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구판절판


차라리 엄마에게 봄날 약수터에서 처음 만난 노랑나비처럼 가볍던 영주의 발걸음을, 숲 속 어느 나무 아래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같이 청량하던 웃음을, 비가 많이 온 여름날 인와산의 물소리 같이 풍성하던 그 아이의 재능을 이야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엄마는 울었을 것이고, 그 아이가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떠올렸을 것이고, 그 아이가 엄마와 아버지 인생에 가장 멋진 성공작이었음을 이야기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엄마는 문득 아버지이 얼굴에서 영주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를 끌어안았을 텐데. 그러면 아버지는 엄마에게 엄마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성공이 오로지 영주 하나만은 아니었고, 앞으로도 많은 것에서 희망은 찾을 수 이을 것이라고, 무엇보다도 영주는 우리 식구들이 이렇게 서로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입 안의 모래알처럼 서로를 못견뎌하는 것을 절대 원치 않을 것이라고 그때 이야기해도 늦지 않았을텐데.-286쪽

할머니처럼 세상을 단순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나는 마음 한편으로 할머니가 부러워졌다. 하지만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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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10-2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그 사람에 맞춰서 좀더 불편하게 살아야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저를 반성하게 되는대..어떤게 맞는지 몰르겠어요...
전 그냥,,주말에 결론 내리기를 나만 편하게..남 생각말구 살자,,그게 나를 사랑하는 길이다,,일케 결론 내렸는대.......
근대.....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나를 잠시.....멈추게 하는거있죠...에구구..

hnine 2006-10-23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들리지마세요~ ^ ^
 
하치의 마지막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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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를 끓이고, 그리고 커피가 아침 햇살 속에서 마침 향긋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무렵, 하치는 울고 있었다. 이른 햇살에 알몸을 드러내놓고 다이내믹하게 울기 시작하였다.
바보같이, 라고 생각하면서 감동한다. 나도 울고 싶어진다. 그 광경이 아름다워서. 하치는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도록, 서슴없이 감정을 발산하였다. 지금의 슬픔을 지금으로 끝내기 위한, 산 테크닉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고 생각한다. 사진은 안된다, 글자도 할 수 없다. 그림만이 겨우 이런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매체다. 나는 오래도록 자신의 감정만 빼놓고 살아왔고, 누군가가 나 때문에 절박해하는 정경 따위 본 적도 없었으니, 멍청하게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치는 그 무렵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말했었다.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너를 좋아해, 너랑 있고 싶어, 하지만 안 돼, 네가 좋아, 사랑하고 있어, 너랑 내내 같이 있고 싶어.
온 몸으로 떼를 쓰는 어린애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때가, 하치가 가장 나를 좋아했던 때였다. 가장 흔들렸었다. 나는 모르는 척 흘려들었던 기간이었지만, 하치는, 나를 최고로 좋아했고, 그래 정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했는데.-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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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10-2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좋다,,아름답다,,,,,,,,,,,,그치요?

hnine 2006-10-22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아름답고 순수하고...3, 40대의 사랑의 감정과는 정말 다른 감성이구나 생각되어요.
 
하치의 마지막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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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마이 리뷰에서 수없이 많이 접했었으나 지금까지 읽기를 미루어 왔던 작가,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등.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치의 마지막 연인'으로 읽기를 시작하다.

15세 소녀 마오짱과 그녀의 연인 하치가 주인공으로 역시 지금까지 읽은 그 누구의 소설과도 다른 분위기의 소설. 15세라는 나이는 이처럼 때가 덜 묻은, 그래서 덜 예측하고 덜 계획된 행동을 할 수 있는 나이. 덜 계획된 사랑을 할 수 있는 나이.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인도의 양부모 밑에서 자라난 하치는 잠시 머문 일본 생활을 끝내고 다시 인도로 돌아가기로 하는데, 이별을 앞에 둔 마오짱과 하치의 심리 상태가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잘 묘사되어, 읽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번지듯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밑줄긋기'에 남겨 두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나와 소통할 사람이 없다고 믿는 마오짱에게, 하치는 그대로 세계 자체였고 또다른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 자기의 세계가 사라지고,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슬픔,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맺는다; 나는 하치를 잊지는 않지만, 잊으리라. 슬프지만, 멋진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슬프지만 멋진 사랑. 이런 사랑을 나는 가졌던가 ...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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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10-2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 요즘 사랑얘기 엄청 좋아하는대...
나는 하치를 잊지는 않지만 잊으리라. 슬프지만 멋진일이다,. 그렇게 생각한다..........음 너무 좋은 구절 같아요~

hnine 2006-10-22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었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날 때, 그 때는 정말 가슴이 아프겠지만, 이별을 경험하며 사랑도 배우는 것 같아요.
 
굼벵이 주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해생 옮김 / 샘터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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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자신을 위한 일 보다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위한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루, 일주일, 또는 한달 동안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는 일과가 되옴에도, 주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가졌던 꿈과 목표는 어느 구석으로 밀려 났는지 기억도 못 한채,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굼벵이 주부라는 반성을 하고 있게 하는 것은, 우리 나라나, 독일이나, 다를 바 없는 현실이란 말인가.

그래도 저자는 구구절절 신세 타령 조의 글이 아닌, 간결하고 코믹한 필치로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책 한 권 속에 잘 그려내고 있다. 처음 소개되는 내용이 아니어서인지, 금방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이 글 속에 여기 저기 숨어있었다. '누가 좀 해야할 일'이라고 불리는 일은 모두 주부가 해야 해결될 일이며, 가정내에서 그나마 주부의 위력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녀의 선택, 그녀의 차림새, 그녀의 취향을 무시하고 비하함으로써 가족들은 쾌감을 느끼며, 이 세상 어떤 일보다도 TV의 스포츠 중계에 열을 올리고 흥분하는 남편을 보며, 지금 이시간 내가 이혼을 하자고 하면 거들떠 볼까 생각한다. 그녀가 고양이를 키우며 오래 동안 별 탈 없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고양이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고양이에게서 특별히 뭔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구절에서는 서글프지만 공감을 해야했으니.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 이렇게 일생을 산 주부에게 댓가로 주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댓가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살아내자 하기에는, 다른 사람의 일상이라 할지라도 마음 한켠이 산뜻하지 못하다. 하물며 그것이 바로 나의 일상과 다르지 않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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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10-2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저의 일상과도 같아요. 요즘은 다람쥐 쳇바퀴같아요.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깨우고 밥 먹이고 허둥지둥 출근하고 퇴근후에도........ 굼벵이주부로 살고 싶어요.

hnine 2006-10-2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에 너무 변화가 잦아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너무 없어도 재미를 못느끼지요.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는 것이 늘 어려워요. 그래도 세실님 페이퍼 보면 재미있게 사시는 것 같던데...^ ^
 
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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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산문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들의 매력에 요즘 흠씬 빠져 있다. 동화집도 낸 동화 작가이기도 하면서 <사평역에서>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이기도 한 곽 재구의 우리 나라 바닷가를 찾아 다니며 쓴 기행문이다.

구룡포에서 배타고 들어가는 '화진', 군산에서 배타고 들어가는 '선유도', 충무 바다를 거쳐 가는 동화 마을과 지세포란 이름의 갯마을, 군산에서 배타고 가는 '어청도', 동해바다 정자항, 지심도, 어란 포구, 구시포, 사계포, 화포, 등등. 귀에 그리 익지 않은 포구들을 찾아가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 사는 모습을, 시는 아니지만 (시의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시와 다름 없는 언어로서 그려준다. 고요하고 무심해 보이기만 하는 바다를 말해주고, 엄연한 생존의 몸부림이 있는 주민들의 삶을 말해준다.

책 장이 몇 장 넘어가며 나타나는, 두 페이지 꽉 차게 들어오는 사진들도 좋다. 대부분 포구의 사진들이지만, 활짝 웃고 있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팥죽집 아주머니의 사진도 있고, 떨어진 동백꽃잎들이 낙엽과 어우러져 있는 한적한 길의 사진도 있다.

이 포구에서 저 포구로 방랑하며 작가가 얻은 것은, 느낀 것은 무엇일까.

포구는, 바다는, 그냥 거기 그대로 있다. 가끔 찾아가 그 곁에 머리를 기대고 마음을 기대고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을 제공받는 것 뿐. 뭍에서의 숱한 욕망과 이루지 못한 꿈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다시 돌이키고 되씹고 그리고 마음 먹고... 찾아오는 사람들, 잠시 머무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떠나는 사람들을 바다는, 포구는 아무 말 없이 맞고 보낸다.

참 아름다운 글이었다는 말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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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10-1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그래요

씩씩하니 2006-10-1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구 나서,딱 이 느낌였는대.........

hnine 2006-10-1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시인은 정말 타고 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시인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 맞서 살아나가기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도 세상이 만만치 않은지라.

씩씩하니님, 이 작가, 젊어서 뭔가 마음고생 내지는 방황을 많이 한 것 같지 않아요? 잘은 모르지만 ^ ^

kleinsusun 2006-10-1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글을 읽으니 바다에 가고 싶네요. 바닷가 한적한 마을에 작은 방을 하나 얻어서 뒹굴거리는 상상을 가끔 한답니다.^^

hnine 2006-10-20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봄에 갔던 통영, 거제 앞 바다가 그리워요. 물과 육지가 구불구불 서로 엉겨든 것 같은, 내 고향은 아니지만 남쪽 바다 푸른 색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