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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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1, 2 읽기를 마치다.
16세기 말, 터어키 이스탄불 외곽의 어느 우물 바닥에 죽어 버려진 한 세밀화가 엘레강스의 독백이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어가는 이후로 계속 '내 이름은 누구...' 하는 식의 소 제목 아래 등장 인물 (혹은 무생물일수도 있다)들이 돌아가며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 당시 이슬람 국가의 미술 형식은 인물의 특징은 배제되고 이야기와 사건이 담긴 그림의 내용이 더 중시되던 시대. 서서히 베네치아를 비롯, 서양의 새로운 사조가 밀려 들어오고, 그것은 신과 군주에 대한 모독이라는 믿음과 부딪히게 된다. 이런 배경아래, 궁중화원 소속의 한 화가가 죽은 채 우물에 버려진 사건이 일어나고, 읽는 사람은 이 책 2권의 말미에 가서야 그 범인을 제대로 알게 되니, 읽는 사람의 흥미는 지루함을 느낄 여지를 만들지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방식이나, 계속 관점을 달리하여 말하는 화자 전환 방식의 구성은 작가의 치밀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오르한 파묵은 지난 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훨씬 이전부터 노벨상 후보 일순위에 있던 사람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터어키, 이슬람 문화, 세밀화 기법 등, 책에 처음 들어갈 때의 익숙하지 못함이 오히려, 잘 모르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전환되어 흥미를 더해준 책.  이런 이야기와 구성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는 생각을 결코 할수 없었던, 독특하고 매력있는 책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하나의 작가를 마음 속에 담고, 터어키를 비롯, 그 시대 이슬람 미술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졌으니, 나의 관심 분야가 또 한번 확장되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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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1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고 아직 손 못 대고 있어요. 터키와 이슬람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인가 봐요. 님의 리뷰 보니 흥미진진한 서술방식인 것 같아요^^

hnine 2007-04-1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읽어보세요. 독~특 하답니다 ^ ^
섬사이님, 책을 읽기 시작하고 초반부에는 좀 집중력이 요구되지요. 감을 잡아야하니까요. 하지만, 감 잡았다 싶으면 벌써 중반을 훌쩍 넘어서 속도가 붙고 있더군요. 세살 아기가 있으시군요. 한참 힘드시겠다...하지만 더 컸을때보다 고맘때가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웠던것 같아요.

해적오리 2007-04-1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여행할 때 타지마할 같은 이슬람 문화를 접하면서 나름 많이 반했드랬죠.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일품이에요. 이론적으로 아는 건 없지만 그때의 감동은 아직 남아있네요. ^^

hnine 2007-04-1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 인도 다녀오셨군요. 옆에 앉아 얘기 듣고 싶네요.
 
진짜 좋은게 뭐지?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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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년전 닉 혼비의 About a boy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야말로 웃기도 하고 씁쓸해하기도 하며 책을 읽었더랬다. 닉 혼비는 글을 무겁고 심각하게 쓰기보다는 풍자스럽게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경향은 이 책 <진짜 좋은게 뭐지?>에서도 나타난다. 비록 내용은 붕괴되어 가고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글 한줄 한줄에는 푸하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가 숨어있기 일수이다.

우선, 이 책의 내용에 얼마나 공감이 갔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혼 생활 24년만에 이혼을 해야할까보다 생각하는 중년 여의사, 도저히 나랑 맞지 않는다고 이혼까지 결심하게 한 남편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정식 의료행위도 아닌 허리 맛사지를 받고 온 후 보인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갑작스런 변화,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찬성도 강력한 반대도 밀어붙이지 못하고 갈등과 방황을 보이는 부인 앞에서 독자는 더구나 이해가 힘들다. 그 갑작스런 변화의 동기와 의미는 무엇인지. 이 책의 제목 도 남편의 그런 심경의 변화에서 나온 행동을 일컫는 말인 것 같은데, 이것은 이책의 소개말에 쓰여진 ‘가정의 붕괴’라는 주제와 어떻게 연관지어 받아들여야할지 언뜻 감이 오질 않는다. 오히려 가정의 붕괴라기보다는 ‘결혼생활의 붕괴’라고 함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도 해보았다.

‘...결혼식 날 여자들이 상상도 못 하는 사실은-하긴 어떻게 상상을 한단 말인가?- 언젠가는 자기가 배우자를 증오하고, 그 얼굴만 봐도 반지나 체액은 고사하고 단 한마디 말을 나눈 것조차 후회스러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절망과 우울, 내 인생이 끝났다는 기분, 애들한테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거면서 징징거리는 애들만 보면 후려패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솟을 거란 상상 이런 상상을 미리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 남편이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를거다. 조금이라도 이런 문제를 생각한 사람이라면, 누가 미쳤다고 결혼을 하겠는가. 한 사람도 없을 거다. 이런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가끔씩 표백제를 병째 들이마시고 싶어하는 사람과 똑같다. 다시 말해, 결혼이라는 것은 다들 뜯어말려야 할 일이라는 거다. 그런데 막상 결혼이, 혹은 평생을 같이 보낼 동반자 내지 내 자식들의 아버지를 찾는 일이 중대한 문제가 될 때는 이런 생각들을 할 여유가 없다. 결혼이란 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인 데다 그런 꿈마저 없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승진이나 복권 당첨 밖에 없는데, 그건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기껏해야 진흙투성이 운동화를 빠는 정도의 시련만 상상하면서 부부 관계로 들어선다. 그러다가 결국 불행해지고 신경안정제를 퍼먹다가 이혼을 하고 혼자 외롭게 죽어가는 거다...’ (128쪽)

지독한 sarcasm (풍자?) 아닌가? ‘열심히 연습한 기미가 역력한 농담’ (246쪽) 이라던지, 닉 혼비의 문체를 단순이 ‘유머’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 유쾌한 블랙 코메디’라는 소개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또 한가지, 자신의 이익과 편리함을 양보하여 그늘진 구석의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자고 법석을 떠는 이야기를 펼쳐 가는 가운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은근한 차별 의식이다. 동유럽에서 이민온 사람의 발음 같다던지, 동유럽 어디에서 온 사람의 외모를 하고 있다던지, 아이의 친구를 소개하면서 그 애는 흑인과 카리브 인의 혼혈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던지.

끝맺음부분에서 작가가 특별히 주려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을 바로 포착하지 못한 건 독자의 역량 탓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해체라는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도 유쾌하게 웃을 수 만은 없는 문제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번역자의 독자를 위한 노력이 친절한 ‘역주’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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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1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공감은 가면서도 어딘지 씁쓸하지요. 다 사람 사는 모습이려니 생각도 들구요.
 
나, 김점선 - 개정판
김점선 지음 / 깊은샘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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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에게 별로 끌리지 않는다. 나와 너무나 달라 보이는 사람에게 역시 끌리지 않는다. 나는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이 일게 하는, 언뜻 감이 오지 않는 사람에게 끌린다. 아마 김 점선이라는 사람의 책이 눈에 뜨이는 대로 손에 집어 드는 이유도 그런 것일까. 책 표지의 제목은 그녀의 필치로 당당하게 <나, 김점선>, 그리고 역시 그녀의 그림 가 돋보인다. 그림과 제목으로 벌써 난 누구라고 알리고 있는 듯한.

 

그녀의 다른 책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쓴 구절을 읽고 밑줄 그어 놓은 기억이 있는데 그녀는 실제로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마음과 눈을 가졌다.

「나는 해가 뜨기 훨씬 전에 일어난다. 그러고는 해가 떠서 색채가 구별되기를 기다린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밥 짓고, 빨래하고, 우리 아들 도시락을 싼다. 그런 후에 나가서 가로등을 끈다. 천천히 마을을 돌면서 가로등을 끄면, 그 중 몇은 벌써 꺼져 있다. 마을 주변의 벌 언저리에서는 어둠 속에서 검은 덩어리로만 보이는 농부가 밭일을 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마을에 몇 명의 성인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이 내린 날 새벽에 산 속으로 산책을 나가 보면, 어느새 비탈길엔 눈이 치워져 있다. 모래나 연탄재가 뿌려져 있기도 하고, 더 미끄러운 길은 흙을 파서 발 디딜 자리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그런 길을 밟고 걸으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산골에도 하느님에게만 보이는 표지를 몸에 지닌 성인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을 완전한 성실로 채우는 사람들, 하찮은 일들을 정성껏 해내는 사람들, 사람들과 말하기보다는 하느님과 말하기를 더 즐기는 사람들」(111쪽, 일상 속의 성인들)

작가와 마음이 혼연 일치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 구절이다. 이런 느낌과 생각으로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사람이면 그 누구이든 기억하고 싶다.

 

김점선에게 글쓰기는 이미 어릴 때부터 거의 집착에 가까운 책읽기 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책 또는 그림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고 한다.

「노동에 치여서, 스러져 버릴 것만 같은 내 생명에 대한 연민의 기록,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꿈이고 뭐고를 다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에 저항하는 … 나 자신에 대한 나의 기록. 그 필요가 지친 몸을 눕지 못하게 했다. 새벽 동이 트도록 곧추세워 …… 그 몸을 책상에 앉혔다.」(프롤로그 中) ‘내 생명에 대한 연민의 기록’ 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짤막짤막한 문장 속에, 바로 그때의 느낌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군더더기 없는 그녀의 글이 좋다. 마치 그녀의 그림이 그렇듯이. 복잡한 풍경이나 구상을 그리기 보다는 토끼, 꽃, 말, 오리, 거위, 코끼리, 맨드라미, 고양이 등, 어린 아이들도 대상으로 삼을 만한 소재들을 몇 가지 안 되지만 선명한 색, 복잡하지 않은 선으로 표현되어 마치 무슨 판화를 연상하게 되는 그림들이다. 하나의 그림을 위해 수없이 반복한다는 에스키스는 마침내 그런 형태의 그림이 되어서 세상에 나오나 보다.

 

학교 다닐 때 큰 키와 행색으로 장발 단속에도 여러 번 걸렸다는 김점선. 결혼이라는 게 싫었던 그녀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또 얼마나 그녀다운지. 내 식으로 결혼하고 내 식으로 생활하며 내 식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각오로 시작한 그녀의 결혼 생활 얘기, 아이 낳아 키우는 얘기도 좋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자기 자신이 옳은 어른이 될까 하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가르칠 의도로써 가르치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기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사람을 봄으로써 더 큰 것을 얻게 된다. 가르친다는 기술이나 내용을 연구하기보다는 어른 자신이 분명하게 살길 바란다. 어른이 아주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공정하게, 바르게 행동하고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시간을 허술히 쓰지 않고 목표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그것으로써 엄마의 역할은 다 되는 것이다. 아이는 노예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며 시중이나 들어 주고 얘기 상대나 되어 주는 엄마를 원치 않을 것이다.」(273쪽, 아주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바르게 중).

 

아마 또 어디선가 김점선이라는 이름을 보게 되면 나는 주저없이 다가가게 될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임을. 그것이 글의 형식이든 그림의 형식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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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0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그렇지요? 그 구절이 가슴에 콕 박히더라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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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소설이다. 연재 시작 전 부터 조선일보에 광고가 많이 났더랬다. 그림을 그린 권 신아와 함께. 마침 작가의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관심있게 읽고 난 후라, 연재될 때 한동안 따라 읽다가 놓쳐버렸었다. 그러다보니 내용을 이미 아는 것도 같고 사실 그런 것도 아니기도 해서, 책으로 나온 후에도 금방 찾아 읽지 않고 있다가 며칠 전 해적님 올리신 글을 보고 마침내 읽어내렸다 단숨에.

서른이 넘어서면 당장 '명랑사회 건설의 암세포 취급 (112쪽)' 을 당하는 대한민국에서 미혼여자로 살기를 경험해 본 나이지만 책 속의 '오 은수'에게 100% 공감이 갔다고는 말 못하겠고, 요즘의 30대 미혼 여성들의 생각은 이렇군 하고 단정짓지도 않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느 한 세대를 한 색깔로 단정짓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이 세상에 너무도 많은 종류의 자동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차도 좋고 저 차도 끌리는데 어떻게 단 한대만 선택할 수 있단 말인가...(115쪽)' 오 은수의 이 말은 결혼상대에 적용되어도 전혀 무리가 없어보인다.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막연한 전제 아래 갈팡질팡하는 삶, 이것도 저것도 모두 시덥지 않게 여겨지는 것, 기대와 실망의 연속, 조바심과 진땀.
사실은 그만하면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콜라처럼 톡 쏘는 것이 인생은 아니라고, 쿨한 인생이란 도대체 어떤 인생을 말하는 것이냐고, 그런 인생이 있기는 하냐고. 오 은수에게 왜 가진 것이 없고 이룬 것이 없는가. 무엇을 가져야 가진 것이고 어느 정도 되어야 이룬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제 서른 둘에, 결혼할 상대가 아직 없음이 인생을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단 말인가.
내가 거쳐온 그 시기, 또 많은 여자들이 건너야 할 그 강을 축복하는 심정이 될수 없음이 읽는 동안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결혼 가능성 있던 상대들과의 관계 진행 상황 그리고 오 은수 친구들의 그 30대 미혼의 강 건너기 과정, 아무튼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리라. 50대 엄마의 가출 사건의 소설 전체에서의 위치는 무엇일까, 또 태오와의 관계를 과연 긍정적으로 보는 것일까, 부정적으로 보는 것일까 궁금증을 잠깐 가져본다.

TV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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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
고도원 지음 / 꿈엔들(꿈&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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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 '고도원의 아침편지' 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알려져가는 이름 '고도원'.
신문사와 잡지 기자를 거쳐 청와대에서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일했으며 과도한 업무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가던 중 아침마다 달리면서 생각나는 작은 명상들을 모아 <고도원의 아침 편지>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읽기에 새로운 내용들도 아니고 다 아는 내용들이랄수도 있지만 웬지 읽으면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은 책. 앞으로 질주하는 것만으로 한번 뿐인 인생을 다 채우려들지 말라고 말한다. 누가 내게 들려줄수 있는 말인 동시에, 나도 누구에겐가 해줄수 있는 말.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소유욕대신, 자신의 내면을 다지기 위한 정진에 욕심을 내보라고 한다. 뭐, 새삼스러운 말인가. 하지만 들을 때마다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말 아닌지.
책의 마지막에는 몇 페이지에 걸쳐 그의 꿈 열가지를 말하고 있다. 그 정도의 사회 경험과 인생 경험을 거친 나이에도, 그런 맑고 희망적인 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약 십년 후의 내 모습으로 그리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나는 과연 얼마나 '잘' 살고 있는건지...책장을 덮으며 내게 던져진 생각의 열쇠이다.

나무가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혼자서는 어떤 행복도 만들지 못한다 (본문 중에서)

잠시 짬을 내어, 흥분을 가라 앉히고 다시 한번 마음을 brush up시키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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