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천성산을 다녀왔다. 늘 산 아래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절집(내원사, 홍룡사)은 자주 찾았지만, 정작 천성산 제1봉(구, 원효산)을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좋은 친구이자 같은 길을 가는 동지들인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선생님들과 함께 다녀와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부산에서 1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천성산을 비롯한 좋은 산들이 많아서 참 좋다.

천성산 아래, 화엄벌

   산 중턱에서 천성산 정상을 우회해서 접어든 길 앞에 펼쳐진 화엄벌이다. 처음부터 치받아오르는 산길에 헉헉대다가 한참을 올라와서야 우리들의 눈 앞에 보이는 억새밭, 화엄벌 앞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화엄벌에 누워서 본 하늘

   넉넉하고 포근한, 아늑하고 따뜻한 억새밭 사이에서 본 하늘이다. 사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억새밭 사이에 누워 있으면 전혀 춥지가 않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무심한 구름은 흘러가고!  먼 훗날 우리들의 후손들은 이 억새밭 아래로 뚫어놓은 고속철도 터널을 보면서 어떤 평가를 내릴까?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칭송할까? 아니면,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고속철도 터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착잡하다.

 


화엄벌 입구에서 본 계곡

   잎을 다 떨구고 난 겨울 산을 보면 뭔가 흉칙스러운 느낌이 든다. 아주 둔중하게 움직이는 커다란 짐승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슴도치처럼 털은 왜 그렇게 빈틈없이 덮여 있는지? 내 눈에는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짐승의 털처럼 보여서 징그럽다.

   여기는 화엄벌 아래에서 본 계곡이다. 여기 계곡은 무척 경쾌하게 달리는 듯하다.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내달리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탁 트인다.


홍룡사의 겨울 땔감

   천성산 자락에 소담하게 자리잡은 홍룡사의 겨울 땔감이다. 장작을 패던 불목하니의 마음씀씀이가 가지런하게 땔감을 정리해 둔 데서도 보인다. 따뜻한 눈길과 느긋한 웃음으로,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간섭하는 등산객들의 객쩍은 소리를 받아주는 그 분의 마음이 곱고 반듯해서 사진 한 장으로 기억해 두려고 한다.

 


겨울 숲

나무들도 인간들 못지 않게 참 비좁게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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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2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Fundamental 2004-01-1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성산이라면? 그 내친구 롱뇽이와 모두가 소송을 건 그 곳-_-?

느티나무 2004-01-1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답니다. 오래간만이네요. 샘이 얼마나 님이 서재로 돌아오기를 기다린 줄은 모르죠?ㅋㅋ 다시 나와서 반가워요.
 

   매화산(남산제일봉)의 정취는 여전합디다. 여러 곳을 다니진 않았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산인데, 바람도 여느 곳과는 다른 느낌이고. - 소나무숲을 지나온 바람엔 솔잎 냄새가 납니다. 절을 찾아 난 고운 흙길과 산 정상을 향해 더듬이를 곧추 세운 산길이 예쁘고 저의 시시껄렁한 흰소리를 잘 받아 넘겨주는 동행자들 덕분에 등줄기에 땀나는 줄도 잘 몰랐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다녀오는 여행도 괜찮더군요. 목이 말라도, 다리가 아파도, 그냥 그대로 좋았습니다. 오늘 매화산 소나무도 좋았구요. 청량사, 해인사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해인사에 사람이 너무 많은 것 빼고는. 아직도 몸속에 남아 있는 소나무 바람이 빠져나가기 전에 어디로 한 번 더 떠야겠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을 때. 삶이 신산하다고 느낄 때.

 

남산제일봉 쉼터


눈맛이 시원한 청량사

 


정상으로 가는 중에

 


구름에 떠 있는 것 같은 청량사의 탑과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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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1-1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떠난 어이 없는 여행의 목적지인 가야산 맞은 편! 남산제일봉이었다. 필름 카메라로 찍어서 스캔했는데, 옮기는 중에 엉망이 되었다. 사진 원본은 진짜 선명하게 잘 나왔는데... 더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섬진강-참 맑은 물살

   하동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  이제는 토지의 '최참판댁'이 들어선 악양면에 들어가기 전에 도로 왼편으로 섬진 강물이 흐른다. 바닥을 훤히 드러내놓고, 산자락과 어깨동무를 하며 바다로 바다로 흘러가는 저 맑은 물살!

 


연곡사 동부도

......연곡사는 부도의 고향 같은 절이다. 우리나라 모든 부도의 아름다움이 여기서 나와 여기로 모인다. (중략) 산기슭에 앉아 절을 내려다보는 동부도는 아마도 탑으로 치면 석가탑의 엄정함과 단아함, 다보탑의 화려함과 산뜻함을 잘 섞은 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차갑고 시커먼 돌덩이에 이렇게 환상적인 옷을 입혀놓을 수가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옷이 아니라 그 본성-돌 자체가 지는 본성이나, 그 장인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1년 7월 19일]/ 이 글은 저번 학교 선생님들이랑 연곡사 동부도를 보고 써 둔 여행기이다. 과문(寡聞)한 탓이겠지만, 동부도만큼 아름다운 부도를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피아골 계단식 논밭

   원만하게 굴곡진 먼 들판의 모습은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예술품, 바로 그것이다. ...어디도 모나지 않은 논배미는 순한 농군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 논은 절대로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우리 선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따라 물결 같은  논두렁을 그리면서 중심 바닥만은 공평을 잃지 않은 것이다. [안병욱,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 셋] 가을걷이가 끝난 지 한참 지난 겨울 들녘에 찬바람만 세차다. 그러나 저 땅밑에는 지금도 새봄에 대한 준비가 이어질 것이다.

 


운조루

   운조루의 호시절은 간 것일까? 초라한 화단하며, 어지럽게 널린 농기구들, 솟을대문 입구에 진을 친 낡은 간이의자, 대문밖의 을씨년스런 정자... 그러고보면 집을 짓는 것보다 그 집을 지키며 살아가기도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런데, 갈 때마다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텔레비전 소리를 듣고 있을 그 집 사람들이 누구일까? 궁금하다.

 

 

사사자삼층석탑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원에 사는 사자를 어떻게 알아서 저렇게 조각을 하게 된 것일까? 지금처럼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도 안 하고, 동물원도 없었을텐데 말이다. 탑 주위를 지키고 서 있는 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사자들을 볼 때마다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아이들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ㅋㅋ 웃음이 닮아 그런가?


겨울 화엄사

지상에 화엄세계를 만들어놓고, 그들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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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 갈대와 철새

   감탄사만 터지게 하는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서 갯벌과 갈대와 철새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갯벌을 자세히 보시면 철새들이 잠들어 있는 걸 알 수 있겠지요?

 


시린 하늘

   갈대 사이에 누워 바라 본 하늘. 아침에 내린 비 덕인지, 오후엔 하늘이 저렇게 파랬습니다. 어쩌면 하늘이 저럴 수가 있을까? 을숙도에서 감탄사를 남겨야 할 대상이 하나 더 늘었네요. 갯벌, 갈대, 철새...그리고 하늘!

 


울음이 타는 겨울강?

   눈앞의 섬들은 이제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저녁 햇살을 받아 점점 흐려진다. 이제 곧 어둠이다!

 

아미산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낙조

   저녁 해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땅, 낙동강 하구를 비춘다. 강원도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도 이제 바다를 만나 겨울잠을 자러 가는가 보다.

 



철새들의 群舞

   해지는 저녁,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려고 한다. 그건 새들도 마찬가지다. 오륙도를 향해 가는 가마우지떼들의 무리.


몰운대

   다대포에서 바라 본 몰운대의 끝자락! '沒雲'이라...다대포 모래밭을 한 없이 거늘다가 몰운대를 보니 벌겋게 한껏 달아오른 뒤 식어가는 몰운대가 애처롭다.

 


흔적

   존재는 모두 흔적을 남긴다. 물결이 육지로 드나들었던 흔적들. 육지로 올라와 무엇을 하고 다시 바다로 내려갔던 것일까?

   2003년 12월 11일, 함께 했던 모든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박옥진선생님, 김옥이선생님, 송종호선생님, 정순진선생님, 김영호선생님, 김정미선생님, 홍송희선생님, 이효숙선생님, 느티나무! 좋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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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향한여행 2003-12-1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숙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인데 철쭉과 진달래 유채꽃 들이 있는 이 예쁜곳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로 인해 많이 더럽혀 졌다. 예전에는 새들도 많이 볼수 있었는데...
 

부산역에서

   고등학교 때 겪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고, 나는 그 때는 이미 애늙은이였다.  학교 안팎에서 열심히 싸우는 선배들이,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고, 그들의 무지막지한 용기에 감탄하기도 했었다. 내 친구들도 하나 둘 깊이는 아니지만, 그 주변에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시위 대열에 들어갔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 딴에는 신중하게 판단해 보고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되는 것만 골라서 했다!) 오로지 그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것만 하고 싶었고, 적으나마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야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  내가 제대로 된 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진실로 인간됨의 괴로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2003년 11월 26일 오후, 부산역!

바르게 사는 삶을,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을 고민하게 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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