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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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남편이 하는 말, 예전엔 다 이렇게 먹었는데 뭐 새삼스럽게 책으로까지 나오느냔다. 예전엔 아마 먹을 것의 종류도 적었고, 저장 방법도 요즘처럼 발달하지 않았었을테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테고, 요즘처럼 먹고 싶은 것은 '직접 수고'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돈 주고 사서 먹을 수 있는 시대에도 그 '예전의 밥상'을 고수하는 생활이란 그와는 차원이 다른, '의식'을 가지고  선택한 삶이라는데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이 책에 실린 열 가지 밥상은 모두 비슷하다. 육식보다는 채식, 직접 땀 흘려 키워 제철에 거둔 채소, 절대 분을 넘지 않을만큼만 차려지는 밥상들이다.  이 책의 소제목 처럼 밥은, 평화이자 보약, 하늘, 신명, 나눔, 고집, 느림, 시, 그리고 기도이다. 땅을 함부로 다루다가는 큰일 날 것 같다는 자각으로 산 속에 틀어박혀 유기농사를 짓기 시작한 분, 종교적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농사를 짓지만, 종교가 벽이 아닌 문(門)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분, 좋은 것 골라 먹고 병 없이 오래 살기 위함이 목적이라는 분은 한 분도 없다. 이들의 밥상은 그저 이들의 사고 방식이 드러나는 생활의 한 단편일 뿐,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에 가치를 두기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뭔가 계속 더 채워나가려고만 하는 요즘의 우리들. 
수고를 아끼고 편함만을 추구하는 우리들.
먹으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들. 

읽으며 어쩔 수 없이 답답해 오는 가슴을 느낀다. 이미 우리들은 이토록 편리함에 길들여져 버렸는데, 다시 옛날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인가,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산속도 아닌 이 도시 한복판에서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내 몸보다 더 신경쓰이는 아이를 먹이고 키우며 먹거리에 대해 신경을 쓰고, 보이는 아무것이나 먹이지 않는 정도로도 얼마나 주위로부터 유별나다는 소리를 듣는지 모른다. 그 소리에 모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부심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의 밥상을 따라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에 눈 기울이고 귀 기울인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운다. 해 넘어갈 때면 만물이 기도한다는 어느 분의 말 속에 종교를 넘어선 진실과 겸손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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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3-3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먹거리 책에서 배우는 것이 많더라구요.
섬사이님도 좋은 주말 되세요.
 
토란
이현수 지음 / 문이당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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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의 이 현수 작가의 소설집이다. 열편의 글들을 읽는 동안 마치 가볍지 않은 TV문학관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느끼게 한데는 작가가 글 속 대화 중에 사투리를 얼마나 잘 구사하고 또 십분 이용하고 있는지를 알면 된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어쩌면 그리 감칠맛 나게 그 지방의 말을  잘 사용할 수 있는지. 정말로 '한국적'인 작가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아들 생일날, 서로 등돌리고 사는 시부모를 화해시키고자 초대했다가 결국 생일상은 뒤집어 엎어지고 그 자리를 떠나는 시아버지에게서 꿈 잃은 눈빛을 보는 며느리가 화자인 <토란>. 우리의 음식을 요리하는 장면도 마치 눈 앞에서 펼쳐 지는 듯하다. 시금치를 데칠 때는 말이여...하면서 시금치 데치는 것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시어머니, 나이 40이 되어야 고들빼기 김치의 맛을 안다고 가르친다. <비하리에서, 나는>에서는 이십년 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내에게 고향에서 당한 일이 이십년 후 또 똑같이 일어날 뻔 하자, 그 일은 우연이 아니라 자신을 겨냥해 계획된 일이었음을 알고 필사의 몸부림을 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거미집>에서 말하고 있는 노인문제, 남아선호문제, 역시 새로운 이야깃거리는 아니다. 여인3대가 등장하여 미움과 원망과 측은함, 그리고 정을 모두 한마음에 담고 살다가 때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이 불쑥 고개를 쳐드는 것이 보통 사람의 감정인가 보다 말해주고 있는. 계속 읽어야하나,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뜬채 읽으며 페이지를 넘긴 <마른 날들 사이에> 에서는 설악산 산장을 꾸리며 혼자 살아가는, 바람난 에미 대신 할머니 밑에서 자란 여자가 엄마와 에미는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미와 그 에미의 애인의 현장을 견뎌낸 그 날 이후로 여자는 시도 때도 없이 대숲에 부는 바람 소리를 듣게 되고, 보지말았어야 할 인생의 비밀을 일찍 엿본 죄 값이라고 말하는 여자를 통해, 나 역시 그 보고 싶지 않은 인생의 비밀을 여기서도 보고야만 느낌을 받았다. <불두화>는 자신과 다른 별에서 온 듯 여자에 눈멀어 지내게 된 또 다른 여자의 얘기. 불두화가 그렇게 슬픈 이미지의 꽃이었던가. <이땅의 낯선 자>에서의 유쾌한 반전, 그리고 주인공 여자가 납치에서 풀려난 후 제일 먼저 빼돌린 잘 들어보이는 칼을 보고 흐뭇해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파꽃><미노>는 이 책중 제일 맘에 든 글. 미노는 주인공 여자가 어릴 때 한동네 살던 소년. 서로 특별히 친하게 지낸 적은 없으나 마음에는 늘 담고 있던 아이. 그 미노 가족이 서울로 떠난 후에야 가슴에 생긴 구멍을 느끼게 되고, 미노와 한 동네에 살 때 보다 더 미노를 자주 눈 앞에 그리게 된다. 누구든 마음 속에 자신의 '미노'를 가지고 살고 있지 않은가? 누구에게 말할 것도 없고, 가끔 마음을 쓸어내리게 하는 그런 미노를. 나도 이 글을 읽는 동안 그런 나의 미노가 생각나서 마음이 아릿해졌다.

작가가 말한 인생의 비밀이란 모두 이렇게 아리고 쓰린 기억, 그리고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겉잡을 새도 없이 틀어지는 행로 속에 있단 말인가. 그러길래 <보지말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이제부터 이 현수의 소설을 읽기 전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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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2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읽어보고 싶어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씩씩하니 2007-03-22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바로 장바구니에 담구,,,리뷰는 처음과 끝만 읽었어요,,,,살꺼니깐,,나중에 읽어도 되지요???ㅋㅋㅋ

hnine 2007-03-2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인생의 고운 면 보다는 가슴 저린 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생이 뭐 한가지 면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읽어보실만 하다고 생각해요.

씩씩하니님, 특히 <파꽃>이랑 <미노>요~ 아셨죠? ^ ^

달팽이 2007-04-01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고 갑니다.
이 책을 보관함으로 담습니다.

hnine 2007-04-01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란
이현수 지음 / 문이당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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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날들 사이에' 中 -
고요라니......권태가 덕지덕지 쌓인, 보지말았어야 할 인생의 비밀을 일찍 엿본 죄로 삶에 대한 정열이나 어떤 희망도 품지 않는 한 여자가 만들어 내는 푸석푸석한 마른 날들의 풍경이 타인의 눈에는 고요하게 비칠 수도 있다니.-104쪽

- '파꽃' 中 -
"파꽃이 피었네요."
신기한 듯 말하자 별안간 그가 불퉁거리며 성을 냈다.
"저게 무슨 꽃이에요. 어디 꽃이랄 수가 있나요?"
"왜요? 파꽃은 꽃이 아닌가요?"
"꽃밭에 핀 꽃만 꽃이지 텃밭에 핀 걸 누가 꽃으로 봐주기나 하나요. 말이야 파꽃이니 가지꽃이니 호박꽃이니 좋게들 하지만 그냥 파나 가지나 호박으로 보지 누가 저걸 꽃으로 봐요?"
"파꽃이 어때서요. 꽃만 화려하게 피우는 꽃나무보다는 쓰임새도 많잖아요. 보면 볼수록 대견하기만 한걸요. 파가 억세져서 못 먹겠다 싶어 눈을 거두면 저토록 안간힘을 다해 봐달라고 꽃을 피우니......"
-165쪽

기다려 줄래?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그 말만 귓속에서 웅웅거렸다. 기다려 줄래? 미노는 그 말을 좀 더 일찍 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나 역시......미노에게 할 말이 있었다.-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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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끌리는 책이군요. 편안하게 읽히지는 않을듯 싶긴 합니다만.. 이 인용된 문구들 처럼 나머지 부분도 좋은가요?

hnine 2007-03-20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술술 읽혀요. 마치 TV문학관을 보는 듯한...
곧 리뷰 올리겠습니다 ^ ^

프레이야 2007-03-21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생뎐의 이현수님인가요? 감칠맛 나는 글귀들입니다.

hnine 2007-03-21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예, 그 작가 맞아요. 신기생뎐 보다 먼저 쓰여진 작품이지요.
 
나는 성인용이야
김점선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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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 점선의 글과 그림 모음책이다. 짤막짤막한 글에 화투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섞여 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같은 원색을 사용한 단순화된 그림들은 군더더기 없이 딱 짤라 하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 인 듯 했다. 읽다보면 글과 그림과 사람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둘러대지 않고 이리 저리 꾸며대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나,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 그 쏟아내는 말들에 의외로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기숙사에서 왕따 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려준 친구에게 그것이 너무 기쁘다고, 남들과 동화되어 와해되지 않으려고 목숨걸고 노력해왔다는 자칭 왕따 체질 김 점선. 시들기 시작하는 백합꽃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냉장고를 백합꽃이 안치된 관에 비유하는 대목에선 어떤 엽기성까지 느껴졌으니. 정해진 학교의 교과과정을 따르길 거부하고, 자신의 손으로 짠 계획과 일정에 따라 시험시간과 체육시간을 제외하고선 책만 읽어댔다는 고등학교 시절. 맘에 안드는 과목을 수강 거부했다가 한 학기만에 제적당한 대학원.혼자서 심심하게 살아야 생각이 맑아지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무지 심심해야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는 대목은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그림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내 영혼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 대목을 옮겨볼까? 그러면서 한번 더 읽어보려고...

'...그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그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행복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기쁨을 느꼈다.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그림은 경건한 예배다.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다. 내 영혼은 하늘이 내게 내린 숙제다. 평생 풀어나가야 할 대상이다. 내 영혼 속에는 가깝게는 나와 나의 부모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나는 내 영혼의 시각화에 몰두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122쪽)'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독서광이라는 그녀가, 위에서처럼 어떤 기회에 그림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글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그러고보니 위의 인용문이 이 책의 뒷표지에 실려있구나. 박완서님의 추천글도 아주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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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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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알라딘 리뷰에 한참 오르내리던 책 중 하나였다. 올라오는 리뷰들만 읽어보면서 책은 정작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무척 재미있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버스 기다리면서도 읽고, 길을 걸으면서도 읽고, 밥 하면서도 읽고.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다. 왜,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재미있는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치 작가가 책 속에서 책을 왜 그렇게 열심히 읽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유가 없다, 그냥 좋아서 읽는다고 대답하듯이.

이 책의 두가지 키워드라면 <백수>와 <책>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매일 출퇴근 하는 직장이 없다뿐이지, 그리고 아버지 집에 같이 살면서 '식'과 '주'를 따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외에는 엄격한 의미의 백수는 아니지 않은가? 주인공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을 사기 위해, 또 그 외 필요한 다른 경비 정도는 그때 그때 임시직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충당하지 않는가. 책의 제목에서 100% 완전 백수의 이야기를 상상했다면 아마 실망했을지도. 즉,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활동만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무슨무슨 족(族)'이라고 이름붙여 새로운 트렌드가 될 법도 한, 지극히 현대적인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나의 기호나 나의 취향보다 중요하지 않고, 어느 만큼 그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 그 반대의 부류보다 내게는 훨씬 좋아보이는데 말이다.

주인공이 이렇게 백수라 부른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책> 속에서 인생의 모든 생,노,병,사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귀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그 인생에 대해 알기까지 우리가 투자해야할 시간과 노력과 웃음과 눈물에 반해, 책을 읽음으로써 알아가는 인생은 그 모든 수고를 단축시킨다. 책 읽는 동안, 이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어느 정도 동떨어져 나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책과는 별개로 책 읽기 라는 활동의 의미를.

고만고만한 소소한 일상의 얘기 거리에 지나지 않다고 할지 모르나, 한 문장 한 문장 시시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뿐 아니라, 그 주변 인물 모두, 그 중 어느 누구를 주인공으로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다만,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전교 1등을 도맡아 하여 아무대학 아무과나 갈수 있었다는 설정이나, 책을 전해받다가 애인초기 단계로까지 발전해가는 관계의 어색함 등, 빠져 읽는 내 눈에도 뜨이는 몇가지가 흠으로 보이긴 했으나 못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마지막,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과연 그녀의 말대로 솔직한 타입의 사람일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본인은 이 생활이 만족스럽기만 하다고 계속 얘기하고 있지만, 느껴져오는 삭막함과 쓸쓸함. 역시 책은 책일 뿐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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