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우유 배달부가 오기 전의 푸른 새벽에

그녀는 생명의 창문을 닫았다.

삼십 년의 커튼을 내리며

흔들리던 하늘에는 무엇이 쓰여 있었을까.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허공을,

죽음에 이른 고독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천 번의 빗질에도 가라앉지 않던 예민한 머리카락을

이른 아침의 순결한 바람이 애무했던가.

 

2005년에 재현된 실비아를 보며

나는 내 어머니를 이해했다.

 

아버지가 귀가하기 전에 우리는 그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종이처럼 빳빳한 이부자리를 준비하던

당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가 닮았다.

 

영화가 끝나고, 열려진 창.

바람에 날니는 책장, 남겨진 유고를

그녀인 듯 만지던 남자의 건강한 손.

생활의 승리를 목격하고 나는 일어났다.

 

배반당하더라도

이 지저분한 일상을 끌고 여행을 계속하련다.

 

--- 최  영  미 ---

 

(밑줄 그은 부분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05-12-1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대단한 감상문이군요. 정말 감상문이에요. 아무렇게나 영화를 보았다고 옮긴 전 참 부끄럽네요. 실비아 플러스가 죽었을때 남편인 테드 휴즈가 실비아 플러스가 타이프 쳐서 만든 원고 뭉치에 키스를 합니다. 그때 잠깐 영상이 원고 뭉치에서 실비아로 바뀌지요. 저도 그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남폄인 테드 휴즈가 실비아를 진정 사랑했구나 하는^^ 사실 실비아는 사랑을 의심하고 그걸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한듯했거든요.
최영미 시인의 근간 시를 보여주셔서 저도 답례로 제가 좋아하는 실비아 플러스의 시를 하나 제 서재에 올려드릴게요

2005-12-17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2-1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의 실비아 모습은 아닐테고~ 영화 속 한 장면인거죠?
효주 님...오랜만이죠?

hnine 2005-12-1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수정했습니다! ^ ^
예, icaru님. 사진은 영화속 장면에서 따왔어요.

비로그인 2010-01-05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아 플라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이름입니다.

근데 대놓고 반기기에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올해는 시를 좀 더 많이 읽어야겠습니다.
 

사 랑

 

풀여치 한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때

그도 온전한 한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서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 박 형진 -

 

농촌 시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박 형진 시인이 1992년 봄 창비 75호에 발표한 시이다.

20대 후반 어느 날, 우연히 이 시를 대하고 얼마나 맘에 들던지.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어떤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정확한 언어로 빚어질 수 있다니

여기 저기 적어 놓고

적으면서 또 음미하는 기쁨을 누려왔었던 시절이 있었다

좋아하는 시 카테고리를 만들면서 갑자기 이 시를 떠올렸는데

원문을 찾을수가 없는것이다.

본문은 부분 부분 기억이 나는데

제목이 사랑이었는지 풀잎이었는지

시인이 박형진이었는지, 박형준이었는지...

드디어 검색해서 찾아내었다.

내가 생각하던 사랑의 느낌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예전에도 열정적인 사랑에 감동하지는 않았었나보다 후후..

나를 잊고 몰입시키는 불붙는 감정의 불꽃...이 아닌

조용조용히

있는지도 모르게

비로소 이 세상에서의 나를 알게 하는

그런 사랑을 꿈꾸었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침만 한번 콜록 해도

감기 걸린것 아니냐고,

약을 먹어라, 옷을 더 입어라

걱정 걱정 하던

그 마음이 진심이었나

그 마음 따뜻함 믿고 아내되기로,

그 마음 하나 보고 아내되기로 결심했건만

결혼 6년차,

힘들다 아프다 소리,

대꾸 한번 안하네

못들은것으로 하고 싶어하네

결혼해도 외롭다는 것은

이래서 나온 말 

사시 사철 추울수 밖에 없는

내 이름,

아 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05-11-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 맘이 변해가는 듯 합니다.....
신랑이 피곤하다고 누워있으면 왜 이리 짜증나는지....
결혼하면 밥 하는거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더니 매일 늦게 들어오니 밥 구경 못해요.ㅠㅠ

hnine 2005-11-0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마음의 넓이가 저보다 훨씬 넓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 저도 변했을 여지는 생각도 안해봤거든요...
 

 가장 쓸쓸한 일

 

아아, 쉬임 없이 흐름으로써 우리를 고문하는

잔인한 시간이여

너를 죽여 모든 생활을 얻은들

모든 생활을 죽여 너를 얻은들

또 무얼 하리

 

 

오늘 아침 바쁘게 나갈 채비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었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볼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일터로 향하는 버스에서

어제 배달된 양정자 님의 시집을 처음 펼쳤는데

첫 페이지에 수록된 시가 바로 이 시이다.

이 시 제목을 따서  시집의 제목도

<가장 쓸쓸한 일>

이 시인의 시집을 처음 대한 것이 7-8년 쯤 전, <아이들의 풀잎 노래 (1993)>라는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었는데

중학교 교사로서 학생들과의 일상을

미화시킴이나 과장 없이 그려 놓아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였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7년 뒤에 나온 이 세번째 시집의 시들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50대를 지나면서 보는 인생은

이다지 달라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인생의 본질일일지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05-10-2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를 죽여 모든 생활을 얻은들
모든 생활을 죽여 너를 얻은들
또 무얼 하리"
와 닿습니다... 동동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이리도 바쁘게 사는지...

hnine 2005-10-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중에 결국 이런 시를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미리걱정주의가 발동합니다.
 

동 상 (凍 像)

 

얼마쯤은 허영으로

얼마쯤은 증오로

또는 오기로 그냥 이유없이

 

그저 무엇이 되고만 싶었었다.

찬란하여 눈부시고 황홀한 보석같은

 

지천명(知天命)의 재 오르막에서 보니

손발에도 살속에도 가득박힌 자수정

정년 자수정빛 썩어드는 동상뿐

 

살아보고 싶어라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되기 위하여

 

피땀범벅으로도

되지 못한 무엇이여

안녕어엉, 안녕 안녕

 

-유 안 진 (柳 岸 津)-

 

시인이 지천명에 이르러 쓴 이 시를

난 20대 초반에 읽고 맘에 들어했다.

그래, 인생엔 피땀범벅으로도 되지 못할 그 무엇인가 있다는 그 말에

감동하여,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되지 아니하기 위하여 살아보고 싶다는

그말에 공감하여

...

이미 그때 나는 무엇인가에 많이 지쳐 있었나보다.

아쉬운 점은, 이런 시를 읽고 같이 얘기 나눌

그 누구도 없었다는 점,

그 누구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

혼자있음이 좋아서라기보다

그저 익숙해지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