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의 나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아사의 나라
유홍종 지음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지극히 주관적이게도, 나는 역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팩션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장르로 급부상한 역사 소설은 어느 하나도 마음에 든 작품이 없었다(아직 만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대중적인 소설 <다빈치 코드>도 난 재미가 없었다). '역사'는 역사다운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한 사람의 개인적인 시선으로 없애고 붙이고 자른 이야기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역사'라는 것 역시 기록한 사람의 주관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선택'과 '가치비중'의 몫일 뿐, '허구'는 아니다. 역사 소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기 때문에 작가의 감정이 지나치게 많이 반영되어 읽는 내내 작가의 감정에 경도되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 감정이란 한 명의 인물(대부분은 주인공)이나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찬탄이다.    

 이렇게 서론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아사의 나라> 역시 내 취향을 바꾸어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 소설이라면 어느 책을 읽든지 간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산재해 있다. 주인공인 아사나 그녀의 딸 사비는 지적이고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강인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야기의 중간에 아사에서 사비로 주인공이 바뀌지만 캐릭터에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눈이 멀었고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사비'라는 딸은 아사와 완전히 똑같다. 아사가 사랑하는 설오유 장군은 남자답고, 총명하고, 다정다감하기도 한 남자주인공의 전형적인 인물이고, 아사를 짝사랑하는 대상인 진술래는 늠름한 남자에 해바라기같은 사랑을 보여주지만 설오유보다는 부족한 인물. 사극이든, 영화든, 책이든 어디에서나 소비되는 캐릭터들이다.  

 인물을 제외하면 역사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은 이야기와 역사의 긴밀성, 있을 법하다는 개연성, 그리고 흡입력이라 볼 수 있다. <아사의 나라>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소설이 시작되는 전반, 끝나는 후반에서는 국사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데 지면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 멸망기'라는 시대의 큰 흐름을 제외하면 인물들의 인생과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됐든 시대의 흐름, 나라의 운명에 의해 개인의 삶이 파괴되고 변화되어 간다는 큰 줄기는 이야기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 내내 슬픈 <아사의 나라>를 읽으면서 허무함을 느낀 것은 내가 비관적인 사람이라서일까. 아침이라는 의미를 지닌 '아사'라는 이름도, '사비'라는 이름도 작가가 의도한대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는 '희망'이라 읽히기 보다는, 시대에 파묻혀버린 힘없는 개인들의 피지 못한 희망이라 읽혀서 아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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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 Mo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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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제목 그대로 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SF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포스터처럼, 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사람(혹은 여러 사람)과 컴퓨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 시놉시스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이제까지 보아온 SF 영화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배우 케빈 스페이시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그를 영화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물론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착각이었지만), 그는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그의 안정감있고 똑같은 톤이 반복되는 목소리에서 오히려 컴퓨터의 감정을 느꼈다면 이상한 표현이 될까? 여하튼, 얼굴 없이도 이처럼 연기력을 내뿜는 배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내게는 이 영화가 일단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영화는 샘 벨의 역할을 맡은 샘 락웰이라는 배우에 의해 진행되는 영화다. 굉장히 눈에 익은 배우이기는 하지만, 존재감이 크다고는 볼 수 없었던 배우. 하지만 이 영화, 샘 락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 영화는 샘 락웰이라는 배우를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줄 수도 있을 듯 하다(물론 그가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것은 일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는 그의 원맨쇼에 케빈 스페이시라는 뛰어난 배우가 배경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가 맡은 샘 벨이라는 인물은 3년 동안의 계약직 사원으로 달에서 자원 채굴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구와의 통신 위성이 고장나서 외부와 소통할 수 없는 그에게 '외로움'이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고, 외로움 그 자체의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말벗은 컴퓨터 거티 뿐이다. 하지만 인간적인 냄새가 없는 달에서 지속되는 거티와의 생활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구에 남기고 온 달에서 보내는 3년이라는 시간은, 삶의 의미있는 일부가 아니라 그저 흘러가기를 기다리며 몸을 내맡기고 있는 고통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3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시작된다. 사고를 당하게 된 샘 벨은 '새로운' 샘 벨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누가 '복제 인간'인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같은 이름의 아내를 두고 있는 두 사람,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름과 얼굴 생김새가 같은 두 사람은 다투고, 싸우고, 협력하고, 결국엔 친구가 된다. '달'이라는 곳에서 만난 유일한 인간이라는 점,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두 명의 샘 벨'이 선택한 인생을 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허무할 수도 있고, 어쩌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후자였다. 보고 난 뒤 가슴이 먹먹해졌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SF 영화를 보고 많이 슬펐다(샘 벨의 기억과 관련된 일화에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관객을 추리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앞에 나왔던 장면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서 생각할 거리가 많고, '스포일러'가 가득 담긴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어보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거티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일반적인 SF영화에서 컴퓨터는 인간과 대립되는 캐릭터로 설정되는 것과는 달리 <더 문>에서는 그 체제에 저항하고 인간의 편이 되는 역할이라 신선했던 것 같다. 거티의 모니터에 표시된 이모티콘이 여러가지 감정을 보여줄 때, 특히 눈물을 흘릴 때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우리의 태극기가 등장하고, 한글, 한국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관심도 논란도 많은 것으로 안다. 일단은 샘 벨을 고용한(?) 비인간적인 회사가 한국과 미국의 합작 회사로 등장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비하 의도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니 한국인 여자친구 때문에 호감을 가진 설정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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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0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 락웰....소리없이 강한 배우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린네 2009-12-05 18: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영화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까지 왜 몰라봤나 싶을 정도로..^^ 앞으로는 주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더 문 - Mo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단순한 SF 영화라 생각한다면 오산. 생각할 거리를 상당히 많이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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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2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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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근거리는 설렘과 따뜻한 우정으로 가득하지만, 마음 아프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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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에 책이 있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시냇물에 책이 있다 - 사물, 여행, 예술의 경계를 거니는 산문
안치운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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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집은 참 오랜만이다. 산문집을 선택하는 경우 대부분은 글쓴이를 따지게 되는데, 난 연극에 문외한인지라 <시냇물에 책이 있다>를 쓴 연극평론가 안치운에 대래 전혀 모른다. 그래서 좀더 중립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크게 '살며, 여행하며, 공부하고'라는 세 가지 주제로 엮어진 글들은 글쓴이의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살며'라는 주제 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자전거 예찬론이라든지, 음악의 아름다움이라든지, 자신의 동네에 새로 생긴 '살아있던' 술집 이야기도 있지만, 특히 자연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그가 보는 산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산에서 야영을 하게 되면 산과 하늘이 구별되는 하늘금이 순간 사라질 때를 보게 된다. 이 순간 우리 자신은 자연 속에 물들어 간다. 추위와 침묵과 산의 높이가 하나가 된다. (p.40)

 '여행하며'는 말 그대로 글쓴이가 이집트, 멕시코, 이탈리아, 프랑스 등 여러 곳을 다니며 느낀 감정을 담고 있다. 특히, 삶과 죽음 사이에 난 길, 중세 순례자의 길 등 여행하며 다닌 아름다운 길에 대한 생각, 예찬, 비유로 가득하다.  

 '공부하고'에서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연극, 음악, 춤, 사진 등)와 관련된 책을 소개해주는 차원을 넘어 깊이있는 해석까지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공부하고'에 실린 글 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에 실린 글에서도 (아마 글쓴이의 의도겠지만) 책 한 권씩이 등장한다. 물론 '공부하고'라는 주제에서처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고 제목이나 내용의 일부를 언급하는데 그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덕분에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왠지 안치운이라는 사람의 '독서일기'를 읽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더구나 세 가지의 주제에 대한 글쓴이의 해석은 그럴 듯 하나 크게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하나의 제목을 가진 짧은 글 안에 또다시 소제목을 붙였기 때문에 '파리 산문'과 같은 글은 한 편의 글이 70페이지를 넘는다. 왠만한 단편소설 못지 않은 분량이다. '파리'에 있을 당시를 떠올리며 쓴 글이므로 사색의 흐름대로 글이 전개되고 있어 '여행하며'라는 주제와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시냇물에 책이 있다>는 여행기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단순한 산문집이라고 하기엔 이야기가 꽤 다양하다. 나같은 편식주의자인 독자에게는 하나의 주제를 가진 글로 묶은 책이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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