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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도 첫 페이지부터 한장 한장, 차근 차근 읽으면 좋겠지만,
그런 꼼꼼함이 부족한지라 그냥 읽고 싶은 페이지 펴서 그때 그때 읽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는 읽는 맛이 덜하다. 읽으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책은아닌 것 같다는 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미술사에 관한 나의 기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겸사겸사 읽기로 한 것이었는데 흑 흑...
이 책을 위해 따로 공부를 해야한단 말인가 그럼? 끙~
제일 만만해 보여서 읽기 시작한 '터너' 편.
언뜻 보기에 비슷한 구도와 색채,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그림인데 전혀 다른 평을 받은 두 그림을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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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840년 작 <노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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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839년 작 <전함 테메레르>
이 중 어느 그림이 호평을 받고, 어느 그림이 혹평을 받았을까?
호평을 받은 것은 <전함 테메레르>, 혹평을 받은 것이 <노예선>이다.
두 그림 모두 영국 해양사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데, <전함 테메레르>는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함으로써 영국의 잘 나가던 역사의 마지막 불꽃 같은 이미지라고 할 수 있으며 영국 사람들로 하여금 묘한 향수와 위안을 주는 반면 <노예선>은 터너가 심혈을 기울여 그려낸 역작임에도 불구하고 소동과 아수라장의 묘사일 뿐, 영국인의 불안에 아무런 위안도, 안정도 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림을 보아주는 사람들을 일종의 '고객'으로 봐야하는 이유가 있는거구나 생각이 든다. 고객의 기호에 아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의식은 하면서 그림을 그려야하는 것일까. 그림의 운명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노예선>에 더 점수를 주면서, 이 그림에 예술사의 또다른 고아, 추방된 탕아라는 표현을 쓴다.
현재 <노예선>은 본국이 아닌 미국 보스턴에, <전함 테메레르>는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노예선>은 나중에 존 러스킨에 의해 재발견되어, 터너의 능력을 널리 전파하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영국의 BBC에 의해 제작되어 우리나라 EBS를 통해 방영되었었다고 하는데, 방송으로 봤더라면 훨씬 감동이 더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