국에서 발행되는 과학잡지 Scientific American 2021년 3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저자는 미국 UC Berkeley 역사, 인류학과 교수이자 뉴욕 과학학술원장으로서, 전세계적유행병을 퇴치하는 답은 과학이나 의학이 쥐고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하는 제가 위의 기사를 발췌 번역해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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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이 나왔어도 바이러스 제압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느냐는 인간의 대응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의학적 도구만 가지고는 바이러스 제압이라는 크나큰 도전을 수행해나갈 수 없다.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이 과학과 함께 자리해줘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대 사회는 과학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역사적인 예나 인류학적인 예를 보나 요즘 일어나고 있는 전세계유행병에 대응하는 일치하지 않는 반응을 보나 그렇지 않다. 

1918-19년에 스페인 독감때의 경험에서 우리는 배웠어야 했다. 그때 어떤 도시는 바이러스 전파 제압이 더 잘 이루어진 반면 어떤 도시는 그렇지 못하여 결국 지구상의 오천만이 사망하였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과학에 대한 불신이 합쳐진 결과 마스크착용으로 독감을 제압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큰 혼란을 겪었고, 의학적 조언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들은 마스크 쓰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1950년대 소아마비 유행병은 또하나의 가르침을 주는 예이다. 표면적으로는 과학정책, 의학정책의 성공적 사례로 보기 쉽지만 사실은 지금 우리가 COVID에서 보고 있는 것과 매우 유사했다.

1954년 아이젠하워 정부는 모든 어린아이들이 개발 진행중인 폴리오 백신을 접종해야한다고 선포는 했지만 실제로 연방정부 차원에서 그것을 실행할 어떤 일관적 계획도 없었다. 더구나 백신 제조 과정의 질적 수준에 대한 감독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부 어린아이들이 아프거나 사망하였다. 전 국가 규모로 접종하기에 제한된 재원도 문제였다. 1955년 아이젠하워가 소아마지 예방접종 강령에 서명하고 나서야 충분한 연방 기금이 확보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혼란은 이후 대중의 불신을 완화시키는데 수년이 걸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사회학자인 Alondra Nelson이 새로이 과학기술정책국의 부원장으로 임명되면서 말하기를 전세계적유행병은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아서 우리가 허용하고 있는 사회 불평등의 고착화를 반영해주고 있으며 과학은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고 하였다. 이말이 의미하는 것은 과학은 그것이 상호작용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현실적 통찰력을 요구할 뿐 아니라 과학은 또한 사회적인 힘과 의미와의 관계에 따라 위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은 우리가 과학적 지식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사회과학은 과학이 사회적 편견과 이해관계를 알고 있도록 우리가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지식이 늘어갈수록 함께 발전하고 진화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지식을 해석하는 각자의 방식의 지배를 받는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팽배해져가면서 새로운 지식은 종종 잘못된 정보에 의해 압도되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려 음모론이나 대체사실 (alternative facts)에 쉽게 접근하도록 만든다. 과학의 발전이 새로운 의약을 만들어내는 것 뿐 아니라 더 건강하고 더 정당한 세상으로 이끌수 있도록 과학과 사회과학이 서로 상부상조할수 있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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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3-24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참 인간은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페인 독감의 예를 봐서라도 이번엔 세계가 공조하면
잘 넘길 수도 있을텐데 여전히 과학과 정부를 의심하고
마녀사냥이나 하고 앉았으니...
가장 모범을 보여야할 미국이 코로나 때문에 혐오범죄만 늘어가고 있으니
어떻게든 극복할 생각은 안하고.
이게 모두 트럼프 때문이어요. 흐~ㅋ

hnine 2021-03-24 23:14   좋아요 3 | URL
과학이 아무리 잘 드는 칼날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결국 과학이 아닌 다른 실체일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과학자는 과학자로서의 할일만 다 함으로써 끝나는게 아니라 과학이 제대로 이용될수 있도록 사회과학등 다른 분야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의도에 깊이 공감하여 기사를 옮겨보았어요. 이번 코로나에 미국이 보여준 대응방식은 너무나 상식 밖이었는데 저자의 말처럼 그것은 미국사회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하니 코로나가 아니라 다른 어떤 재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과학, 종교, 사회과학, 역사, 인류학, 등등 인간이 관련된 모든 분야는 적대할것이 아니라 협력을 해야한다는 마무리가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닌 것 같아요.
 
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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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을 넘어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런 경험 없는 사람의 상식과 선입관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 안될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의 결말은 보통의 독자들이 예상하는 것에서 비껴가 있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고, 수용소에서의 삶이 더 순수하고 단순했으며, 사람들이 묻는다면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며 맺는 주인공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상식과 선입관을 넘어서야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저자는 열네살의 나이에 죽음의 수용소를 경험하고 그로부터 삼십년이 넘은 마흔 다섯의 나이에 그 경험을 한권의 책으로 완성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열네살 죄르지는 아빠가 노동 봉사 명령을 받아 돌아올 기약없이 집을 떠난후 새엄마와 둘만 살게 되는데 아빠가 집을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죄르지 역시 학교 대신 노동 봉사장으로 일을 하러 다니게 된다. 버스를 타고 일터로 가던 어느 날 아침 영문도 모르고 버스에서 하차 명령을 받고 어디론가 이송된다. 그렇게 갑자기 소환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롤 끌려갔고, 이어서 독일 부헨발트 수용소와 차이츠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렇게 1년 여 시간을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 수용소에서 풀려나 살던 곳 부다페스트로 돌아온다. 

작가 임레 케르테스가 13년 걸려 집필하여 1975년 출판되었고 이후 2002년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지는 그의 첫 소설이자 자전적 대표작이 된 <운명>은 그 일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되고서도 자기가 어디에 와 있고 왜 그곳으로 이송되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년이던 죄르지는 하루만에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해가기 시작한다. 어떤 냄새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는 어떤 냄새에 심각하게 주목해야 했다. 딱히 무슨 냄새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지만 달달하고 끈적끈적한 냄새에 우리에게 약간은 익숙한 약품도 섞인 듯 했는데 아무튼 그 냄새 때문에 조금 전에 먹은 빵이 목구멍으로 다시 올라올 것 같아 거북했다. (117쪽)


냄새의 출처는 굴뚝이 높게 솟아있는 가죽공장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이었고 그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냄새의 원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가죽공장이 아니라 시신을 태우는 화장터라는 것도 곧 알게 된다. 죄르지처럼 끌려온 사람들 중에 의사가 봐서 부적합 판정을 내린 사람들은 바로 소각처리 되는 곳이다. 

독일로 갈 사람에 지원하여 아우슈비츠에서 독일의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갔고, 거기서 급성결체조직염이라는 지독한 병에 걸려 다시 차이츠 수용소로 옮겨진다. 시키는대로, 주는대로, 죽은듯이 존재해야하는 수용소 생활에 적응해가며 버텨나갔다고 하지만 존재로서의 생각과 느낌은 사라져간다.

고통을 호소해도 소용없는 상처 치료, 마취없는 수술, 그냥 흘러가듯이 겪어낼 뿐이다. 그러면서 수용소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간다. 그렇게 멈춘듯 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다. 적응이라고 한 상태가 사실은 어떤 상태를 뜻하는지.


그날이 끝나갈 무렵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손상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날이 마지막 아침일 거라고, 움직일 때마다 더는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여전히 걷고 움직이고 있었다. (185쪽)


여기서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되었다'는 것은 물론 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섰다는 느낌. 이제는 더이상 희망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떨어져버렸다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다음은 이 아이가 수용소 생활에 적응해간 결과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되었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도저히 더 이상 심각해질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런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많은 노력과 부질없는 시도 끝에 시간이 흐르면서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졌다. 예를 들어 점호를 받다가 피곤해지면 진흙이나 웅덩이가 있는지 보지도 않고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다. 추위나 습기, 바람이나 비도 나를 막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느낌조차 없었다. 배고픔마저 사라져 버렸다.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이는 대로 입으로 가져갔지만 말하자면 그것은 재미 삼아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일할 때도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두들겨 팼지만 그래 봐야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나는 한 대 맞으면 바로 땅에 누워 버렸다. 그러고는 금세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187쪽)


이 아이가 말하는 평화와 안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수 있다. 아무 느낌없는 상태, 살아있음 조차 느낄 수 없는 상태.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상태.


'시체'라는 표현을 그때까지는 죽은 사람에게만 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나도 그런 모습으로 아직 살아 있고 완전히 꺼질 듯 말 듯 깜빡거리지만 여전히 내 안에 이른바 생명의 불꽃이 타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내 몸이 그곳에 있고 나는 내 몸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지만 문제는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99쪽)


여기까지는 그냥 읽었다. 정작 눈물이 나오려고 한 것은 몇 페이지 더 넘어가서였다.


어디에선가 쨍그랑거리는 익숙한 소리가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종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저 아래 쪽에서 솥단지를 지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어깨 위에 막대기를 멨고 막대기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단지가 올려져 막대기와 솥단지의 무게 때문에 끙끙댔다. 공기 중에 멀리 퍼져 있는 떨떠름한 냄새로 보아 순무 수프임에 틀림없었다. 이 광경과 향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이미 굳은 가슴속에서 파도가 밀려오듯 갑자기 강렬한 감정이 일었고 나는 차갑고 축축한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나는 통찰력을 발휘해 신중하고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때 가슴속에서 한 가지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욕망의 비합리성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끈질기게 욕망이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것은 이 멋진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204쪽)


차라리 죽는게 나을 강제수용소이지만 그곳이라도 좋으니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꾸물거리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애써 부인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 붙어있는 목숨은 그래도 더 살아보고 싶다고, 아직은 죽은게 아니라고 마지막 몸부림치듯 일깨워주는 것을 알고 부끄럽고 가슴 아파 눈물을 쏟아내는 죄르지. 그의 눈물에 비할 것이 못되지만 죽으려고 포기하는 사람보다 그런 극단의 순간에서도 이렇게 다시 살아보려는 마음이 꿈틀대는 것을 볼때 더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왜일까. 


2차세계대전의 종말과 함께 죄르지는 살던 곳 부다페스트로 돌아오게 된다. 돌아와보니 살던 집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고 노동봉사로 끌려가다시피했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으며 새어머니는 재혼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죄르지를 알고 있는 동네 노인들은 죄르지에게 끔찍했던 과거는 다 잊으라고, 그래야 네가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죄르지는 왜 그래야하냐고,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여 동네 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우리는 항상 이전의 삶을 이어 갈 뿐 결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는 없다. 나는 다른 길이 아닌 주어진 나의 운명 속에서 끝까지 정직하게 걸어왔다고 주장했다. (281쪽)


죄르지는 운명이란 따로 정해져있는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고, 운명이라는 말 대신 나 자신의 걸음을 계속 걸어온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정직하게 계속 걸어온 나의 행보, 나 자신, 그것이 있을 뿐이다.

그가 하는 말을 못알아 듣는 사람들. 수용소를 겪고 나온 다음의 삶이 원래대로 복귀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시작이다. 


어찌보면 그곳 (수용소)에서의 삶이 더 순수하고 단순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284쪽)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안에 차오르는 각오가 점점 강해져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바로 도저히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삶을 지속해 가겠다는 각오였다.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보면 정말 기뻐하실 것이다. 불쌍한 어머니. 내 기억에 어머니는 내가 엔지니어나 의사 아니면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나는 틀림없이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극복하지 못할 불가능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원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난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285쪽)


저자는 그런 각오로 남은 생을 분투하며 힘겹게 살아왔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원제는 '운명'이 아니라 '운명없음'이라고 해설에서 번역자는 밝히고 있다. 고민하다가 제목을 그냥 '운명'이라고 했노라고. 

원제가 왜 '운명없음'인지 알겠다. 내가 걸어온 길. 살아있다는 느낌조차 없이 살아있는 시체로 존재하고 있던 순간에도 지속해갔던 걸음. 운명대신 그가 믿는 것은 그 경험이다. 운명대신 되돌아볼수 있는 그 경험을 믿는다. 

운명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곧 운명이며, 어렵고 힘겨운 것은 과거의 끔찍한 경험에서 벗어나는 작업이 아니라 지금 현재 존재를 지속해가는 문제이다. 

200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헝가리 문학계에서도 문학가로서의 존재감이 미미했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고 병마와 싸워야했으며 결혼 생활도 순조롭지 못했다고 한다. 노벨문학상을 계기로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그는 2016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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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이었으니까 지금은 또 많이 달라졌을 풍경입니다.





2월에 아들이 군입대했어요.





집을 나서고 있는 모습인데 제가 수십년전 집을 떠나며 한 행동과 똑같네요. 강아지 쓰담쓰담.






철원 훈련소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드라이브 스루 방식. 

입소자만 하차하라고 하여 저와 남편은 차에 있고 아들만 내려주고 차는 계속 가던 길 가는 방식입니다. 






지난 주말엔 경주 남산에 다녀왔습니다.

경주는 몇번 갔었지만 경주 남산은 1998년에 가고 처음이어요 (신혼여행으로 경주를. 제가 제안해서요.)

들어가자마자 소나무숲. 경주 남산 소나무숲은 유명하지요.

배병우 사진 작가의 소나무 사진이 탄생한 곳.

정말 멋지더라고요.

















보물찾기 하며 산을 오릅니다.







마을이 저 아래로 보이니, 꽤 높이 올라왔지요.








바위 틈을 뚫고 나온 소나무 좀 보세요.













저도 엽서를 한장 썼습니다.

(메고 있는 배낭은 남편 배낭. 저는 짐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 거추장스러워 지갑과 휴대폰, 손수건만 주머니에 넣고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이것 저것 챙겨 배낭을 메고 출발한 남편이 중간에 덥고 힘들어해서 제가 대신 메고 올라가는 중입니다.)







하산길.

앞서 내려가고 있는 모녀 모습이 예뻐서요.


저에게 경주는 여전히 매력있고 더 알고 싶은 곳이네요.





다음 일기엔 아마 꽃 사진 잔뜩 올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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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4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파피필름 2021-03-04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사진과 글 늘 잘 보고 있습니다~~사진보니 경주 다시 가보고 싶네요. 군입대한 아드님도 건강하게 잘 생활하길 빕니다 너무 늦었지만 올한해도 좋은 책들과 함께 행복하세요~~^^

hnine 2021-03-04 15:58   좋아요 1 | URL
스파피필름님도 경주 좋아하시나요? 제가 한때 경주에 관심이 많아가지고, 계기가 딱히 생각은 안나는데 책도 읽어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그랬었거든요. 날씨 좀 더 풀리면 스파피필름님도 한번 나들이 삼아 가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제 아이 군생활 잘 하고 오라고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대학 입학하며 이미 집을 떠나 생활했기 때문에 별로 새삼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학교와 군대는 다르긴 하지요. 차에서 내려주면서 너는 이제 나라지키는 군인이라고 악수하고 내려주었어요.
올 한해도 서재에서 자주 뵙길 바라겠습니다. 감사드려요~~

scott 2021-03-04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 억새풀 ! 강아지풀 그리고 에이치 나인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볼트 쓰담 쓰담 아드님 건강하게 군생활 잘하길 바래요!봄의 향기를 가장 먼저 품고 있는 꽃사진 기대 만발 ^.^

hnine 2021-03-04 16:10   좋아요 2 | URL
강아지풀은 그냥 보고만 지나치질 못하겠어요. 꼭 한번 손으로 만져봐야지요. ^^
꽃은 아직 눈에 많이 안띄어도 나무들 색깔이 달라졌어요. 푸릇푸릇.
scott님 서재글에 곧 수선화 핀다고 쓰셨었지요?
영국 같으면 벌써 수선화가 여기 저기 피었을것 같네요. 우리 나라 개나리 만큼이나 영국에선 흔한게 수선화지만 언제 봐도 예뻤어요.
우리 강아지 이름은 볼트와 비슷한 볼더 (Boulder)랍니다. 볼트라는 강아지 나오는 영화가 있었지요.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저희 집 강아지 이름이 좀 특이하긴 해요 ^^

막시무스 2021-03-04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와 구름이 옛날 시조에 등장할 만 분위기네요!ㅎ 아드님께서 건강하게 제대하시길 기원합니다.

hnine 2021-03-04 16:13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 말씀대로 진짜 분위기 있더라고요. 구불구불한 소나무와 하늘, 그리고 구름까지요. 배병우 작가의 사진이 괜히 탄생한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요. 그런데 남산이 생각보다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돌이 많고 올라가는 코스가 지그재그로 되어 있는 곳이 많아서요. 그래도 또 가고 싶은 ^^
제 아들 군 생활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째깍째깍...국방부 시계 가는 소리요. ^^

페넬로페 2021-03-04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드님 군대 보내서 마음 허전하고 보고프겠어요~~
저 엽서는 나중에 도착하는건가요?
손편지를 써본지가 오래되었네요^^

hnine 2021-03-05 05:10   좋아요 1 | URL
요즘 군대는 휴대폰도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요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주말엔 집으로 전화도 오고, 네이버 밴드도 만들어져있고 해서 예전같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워낙 대학 입학하면서 이별의 세러모니를 한번 겪은지라 생각보다 서운하진 않았어요. 무사히 건강하게 의무를 다 하고 오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네요.
엽서는 며칠 후 도착한다는 말이 안써있어서 모르겠어요. 뭐, 안들어가도 괜찮을만한, 만만한 상대에게 그냥 재미로 썼으니까요 ^^
저도 손편지라고 할 수 있는건 생일에 생일카드 정도였네요. 오랜만에 써본다면 누구에게 써볼까 생각해보니 금방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요 ㅠㅠ

stella.K 2021-03-05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벌써 군대를...!
아드님 강아지가 눈에 밟혀서 어떻게 입소했을까요?
강아지도 한동안 어떨떨하겠어요. 형이 매일 저녁이면 집에 들어왔는데
왜 안 들어오지 갸웃거렸을 것 같네요.
무엇보다 h님이 허전하시겠네요. 더구나 코로나라서 걱정이 많으시죠?
그저 무탈하게 잘 있다 돌아오길 저도 빌어봅니다.^^

hnine 2021-03-05 05:14   좋아요 1 | URL
그쵸? 엄마인 저도 내 아들이 벌써 군대를!! 딱 이런 기분이랍니다.
코로나라서 오히려 군대 보내는게 마음에 놓인다면 이해하시려나 ㅋㅋ
군대 가기전에 집에 잠깐 와있는 동안 얼마나 여기 저기 돌아다니던지.
훈련소 들어가자마자 코로나 검사부터 하더라고요.
대학 들어가느라 집 떠날때 한번, 이렇게 군대보내면서 또 한번. 이렇게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는가봐요. 군대 같다오면 이제 정말 어른 대우를 해야할 것 같아요.
무탈하게 잘 있다 오길 빌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난티나무 2021-03-0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군대....
건강히 지내기를 저도 바랍니다~

hnine 2021-03-05 05:20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것만 바랄 뿐이어요. 건강히 18개월 잘 지내고, 많이 커서 돌아오기를.
훈련소에 내려주고 걸어가는 아들 뒷모습 보니 참 많이 컸구나 싶고 키울때 생각도 나면서 나도 그냥 놀면서 세월보낸건 아닌가보다 위안도 되고말이지요 ^^
요즘은 현역 18개월인데 예전에 비하면 많이 짧아진 셈이지요. 그동안 휴가도 나오고 전화도 쓰고 밥도 맛있대요 ^^
건강히 지내기를 바라주시는 마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