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으로 처음 연구실에 들어가 배운 것은 채혈, 즉 팔뚝의 정맥을 찾아 주사기 바늘을 꽂고 45ml의 혈액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혈액이 그날 나의 실험 재료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내 실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혈액을 내줄 지원자를 찾아야했다.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그런 지원자를 구하기란 지금 생각해도 박사 과정 3년 반동안 다른 어떤 실험, 발표, 테스트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채혈한 혈액은 내 실험의 특성상 4시간 내에 사용하여 결과를 얻어야 했고,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해야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혈액을 내어줄 지원자가 필요했다.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실험이 있는 날은 아침에 눈뜨면 학교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무지막지했다. 하지만 그거 아니더라도 영국 땅에 떨어진지 겨우 몇달 안되었을 때이니 스트레스 받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던 시기였으므로 꾹 참고 하루 하루 버티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예쁘장한 얼굴에, 웃는 낯으로 연구실로 찾아온 그녀. 그날의 내 실험을 위한 지원자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채혈을 위해 주사기를 대는 순간 그녀가 기절을 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의자에 앉아 팔을 걷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던 그녀였다. 주사기를 보고 놀란 것일까? 앉아있던 의자에서 바닥으로 쿵 쓰러지면서 옆에 있던 책꽂이에 머리를 부딪혀 심하게는 아니지만 머리에서 피까지 나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당장 지도교수에게 달려가 사건을 얘기하고 와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지도교수는 내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전혀 흥분하지 않고 끝까지 침착하게 다 듣고 나와 함께 기절한 지원자가 있는 곳으로 왔다. 지도교수와 함께 왔을때 기절했던 그녀는 이미 정신을 차려 일어나 있었고 머리의 상처는 피가 조금 나고 멈춰 있었다. 그리고는 오히려 나에게 네 실험에 차질이 생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 지원자가 돌아간 후 지도교수는 나에게 다른 말 없이 이 말만 했다.
"기절의 원리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방법 중의 하나야. 뇌 쪽으로 허혈 상태가 되려고 할때 제일 빠르게 혈액을 그 쪽으로 공급하기 위한 방법이 최대한으로 머리의 위치를 아래로 낮추는 거니까. 그게 바로 기절이야. 잘 봐라.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절했던 사람들은 대개 5분 내에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야. 알았지? "
나 때문에 혹시 지원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당장 지도교수에게도 책임이 돌아갈텐데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기절의 원리를 설명하는 지도교수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크게 놀라고 긴장했던 것이 풀리면서 울음이 터진건 바로 나였다. 눈물이 어쩌면 그렇게 멈추지도 않고 계속 나오는지. 이 낯선 곳에 와서 그때까지 긴장하며 쌓아왔던 설움이랄까, 그런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냥 터져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앞으로 이 실험을 다시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무 것도 못한 채 며칠을 왔다 갔다 하다가 드디어 큰 결심을 하고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실험 테마를 바꿔야겠다. 이 실험을 다시는 못할 것 같다. 나는 실험을 더 열심히, 더 자주 하고 싶은데 실험재료로 쓸 혈액을 내어줄 지원자를 구하지 못해 그냥 시간을 보낼때가 많다. 사람 혈액을 사용해야하는 이 프로젝트 말고 다른 프로젝트로 지금이라도 바꾸고 싶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 연구실에서 사람 혈액을 이용하는 프로젝트는 나 혼자 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쥐나 햄스터 등을 이용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내가 손을 놓아버리면 그 프로젝트는 당장 중단된채 공중에 떠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며칠을 고심하다가 좋은 소리 못들을 각오를 하고 지도교수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런데 지도교수의 답변은 나를 또한번 놀래켰고 지금까지 누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비슷한 의사를 표시할때 지도교수의 그 방식을 기억하려고 한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침착하게 내가 하는 얘기를 끝까지 다 듣고난 후 지도교수가 한 말은,
"그래. 테마를 바꾸는 것도 가능해. 지금이라도 바꾸면 되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아닌 다른 프로젝트 실험으로 바꾸었을 경우 잇점은 네가 더 이상 지금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실험을 하는 다른 동료들과 실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도 쉽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런거겠지? 반면,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장점은, 너 혼자 해야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대신 너 혼자만의 독보적인 영역이 생긴다는 것, 너 혼자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대신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논문을 더 금방 낼 수 있다는 것이지."
지도교수는 결코 이렇게 해라, 이건 반대다, 이게 옳다 따위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선택을 할 경우의 장단점만 알고 있는대로 내게 얘기해주었을 뿐이다. 결국 선택은 네가 해야한다는 뜻이다.
1996년의 일이다.
나는 결국 하던 프로젝트를 계속 하였고 그것으로 논문을 써서 졸업을 했다.
그렇게 침착, 냉정하던 지도교수는 내가 논문을 통과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실험실에 들렀을 때 나를 꼭 껴안아주는데 눈에 눈물까지 글썽글썽한 걸 보았다.
가끔 친구들이나, 내 아이로부터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내 의사를 물을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대신에, 예전에 내 지도교수가 했듯이 저렇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이게 꼭 말을 하고난 후에 뒤늦게 생각나니 참... 단순히 맘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가보다.
엊그제 같았던 일들. 이제 이렇게 털어놓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부끄럼때문에 불편하지도, 감정에 치우쳐 글이 흔들리지도 않을만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되어 시간날때마다 조금씩 기록해보기로 한다. 제일 큰 이유는, 이제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경험들이 아쉽게도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갈 것 같아서이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