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 품격 있는 삶을 살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아날로그 아르고스 3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필립 프리먼 엮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를 초월해서 나이를 잘 들며 늙어가는데는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려 기원전, 로마의 카이사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로마의 유명한 웅변가이자 정치가였다. 카이사르의 독재에 반대하다가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물러나 많은 글을 쓰며 살았는데 기원전 44년에 이 <노년에 관하여>라는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노년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한 이 작은 책에서 그는 노년의 한계를 인정하며서도 여전히 성장과 완성을 위한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하였다.

이것이 2016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영어로 <How to grow old: Ancient wisdom for the second half lif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second half life"라는 문구에 눈길이 잠시 멈춤. second half 라) 2021년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나온 것이 이책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이다.


다음은 키케로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노년의 지혜 열가지이다. 개인적인 나의 의견은 괄호 표시하여 덧붙여 놓았다.

1. 훌륭한 노년은 젊을 때 시작된다

2. 노년은 인생에서 매우 즐거운 시간일 수 있다.

내면을 잘 갈고 닦으면 노년은 아주 즐거울 수 있다. 그들이 불행한 이유는 늙어서가 아니라 내면이 빈곤해서이다.

(내면이 빈곤한 것은 돈으로 충전되는 것도 아니고 방법도 뚜렷하지 않다. 그것은 시간과 경험과 의지에 의해 충전될 수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더 가치있어 보인다.)

3. 인생에는 다 때가 있다.

젊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나이 들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4. 노인과 젊은이는 지혜와 시간을 나눌 수 있다.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참된 지혜가 있다. 젊은이들에게 이 지혜를 전해주는 것은 노인의 즐거움이자 의무다.

(동의하지만, 경험의 방식이 요즘 많이 다양해졌음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노인의 지혜를 전해주는 것이 노인의 즐거움이 될수는 있어도 의무라고 까지 생각하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5. 한계는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6. 정신은 단련이 필요한 근육이다.

(이건 노년이 아니라도 적용될 수 있는 말.)

7. 노인들은 자기 힘으로 서야 한다

자기 영역을 지배할 경우에만 존중받는다. 노년은 수동적인 시기가 아니다.

8. 사람들은 성을 과대평가한다

관능적 욕구가 줄어드는 대신에 그만큼 인생에서 훨씬 더 만족스럽고 지속적인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9. 자신만의 정원을 가꿔보라.

행복하려면 반드시 진정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가치 있는 활동을 찾아내야 한다.

10.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훌륭한 배우는 무대를 떠날 때를 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종막이 다가오고 있는데 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이들어간다. 노년이 정확하게 몇살부터를 말하는지 그 정의는 분야에 따라, 사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한 개인 차원에서도 스스로 중년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떤 날은 노인이 된 기분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아직도 청춘인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다. 그러니 이 책의 주제가 어떤 시기에 있는 특정 계층에 적용된다고 보진 않는 것이 좋겠다. 단, 삶의 주기에 따른 특성이 있을 뿐이고, 기원전 그 옛날부터 사람들은 잘 늙어가는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고 하는 것이 새로울 뿐이다. 

인생의 단계마다 그에 따른 특성들이 있네. 아이 때는 약함이, 청년일 때는 대담함이, 중년에는 진지함이, 노년에는 원숙함이 있네. 이것들은 제철에 수확해야 하는 과일 같은 것이네 (79쪽)


늙어서 얻는 선물 같은 것도 있다.

대화의 즐거움은 늘려주고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욕구는 줄여준 노년에 매우 감사하네. (104쪽)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는 대목이 여러번 나온다. 그리고 강조하는 것은 인생이라는 연극의 종막에서 무너져버리는 서투른 배우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을 끝까지 잘해내는 배우 (136쪽) 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연극을 망쳐버리거나 연극 무대를 뛰쳐나오지 않고 끝까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자 한다. 그래서 내 서재 제목도 "내 인생은 진행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의 주름들 - 감각을 일깨우는 시인의 예술 읽기
나희덕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예술의 주름들'이라는 제목이 얼른 와닿지 않았다. 요즘 같이 제목이 중요한 시대에, 책에 난해한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 읽기를 망설이게 했지만 저자는 알다시피 이미 어느 대열에 이른 시인 중 한 사람 아닌가. 이런 시인이 다른 분야의 예술을 어떻게 볼까, 보통 사람들과 어떤 다른 눈을 가지고 해석을 할까 궁금해져서 읽어보아야 겠다로 생각이 바뀌었다.

겉으로 단번에 드러나는 평면과 달리 주름은 만들어지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주목하는 자에게만 중요하다. 주름이 만들어지기까지 사연과 경험이 들어가있을 것 같다.

예술이란 얼마나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는가.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가

"세계와 영혼의 주름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틀림이다."

질 들뢰즈의 이 말처럼

세계와 영혼의 주름들을 해독하려 애를 쓰며 몇 개의 겹눈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8쪽, 책머리에)


5부로 나누어 1부에는 자연, 2부에는 여성주의적 정체성 찾기, 3부에는 예술가적 자의식, 4부에는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 5부에는 시와 다른 예쑬의 만남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예술 장르로는 영화, 설치 미술, 설치 음악, 행위 예술, 사진, 회화, 조각 등, 저자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예술에 관심이 많구나 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들보다는 처음 보는 실험적, 선진적 작품들이 주로 소개되어있으니, 단순한 예술작품 소개서 처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전기에너지가 위치에너지, 운동에너지로 변환을 할수 있듯이 소리가 시로, 영상으로 변환되어 재탄성하여 전혀 새로운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시도 한다. 있는 소리들을 배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새로 발견하거나 만들어낸 소리로 기존의 예술 장르를 표현하기도 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에릭 사티는 '가구 음악'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 건반 위에 내리는 햇빛까지도 어떤 소리를 내는 것 같다고 접수가 되려면 예술가는 거의 신과 접신이라도 해야하는 경지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 

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서 나아가 그 야생동물들의 눈에 비친 인간들을 보여주려고 시도한 황윤. 그는 야생동물의 입을 빌려 영화를 만들었다.

한 사람의 모습만 캔버스에 담고 있는 정영창, 여기 실린 예술가들중 그나마 익숙한 이름 마리 로랑생은 시인 아뽈리네르의 연인이었고 그녀 역시 시를 쓰기도 하여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는 것은 예전에 마리 로랑생 전시회에서 도슨트로부터 들었던 것 같다. 

순간이 멈춘 것 같은 사진 한장은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 속에 얼마나 깊은 주름을 지니고 있는가. 사진의 '전시적 가치'만 알고 있다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제의적 가치'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저자의 설명에 의해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쉽게도 현대 사회로 오면서 사진의 제의적 가치는 점차 전시적 가치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는 말도 요즘 처럼 보여줌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사회를 생각하자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 제의 가치가 최후의 보루로 물러서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라면서 한설희 작가의 사진집 <엄마, 사라지지 마>,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소개하였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고독은 그의 음악에 얼마나 깊은 주름을 만들어 들려주고 있는가.

이따금 우울하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 내가 혼자 찾아가던 뮤직바가 있었다. 밤 9시에 문을 여는 그곳에는 거의 벽면 전체를 채울 정도의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좋아하는 영화의 OST나 콘서트 영상을 신청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매번 무슨 의례를 치르듯 글렌 굴드의 연주 영상을 주인에게 부탁했다. 어두운 바에 혼자 앉아 글렌 굴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면 내 고독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60쪽)

글렌 굴드의 웅얼거림의 배경엔 그만의 고독,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깊은 고독이 있었다. 그것을 읽어낸 저자, 우울하거나 외롭다고 느낄때 그녀가 교감하는 글렌 굴드의 피아노로 그녀가 고독을 위로받는 방식이 왜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지. 

고작해야 <샘>이라는 변기 설치 작품밖에 모르던 마르셀 뒤샹은 정말 기인이었다. 체스 선수로 20년동안 활동하기도 하였고 오늘날 아바타 처럼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호기심도 지대하여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고 조립하는데 열을 올리기도 한 그를 두고 시인 앙드레 브트통은 '위대한 교란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교란을 통해 새로 탄생하는 세계. 현대 미술의 한 특징이라고 해도 될까. 음악을 가장 비물질적 예술이라고 하면서 음악의 음색처럼 색채도 말로 표현된 것보다 더 미묘한 영혼의 진동을 깨우쳐줄수 있었다고 믿고 회화의 화성학적 미래를 구축한 칸딘스키의 추상에서도 보여지듯이 말이다.

영화 <패터슨>은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자칫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기 쉬운 마음을 다시 일상으로 돌려놓아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계속된다. 일상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태반이라고 할 수 있다. (233쪽)

폴 클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장민숙 화가의, 네모난 집과 창문이 캔버스를 빈 공간 없이 꽉 채우고 있는 <산책>이라는 이름의 그림. 거기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친숙함을 발견했을 때도 그렇다. 시인은 이 작품들중 하나를 사다가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고 했다. 

숨겨진 주름을 찾는 행위. 그것이 우리가 시를 읽는 방법이고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었다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 주름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주목되고 발견되진 않는다. 나에게 그와 같은 위상을 가진 비슷한 주름이 이미 내재되어 있을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이 만드는 법 - 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편집자의 모험 땅콩문고
이연실 지음 / 유유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붓 가는대로 쓰는 글,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에세이의 특성때문에 사람들은 에세이를 친근하게 느끼기도 하고 홀대하기도 한다. 알고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치더라도 붓 가는대로 쓴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친근한 손길이 되어 잡아끌어주는지. 매력적인 분야가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에세이의 정의가 어떻든간에 좋은 에세이와 평범한 에세이, 잘 쓴 에세이와 그렇지 않은 에세이의 구분은 지어진다는 것이다.

15년차 출판사 에세이 편집자가 쓴 이 책의 제목은 에세이 쓰는 법이 아니라 만드는 법. 에세이 쓰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이 읽으면 더 유용할 내용이 많고, 에세이 한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에세이집이라는 단행본을 출판할 때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읽어야 한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고가 될만한 내용들을 몇가지 뽑아서 정리하고 넘어간다.


첫째, 책의 제목을 짓는데 고심해야한다.

본문 중에서 좋은 단어와 구절을 순서 없이 옮겨 적고, 마구 흩어놓아 보고, 이리 저리 조합을 하다보면 좋은 제목이 매직아이처럼 튀어나올때가 있다. (33쪽)

제목은 어느 날 번뜩이는 영감을 받아 짓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삽질 끝에 겨우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다. (43쪽)


둘째, '네 일기 너나 재밌지' (124쪽)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마구 끌어모아 되는대로 분량 맞춰 엮는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일의 핵심을 꿰뚫는 강력한 콘셉트, 쓰는 사람의 오늘을 한 타래로 꿰는 키워드가 있어야 한다. 

예.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김이나의 <김이나의 작사법>


세째, 논픽션도 에세이가 될 수 있다. (148쪽)

에세이와 논픽션이 고등학교 문제집에서 분류하는 것처럼 '비문학'이 아니라 문학 이상의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렉시예비치라는 노벨문학상 작가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작품으로 증명해주었다.


몇가지 안되는 위의 내용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으로 남을 대목은 들어가는 말에 있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 주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13쪽)


에세이에 대한 정의로 이보다 더 공감가는 표현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싶을땐 나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구나, 나의 컨텐츠가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위로가 되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2-2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략한 리뷰, 좋습니다.
나인 님이 마지막 문단에 쓰신 것은 더 좋습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어려울 상황일 땐 나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는 시간이고, 생각이 깊어질 수 있는 시간임을...

hnine 2022-02-26 06:49   좋아요 0 | URL
책이 워낙 간략해요 ^^
‘나의 컨텐츠가 풍부해지고 있어~‘ 사실 평소 제가 잘 하는 혼잣말이랍니다. 꼭 힘든 상황 아니더라도 뭔가 예상하지 않던대로 일이 진행되어 갈때요. 더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컨텐츠가 글로 빵 터질지도 모를까요? 그땐 어떤 글을 써내겠다고 머리 쥐어짜지 않아도 그냥 술술 나오게 될까요? ㅋㅋ 오래 오래 살아야겠어요.
늘 관심과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텔크테에서의 만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9
귄터 그라스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는 내일 있었던 바의 반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귄터 그라스의 이 소설을 펼치기 까지 사실 한참 망설였다. 많은 사람들이 귄터 그라스 하면 '양철북'부터 떠올리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한데, 대학생일때 '양철북'을 극장에서 영화로 보면서 받은 충격이 수십년 지난 아직까지도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로 귄터 그라스의 작품이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의 이 첫문장은 또 뭔가. 어제는 내일 있었던 바의 반복이 될 것이라니.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애매모호한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한다는 말인가. 불길한 예감? 그나마 책이 그리 두껍지 않다는 것 때문에 결국 읽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별 다섯개로 읽기를 마칠 수 있었다. 분량은 많지 않다해도 책장이 그리 술술 넘어가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아마 읽으면서 작가의 의중이 전혀 헤아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가보다.

추정되는 시기는 1947년 (혹은 그보다 300년 전인 1647년에 있었던 일의 재현), 독일 각지로부터 약간의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각자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들이 독일의 텔크테라는 조그만 마을에 모여든다. 원래 모이기로 한 장소는 텔크테가 아니었으나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아 임시 방편으로 변경한 곳이 텔크테인데 이곳의 숙소도 속물스런 여주인이 운영하는 보잘것 없는 작은 여관 정도이긴 마찬가지이다. 

시인들은 그들이 쓰는 시의 성격과 종류의 다양성 만큼이나 이 모임을 '페그니츠 강안의 목자들', '결실의 모임', '정직한 호박 넝쿨 초만의 모임', '정직한 전나무의 모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며, 전쟁의 여파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독일 문학을 일으켜세워야 하고 그것을 위해 시인들이 결집하였고 의견과 입장을 정리하여 국가를 향해 한목소리를 내어 평화호소문 혹은 취지문을 작성하여 발표한다는 것을 모임의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모인 시인들은 우선 자기의 시를 한두편씩 돌아가며 발표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발표하고 평을 하면서 현 국가 상황에 대해 그들이 시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 호소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마디로 통일된 목소리로서 정리되기 어려운 사안이다.


거기에서 낭독된 것은 다만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보내는 이 회의 참가 시인들의 소박한 청원으로서 그것은 비록 권력은 없지만 불후성이 약속되어 있는 시인들의 걱정을 모든 당사자들이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회의에 모인 시인들의 애국자로서의 걱정이 언급되었는데, 독일 제국이 너무나도 난도질을 당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 독일 제국에서 한때 독일이라고 불리던 자신의 조극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될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244)


여기에 참가 시인들의 서명을 끝으로 이 모임의 목적이 달성된 듯이 보였다. 며칠 동안 오고간 설전, 허세, 속물스럼, 격화된 논쟁 등은 잠시 잊고 작은 성취감에 서로 포옹을 하며 뭔가 해냈다는 확신을 하며 처음으로 평화로운 식사를 하고 헤어지려는 마당에 반전 처럼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이 호소문은 발표되지 못하고 만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가로서의 터치는 이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난다. 


1927년 독일인 부모 밑에서 지금의 폴란드에서 태어난 귄터 그라스는 히틀러 치하의 경험을 몸으로 겪어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14세때 히틀러 소년단원이 되었고 전쟁터로 끌려가기도 하였으며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어 막일꾼 노릇을 하였는데 이것이 모두 10대 때 일어난 일. 20대가 되면서 틈틈이 시를 써서 발표한 것이 한스 베르너 리히터의 주목을 받아 문단에 초대 되었다. 

대중적으로 그를 널리 알린 <양철북>은 1959년 파리 헛간방에서 집필한 그의 장편 처녀작이다. 이 작품은 뛰어난 문학성이라기 보다는 이색적인 문체와 내용때문에 더 유명해졌다고 볼수도 있다.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당시 독일과 독일인을 묘사하고 있는 담대함, 솔직함, 기괴한 언어 유희, 비판 정신으로 당시 사회의 호평보다는 혹평을 먼저 받은 것이 무리가 아니었지만 극찬을 받기도 하여 이후 그의 문학을 계속 이끌어가는 힘이 되어 새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게 하였다. 

<텔크테에서의 만남>에는 화자로 '나'가 등장하는데 마지막으로 호소문이 발표되지 못하게 된 사건을 주도한 사람도 이 '나'라는 참가자들중 한 사람으로 짐작되지만 그게 누구인지 우리는 모른다. 귄터 그라스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짐작을 해볼뿐 누가 왜 그런 일을 일으켰는지는 모른채 마지막 장을 덮게 한다.

시인들이 단 며칠 동안 모임을 가졌고, 작품을 발표하였고, 모였으니 호소문 하나 작성하였고, 그것을 소재로 소설 하나를 만들어내다니, 소설가에게 소설의 소재가 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섣부른 선입관이었다.

불안한 정치 상황, 사회 분위기, 전쟁 전후 사람들이 정신 세계의 변화를 겪어가며 정체성을 잃어가는 가운데  시인들이 과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현미경 역할을 하고자 했으며 이것은 오늘날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이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작품 발표를 하고 평화호소문을 작성한 것은 국가를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최소한의 자기 존재 증명을 하고 싶었음일까. 그마저 실현시키지 못하고 무산되었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할 거리를 남겼고, 작가는 이미 이런 생각을 거쳐 간 사람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소설가는 아무 소재나 소설로 쓰는게 아니가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2-02-22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귄터 그라스의 이 장편은 처음 봅니다.
좋은 책 소개 고마워서 냉큼 담아갑니다*^^*

hnine 2022-02-22 20:15   좋아요 2 | URL
제가 양철북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그 좋아하던 커피를 못 마실 정도였거든요. 영화 장면 중에 오스카의 난쟁이 여자 친구였던가요, 전쟁 중이었는데 커피 마시고 싶은 걸 못참고 마시러가다가 군인들 총에 맞아 그자리에서 죽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나서요.
이번엔 무슨 맘이 들어 한동안 피하던 이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는지. 그런데 이 소설은 (별로 안 두꺼워요 ^^) 작가의 의중이 양철북에서보다는 잘 와닿았던 모양이어요. 프레이야님께는 특별히 더 추천드리겠습니다 ^^

mini74 2022-03-0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되신거 축하드랴요 *^^*

hnine 2022-03-08 23:41   좋아요 1 | URL
정말 오랜만에 읽은 귄터 그라스의 소설이 이런 선물을 안겨다주었네요.
특이하고, 생각보다 흥미로웠던 작품이었어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3-08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이달의 리뷰에 당선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hnine 2022-03-08 23:43   좋아요 1 | URL
간략한 리뷰였는데 이렇게 이달의 리뷰로까지 뽑아주시다니.
그리고 이렇게 축하까지 해주시니, 앞으로 더 열심히 읽고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3-08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2-03-08 23:44   좋아요 1 | URL
아이쿠, 요즘 책을 별로 못읽어 기대도 안했는데, 감사드릴뿐이랍니다.

서니데이 2022-03-08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22-03-08 23:4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당선될때마다 잊지 않고 와서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과학하는 마음 - 매일의 실패를 넘어 경이와 호기심의 세계로
전주홍 지음 / 바다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과학, 인문과학 할때 쓰는 넓은 의미의 과학 말고, 실험 과학이라고 하는 과학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작 '과학이 무엇인가', '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과 정체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 안하는 줄 알았다. 그런 생각 할 시간 있으면 실험을 한번이라도 더 해서 데이터를 쌓아라 이렇게 농담처럼 주고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엔 제목조차 평범해보이는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분의 책 소개글을 봤던가보다. 

결론은, 읽기를 얼마나 잘 했던가. 실험실이라는 곳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공감하며 책장이 술술 넘어갈 것이고, 앞으로 과학이라는 분야에 몸담고 싶은 사람이라면 결정하기 전에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 되었다.

우리 나라 처럼 고등학교 까지의 과학교육이 실험보다는 알려진 지식의 습득에 치중되어 있는 나라, 대학에 들어와서 조차 학부에서는 실험보다 강의 위주의 과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인 나라, 비로소 과학 현장에 뛰어 들어 과학 연구 활동이 시작되는 것은 대학원에 들어가서 어느 연구실에 소속이 되고나서부터인 나라에서 과학자로 평생 정진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강의실이 아닌 과학 현장에 투입되는 그때부터는 지금까지와 아주 다른 공부 방식과 연구 방식의 세계가 시작된다. 그래서 뒤늦게 아, 이건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도 하고, 그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과학은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구나, 머리보다 몸이 먼저 지치는구나 하는 것을 깨우쳐 가기도 한다. 갈수록 기계화 되어 가는 실험실 장비 익히기에 좌절하기도 한다.  

 실험실 (Laboratory) 이라는 말 속에 저 labor란 단어가 보여주듯이 실험실이라는 말의 어원에는 '신성한 노동의 장소', "기도하고 일하라'는 모토가 관련되어 있다. 노동, 그리고 일. 기도하듯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곳이 실험실이다. 이 말이 16세기에 오면서 단순한 작업장이 아닌 스키엔티아 (scientia), 즉 자연에 관한 보편적 지식 또는 현상 이면의 질서를 획득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오늘날 실험실에는 연구원들의 책상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험실의 주요 무대는 그들의 책상이 아닌 중앙의 실험대이다. 대학원이나 연구원 실험실에서 책상에 앉아 논문을 열심히 읽거나 교재를 읽고 있는 학생이나 연구원들을 교수나 연구책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책상에서 나오는 결과 곧 업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험실 중앙의 실험대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실험을 통해 늘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기만 할까? 실험의 목적이 새로운 것의 발견에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험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로드 베르나르는 1865년 <실험 의학 연구 입문> 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저자는 인용하고 있다 (67쪽)

실험은 우리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의 오류를 통제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과학의 출발점관찰이고, 종착점실험이며, 그 결과로 발견되는 현상들은 합리적 추론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흔히 과학의 방법으로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설 세우기는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경험적 인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입증하는 식으로 이루어짐을 지적하였고 기존 지식의 학장, 응용을 위해 실험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가설이 도출되는 근원에는 과학자의 직관도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출발일 뿐 실험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 비과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요건이 된다.

과학 지식은 종교적 교리와 달리 얼마든지 수정되고 반박될 수 있다. (104쪽)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 오류 가능에 대한 열린 자세는 과학을 비과학이나 종교와 구분하는 중요한 조건임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과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도전적이고 혁신적일까 라는 내용을 위해 2011년 <네이처>에 실린 짧은 기사 중 한편을 예시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인해 기능을 모르는 유전자가 많이 발굴되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과학자는 그동안 연구해 오던 유전자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119쪽)

분명히 과학자들은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만큼 진취적이거나 모험적이지 않고 늘 하던 것을 더 잘하려는 성향도 강하다면서 그렇게 된 배경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고 상당히 설득력있었다.

이 책의 3장 제목이 '우왕좌왕 실험실 안에서'. 이 책 전체에 필요없는 내용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굳이 꼭 한 부분만 읽겠다고 한다면 바로 이 3장을 읽어보라고 하겠다. 실제로 어떤 과정에 의해 과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책이 아니라 문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난 연구 방식의 급격한 변화로 ① 실험 키트의 상용화, ② 실험 및 데이터 분석의 외주화, ③ 공동 연구의 활성화와 연구의 분업화 현상 을 들고 이것의 장단점을 지적하였다 (157쪽).

오늘날 과학은 직업적 성격이 강해졌지만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의 말을 들어 과학자의 소양과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나는 스웨덴 아카데미의 누군가가 이 일이 상을 받을 만큼 고귀하다고 결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나는 이미 상을 받았습니다. 그 상은 그것을 발견한 기쁨입니다." (175쪽)

이 책의 제목이 과학하는 마음인 배경이기도 하고 저자가 책 속에서 수차례 강조한 말 과학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라는 것의 다른 버전의 말이기도 하다.

과학에 들어있는 비과학적 요소, 예술적, 문학적, 사회적 속성에 대한 내용으로 책은 마무리가 된다. 이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런 요소때문에 과학은 생각보다 훨씬 극적이고 우아하며 매력적인 활동이라고 했고 묘한 아름다움과 감동을 품고 있다고 했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 관한 지식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겪고 있는 당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철학적 통찰력에 의해 창출되는 이러한 독립성은 단순한 장인이나 전문가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연구자 사이의 구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12쪽)

저자는 분자생리학자로서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 교실 교수로 재직하면서 분자생리학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연구실이라면 조용하고 심각한 장소를 떠올렸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이 책 3장의 제목처럼 우왕좌왕, 떠들썩, 역동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질서가 있고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라는 것을 저자는 일반인들에게도 충분히 알려주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몸 속 세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교재 속의 세포는 2차원 평면 그림 속에 조용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 단위로, 어떤 때는 백분의 1초 단위로 돌아가는 역동적인 장소인 것처럼.

지금도 현장에서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을 많은 연구자들을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